엘리시움
엘리시움
서기 2154년, 지구는 가난과 질병 그리고 전쟁으로 황폐해졌다. 그 중 선택받은 1%는 ‘엘리시움’이란 곳에 새로운 터전을 마련했다. 이곳은 가난도, 질병도 그리고 전쟁도 없는 곳이다. 때문에 모든 사람들은 이곳으로의 이주를 꿈꾼다. 지구에서 살아가던 맥스(맷 데이먼)은 불의의 사고로 단 5일 밖에 살 수 없게 된다. 이에 맥스는 철통경비를 자랑하는 엘리시움으로 향한다. 그리고 자신의 생존과 인류의 미래를 바꾼다. 청소년 관람불가, 29일 개봉.

정시우 -전작이 지나치게 훌륭했을 뿐, 이 정도면 수준급 SF ∥관람지수 7
황성운 -닐 블롬캠프 감독의 기발함과 독창성은 사라지고 규모와 평범함만 남았다.∥관람지수 6

정시우: 이 영화에 대한 우려와 기대는 동일한 지점에서 나온다. 바로 감독 닐 블롬캠프. 관객들은 2009년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부터 당도한 ‘디스트릭트9’이라는 영화를 통해 그의 창의력을 인상 깊게 바라본 바 있다. 강렬한, 주목할 만한, 인상적인, 놀라운… 신인감독에게 치하할 수 있는 수식어란 수식어가 모두 동원 돼 블롬캠프를 환대했다. 그러니 ‘엘리시움’을 ‘디스트릭트9’에 기대어 바라보지 않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전보다 여유로워진 제작비 안에서 감독의 상상력이 보다 능동적으로 발휘됐을 것이란 기대와, 거대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변덕과 입김에서 얼마나 자유로웠을까 하는 걱정이 소포모어 징크스(2년차 징크스)와 함께 넘실거린다.

거두절미하게 얘기하면, ‘엘리시움’은 제작비의 크기가 영화의 완성도와 비례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사례다. 그 누구도 ‘엘리시움’이 ‘디스트릭트9’ 보다 더 좋다고는 쉽게 얘기하지 못할 것이다. 늘어난 예산에 걸맞게 시각적 이미지는 더욱 더 그럴싸해졌지만, 그 속에 놓인 인물들의 매력은 도리어 희미해졌다. 창의적인 면에서도 섬세함 면에서도 전작의 아성을 넘어서지 못한다. 영화는 하층민들이 엘리시움에 올라가고자 하는 희망(내지는 욕망)의 이유를 다채롭게 담아내지 못한 채, 단순히 ‘죽어가는 사람도 살리는’ 첨단 의료기계에 천착하다.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 엘리시움행을 선택하는 주인공 맥스(맷 데이먼)의 사연과 과정도 거칠게 제시되는 바람에 충분한 감동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특히 맥스의 갑작스러운 변심은 흔한 영웅주의로 비춰질 위험이 있다.) 그렇게 정밀하게 건설됐다는 엘리시움이라는 거대 제국이 몇몇 인간에 의해 허망하게 흔들리는 모습도 다소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지 말라고? 속단은 금물이다. 블롬캠프는 본작을 통해 자신의 창의력이 진화했음을 증명해 보이진 못하지만, 스스로가 오랫동안 지녀온 관심사를 우직하게 관철시키는 데에는 성공한다. 무엇보다 이 영화엔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의 부조리를 뒤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엄밀히 말해 SF 영화들이 건드리는 건 미래가 아니다. 미래라는 모습을 빌어 현재의 문제를 환기시키는 게, 명작이라 일컬어지는 SF 영화들의 힘이고 백미였다. ‘디스트릭트9’이 외계인의 은유를 통해 인종차별에 다가섰다면, ‘엘리시움’은 갈라진 두 세계를 현미경 삼아 ‘이주, 의료, 계급’을 거칠 것 없이 까발린다. 현실을 바라보는 감독의 눈은 4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날카롭다. 그러니까 이건 보통 이상의 만듦새를 지닌 SF다. 전작이 지나치게 훌륭했던 탓에 상대평가에서 불리할 뿐, 절대평가로 바라보면 충분히 매력적이다.

공간을 밀도 있게 스케치하는 감독의 솜씨는 여전하다. ‘엘리시움’에서 주인공이 속한 하층민의 세계는 ‘디스트릭트9’의 9구역(외계인 수용구역)에 해당하는 공간이다. 블롬캠프는 이를 위해 멕시코시티에 위치한 쓰레기 매립지를 전전하며 그 풍광을 카메라에 담았다. 영화가 그리는 황폐화된 지구의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현실인 셈이다. 허름한 빈민가를 부감으로 담아낸 모습에선 이국적인 정서까지 풍기는데, 이러한 비할리우드적인 느낌은 영화에 참여한 다국적 배우들 덕분이기도 하다. 짐작컨대 이 중 눈여겨보게 될 건 주연배우 보다는, 스파이더 역의 와그너 모라. 맥스가 엘리시움으로 갈 수 있도록 원격 제어복을 선사하는 이 브라질 출신의 배우가 구사하는 몸짓과 억양과 눈빛을 보라. 영화를 보고나서 이 배우의 필모를 찾아보고 있는 당신을 만날지도 모르겠다. 조디 포스터의 활용이 적잖이 아쉽지만, 그보다는 와그너 모라를 만난 즐거움이 더 크다.

이 영화의 논리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덜 가진 자가 더 가진 자를 향해 ‘프리덤!’을 외치는 것은 일찍이 SF가 흠모해 온 소재고 주제다. 아이디어 고갈로 프리퀄 제작이 늘어나고, 만화와 게임 원작의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오리지널 아이디어로 중무장한 영화를 만나기란 얼마나 귀하고 반가운 일인가. 닐 블롬캠프의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궁금하다.(정시우)
엘리시움
엘리시움
황성운: 2009년 ‘디스트릭트9’는 전 세계 영화 팬들을 흥분시켰다. 신선하고 독창적인 표현과 설정으로 시선을 확 끌어당겼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의 닐 블롬캠프 감독 차기작에 관심이 쏟아지는 건 당연했다. 이후 할리우드 거대 자본과 만난 닐 블롬캠프 감독은 4년 만에 신작 ‘엘리시움’을 내놓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엘리시움’은 아쉽게도 ‘디스트릭트9’이 전했던 당시의 흥분과 놀라움을 전해주진 못했다. 어쩌면 닐 블롬캠프의 독창성을 기다려왔기 때문에 내려지는 가혹한 평가일지도 모르겠다. 영상미는 뛰어나지만 ‘엘리시움’이 담고 있는 이야기는 평범하다.

먼저 ‘평범한’ 이야기부터. 지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가난에 굶주리고, 질병에 속절없다. 그래서 가난과 질병이 없는 엘리시움을 꿈꾼다. 물론 그 곳은 아무나 갈 수 없는 곳. 맥스도 마찬가지. 하지만 어느 날 치명적인 방사능에 오염되고, 살기 위에서는 엘리시움의 첨단 치료 장비를 이용해야만 한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5일. 이쯤 되면 영화의 흐름, 답 나온다. 어떤 사명감이나 대의명분이 아닌 ‘철저히’ 개인적인 이유로 시작해 결국엔 영웅의 자리에 오르는, 안 봐도 비디오다. 맥스 역시 결국엔 ‘인류의 미래’를 책임지게 된다. 맥스의 여정에 엘리시움을 장악하려는 델라코트(조디 포스터), 맥스를 가로 막는 크루거(샬토 코플리), 약간의 멜로 라인을 만드는 프레이(앨리스 브라가) 등의 인물들이 끼어들면서 다양한 이야기 갈래를 만든다. 허나 어쩐담. 이 이야기들마저 큰 흥미를 주지 못한다. 식상한 이야기들의 나열일 뿐이다.

캐릭터의 매력도 크지 않다. 엘리시움에 침투하기 위해 맥스는 특수 갑옷을 착용한다. 영화 속 캐릭터들에겐 놀라울지 모르겠으나 스크린 밖 대중들의 눈을 만족시키기란 어려울 듯싶다. 맷 데이먼의 삭발 모습, 나름 신선하다. 허나 하정우의 삭발이 더 파격적이고, 관심이 가는 걸 어찌할까. 또 액션장면이 그다지 많지도 않지만, 액션 장면조차도 짜릿한 긴장감을 만들지 못한다. 맥스를 막아서는 크루거는 점점 뒤로 갈수록 설득력마저 잃어버린다. 조디 포스터나 앨리스 브라가 역시 그다지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내진 못했다.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지점에 머무른 느낌이다.

‘화면발’은 제대로다. 지구에서 떨어진 거대한 도시이자 국가인 엘리시움의 모습은 놀랄 만하다.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본 모습만큼이나 아름답다. 호화롭고, 화려한 엘리시움의 전경은 지구와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더욱 강한 이미지를 남긴다. 아쉽게도 딱 여기까지다. 엘리시움을 내부에서 지켜보면 그다지 화려하지 않다. 호화로운 휴양지(리조트) 정도. 또 엘리시움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알 수가 없다. 버려진 지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뚜렷한 대비를 이루지 못한다. 그러면서 계급, 차별, 빈부격차, 권력 등 담고 있는 주제들이 어렴풋이 보이긴 하지만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지구와 엘리시움, 공간을 두 개로 나눠 이야기를 진행시킨 게 오히려 안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영화를 보면서 정말 부러웠던 건 단 하나, 몇 초 만에 모든 병을 고치는 의료기기다.(황성운)

글.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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