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R.I.P.D.’ 포스터
영화 ‘R.I.P.D.’ 포스터
영화 ‘R.I.P.D.’ 포스터

부인 줄리아(스테파니 스조스택)와 함께 소박하지만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경찰 닉(라이언 레이놀즈). 그는 어느 날 범인을 쫓던 중 자신의 파트너 바비(케빈 베이컨)의 어이없는 행동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 깨어난 닉이 있는 곳은 난생 처음 보는 이상한 사무실. 알고 보니 그 곳은 인간을 괴롭히는 불량 유령들을 잡아들이는 사후 강력계 형사반 R.I.P.D.(Rest In Peace Department).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불량 유령 퇴치 전담 부서에 강제 배치된 닉은 엉겁결에 부서 최고의 에이스 로이(제프 브리지스)의 파트너로 낙점돼 유령들의 음모와 맞서게 된다. 15세 관람가, 22일 개봉.

10. 유령보다 먼저 퇴치해야 할 건 몰입을 방해하는 산만함∥ 관람지수 5 / CG지수 7 / 몰입지수 4

영화 ‘R.I.P.D.’ 스틸
영화 ‘R.I.P.D.’ 스틸
영화 ‘R.I.P.D.’ 스틸

어디서 많이 본 설정이다. 인간 세상에 잠입한 외계인들을 색출하는 요원들의 이야기 ‘맨 인 블랙’에서 외계인만 유령으로 바뀌었다. 기본 세팅도 참신하지 않지만, 더 문제가 되는 건 전개 과정이다. 닉과 줄리아의 로맨스가 닉과 로이의 파트너십으로 전환되는 과정부터가 너무 갑작스럽다. 감독관과 마주한 닉이 느낄 황당함을 관객들도 고스란히 느낀다. 수수께끼 투성이다. ‘왜 닉이 R.I.P.D. 부서에 배치됐나?’, ‘왜 로이의 파트너가 되었나?’, ‘인류의 위기가 닥쳤다면서 왜 수많은 R.I.P.D. 부서원들 중 닉과 로이만이 출동하는가?’, ‘유령들은 왜 저런 음모를 꾸미는가?’ 등. 영화는 끝까지 수수께끼의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사실 영화가 끝날 때 쯤이면 그 답이 딱히 궁금하지도 않다. 그만큼 몰입이 힘들다.

영화 ‘R.I.P.D.’ 스틸
영화 ‘R.I.P.D.’ 스틸
영화 ‘R.I.P.D.’ 스틸

‘R.I.P.D.’라는 그럴 듯한 제목처럼, 영화의 겉모습은 번지르르하다. 홍보 문구에 따르면 1억 3천만 불 이상의 제작비가 투입됐다고 하는데, 거짓말은 아닌 듯. 유령들과의 추격전 등 도시를 관통하며 펼쳐지는 액션신, 좀비를 변형시킨 듯 독특한 느낌의 유령을 구현한 CG 등에서 돈 냄새가 난다. 유령 퇴치 콤비의 연기도 나쁘지 않다. 특히 로이를 연기한 제프 브리지스는 ‘개구쟁이 스머프’에나 나올 법한 유치한 대사들도 천연덕스럽게 소화해내 거부감을 던다. 이 영화가 던지는 개그의 성공률은 심하게 낮지만, 닉&로이 콤비의 ‘아바타’가 등장하는 부분은 꽤 재밌다. 이 장치가 유령을 퇴치하는 과정에 좀 더 녹아들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비슷한 설정의 ‘맨 인 블랙’이 그랬듯 영화 ‘R.I.P.D.’ 역시 오락영화, 혹은 ‘B급 영화’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가 지향하는 바도 촘촘하게 짜여진 스릴러가 아니라 가볍게 볼 수 있는 액션 블록버스터다. 형사 콤비들이 무게를 잡기보다 시종일관 농담을 던지며 익살맞은 태도를 유지하는 것도 영화의 지향점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이 영화는 결국 재미있는 B급 영화가 되는 데 실패했다. 로이가 던지는 농담에는 맥락이 없고, 넉넉한 제작비로 실감나게 구현한 CG도 ‘파격’이라기엔 부족하다. 영화를 보고 난 후 기억에 남는 건 닉의 아바타 제임스 홍과 징그러운 유령들의 비주얼뿐이다. B급 영화를 지향하는 ‘R.I.P.D.’는 오히려 잘 만들어진 B급 영화들에 대한 그리움만 되새기게 했다.

글. 기명균 kikiki@tenasia.co.kr
사진제공. UPI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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