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엄마' 라미란./사진제공=씨제스
'나쁜 엄마' 라미란./사진제공=씨제스
"실제 저는 방치형 엄마예요. 아들이 4살 때부터 너의 선택은 너의 책임이라고 가르쳤죠. 자식에게 신경을 못 쓰는 것에 대해 미안해하는 엄마들이 꽤 있더라고요. 미안할 수 있지만, 그렇게 안 미안해했으면 좋겠어요. 엄마도 본인의 삶이 있는 거니까요. 모든 엄마가 오은영 박사님처럼 자식을 키울 수는 없잖아요?"


JTBC 수목드라마 '나쁜 엄마' 속 라미란(진영순 역)과 실제 라미란은 다른 '엄마'였다. 혹독하게 아들을 교육한 영순과 달리 라미란은 "나는 젖먹이가 끝나면 (육아는) 끝난 거라고 생각한다"고 너스레를 떨 정도로 '쿨'한 엄마였다. 그러나 방법이 다를 뿐, '좋은 엄마'라는 것은 똑같았다.

2002년 신성우 매니저 출신 김진구 씨와 결혼해 슬하에 1남을 두고 있는 라미란. 그의 아들 김근우는 올해 20세로, 사이클 선수로 활약 중이다. 아시아주니어 선수권 대회에서 개인전 은메달, 단체전 금메달을 따기도 했다.

라미란은 "우리 집 식구들은 나한테 관심이 없다. 내가 나온 작품도 안 본다"며 "'엄마는 좋은 엄마야, '나쁜 엄마야?'라고 물으니까 '좋은 엄마지'라고 하더라. '오케이 땡큐'라고 했다. 방생하는 엄마 얼마나 좋냐"며 웃었다.
'나쁜 엄마' 스틸컷./사진제공=드라마하우스스튜디오,SLL,필름몬스터
'나쁜 엄마' 스틸컷./사진제공=드라마하우스스튜디오,SLL,필름몬스터
지난 8일 종영한 '나쁜 엄마'는 자식을 위해 악착같이 나쁜 엄마가 될 수밖에 없었던 엄마 영순(라미란 분)과 뜻밖의 사고로 아이가 되어버린 아들 강호(이도현 분)가 잃어버린 행복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 라미란은 극 중 홀로 돼지농장을 운영하며 아들을 키우며 가난과 무지로 인한 고통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나쁜 엄마가 되기를 자처한 진영숙 역을 맡아 열연했다.

라미란은 "역시 14부는 짧지 않았나 쉽다. 나도 좀 아쉬웠다. 초반에 작가님한테 조금 더 힘을 내보시라고, 마무리 급하게 하는 거 싫다고, 16부 정도면 좋을 것 같다고 했는데, 잘 마무리하신 것 같다"며 "작년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촬영했다.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다. 조우리 마을 사람들과 있는 장면들이 많다보니까 옛날에 공연하던 생각도 나고, '응답하라 1988' 때처럼 사람들이 복작복작 있어서 너무 좋았다"고 종영 소감을 전했다.

이번 작품은 유독 눈물 장면 등 감정 소모가 많은 캐릭터였다. 이에 라미란은 "아침 첫 장면부터 감정신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항상 눈이 부어있는 경우가 많았다. 전날 짠 음식을 먹어서 일수도 있지만"이라고 너스레를 떨며 "어느 날은 부기가 빠졌다가, 어느 날은 부었다가 그랬다. 참 신기한 게 대본이 잘 쓰여 있으면 감정이 저절로 생긴다. 그래서 감정 연기에 대한 염려는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눈물 연기를 이렇게까지 한 작품은 없었다. 심지어 많이 줄인 거다. 눈물이 나올까 봐 틀어막고 했던 장면도 많았다.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눈물이 나는 경우도 있었다. 그걸 조절하고 클린하게 만드는 데 힘을 더 썼다"고 덧붙였다.
'나쁜 엄마' 라미란./사진제공=씨제스
'나쁜 엄마' 라미란./사진제공=씨제스
이번 작품에서 타이틀롤을 맡은 라미란. 부담감은 없었냐고 묻자 그는 "주인공에게 너무 치우쳐서 풀고 가는 게 아니라 좋았다. 주변 인물도 살아있고, 이야기도 다 있고, 그러면서 같이 합쳐지고, 흩어져서도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었다. 부담이나 이런 것들은 느낄 필요가 없었다. 나 말고도 극을 채워주는 분들이 많아서 혼자 끌고 간다는 느낌이 안 들었다"고 말했다.

타이틀롤에 대한 뿌듯함에 대해서는 "무슨 의미가 있냐"며 "욕먹을 일이 더 많다. 그런 부담감은 안 가지기로 몇 작품 전부터 마음먹었다. 잘 안된 작품도 있다 보니 그런 것에 대해 흔들림은 크게 없다"고 덧붙였다.

라미란은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있어 '모성애'보다 '진영순' 그 자체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엄마라서가 아니라 영순이니까. 이런 삶을 살았기에 내릴 수 있는 결론이고 판단이고, 그에 따라 실수하고 잘못하고 용서를 빌고 관계를 맺어가면서 이 이야기가 생기는 거다. 상황이 버겁기는 했지만, 버거운 만큼 감사함이 더 커지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나쁜 엄마' 스틸컷./사진제공=드라마하우스스튜디오,SLL,필름몬스터
'나쁜 엄마' 스틸컷./사진제공=드라마하우스스튜디오,SLL,필름몬스터
라미란은 '위암 말기' 인물을 연기했지만, 수척해지는 데는 실패했다며 "제 관리 부족 탓이다. 다른 배우들은 입금이 되면 쫙 빼던데 나는 안 되더라. 지방 촬영이 많다 보니 내가 사람들과 같이 밥 먹는 걸 좋아해서 끌어모으게 됐다. 그래도 다 조절할 수 있는데, 의지박약이라고 해달라"며 웃었다.

최종회에서 진영순은 반전 없는 죽음을 맞이했다. 이에 라미란은 "곱게 갔다. 너무 행복한 결말을 맞이해서 좋았다. 죽는다는 거 자체가 슬프거나 마음 아프게 나가지 않아서, 너무 잘 짜인 결말이다. 죽지 않았다면 그것도 찝찝했을 것 같다"며 만족해했다.

"힘들게 살아온 영순이가 고통스럽게 가는 걸 보고 싶지 않았아요. 행복하게 가는 모습을 저도 보고 싶었죠. 살면서 힘들었는데 고통스러워하면서 죽는 건 너무 불쌍할 것 같았거든요."
'나쁜 엄마' 라미란./사진제공=씨제스
'나쁜 엄마' 라미란./사진제공=씨제스
라미란은 앞서 제작발표회에서 '나쁜 엄마'는 매달려서라도 하고 싶은 작품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이에 라미란은 "이렇게 다사다난하고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인생을 사는 역할을 맡는 게 쉽지 않다. 다양한 엄마들의 이야기도 있고, 삶을 바라봐야 하는 시각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이런 작품을 언제 해보겠나. 내 나이가 되면 작품 속에서 주변 액세서리처럼 빠져있을 확률이 높은데, 배우로서 이런 역할은 너무나 매력 있는 거다. 재밌고, 사랑스럽고, 이런 작품을 만나는 게 쉽지 않으니까 들어올 때 감사하게 해야 한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라미란은 극 중 가장 많은 호흡을 맞췄던 이도현에 대해 "나는 이도현이라는 배우의 전작들을 거의 다 봤다. 강호 역할이 너무 어려운 역할이다. 완벽한 타이틀롤도 아니라 캐스팅하는데도 힘들었을 거다. 이도현 배우는 스펙트럼도 넓고 연기도 좋다고 생각했는데, 출연한다고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촬영을 해보니 훨씬 좋더라. 잘 될 수밖에 없는 친구"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이도현은 '나쁜 엄마' 촬영 당시 넷플릭스 '더 글로리'가 공개되며 뜨거운 사랑을 받기도 했다. 이에 라미란은 "('더 글로리' 공개) 전에 낚아채길 얼마나 잘했나"라며 "촬영 중간에 '더 글로리'가 공개됐는데, 그걸 보고 난리가 났다.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내가 제작자도 아닌데 빨리 계약하길 잘했구나 싶었다. 연기에 대한 욕심도 많고, 훨씬 더 가능성 있는 친구"라고 치켜세웠다.

실제로도 이도현이 살가운 성격이냐고 묻자 라미란은 "살가운 편은 아니다. 낯을 가리는데 따뜻하다"라고 설명했다.
'나쁜 엄마' 라미란./사진제공=씨제스
'나쁜 엄마' 라미란./사진제공=씨제스
극 중 돼지 농장 사장이었던 만큼 돼지와의 에피소드도 많았다. 라미란은 "돼지가 연기를 너무 잘해줬다. 사람들이 CG로 아는데 거의 다 진짜 돼지였다. CG는 오프닝에 나오는 되지 말고는 거의 없었다. 특수 동물 학교에 다니는 돼지들이라더라. 사육사가 부르면 귀신같이 달려간다"고 회상했다.

극 중 이장 손용락(김원해 분) 부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마스크팩을 붙이고 등장해 정체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냈다. 이장 부인의 정체는 배우 박보경으로, 배우 진선규의 아내이기도 하다. 라미란은 "계속 마스크팩을 쓰지는 않겠지 했는데 마지막까지 쓰더라. 뚝심이 대단하다 싶었다. 작가님도 대단하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배우도 힘드니까. 피부는 좋아질 거라고 농담하기도 했다"며 미소 지었다.

라미란은 7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장면에 대해서도 회상했다. 그는 "잠깐이지만 진짜로 주마등을 본 것 같은 느낌이다. 원래는 와이어를 매달고 하는데, 상체를 찍을 때는 와이어를 안 매달고 몸을 비켜서 체중을 싣겠다고 했다. 다리로 조절하는데도 무게감이 실리니까 순식간에 수많은 것들이 확 지나가더라"고 말했다.
'나쁜 엄마' 스틸컷./사진제공=드라마하우스스튜디오,SLL,필름몬스터
'나쁜 엄마' 스틸컷./사진제공=드라마하우스스튜디오,SLL,필름몬스터
'응답하라 1988'에서 이웃으로 같이 호흡을 맞췄던 최무성과 '나쁜 엄마'에서는 피해자와 가해자로 만나게 된 라미란. 그는 최무성에 대해 "무성 선배님은 워낙 귀염둥이다. 부끄러움이 많은데 친해지면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해준다. 근데 재미가 하나도 없다. 선배님이지만 너무 귀엽다"며 "극 중 농장에 처음 찾아왔을 때 동의서 받으려고 차에서 내리는데 수트빨이 너무 멋있더라"고 회상했다.

'나쁜 엄마가' 라미란에게 어떠한 의미로 남을까. 그는 "지나가는 거라고 생각한다. 일희일비할 것도 아니고, 부담을 가질 것도 아니다. 내 입장은 달라질 게 없다. 타이틀 롤이라고 부담을 가지려고 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찍는 동안도 행복했고, 찍고 나서 방송을 보면서도 행복했어요. 그게 최고 아닌가요?"

태유나 텐아시아 기자 you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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