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킹' 이정진, 3년 만에 화려한 복귀
"이번 작품 위해 9kg 감량"
"시청률? 신경 쓸 겨를 없었어"
"'남자의 자격'→'더 킹', 모두 의외의 선택"
'더 킹'에서 이림 역을 맡아 활약한 배우 이정진/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더 킹'에서 이림 역을 맡아 활약한 배우 이정진/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이림이라는 캐릭터를 만나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어요. 드라마가 끝나면 많은 사람들의 평가가 있겠지만 제 스스로는 만족스러워요. 벌써부터 다른 작품 얘기가 나오는 걸 보면 나쁘진 않았나 봅니다. 하하"

배우 이정진은 최근 서울 상수동의 한 카페에서 텐아시아와 만나 SBS '더킹-영원의 군주'(이하 '더킹') 종영 소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지난 12일 종영한 '더 킹-영원의 군주'는 차원의 문(門)을 닫으려는 이과(理科)형 대한제국 황제 이곤(이민호 분)과 누군가의 삶, 사람, 사랑을 지키려는 문과(文科)형 대한민국 형사 정태을(김고은 분)이 두 세계를 넘나드는 공조를 통해 그리는 차원이 다른 판타지 로맨스다.

이정진은 극 중 이곤의 큰아버지이자 선황제의 이복형제인 금친왕 이림 역을 맡았다. 그는 이곤의 아버지를 살해하는 역모를 저지르고 세상의 모든 걸 차지하려는 욕심 많은 인물이었으나, 결국 이곤에게 참수 당하며 생을 마감했다.

이날 이정진은 22년간의 배우 생활 동안 악역을 여러 차례 맡았지만 이번에는 특별한 경험이었다고 했다. 그는 "이림은 결이 다른 악역"이라며 "지금껏 봤던 캐릭터와 달랐다. 비록 다른 세계로 넘어왔고, 서자지만 왕으로 태어난 사람이다. 완전히 새로운 캐릭터라 색을 입힐 때 감독님과 의견을 많이 나눴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강렬한 악역을 맡았던 이정진. 주변의 평가는 어땠냐고 묻자 "사람 좀 그만 죽이라고 하더라. '못된 짓 하면 벌 받는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며 웃었다.
'더 킹'에서 악역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 배우 이정진 /사진=SBS 제공
'더 킹'에서 악역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 배우 이정진 /사진=SBS 제공
이정진이 연기한 이림의 실제 나이는 70대지만 겉모습은 40대처럼 보이는 인물이다. 그는 "어떻게 하면 70대로 보일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면서 "분장이나 CG의 도움도 받아봤지만 지금 제 또래로 보였다. 시간을 유예하고 있으니 겉모습은 40대로 보여도 어딘가 모르게 70대라는 뉘앙스를 줘야 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결국 그가 선택한 방법은 급격한 체중 감량이었다.

"가장 안 좋은 방법을 썼어요. 하면 안 되는 짓이지만 억지로 굶었어요. 약 6~7주간 하루에 계란 두 개와 우유 한 잔만 먹었죠. 담배도 일부러 더 피웠어요. 의사들이 '하면 안 된다'고 하는 걸 거의 다 했다고 보시면 돼요. 확실히 고생을 하니까 효과가 바로 나타나더라고요. 몸무게도 9kg이나 빠지고 주름도 생겼죠. 그 덕에 요새는 3끼 잘 챙겨 먹으며 열심히 관리하고 있습니다. 하하."

이러한 이정진의 몸을 불사르는 노력에도 '더 킹'은 초반 평행 세계 소재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이어지면서 주춤했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서사가 탄력받기 시작하면서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에 대해 이정진은 "대본을 보면서 초반엔 시청자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면서도 "그런데 뒤로 갈수록 모든 사건이 풀리면서 역시나 많은 분들께서 좋아해 주셨다. 요즘엔 넷플릭스 같은 채널도 다양해지지 않았나. 모든 에피소드가 나온 이후에 몰아보기를 하시는 분들도 많을 것 같다"고 말했다.

스타작가인 김은숙과 함께 작업한 소감을 묻자 이정진은 "확실히 대본이 궁금해지는 힘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연기하는 입장에서도 '이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거지'라는 궁금증이 생겼다"며 "그저 스쳐 지나갈 법한 장면도 나중에는 연관성이 있다는 걸 깨닫고, 하나도 놓치면 안 된단 생각에 배우로서 더욱 집중력을 갖게 됐다"고 털어놨다.

방송 전부터 워낙 큰 기대를 모았던 '더 킹'은 우여곡절도 많았다. 방영 내내 과도한 PPL, 왜색 논란, 결방 등 각종 잡음이 따라다녔다. 그만큼 출연 배우로서 안타까움을 느꼈을 법하지만 이정진은 "내꺼 하기 바쁜데 남일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림 캐릭터가 워낙 세다. 사실 20년 차 배우 정도 되면 다른 드라마도 병행하기도 하는데 이번엔 다른 데 쳐다볼 여유조차 없었다"고 설명했다.

모두가 기대했던 것보단 다소 아쉬운 시청률을 거둔 '더 킹'이지만 이정진은 개의치 않았다. 그는 "어릴 땐 무조건 다 잘 될 것 같았는데 이젠 달라졌다"며 "지금은 이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내가 뭘 잘 할 수 있을지가 더 중요하다. 어떻게 보면 이기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게 배우로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배우는 항상 앞으로 내가 할 작품이 최고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잖아요. 연예인은 그런 욕구가 없으면 에너지가 멈추는 것 같아요. 이번 작품도 준비하고 연구하는 시간들이 좋았어요. 배우로서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는 에너지와 영감이 된 것 같아서요. '더 킹' 덕분에 빠른 시일안에 또 뵐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러다 보면 20년 뒤에도 지금처럼 인터뷰를 하고 있겠죠(웃음)"
'더 킹'에서 이림 역을 맡아 활약한 배우 이정진/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더 킹'에서 이림 역을 맡아 활약한 배우 이정진/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1997년 모델로 데뷔한 이정진은 오랜 시간 연예계 생활을 통해 '날 믿지 말자'는 신념을 갖게 됐다. 그는 "스스로를 과신하게 되면 무조건 사고로 이어진다"며 솔직한 심경을 털어놨다.

"몇 년 전부터 술 마시는 자리에 가게 되면 차를 놓고 택시 타고 다녀요. 제가 착하고 정직하지 않다고 생각해 그런 상황을 아예 만들지 않으려고요. 이러한 방법이 오래도록 연예계 생활을 할 수 있는 비결 중 하나죠"

그는 20여 년간 자신을 이끌어온 건 "의외의 선택"이라고도 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과거 예능 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에 출연한 것이다. 이정진은 "그때도 주변에서 '갑자기 예능을 왜 하냐'는 반응이었다"며 "그땐 배우들이 예능을 꺼려 하는 추세였는데 당시 신원호 PD가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는 말에 하게 됐다. 결과적으로 시야가 넓어지는 계기였다"고 회상했다.

"이번 '더 킹'과 마찬가지로 예능 프로그램 '남자의 자격'도 그렇고, 영화 '피에타'도 그렇고, 결정적인 순간에 의외의 선택을 한 게 저를 여기까지 이끌어 왔어요. 희한한 것들이 제 인생 중간중간 껴있는 것 같아요"

이정진은 인터뷰 내내 "나를 믿으면 안 된다. 남들이 훨씬 낫다"며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자신을 지나치게 깎아내리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이에 오랜 시간 달려온 자신에게 칭찬 한마디만 해달라고 부탁하자 "끄트머리에서부터 잘 버텨줬다"라고 나지막이 말했다.

"누구나 풍파가 있잖아요. 그걸 잘 견디는 사람도 있고 포기하는 사람도 있는 거죠. 저 역시 좋았던 시절과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제 주변 사람들을 잘 챙겨야겠다는 생각으로 버텨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끝으로 이정진은 연예인들의 인생을 비행기에 비유하며 스스로를 "경비행기 같다"고 덧붙였다.

"연예인들의 인생은 비행기인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을 태워서 멀리 가는 비행기 같은 사람이 있고, 제트기처럼 빨리 가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저는 경비행기처럼 사고 없이 날아가는 사람이고 싶어요. 혹시 바람이 많이 불면 이륙하지 않는 글라이더 같은 경비행기요"

정태건 기자 biggu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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