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시탈>, 계란으로 바위를 쳐보았습니까
, 계란으로 바위를 쳐보았습니까" /> 14회 수-목 KBS2 밤 9시 55분
매번 ‘계란으로 바위 치기’로 이어지는 결론이란 얼마나 허망하고 절망적인가. 그 무력감을 안고도 다음 계란을 들어 올리는 자, 누구인가. 도대체 그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형에 이어 항일 운동을 하는 각시탈의 운명을 선택한 이강토(주원)는 독립운동의 대의를 위해 위험에 처한 딸, 목단(진세연)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담사리(전노민)에게 묻는다. “우리 형처럼, 당신처럼 (그리고 나처럼) 산다고 세상이 바뀌겠습니까?”라고. 그것은 자신이 택한 길은 도대체 무엇이며 자신은 어떻게 이 길을 걸어가야 할지에 대한 절박한 질문이자, ‘이렇게 살면 세상이 바뀔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싶은 자가 던지는 반문이다. 그리고, 담사리는 죽은 것이 살아 있는 것을 죽일 수 없듯 죽은 바위는 모래로 부서져 버릴 것이요, 끝내 그것을 밟고 태어나는 것은 계란 속 생명이라 대답한다.

그러나 시간의 풍화에 기댄 채 제국이라는 바위가 침식되기를 기다리기까지는 얼마나 지난한 세월이 걸리며 그 사이 산산조각 나버릴 무수한 계란은 또 얼마일까. 철저히 훈련한 안나(반민정)도 아수라장이 된 합방기념식장에서 죽음의 두려움에 뒷걸음질 치며 자책했고, 묵묵히 독립을 위해 일한 조 단장(손병호)도 광포한 기무라 ?지(박기웅)의 고문 앞에 목단의 위치를 실토하며 무력해 하지 않았던가. 폭력을 경험하며 자신의 바닥까지 내려가 본 사람들에게 현재는 기약할 미래를 향한 의지의 삶과 쉽게 희망을 품을 수 없는 절망의 삶 사이의 시계추 운동이다. 그러니 “도적놈에게 복종하며 허기진 배를 채워주면 도적놈에게 굴종하는 짐승이 된다”는 담사리의 말은 인간되기의 당위와 그것의 고통스러움을 동시에 말하는 것만 같다. 그럼에도 결국 다음 계란을 들어 올리는 이는 괴물 같은 짐승이 아니라 언제나 고통 속에서도 인간되기를 져버리지 않은 자들이었다. 어쩌면 이강토의 반문은 여기에서 그 답을 얻고 나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글. 정지혜(TV평론가) 외부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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