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왕>, 유행 지난 90년대 스타일
, 유행 지난 90년대 스타일" /> 2회 SBS 월-화 밤 9시 55분
이쯤 되니 어쩌면 실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동대문에서 시작해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성장하는 젊은이들의 성공기인 줄 알았던 은 뚜껑을 열어보니 의 2012년 버전이자 의 동대문도 아닌 뉴욕 버전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이야기가 없다는 걸 감안해도 이렇게 노골적인 자기 복제는 실로 용감해서 신선하다. 물론 고아 신데렐라 여주인공의 수난사나 차도남 재벌 2세는 비단 제작진의 전작 뿐 아니라 대한민국 드라마의 공인된 클리셰이자 성공 공식이다. 하지만 은 설정과 캐릭터 뿐 아니라 장면까지 답습한다. 부띠끄의 오프닝 세레모니 날 부모의 기일을 챙기는 가영(신세경)과 이에 호기심을 느끼는 재혁(이제훈)의 만남은 언급된 전작들의 데칼코마니처럼 보인다. 여기에 1회와 2회가 5:5가 아닌 3:7의 비율로 나뉜 듯 지나치게 전개가 빨랐던 첫 회에 비해 가영과 영걸(유아인)의 고난이 10여분씩 열거된 2회는 또 과하게 느렸다.

현재로선 이 낡고 덜컹거리는 열차를 견인하는 힘은 온전히 배우들에게 있다. 영걸 스스로 “니가 믿기는 힘들겠지만”이라고 말한 선상폭동과 미국 밀입국 시퀀스는 그 뜬금없음과 어설픈 CG에도 불구하고 진심으로 억울해 보이는 유아인의 팔딱거리는 연기에 힘입어 수긍된다. 가장 전형적인 캐릭터를 부여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삐죽거리는 입매와 속을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인물의 사연을 궁금하게 만드는 이제훈의 연기는 알맞게 재단되어있다. 아직은 다음 이야기가 아닌 다음 연기가 궁금한 시점에서 제작진이 할 일은 이 배우들에게 좀 더 그럴듯한 상황과 좋은 대사를 주는 것이다. 1997년 당시 가장 맛깔 나는 트렌디 드라마를 그려냈고 2004년에는 인물의 계급을 단순히 배경이 아닌 욕망의 원동력으로 삼아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던 제작진이 2012년에 철 지난 90년대 조리법의 섞어찌개 같은 작품을 선보였다. ‘진보한 디자인은 박수를 받고 진부한 디자인은 외면당합니다’라는 패션계의 격언이 에도 유효할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제작진에게 기대한 것이 적어도 모델과 원단이 아까운 옷은 아니라는 것이다.

글. 김희주 기자 fif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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