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깊은 나무>, 가장 전복적인 역사의 순간
, 가장 전복적인 역사의 순간" /> 20회 SBS 수-목 밤 9시 55분
새 글자는 마침내 이름을 얻었다. 세종(한석규)의 ‘훈민정음’ 명명 과정은 이 드라마의 주제를 고스란히 압축하고 있다. 세종이 정기준(윤제문)의 역병론에 흔들린 것은 계몽 군주로서 자신의 한계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애초에 글자 창제의 배경에는 역병 창궐 당시 그에 대한 대비법조차 읽지 못하고 죽어가던 백성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좌절이 있었다. 다시 말해 세종이 아무리 백성이 스스로 말하고 쓰는 세상을 꿈꾸었다 해도, 그 근본적인 입장은 “세 살배기 어린애”들을 가르치는 어버이이자 스승의 태도에 더 가까웠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종은 ‘백성은 늘 고통으로 책임을 지고 있었다’는 채윤(장혁)의 일침에 비로소 그 한계를 인정하게 된다. 그 “마지막 자기검증”을 거친 후, 새로운 눈으로 다시 바라본 글자에서 그가 제일 먼저 떠올린 문자는 백성 민(民)이었다. 그 뒤에 음(音), 훈(訓), 정(正)을 차례로 이어 붙여 “백성의 소리를 새김이 마땅하다”라는 깨달음을 되새긴다.

새 글자의 공식 명칭은 이렇게 탄생한다.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계몽적 의미를 지닌 ‘훈민정음’을, 마치 마방진처럼 한자 한자 재배치하여 “백성의 소리”라는 민초주체적 의미로 재해석하는 과정은 의 진보적 역사의식을 드러낸다. 이는 글자 반포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정기준은 “해례와 번역본을 다량 인쇄하여 조선의 전 관청에 일시에” 반포되는 방식을 예측하지만, 세종은 역으로 백성의 진정한 표현수단이던 구전을 통해 밑으로부터의 확산을 택한다. 집현전 학사, 대군, 공주를 위주로 감시하던 정기준의 계급적 시각은 “설마 궁의 나인들에게 임무를” 맡겼으리라는 생각, 더 나가 거지와 아이들처럼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백성이 직접 주체가 되어 글자를 퍼트리리라는 상상은 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드디어 새 글자가 백성의 입을 통해 역병처럼, 들불처럼 번져나가는 마지막 신은 가장 전복적인 역사의 순간을 담은 명장면으로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다.

글. 김선영(TV평론가)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