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특강>, 대학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것
, 대학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것" /> 5강 EBS 월-수 밤 11시 10분
이라크 전에 투입될 미군의 충원을 위해 적절한 정책은 무엇인가. 남북전쟁 당시 징집 대상자가 돈을 주고 대리인을 고용한 것은 부당한가. 당시의 방식과 현재의 직업군인 제도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학생들의 답변이 꼬리를 물자 교수가 다시 묻는다. “자신이나 형제자매가 군 복무를 한 경험이 있습니까?” 없다는 쪽이 다수로 나타나는 순간, 교수는 앞서 압도적 다수의 학생이 직업군인 제도에 지지를 보냈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사고는 환경과 경험의 지배를 받는다. 그래서 하나의 결론은 보다 근원적인 고민으로 이어진다.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 강의에는 화려한 PPT도, 귀가 번쩍 뜨이는 농담도 없다. 그러나 팽팽하게 주고받는 논리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하다. 공리주의, 시민의 의무, 시장의 영역확장 등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개념에 대해 가장 현재적이고 구체적인 문제를 제시한 뒤 노련하게 논의를 확장하거나 정리하며 학생들 스스로 사고를 강화해 나갈 수 있게 만드는 샌델 교수의 방식은 책보다 강의에서 더욱 효과적이다. 게다가 첫 주 방송 후 시간을 앞당겨달라는 시청자들의 요청이 빗발쳤을 만큼 지금 한국 사회에서 ‘정의’라는 의제에 대한 뜨거운 갈구는 같은 시간 방송된 MBC < PD수첩 >의 제목이 ‘공정사회와 낙하산’이었다는 아이러니와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질문은 따로 있다. 징병제 국가에서 태어나 병역 문제가 이십대 최대의 화두인 우리나라의 대학생들이야말로 군 가산점제 찬반양론을 넘어 샌델의 학생들처럼 깊이 있는 고민과 부딪힐 기회를 얻은 적이 있는가. ‘스펙 쌓기’ 이상을 가르치지 않는 한국의 대학에서 스스로 생각할 힘을 잃은 그들은 마침내 학내 미화노동자의 권리보다 학생들의 ‘학습권’을 우선해야 하는 것이 ‘비운동권’ 총학생회의 역할이라 주장하는 데 이르렀다. 하지만 대학에서 하지 않는 ‘교육’을 방송이 한다. 불행 중 다행이다.

글. 최지은 f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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