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스타’, 같은 게스트, 다른 결과
‘라디오 스타’, 같은 게스트, 다른 결과
‘라디오 스타’ MBC 밤 11시 5분
솔직히 말하면, 더는 심형래에게서 새로운 걸 보지 못할 줄 알았다. 최근 영화 개봉을 앞두고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그는 영구 흉내를 비롯한 과거 슬랩스틱 개그를 수없이 반복했고, 이제 묻는 사람도 대답하는 사람도 껄끄러운 영화 에 대해 변명 혹은 해명을 늘어놓았다. 그간 심형래가 출연했던 프로그램들은 그를 위한 무대를 설정했고, 일종의 관객 놀음을 했던 셈이다. 하지만 ‘라디오 스타’ (이하 ‘라스’)는 그런 곳이 아니다. 그저 게스트를 우대하지만은 않는 ‘라스’ 특유의 분위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제 방송에서 MC와 게스트 사이에는 최소 하나의 연결고리가 존재했다. 심형래, 엄용수, 김학래는 영화 를 함께 완성한 동료 개그맨이고, MC 김희철은 그 영화의 열렬한 팬이며 MC 김국진은 엄용수의 이혼과 김학래의 골프를 이어받은 후배다. 이런 관계망 안에서 그들은 관객놀음이 아닌 수평적인 대화가 가능했고, 그 분위기 속에서 50대 아저씨 셋은 누가 머리숱이 더 많은지, 왜 엄용수만 에 가면을 쓰고 출연시켰는지, 왜 김학래 부인이 다시 태어나면 엄용수와 결혼하겠다고 말했는지 등 사소한 것들로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MC들이 끼어들 틈도 없이 열띠게 토크를 주도하는 게스트를 그대로 두는 것도 그렇지만, 골프와 이혼 이야기에 당황한 김국진, 심형래에 대한 ‘팬심’을 거침없이 드러낸 김희철의 찰나의 표정을 잡아내며 예상 밖의 웃음을 끌어내는 건 역시 ‘라스’의 능력이다. 그래서 어제 방송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즉흥적인 토크쇼가 그 즉흥적인 대화의 토대를 위해 얼마나 치밀한 기획을 준비하는지 보여줬다. 같은 게스트를 초대하면서도 결과가 다를 수 있다는 것, 그게 기획의 힘이고 프로그램의 힘이다.

글. 이가온 thir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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