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 15분 동안의 자서전
‘남자의 자격’, 15분 동안의 자서전
‘남자의 자격’ KBS2 일 오후 5시 20분
1주년 방송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 ‘남자의 자격’ 제작진이 선택한 첫 미션은 강연회라는 다소 평범하고 딱딱한 형식이었다. 이십대에게 ‘청춘의 자격, 청춘을 즐기는 방법’을 30분간 이야기하는 7인 7색 강연회. 멤버들은 “수백 개의 동공을 견디며” 30분을 지루하지 않게 버틸 수 있는 주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 와중에 이윤석은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 코너 목적하고 같아. 재미와 감동 두 가지를 다 잡아야 돼.” 하지만 어제 연사로 나선 이윤석과 김국진에 대한 청중의 반응을 생각해 볼 때, 어쩌면 이 미션에는 더 깊은 뜻이 숨겨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동안 ‘남자의 자격’ 성공의 이유는 재미와 감동을 주려고 의도한 치밀한 전략에 있었던 게 아니라, 그 과정 안에서 평균 연령 40.6세인 중년의 사내들이 인생의 새로운 의미를 찾으려 노력하며 여전히 성장해 가는 모습에 있었다. 깊이 있는 메시지를 전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 이윤석의 강연도 의미 있었지만, 김국진의 강연이 우리의 마음을 더 크게 움직인 것은 거기에 그동안 이 프로그램이 끌어냈던 바로 그 공감의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알고 있고 개그의 소재로도 공공연하게 다뤄지는 인생이지만 정작 스스로는 잘 토로하지 않았던 김국진의 인생사 강연에는 그 자체로 자기고백이 주는 성찰의 진솔한 감동이 있었다. 굴곡 심한 삶을 덤덤하게 토로하는 와중에서도 롤러코스터와 안전벨트 같은 비유에서는 그가 이 순간을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는지 알 수 있다. 진심과 성실한 태도가 있는 프로그램, 그리고 그 정체성을 함께 만들어온 멤버가 합작해낸 그 15분 동안의 자서전은 한동안 대한민국 예능의 명장면 중 하나로 회자될 것 같다.

글. 김선영(TV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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