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리즈 4차전’ SBS 오후 6시
만약 누군가 야구의 재미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2009년 한국시리즈 4차전’의 9회 초를 보면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8회 말까지 4 대 1로 뒤지고 있던 기아 타이거즈가 마지막 9회 공격에서 주자 1, 3루 상황에 2아웃을 당했을 때만해도 경기는 러닝타임 30초를 남겨둔 스릴러처럼 이미 모든 사건이 해결된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엔딩 크레디트를 기다리는 방심의 순간, 3타수 무안타를 기록 중이던 나지완의 적시타가 터졌다. 그것은 의외의 장면이지만 반전은 아니다. 스릴러의 반전이 결국엔 결말을 뒤집는 진짜 결말이라면 2아웃 상황에서 점수를 2점차로 좁히고 주자 1, 2 상황을 만든 안타는 새로운 사건의 발생이라고 보는 게 정확하다. 여기에 대타로 나온 이재주가 볼넷으로 나가 2아웃 만루가 만들어지는 상황이라니. 차곡차곡 쌓이는 복선은 가슴 졸이는 긴장감을 만들어내고, 이 때 정말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유격수 나주환의 실책이 9회 4 대 3, 만루, 2아웃이라는 상황을 연출했다. 그 팽팽한 동점 혹은 역전의 기대감은 결국 유격수 땅볼로 종결되었지만 최후의 순간까지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던 어제 경기는 야구는 왜 야구인지 보여줬다. 러닝타임이 무한대로 늘어날 수 있는 스릴러로서의 야구를. 하지만 이 명품 스릴러조차도 이제는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더 크고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의 복선이 될 뿐이다. 기아와 SK 모두 2승을 나눠가졌다. 5차전과 6차전, 혹은 7차전까지 이어질 이 이야기에서 과연 카이저 소제처럼 유유히 빠져나갈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 수 있을까.
글 위근우

<선덕여왕> 44회 MBC 밤 9시 55분
최근 몇 회 동안 <선덕여왕>이 상당히 느슨한 전개를 보여 왔음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것은 연장 방송의 부정적 징후일 수도 있고 미실의 조기 레임덕 현상이라 볼 수도 있으며 호쾌한 전쟁 신이나 왕자 생산을 둘러싼 권모술수가 없는 ‘정치’ 사극의 숙명이라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덕여왕>이 여전히 기존의 사극, 혹은 현재 방송되는 다른 드라마들에 비해 훨씬 큰 존재감을 갖는 이유는 단지 높은 시청률 때문만이 아니라 때로는 놀라울 정도로 과감한 현실 풍자 때문일 것이다. 조세개혁안을 내놓았다가 화백회의를 통과하지 못한 덕만(이요원)이 만장일치제를 다수결제로 바꾸려 시도하지만 “제도라는 것은 언제나 양날의 칼”임을 인지하고 있는 미실(고현정)은 바로 그 제도와 율령을 이용해 상황을 전복시키려 한다. 죽방(이문식)은 오천석 부자도 아니면서 무작정 덕만을 반대하는 화랑에게 “이게 통과되면 너네 집 살림 피는 거잖아!”라고 반박하고, 김서현(정성모)과 용춘공(도이성)에게 과음을 시켜 화백회의에 지각하게 만든 채 덕만의 탄핵을 논의하던 미실 파는 ‘병사 벽’을 쌓아 이들의 열성각 출입을 막는다. 유신(엄태웅)과 알천(이승효)이 무력으로 이들을 화백회의에 들여보내지만 ‘무협’이 아닌 ‘정치’ 사극에서 이는 상황의 종료가 아니라 반전의 시작이다. 결국 여권의 얼굴마담 격인 세종(독고영재)의 자작 피습사건으로 덕만이 궁지에 몰리기 때문이다. 저열한, 그러나 고난도의 정치력이 펼쳐진 44회를 보며 파란만장했던 대한민국 현대사의 순간들이 무수히 뇌리를 스쳤다면 아마도 기분 탓일 것이다. 단지 다음 주 미실에게서 “성공한 난(亂)은 난이 아니다” 같은 대사가 나오지는 않을지 궁금할 따름이다.
글 최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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