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화 밤 9시 55분 32회
선덕여왕은 온 가족이 취향과 세대 차의 부대낌 없이 함께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드라마다. 신라라는 국호의 의미를 다시금 알아볼 기회가 됐으며, 국사 교과서에서 소환되는 기억들인 이사돈, 거칠부도 등장한다. 오락성뿐만 아니라 교훈적이면서도 역사공부에 흥미를 붙일 수 있어서 이른바 TV의 순기능이라 할 만하다. 이 정도면 부모님들이 10대 자녀에게 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재를 고지식한 문노(정호빈)가 주관하는 바람에 드라마로써는 매우 심심했다. 큰 그림에서 볼 때, 두 번째 비재 문제의 존재 이유는 덕만의 당위성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겠지만, 외전을 보는 듯 극의 전개와는 따로 노는 인상이 강했다. 다만 한 가지, 신라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여러 레퍼런스의 흔적들을 찾는 소소한 재미는 인정할 만하다. 우선 문제해결방식이 음모론에 입각한 등의 세계관과 유사하다. 거칠부의 문자마방진이나 세필은 인터넷으로 말하자면 사과문 등을 빙자한 채 제 할 말을 세로쓰기 배열한 것이고 느낌 있게 말하면 아나그램이나 양피지에 쓴 보이지 않는 글자 같은 문자 암호다. 더 흥미로운 것은 매우 짧은 시간 출연하면서도 삐뚤어질 태세를 보이는 비담(김남길)과 그의 사부 문노의 관계다. 총명하고 무력은 넘치나 부모님이 남긴 트라우마 등으로 인해 악의 포스에 점점 눈을 뜨는 신라판 아나킨 스카이워커. 물론 비담을 키운 문노는 오비완이며 화랑은 제다이다. 미실이 ‘내가 니 어미다’라는 대사만 언제 멋있게 한다면 응용된 패러디의 진수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글 김교석

<전설의 고향> 마지막 회 KBS2 밤 9시 55분
2009년 <전설의 고향>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회는 천민 여성의 한과 복수를 그린 ‘가면귀’였다. 방송 내내 사당패의 풍악이 울려 퍼지고, 운명과 사랑, 욕정과 음모, 오해와 용서 등 등장 가능한 거의 모든 코드가 총동원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설의 고향>은 끝내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한 채 어설픈 만듦새로 막을 내렸다. 영화 <왕의 남자>를 차용한 것 같은 사당패 묘사는 전통적인 소재에 대한 맹목적인 강박으로 읽혔고, 여성의 한이라는 지극히 전형적인 소재를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조차 면밀히 이해하지 못한 듯한 구성은 전혀 공포나 긴장을 유발하지 못했다. 남성 중심의 폭력적인 사회를 고발하려는 의도는 정씨부인(이일화)의 모성이 개입되면서 오히려 집중력이 흐려졌고, 가섭(지주연)의 줄타기에 대한 열정은 아생(심형탁)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설득력을 얻는데 실패했다. 느슨한 전개 뒤에 대사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안일한 연출이나 마우스로 드래그한 듯이 어색하게 움직이는 귀신의 볼품없는 형상은 언급하기조차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면귀’는 바로 이 시점에서 시청자의 마음을 따끔하게 찌르는 부분이 있다. 연희는 보지 않고 여사당의 몸만을 탐하는 관리, 그리고 그런 세상을 방관하는 동료들은 현대 사회의 한 단면을 복원한 듯한 모습이었다. 게다가 이들을 처벌할 수 있는 힘이란 우스꽝스러운 가면을 쓴 원귀뿐이라는 것 또한 애석하게도 낯설지 않은 일이다. 수년전의 잡담으로도 추방당하는 세상이다. 죄 지으신 분들은 알아서 짐을 싸시라.
글 윤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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