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를 부탁해> KBS2 밤 9시 55분
<아가씨를 부탁해>를 보며 발 연기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세 명의 주인공 모두 아직 스펙트럼이 작은 배우들이며 어색한 옷을 입고 있지만, 드라마 전체를 놓고 보면 문제 삼기 힘들 정도로 미미한 부분이다. 물론 일본 명랑순정만화풍의 드라마기에 유치한 것도 용서된다. 조선 왕조 500년의 양반 역사를 깡그리 무시하는 유럽 페티쉬에 빠진 귀족 집안이 배경인 것도 같은 이유로 이해가 된다. 안달루시아 지방의 빠이야를 논하는 자리에서 불어가 나오는 것도 괜찮다. 정일우가 과다한 햇빛아래서 흰 셔츠를 입고 말 타는 장면이 뜬금없이 나와도, 하이힐을 보고 니힐리즘과 페미니즘을 논해도 우린 받아줄 호의가 있는 내성을 가진 시청자다. 왜냐면 KBS <꽃보다 남자>가 있었으니까. 문제는 이 드라마가 판타지를 지향하고 있지만 전혀 판타스틱하지 않다는 점이다. MBC <궁>으로 커리어를 개척한 윤은혜는 판타지 로맨틱 코미디의 히로인이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시청자들을 선망과 동경이라는 판타지의 세계로 데려가지 못한다. 블루워커 역할에서 벗어난 그녀만의 잘못이 아니다. 남녀주인공의 성격, 빈부, 계급의 격차를 극복하는 판타지를 장르적으로 재해석하지 못하는 연출이 더 큰 문제다. 앞으로 벌어질 극중 인물 간의 갈등과 관계를 설정한 경마장 시퀀스에서 드러난 허술함과 감정선을 우겨넣은 연출은 방송영상계의 잃어버린 10년이라 할 만큼 참담했다. 판타지가 판타지스럽지 않다보니 ‘귀족’이란 배경이 거슬린다. 청소년들에게 재벌귀족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심어 줄까봐 진심으로 염려된다. 재벌이 귀족이라는 착각에 빠져 아무렇게나 행동하고 다른 사람은 당연히 무시해도 되는 사람이라 생각할까봐 걱정이다.
글 김교석

<아가씨를 부탁해> KBS2 밤 9시 55분
2회에 이르러 비로소 등장한 태윤(정일우)이 흰 셔츠를 입고 말을 타고 승마장을 한 바퀴 도는 장면은 그야말로 ‘백마 탄 왕자님’이었다. 누구나 알겠지만 <아가씨를 부탁해>는 순정만화에 가까운 드라마다. 다른 어떤 것도 아닌 만화책에서 ‘집사의 본분’을 배우는 동찬(윤상현)의 모습을 보면, 이 드라마 스스로가 순정만화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아가씨를 부탁해>가 경쟁해야 할 드라마는 동시간대 타사의 드라마가 아니라, <꽃보다 남자>일 것 같다. <꽃보다 남자>가 상반기 가장 화제를 남긴 드라마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젊은 층이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로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한다면, <아가씨를 부탁해>가 가야할 길은 좀 더 분명해진다. 첫 회까지만 해도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 여자 버전이라는 표현 말고는 딱히 설명할 방도가 없어보였던 강혜나(윤은혜)는 생각보다 빠르게 서동찬에게 수행집사 자리를 내 준 뒤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기 시작했고, 의주(문채원)가 취업으로 강산그룹에 들어오고, 첫사랑을 닮은 왕자님 태윤이 등장하면서 4각 구도의 꼭지점은 완성되었다. 이제 이들 사이의 선을 어떻게 긋느냐에 따라 관계에서 오는 재미를 더할지, 뻔한 설정에서 오는 지루함을 더할지가 결정될 것이다. 비현실적이고 과장된 설정을 흔히들 만화적이라고 표현하지만, 이 자체로서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단, 만화적이라고 해서 캐릭터들까지 2차원적으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 <아가씨를 부탁해>가 하반기 라인업에 줄줄이 기다리고 있는 로맨틱 코미디물의 첫 성공사례로 남을 수 있을지는, 이 만화적인 세계 속에서 주인공들이 어떻게 ‘마음을 가진’ 사람처럼 행동하느냐에 달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순정만화를 따라 가슴을 두드리면서 “저는 아가씨의 집사니까요‘”라고 말한 뒤 “웃기지 않아요?”라며 어색한 상황을 한 번 더 비틀어 주는 서동찬 덕에, 아직까지는 다음 주가 기다려진다.
글 윤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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