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덕여왕> MBC 월-화 밤 9시 55분
파장 없는 평화는 역사를 그리지 못한다. 결국, 천명(박예진)은 대남보(류상욱)의 독화살에 맞아 숨을 거두고, 그녀가 흘린 피는 서라벌의 음모정국에 전혀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그동안 바둑돌을 하나씩 판 위에 올려놓듯, 사람을 찾고, 사람을 불러들이며 일을 전개했던 미실 일당은 특히 큰 혼란에 빠졌다. 상대방이 강력할수록 팽팽하게 대립할 수 있었던 긴장의 힘이 풀려 버린 미실(고현정)은 덕만이 공주로서 재등장하기 전 숨을 고르듯 전에 없이 온순한 모습을 보여 주었고, 오히려 머릿속이 복잡한 것은 아들 대남보의 실수를 숨기려는 미생(정웅인)이었다. 작전을 짤 때처럼 잘못을 덮을 때도 급급하기 그지없는 그의 모습은 천명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사료에 없는 이야기를 이어 붙이려 애쓴 제작진의 모습과도 얼마간 닮아 있다. 하나의 그림처럼 이야기를 꿰어 맞추지 못한 것에 대한 자각은 “덕만은 공주의 옷을 입고 있었어”라며 시청자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대남보의 대사나 “이번에는 네가 이겼다”며 천명의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는 미실의 독백으로 드러난다. 첨예한 갈등과 대립 속에 인물의 속내를 그린 듯 짐작하다가도 미처 알지 못한 부분에 새삼 감탄하게 되는 것이 초반 <선덕여왕>의 미덕이었음을 상기할 때 이는 아쉬운 만듦새가 아닐 수 없다. 결국 충성을 맹세한 공주를 지켜내지 못한 알천은 오열하거나 마음을 항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누구나 그의 애통한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고, 지난 방송에서 가장 공감할 수 있는 인물 역시 알천이었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글 윤희성

<선덕여왕> MBC 월-화 밤 9시 55분
정말이지 천명(박예진)이 죽지 않기를 바랐다. ‘북두의 여덟 별’이 다른 별이 생긴 것이 아니라 별 하나가 나뉘어 쌍을 이룬 모양이었기에, 천명과 덕만(이요원)이 끝까지 힘과 머리를 합쳐 미실(고현정)과 정치 전략을 겨루며 대적하기를 기대했다. 여인들의 시기와 암투가 만고불변의 진리처럼 빠지지 않는 사극 세계에서, 두 공주가 자매애적 연대로 새 세상을 건설한다면 훌륭한 대안적 서사가 되리라고 여겼다. 그러나 천명은 죽었다. 황실의 풍파에 희생된 천명의 죽음은 역설적으로 황실을 일으켜 세웠다.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역시 덕만의 각성이다. 제 존재가 버거워 현실에서 도피하려던 덕만은 언니의 죽음 앞에서 운명을 향해 이를 앙다물고 일어선다. 드라마가 현실의 반영이라는 진부한 명제를 들먹이지 않아도, 죽은 자가 산 자를 일깨워 역사의 물줄기를 움직인 무수한 사례를 우리는 보고 듣고 지금까지 겪고 있다. 머리로는 모두가 살아서 대화와 협력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이 최선인 걸 알지만, 어리석고 겁 많은 마음은 순수하고 고결한 누군가의 목숨을 값으로 치른 뒤에야 움직인다. 산 자들은 죽은 자에 대한 기억을 공유함으로써 행동할 용기를 얻고, 죽은 자는 산 자들의 기억과 행위를 통해 존재의 생명을 유지한다. 이제 덕만 공주의 존재에는 천명의 그림자가 깃들 것이며, 하나이되 천명과 더불어 둘인 덕만과 천명의 기억을 공유한 덕만의 사람들은 같은 신념으로 미실과 대적할 것이다. 그들의 향후 행보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게 될까.
글 김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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