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바라보다가> KBS2 수-목 밤 9시 55분
모든 카드를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내려놓고 게임을 하는 것 같다. 중반을 넘어서고 있는 <그바보>는 바보스러울 정도로 시청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보여주고 있는 드라마다. 덕분에 시청자들은 여러 겹으로 꼬인 인물들의 관계를 따라가려고 골치를 썩는 대신, 동백(황정민)과 지수(김아중)의 사랑이라는 뚜렷한 목표지점에만 주의를 기울이면 된다. 게다가 그 과정 안에는 어느새 솔직하고 담백한 성격으로 변해버린 지수의 예상 밖의 유머와 동백과 상철(백성현)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 순한 슬랩스틱처럼 미소를 짓게 만드는 지점들도 있다. 그런 점에서 <그바보>는 애인에 의해 위장결혼을 강요당한다는 지독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보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보기 드문 미덕을 갖춘 드라마다. 문제는 그 편안함이 상당부분 지루함과 연결된다는 데에 있다. 타인의 욕망에 의해 동거를 시작하게 된 두 사람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할 뿐, 이들을 자극하고 몰아세우는 것은 오히려 극성맞은 동생들이다. 그래서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장면은 흐뭇하지만, 거기에는 별다른 긴장이 없다. 병치된 가치가 클수록 사랑은 간절해지는 법이다. 그러나 지금 이 드라마에서 잃을 것을 생각하며 전전긍긍하는 것은 강모(주상욱)뿐이다. 다음 회를 기다리며 가장 궁금한 것이 지수와 동백의 관계 변화가 아니라 목걸이 경매에 참여한 것을 약혼자에게 들킨 강모의 행보라는 것은 분명히 문제다. 욕망이 큰 사람이 주인공이 된다. 어쩔 수 없다. 그게 드라마의 이치다.
글 윤희성

<다큐멘터리 3일> ‘대통령의 귀향 – 봉하마을 3일간의 기록’
KBS2 목 밤 11시 5분

그러니까, 꿈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내가 보고 자란 바에 의하면 퇴임한 대통령이 골목골목 전경들이 배치된 서울 어느 동 담장 높은 저택이 아니라 주민이라곤 백 이십 명에 불과하고 두 시간에 겨우 버스 한 대 다니는 고향 마을에 돌아가 살며 아내의 손을 잡고 산책을 다닌다던가 하는 장면을 현실에서 보는 날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1년 전 방송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어제 재방송된 KBS <다큐멘터리 3일> ‘대통령의 귀향 – 봉하마을 3일간의 기록’은 그 꿈이 현실임을 보여주었다. 전직 대통령이 밀짚모자에 자전거를 타고 마을을 돌며 모내기를 돕고, 전직 청와대 행정관이 머슴이 된 이 마을에는 하루에도 수천 명이 넘는 손님들이 찾아왔다. “고스톱 치다가 패가 안 나와도 노무현 탓을 하는” 세상 사람들 때문에 속상했다는 이가 출퇴근을 하며 마을 궂은일을 도맡았고, “환갑이 넘어갖고 밭 매 갖고 이만 오천 원씩 받아갖고 옷이랑 사 입고 신발도 사 신고” 멀리서 찾아온 촌로들이 관광버스에서 내렸으며, 마을 할머니로부터 ‘이웃사촌’이라 불리는 전직 대통령은 매일 수차례씩 이들을 맞이해 인사를 하고 기념사진을 찍어주었다. “시민과의 거리는 원로가 아니라 이 시민이 훨씬 가까울 거라 생각”한다는 그는 여전히 ‘사람 사는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꿈을 이야기하며 아주 행복하다고 말했다. 평생 동안 ‘꿈’을 위해 싸웠던 그는 여전히 꿈을 꾸며 살고 있었고, 희망이 사라져가는 세상에서도 많은 이들이 그 모습에 행복해했다. 그래서 언젠가는, 봉하마을에 찾아가 그에게 반가운 인사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없다.
글 최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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