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노인정’ 방송화면
‘햇빛 노인정’ 방송화면
‘햇빛 노인정’ 방송화면

MBC 드라마 페스티벌 ‘햇빛 노인정의 기막힌 장례식’ 2013년 10월 2일 오후 10시

다섯 줄 요약
햇빛아파트 노인정의 멤버인 김구봉(백일섭), 최옹식(이호재), 문노인(안병경), 박여사(안해숙). 어느날 갑자기 문노인은 쓰러지고, 폐암 말기라는 판정을 받는다. 하지만 해외로 이민간 자식들은 연락조차 되질 않고, 이대로 문노인을 보낼 수 없는 김구봉, 최옹식, 박여사는 폐암 수술이라도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수술비 마련에 고심한다. 결국 문노인의 친구들은 문노인이 죽은 것처럼 가장하여 장례식을 미리 치러 그 조의금으로 수술비를 마련하려 한다.

리뷰
어린 아이와 노인은 모두 사회 제도권 속에서 약자로 보호받는다. 그러나 막상 실제 우리의 사회 속에서 좀 더 사회적 약자로 보호받고 존중을 받는 쪽은 노인 보다는 어린 아이들이다. 이는 사회가 미래의 잠재 가치를 가지고 있는 어린 아이들에게 좀 더 관대하기 때문이다. 대신 이미 과거에 존재 가치를 다 한 노년층의 경우 현재, 그리고 미래가 없다는 이유로 사회의 차가운 현실 속에 외면당한다.

부활한 MBC의 단막극 브랜드인 ‘드라마 페스티벌’의 첫 번째 이야기, ‘햇빛 노인정의 기막힌 장례식’은 이처럼 과거의 존재 가치를 충분히 보상 받지 못한 채 노년을 맞이한 이 시대 어른들의 작은 소동을 둘러싼 이야기를 통해 이 사회가 노년층을 바라보는 시선을 블랙 코미디를 버무려 만든 드라마다. 노인정의 멤버들은 저마다 조금씩은 다른 상황에 처해있지만, 젊은 세대의 대부분이 그러하듯 다름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곁에 있는 친구다. 하지만 정작 사회에서 이들에게 기대하는 미래의 잠재 가치는 오로지 ‘죽음’ 뿐이다. 때문에 이들은 자신들의 유일한 가치가 드러날 수 밖에 없는 죽음과 장례식을 통해 친구의 마지막 인생을 조금이라도 연장시켜 주고자 한다.

드라마 속에서 그려지는 노년의 삶은 젊은 세대의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게 그려진다. 젊은 세대가 그들에게 막연하게 기대하는 ‘현자’의 모습은 없다. 그들은 젊은 시절 그러했듯 여전히 투닥거리며 친구와 다투고 마음에 드는 상대를 향해 연정을 표현한다. 그리고 뜻하지 않은 삼각관계에 질투도 하고, 이미 흘러가 버린 전성기에 대해 그리고 잠재 가치가 없는 자신들을 바라보는 자식들에 대해 서운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고, 그 세월들을 그들은 살아 겪었지만 세상은 여전히 새롭고 그들 조차도 변해가는 세상을 모든 일들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때문에 다소 황당해 보이는 사건을 벌이며, 그들은 이 세상의 삶을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누리고자 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내고자 하는 것이다.

사실 단막이라는 분량의 한계상 드라마가 담고 있는 메시지가 새로울 것은 없다. 하지만 단막의 경우 짧은 시간이 오히려 미시적인 관점을 통해 세상 사람들의 일상사를 부담 없이 담아내는 데 좋은 요소가 된다. ‘햇빛 노인정의 기막힌 장례식’의 경우, 작은 소동을 통해 일상을 들여다보고, 그 속에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메시지를 담은 ‘단막의 클래식’이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제 역할을 다 한 듯 보인다. 메시지는 깔끔했고, 다음을 기약하지 않아도 되는 연출은 자신의 몫을 다 했으며 탄탄한 연기 역시 잘 어우러졌다. 소동극을 블랙 코미디와 섞으며 적절히 배치했고, 마지막에는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편견들에 대한 물음을 던지며 드라마가 담아야 할 주제 의식도 충분히 전달했다.

다만 ‘햇빛 노인정의 기막힌 장례식’의 경우 자신이 해야 할 소임은 다 했으되, 그를 뛰어넘는 미지의 x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단막이 실험일 수 있는 것은, 그래서 그 실험이 상업적 가치를 다 하지 못해도 괜찮은 것은 ‘과감한 시도’가 허용 되는 유일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햇빛 노인정의 기막힌 장례식’ 역시 장르의 파괴도, 과감한 메시지의 실험도 한 번쯤은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짙게 남는다. 소재를 다루는 방식,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 또한 지나치게 클래식 했다는 것은 어쩌면 드라마 속 젊은 세대가 노년 세대를 다루는 것처럼 다소 틀에 갇힌 지점은 아니었을까 하는 지점도 있다.

단막은 상업성의 목적은 물론이거니와 그 자신의 존재 가치를 충분히 증명하지 못한 채 스러져갔다. 하지만 사라졌던 단막이 다시 부활한 것은, 분명 현 시점 드라마들이 느끼는 ‘갈증’이 표출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제 막 발걸음을 옮긴 단막극이니 만큼, 조금 더 지켜볼 가치는 있다. 다만, 이번에도 여전히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내지 못한다면 단막은 다시 한 번 긴 겨울잠에 들어야 할 것이다. ‘햇빛 노인정의 기막힌 장례식’은 그 자체로는 좋았지만, 여전히 누군가를 강력하게 끌어들일 만한 요소는 아쉬운 단막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 작품이었다.

수다 포인트
- UHD인 건 좋은데, 막눈 시청자에겐 사실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는 아쉬움…
- H4의 막내 할배의 맹활약, 오랜만에 눈여겨 볼 수 있었네요!
- 사람은 언제쯤 철이 들까요. 아마 관에 들어가는 그 순간까지도 철이 안 드는 게 사람인가 봅니다.

글. 민경진(TV리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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