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 27일까지
"詩가 천지 삐까리"라는 할머니들…푸시킨 저리 물럿거라
"우리 어매 딸 셋 낳고 / 분하다고 지은 내 이름처럼 / 분한 일의 연속이었지만 / 칠십에 배운 글자가 / 분했던 내 인생을 위로해줘요"(넘버 '내 이름 이분한'에서 발췌)

극적인 인간 승리의 스토리도, 영웅의 서사시도 아니다. 까막눈이었던 평범한 시골 할머니 네 명이 동네 문해학교에서 난생처음 글을 배운 뒤 시(詩)를 쓰는 얘기다. 이들은 왁자지껄 좌충우돌하며 공부하는 평범한 할머니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시에는 평범하지 않은 삶의 굴곡과 지혜가 담겨 있다. 할머니들은 "시가 뭐꼬? 난 그런 거 모른다"고 하지만, 그들의 시는 이미 삶의 정수를 담고 있다.
"詩가 천지 삐까리"라는 할머니들…푸시킨 저리 물럿거라
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에 대한 설명이다. 지난 11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개막한 이 뮤지컬이 오는 27일 마지막 공연을 앞두고 있다. 이 뮤지컬의 원작은 2019년 입소문만으로 4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다큐멘터리 영화 '칠곡 가시나들'이다. 문해학교에 다니며 한글을 배우는 경북 칠곡군 할머니들의 실제 스토리가 이 뮤지컬의 배경이다.

이 뮤지컬은 한 젊은 다큐멘터리 감독이 할머니들의 문해학교 생활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칠곡을 방문하며 시작된다. 할머니들은 부끄러워하면서도 카메라 앞에 서서 시를 낭송한다. 이들이 시를 통해 한 많은 지난 세월을 풀어내는 모습은 관객을 때로 슬프게 하고, 때로는 웃게 한다. 할머니들의 시를 가사로 엮은 넘버(뮤지컬에 삽입된 노래)가 이 작품의 백미다. 할머니들은 "좋으면서 눈물이 난다 / 열다섯에 입는 교복을 / 구십이 되어서 입는다 / 울었던 시간들 싹 가신다"고 노래한다.
"詩가 천지 삐까리"라는 할머니들…푸시킨 저리 물럿거라
첫사랑에 대한 기억을 넘버로 풀어내는 할머니도 있다. 인순 할머니는 "사랑이라카이 부끄럽다 / 내 사랑이 뭔지도 모르고 살았다 / (중략) / 쪽지 하나를 쥐어주고는 / 아침마다 그 시를 대신 읽어주었네"라고 한다. 뒤이어 나오는 "그 첫사랑이 웬수같은 우리 영감이다"라는 외침은 관객을 웃게 한다. 하지만 다음 넘버에서 인순 할머니는 "망할 영감 보고 있소? / 나 이제 읽고 쓸 줄 아오 / 내 이름 쓴 거 자랑하고픈데 / 망할, 영감이 없네"라며 관객의 코끝을 찡하게 한다.

이 뮤지컬 제목의 '가시나'는 "가장 시작하기 좋은 나이", "가장 시를 쓰기 좋은 나이"의 머릿글자다. 이 뮤지컬을 만든 ㈜라이브의 강병원 대표는 "젊은 층에는 부모님 세대에 대한 이해를, 노년층에게는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며 "가족 모두가 함께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기획했다"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hu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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