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텐아시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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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와 해학, 그리고 은유로 사회 여러 문제를 꼬집는 봉준호 감독이 신작 '미키17'을 선보인다. '기생충' 이후 6년 만에 내놓은 작품으로, 할리우드 배우들과 함께한 글로벌 프로젝트다.

20일 서울 삼성동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영화 '미키17'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봉준호 감독, 최두호 프로듀서, 배우 나오미 애키, 스티븐 연, 마크 러팔로가 참석했다.

'미키17'은 위험한 일에 투입돼 죽으면 다시 프린트되는 익스펜더블(소모품) 미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휴먼 프린팅'이 이 영화의 소재다. 극 중 미키17이 죽은 줄 알고 미키18이 프린트된 후 걷잡을 수 없는 사건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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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내한인 나오미 애키는 "오래전부터 한국에 오고 싶었다. 감독님과 함께 오게 되어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마크 러팔로는 2015년 이후 10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다음 작품 촬영으로 바쁜 와중에도 내한을 결정한 마크 러팔로는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기쁘다. 지난번 방문 때도 환대를 받았다. '어벤져스'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저를 질투해서 더 좋았다. 그분이 누구를 질투하는 걸 처음 봤다"며 웃었다. 이어 "오는 길에 오토바이를 타고 왔다. 현존하는 훌륭한 감독 중에 한 분인 봉 감독과 이 자리에 함께 하게 돼 기쁘다"고 인사했다.

봉 감독과 '옥자' 작업을 함께했던 스티븐 연은 "다시 한국에 돌아올 수 있어서 기쁘다. 훌륭한 동료들과 함께할 수 있어 기쁨이 배가된다. 봉 감독과 다시 함께 할 수 있어 더욱 기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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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미키는 로버트 패틴슨이 연기했다. 미키는 죽으면 출력되는 극한 직업 노동자 '익스펜더블'이다. 봉 감독은 "휴먼 프린팅이라는 것 자체에 많은 희비극이 담겨있다. 조합돼선 안 되는 단어 아닌가. 인간을 프린팅해선 안 된다.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다. 기술 자체에서 쓰라리고 웃긴 인간 드라마가 내포돼 있다. 기존 인간복제물과는 다르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어 "출력되는 사람이 미키다. 어벙하고 착하지만 찐따 같은 청년이다.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을 출력하는 게 아닌 평범하고 가벼운 청년이 출력되면서 사건이 벌어진다. 기존 SF 영화와는 많이 다를 수 있겠다고 확신했다"고 강조했다.

의외의 캐스팅으로 관객들을 놀라게 하는 봉 감독. 마크 러팔로는 독재자 마셜을 연기했다. 그의 연기 인생 첫 빌런 역할이다. 봉 감독은 "제가 성격이 이상해서 사람을 볼 때도 이상한 면을 보게 되나 보다. 사람이 흔히 알려진 모습과 다른 어느 한구석을 보게 되면 집착하게 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어 "마크 러팔로가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악당을 하게 된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 첫 기회가 나에게 와서 신나고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또한 "마크 러팔로가 '왜 나에게? 내가 뭘 잘못했나?' 반응이더라. 이 역할을 하면 멋있을 거라 생각했다"며 "독재자가 가진 이상한 매력이 있다. 역사 속 독재자는 기묘한 매력이나 애교 같은 게 있다. 마셜도 영화에서 위험할지라도 이상한 매력이 있다. 그걸 마크가 잘 해줄 거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마크 러팔로는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 나한테 주어진 게 맞나 했다. 결과적으로 감사히 생각한다. 제자신도 저를 의심했지만 저를 믿어준 감독님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어 "배우가 연기에 만족할 순 없다"면서도 "영화에 만족하고 있지만 겁도 난다. 제가 처음 도전한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취지에 맞게 연기하는 것이 책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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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 사이에서 마셜이 미국의 한 정치인을 연상시킨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마크 러팔로는 "특정 인물을 연상시키지 않을 바란다. 전형적이다. 쩨쩨하고 그릇이 작은 독재자들을 우리가 오랜 세월 봐왔고 반복됐다. 자기만 알고 이기적인 독재자들이 결국은 실패하게 된다. 다양한 인물이 들어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해석의 여지를 열어두고 싶었다. 사람들이 더 많은 해석을 하길 바랐다"고 전했다.

봉 감독은 "이탈리아 기자는 마셜 캐릭터가 무솔리니에게 영감을 받은 것 아니냐고 하더라. 마크의 얘기처럼 역사 속에 존재했던 정치적 악몽들, 독재자의 모습이 많이 녹아들어 있다. 각자 나라마다 자기 상황을 투사해서 얘기하는 것 같다"고 부연했다.

나오미 애키는 얼음행성 개척단의 에이스 요원이자 미키의 여자친구 나샤 역을 맡았다. 그는 "나샤는 자신의 모든 감정을 솔직하게 내비치는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연기가 항상 어렵다. 흥미롭긴 한데 모든 게 시행착오가 있다고 생각한다.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분석하고 발전시켜나간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결과물에 만족한다. 2년 전에 촬영하는데 지금 다시 한다면 완전히 다른 나샤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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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연은 미키의 유일한 친구 티모를 연기했다. 스티븐 연은 "대본을 읽으면 모두가 티모를 싫어한다. 미움받는 캐릭터다. 타인의 시각을 무시하면서 살지는 못했다. 그런 제 경험을 바탕으로 티모를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어 "티모도 약점도 탐구해봤다"고 전했다.

봉 감독은 "SF라도 인간 냄새 나는 작품을 만드는 게 목표였다. 티모는 일반적인 SF에 나오는 캐릭터가 아닌 현실적인 캐릭터다. SF에 진귀한 캐릭터를 실감 나게 연기할 수 있을 거라는 점에 주목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모든 분이 제가 예상한 것 이상을 보여줬다. 배우들에게 감사하다. 제가 행운이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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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한 연출을 해 '봉테일'로도 불리는 봉 감독. 나오미 애키는 "감독님을 부모님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아이처럼 통제나 경계선을 설정해주길 원할 때가 있다. 봉 감독님은 저를 자유롭게 해줬다. 다양한 방식의 일을 해봤는데 봉 감독의 방식도 좋았다"며 웃었다. 마크 러팔로는 봉 감독에 대해 "섬세하고 꼼꼼하다. 스스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잘 지원해준다"고 칭찬했다. 이어 "스토리보드를 만드는데 봉 감독이 직접 그린 그림이 대부분이더라. 연기에 대해서는 스토리보드에 그렇게 꼼꼼히 적어두진 않았더라. 적어둔 내용을 봤는데 캐릭터가 가진 특징을 그림으로 보여주더라. 전에 전혀 느끼지 못했던 것을 새롭게 발견하게 해줬다. 캐릭터를 현실적으로 만든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꼼꼼하게 설계된 공간에서 연기하게 됐다. 친절하신 분"이라고 말해 봉 감독을 쑥스럽게 했다.

스티븐 연 역시 "캐릭터와 배우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지원해준다. 바운더리를 두지만 궁극적으로는 배우를 지지해준다"고 거들었다. 이어 "눈빛이 아름답다. 시각이 아름답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설국열차', '옥자'를 함께한 최 프로듀서는 "일관된 분이다. 단지 예산만 커졌다. 외부 요인이 감독님의 예술성이나 준비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다"라고 말했다.

영화는 세계 여러 나라의 정세를 연상시키는 듯한 장면이 다수다. 봉 감독은 "계엄령 뉴스가 나왔을 때 마크는 저한테 '괜찮냐'는 메일을 보냈다. 블랙핑크 로제의 노래가 차트 몇 위까지 올라갔다는 뉴스를 보다가 계엄 뉴스를 봤다. 생경했다. 우리 일상은 거침없이 계속되고 있다. 그게 계엄을 이미 극복한 시민들, 국민들의 자랑스러운 모습이다. 이미 극복됐다고 생각하고 남은 건 법적, 형식적 절차"라고 말했다.
'미키17' 포스터. /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미키17' 포스터. /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이번 영화를 통해 담고 싶었던 메시지에 대해 묻자 봉 감독은 "영화를 만들 때 그런 목표를 두진 않는다. '기생충'도 반지하에 살던 기우의 모습부터 여러 가지가 쌓여간다. '미키17'도 마찬가지다. 출력되는 자기 모습을 봤을 때 어떤 모습일까. 이런 식으로 하나씩 하나씩 쌓여가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여러 감정을 나누고 싶다. 영화는 그런 틈바구니에서 숨 쉬는 감정을 나누고 싶은 작업"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연약하고 불쌍한 청년 미키가 결국엔 파괴되지 않았다는 게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관전 포인트에 대해 봉 감독은 "스펙터클한 장면도 있지만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 자체도 스펙터클하다"며 "극장에서 안 보면 후회할 것"이라고 했다. 최 프로듀서는 "저는 이 영화를 여러 번 봤지만 볼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된다"고 말했다.

'미키17'은 국내에서는 오는 28일, 북미에서는 다음 달 7일 개봉한다.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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