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서울 여의도동 콘래드 서울 호텔에서 영화 '미키17'의 봉준호 감독을 만났다.
'미키17'은 위험한 일에 투입되는 익스펜더블(소모품) 미키17이 죽은 줄 알고 미키18이 프린트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작품. 봉 감독은 연출과 각본 작업을 했다. 배우 로버트 패틴슨, 나오미 애키, 스티븐 연, 토니 콜렛 그리고 마크 러팔로가 출연한다.
2022년 8월부터 12월까지 촬영됐다. 봉 감독이 몇 년 전부터 준비한 작품이지만 공교롭게도 현재 전 세계적 정치 상황을 연상시키는 듯한 장면이 다수다. 봉 감독은 "2021년에 시나리오를 썼고, 2022년에 촬영했다. 2023년에 크리퍼(극 중 크리처 이름)와 같은 컴퓨터 그래픽들을 만들었다. 스토리보드에는 2022년 초부터 다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모델이 된 정치인이 있냐는 물음에 봉 감독은 "(동료들과) 서로 휴대폰으로 사진을 보여주며 많이 얘기했는데, 다 과거 정치인들이었고 현역 정치인은 아니었다. 영화가 워낙 현재적인 느낌"이라며 자신도 신기해했다. 글로벌 홍보 일정을 소화 중인 봉 감독은 "이탈리아의 한 여자 기자는 마셜(마크 러팔로 분)이 무솔리니를 모델로 한 거 아니냐더라. 군복을 입는다든가 턱을 드는 행동이 비슷하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어 "미국 기자는 현재 자신이 겪는 정치 스트레스를 마셜에 투사한 듯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도 한국의 상황이 있는데, 2022년도에 시나리오를 썼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며 웃음을 자아냈다.
봉 감독은 영국 기자와의 일화도 전했다. 그는 "뒷방에 수정구슬이 있냐고 하더라. '뭔 소리인가' 했더니, 마녀나 주술사, 예언자가 수정구슬을 사용하지 않나"라며 손으로 수정구슬을 만지는 듯한 행동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극 중 총알이 마셜의 얼굴을 스치고 가는 장면이 있다. 마치 미국 대선 과정에서 트럼프가 귀에 경미한 총상을 입은 사건을 연상시킨다. 봉 감독은 "근래에 다른 작업 때문에 뉴욕에 갔다가 마크 러팔로를 만났는데, 둘이서 신기하다고 얘기하며 웃었다"고 전했다.
봉 감독은 우스꽝스러운 악역 캐릭터를 맛깔나게 만들어준 마크 러팔로를 칭찬했다. 그는 "악역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어야 한다. 독재자가 사람을 현혹하는 '귀여운' 매력이 있다. 카리스마로 대중을 휘어잡는 독재자가 있는가 하면, 쇼 프로그램에서 양옆에 아이돌을 두고 쇼맨십을 보여주는 독재자도 있다. 미디어를 그런 식으로 가지고 노는 거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 가진 정치적 스트레스를 투사할 수 있게끔 복합적 캐릭터를 마크 러팔로가 그 만큼 찰지게 연기해줬다"고 짚었다.
관객들 사이에서 마셜(Marshall)이라는 이름이 계엄의 영어 단어 '마셜 로(Martial law)'와 발음이 비슷해 흥미롭다는 반응도 나온다. 봉 감독은 "마셜이라는 이름은 원작 소설에 이미 나와있고 2021년 9월에 완성한 시나리오다. 타임테이블에 전혀 혼동이 없다"고 강조해 웃음을 안겼다.
마셜은 허세, 우월감 가득한 독재자지만 실상은 아내 일파 없이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영화에서 독재자 부부의 모습이 위선적이면서도 우스꽝스럽게 묘사된다. 봉 감독은 필리핀의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와 아내 이멜다 마르코스의 몰락을 언급하며 "당시 블랙코미디 같은 기사가 많았다"고 했다. 이어 "영화에서 부부가 일으키는 이상한 상승 효과가 있다. 루마니아의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부부도 있다. 찾아보면 흥미롭다. 이러한 커플의 모습이 많이 참조됐다"고 전했다.
봉 감독은 마크 러팔로·토니 콜렛과의 작업에 만족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내가 너무 좋아하는 마크 러팔로, 꼭 함께 일해보고 싶었던 토니를 각 역할에 대입시켜보니 주체할 수 없이 흥분됐다. 두 분이 다작하는 분들인데 한 번도 작품을 같이 한 적은 없더나. 이 조합도 신선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미키17'은 국내에서는 오는 28일, 북미에서는 다음달 7일 개봉한다.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
ADVERTISEMENT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