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존엄사 고찰케 하는 영화'소풍' 출연한 나문희
인연 깊은 김영옥과 절친 케미 "김영옥 안 하면 나도 안 한다 했다"
촬영 땐 병석에 있던 남편, 지난달 별세 "'사랑의 꽃' 피워본듯"
"연명치료로 '지옥' 살기보단 과감하게 안 하는 것도 방법"
김영옥과 임영웅 콘서트 관람하기도 "홀딱 빠지게 생겨"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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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나 김영옥 씨, 박근형 씨는 '클래식 배우'라고 자부할 수 있어요. 이번에는 연기를 했다기보다 카메라에 그저 대든 것 같아요. 우리 나이는 돼야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이에요. 다른 데서는 볼 수 없는 세 사람의 진한 인생을, 다만 카메라가 보여줬을 뿐이죠."

영화 '소풍'은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은 절친한 두 노년 여성의 인생과 여생을 조명하는 작품이다. 일상적이고 뭉근한 시선으로 은심(나문희 분)과 금순(김영옥 분), 그리고 태호(박근형 분)의 모습을 그려가며 삶과 죽음, 그리고 존엄사에 대해 고찰하게 한다.

나문희는 어릴 적 도망치듯 고향 남해를 떠나 상경해 고난한 인생을 살아온 은심을 연기했다. 은심이 연락하는 고향 사람은 사돈지간이기도 한 오랜 친구 금순. 사업 문제로 애먹이는 아들에게 속상하던 차, 마침 서울을 찾아온 금순과 수십 년 만에 남해로 내려간다. 나문희는 이번 작품을 실제로도 긴 인연을 이어온 김영옥과 꼭 하고 싶었다고 한다.

"호흡이 잘 맞는 배우여야 할 것 같았어요. 영옥 씨와는 특별히 긴장되거나 그러지 않아요. 영옥 씨가 하는 거 보면 나도 느껴지고 눈만 봐도 느껴지고 그래요. '내가 사는 이유'도 같이 했고 '디어 마이 프렌즈', '여고 동창생'도 같이 했고. 하하. 쭉 같이 했던 게 좋아서 이번에도 같이 하고 싶었어요. 영옥 씨가 처음엔 안 한다 그랬어요. 자기가 생각한 조건과 뭐가 안 맞았나 보죠? 하하. '영옥 언니 안 하면 나 이거 안 할 거야'라면서 기다렸어요. 우정이 별것 아니에요. 영옥 씨와는 친해도 조심할 건 조심하고 경우는 지키고 그래요. 꼭 필요할 때는 또 있어 주고. 그런 덕분에 우정을 유지할 수 있었어요."
나문희 "나가면 죽는다 해도 살아있는 동안은 젊은이들처럼 나가야죠"[TEN인터뷰]
나문희가 이 작품을 촬영할 당시 남편은 병환 중이었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나문희는 영화에 집중하기 위해 내내 남해에 머물렀다.

"나도 내가 이 영화하기로 했을 때 처음엔 그렇게 열심히 할 줄 몰랐어요. 당시에 우리 영감님이 좀 아팠는데, 동생이랑 우리 큰딸한테 맡겨두고 나는 거기 가서 줄곧 살았죠. 촬영 처음부터 끝까지 한순간도 다른 데 가지 않았어요. 집에 온수 수도도 고장났었는데, 그것마저도 '영화 개봉하면 고쳐야지' 내 마음이 그랬어요. 영감님이 많이 아프니 마음이 거기 가 있잖아요. 그렇게 분산되는 게 싫더라고요. 영화가 개봉했으니 이제부터는 다시 '내 꺼' 하려고요."

나문희는 지난달 남편상을 치렀다. 그는 세상을 떠난 남편을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영화 찍을 때 저녁마다 '여보 사랑해' 하고 잠들곤 그랬어요. 그때는 그렇게 절실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촬영 끝내고 보니 상황이 더 나빠진 거죠. 하지만 그 다음에 나한테 사랑할 시간을 줬어요. 우리 영감님과 보낼 시간이 있었어요.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백만송이 장미'라는 노래가 있잖아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순수히 사랑할 때 꽃이 피는 것 같아요. 나는 그런 꽃을 한 번 피워봤던 거 같아요."
나문희 "나가면 죽는다 해도 살아있는 동안은 젊은이들처럼 나가야죠"[TEN인터뷰]
'소풍'은 노년의 삶을 일상적이면서도 사실적으로 묘사했으며, 삶의 마지막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영화는 병원, 요양원 등에서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의미 없는 치료를 계속 받는 노인의 모습을 그리기도 한다. 나문희는 가망이 없는 상황이라면 힘든 연명치료보다 짧게나마 남은 생을 평온하고 행복하게 보내는 것이 낫다는 견해를 드러냈다.

"회복이 안 된다면 과감하게 연명치료를 하지 않는 것도 방법이에요. 지옥에서 보내지 말고요. 지옥이 어디 멀리 있는 거 같진 않아요. 아픈 몸으로 한없이 누워있을 때가 지옥인 거 같다는 걸 우리 영감을 보면서 느꼈죠. 요즘은 보건소에서도 연명치료 거부에 관한 서류를 작성할 수 있다고 해요. 할 수 있는 데까진 해보고 아니면 빨리 지옥에서 나와서 해방이 됐으면 좋겠어요."

최근 일산에서 열린 임영웅 콘서트에 김영옥과 함께 찾은 나문희. 임영웅 콘서트 속 사연을 소개하는 코너에 '일산 사는 호박 고구마'라는 닉네임으로 보낸 나문희의 사연이 채택됐다. 남편과 사별한 뒤 임영웅 노래를 들으며 위로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임영웅의 노래 '모래 알갱이'는 '소풍'에도 삽입됐다. 임영웅과 소속사가 영화의 취지에 공감하고 배우들을 향한 존경의 마음에 곡 삽입을 허용했다고 한다. 임영웅 측은 영화에 곡 삽입으로 발생한 수익은 팬들의 이름으로 기부하기도 했다.

"공연을 보고 저도 임영웅 씨한테 빠져들었어요. 사람을 그렇게 녹여내더라고요. 어쩜 사람이 그렇게 진국이고 똑똑하고 배려를 잘하는지…. 김영옥 씨는 임영웅 씨 '찐팬 1호'에요. 원래는 속으로 '저 언니는 왜 저렇게 임영웅을 좋아해?' 그랬는데, 콘서트에 갔다가 나도 홀딱 빠지게 생겼어요.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부르는데, 마치 나한테 하는 얘기 같고 노래도 잘하더라고요. 임영웅 씨한테도 정말 많이 고맙죠."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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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젊은 배우들 못지않게 활발한 연기 활동을 하는 나문희. '오! 문희', '아이 캔 스피크'처럼 원톱 주연으로도 여전히 손색없다. 영화 속 인생네컷도 찍고 키오스크 기계로 주문을 하는 장면도 있듯, 나문희는 "젊은이들처럼 움직이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노인네들이 걱정이 많아서 움직이지를 못한다. 집에서 무조건 나가야 한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무조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미끄러져 머리 다쳐서 죽는다고 해도 그만이다"는 뼈있는 농담을 던지면서도 "가늘게 연장하려는 마음은 우리가 과감히 버려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배우가 건강하면 연기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어요.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집에서 운동하고 대중탕 가서 목욕도 하고 그래요. 그럴 땐 나도 누구나와 마찬가지로 '조그만 사람'이에요. 남들과 요구르트 같이 사서 나눠먹기도 하고요. 하하. 그러면서 감정 소통하는 것도 배워요."

애청 프로그램 '인간극장', '아침마당',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를 순서대로 보는 게 아침 루틴이라는 나문희. '무엇이든 물어보세요'가 KBS1에서 KBS2로 편성 채널과 시간이 바뀌었다며 "CF도 많아지고 제작하는 과정이 전 같지 않다. 할머니들한테는 방해 요소다. 제자리에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을 드러내며 호탕하게 웃었다.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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