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 봄' 배우 박해준 인터뷰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배우 박해준의 인상이 대중들에게 강렬하게 각인된 것은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벌개진 얼굴로 목에 핏대를 세우던 모습이었다. 그보다 이전에 박해준은 영화 '독전'(2018)에서 거칠지만 어딘가 빈틈 있는 조직원 박선창으로 신선함을, '4등'(2016)에서 수영선수 준호(유재상)을 훈련시키는 폭력 수영 코치 광수 역으로 선악의 모호한 경계를,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2013)에서 화이(여진구)의 다섯 아빠 중에서 물불 안 가리는 잔혹한 성격과 동시에 살가움을 지닌 범수로 반전 매력을 보여준 바 있다.
1979년 12월 12일 군사반란의 '그날'을 다룬 '서울의 봄'에서 박해준은 故 노태우 전 대통령을 모티브로 한 노태건 역을 맡아 속내를 예측할 수 없는 의뭉스러움과 함께 단호한 결정력을 보여준다. 단순히 전두광(황정민)의 지시나 판단에 따르기보다는 경계선상에 선 '인간적인' 순간들을 드러낸 것. 서울의 봄'을 본 지인으로부터, "한국 영화의 봄이 오지 않겠느냐"는 연락을 받기도 했다는 박해준의 말처럼 그간 어려웠던 한국 영화 시장에는 모처럼 추위가 사라지고, 따스함을 품은 봄이 올 수 있을까. 22일 개봉한 '서울의 봄'은 누적 관객 수 189만 2703명(11월 27일 기준)을 기록하면서,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흥행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박해준은 "기분이 좋다. 들뜨는 느낌이다. 주변 분들이 연락이 와서 영화를 잘 봤다고 하더라. 한국 영화의 봄이 오지 않겠느냐는 연락을 받기도 했다. 그동안 영화 시장이 안 좋지 않았나. 원래 나는 두 시간 이상의 영화를 볼 때, 시계를 세 번 정도 본다. 시계를 처음 봤을 때가 2시간 10분 정도 지났을 때더라. 시간이 잘 가서 오히려 단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웃음)"라고 소감을 밝혔다.
영화 '비트'(1997), '태양은 없다'(1999), '아수라'(2016) 등 청춘의 초상과 뒤엉키고 소용돌이치는 사건들을 집중적으로 연출해온 김성수 감독과 '서울의 봄'에서 처음으로 호흡을 맞춘 박해준은 소감을 밝혔다. 그는 "(감독님께서) 리허설을 많이 하시더라. '이 부분을 이렇게 고치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식의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내가 생각지도 못한 부분들을 감독님께서 말씀해주셔서 너무 좋았다. 그 순간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도록 만들어주시는 것 같다"라고 답했다.
김성수 감독과 벌써 5번째 호흡을 맞춘 이태신 역의 정우성은 '너무 집요해서 징글징글하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혹 그런 순간을 느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박해준은 "집요한 면이 없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우성 선배님은 감독님과 작업을 많이 하지 않았나. 사실 감독님과 처음 작업하는 새내기 같은 마음으로는 너무 행운이었다"라며 존경심을 드러냈다. '서울의 봄'에서 박해준이 맡은 노태건은 실존 인물 故 노태우 전 대통령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다. 처음 시나리오를 건네받고 부담이 되기도 했을 터. 박해준은 "하루 안에 그 많은 소동이 일어나는 것이 재밌었다. 걱정은 역할에 대한 것이었다. 그 이후, 황정민 선배의 연극 '리차드 3세'를 봤었다. 정말 에너제틱 하시더라. 드라마의 긴장감과 상황이 얼마나 급박한지에 대한 집중력이 엿보이셨다. 나도 노태건을 그렇게 접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로 인해 해석할 수 있는 영역이 조금 더 자유로워지는 것 같더라"라고 캐릭터를 준비하며 고민했던 지점들을 털어놨다.
노태건은 전두광(황정민)을 따르지만 동시에 속을 좀처럼 알 수 없는 복합적인 인물이다. 특히 불같은 성격의 전두광과 물 같은 성격의 이태신(정우성)의 중간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느낌도 있다. 노태건 캐릭터를 어떤 식으로 해석하고 연기에 임했냐는 질문에 박해준은 "마냥 전두광을 따라가는 인물이 아니기를 바랐다. 그가 의견을 제시했을 때, 완벽한 전두광의 편보다 동업자 같은 느낌이었다. 전두광의 이야기에 동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과 의심은 늘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그런 부분에서 우유부단하기보다는 그런 면에서 나는 상당히 주체적이라고 생각했다. 권력보다는 상황 대처에 유연한 인물인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서울의 봄'은 촌각을 다투는 9시간 동안 인물들의 욕망이 포개지면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서로 싸우고 의기투합하는 앙상블이 주요 포인트 중에 하나다. 전두광과 함께 여러 장군과의 앙상블을 보여준 박해준은 "틀에 박혀서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신을 위해서 달려가는 에너지가 너무 좋았다. 몇 번 합을 맞춰보면 자신들이 알아서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이 공간을 꽉꽉 채우기도 했다. 물러나서 보고 있으면 '이거지. 장군들이라고 다르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너무 훌륭한 작업이었다"라고 비하인드를 밝혔다.
전두광 역의 황정민은 故 전두환 전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비주얼로 관객들을 분위기만으로도 압도한다. 극 중에서 황정민과 가장 많은 호흡을 맞추면서 압도되거나 놀라기도 했다는 박해준은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 힘이 있으시지 않나. 나는 그런 힘이 없다(웃음) 어떤 에너지와 힘,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현장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느냐'에 대해서 정말 배워야 할 것 같다. 그 힘은 아마 우성 선배님과 정민 선배님이 주연배우로서 '이 영화의 텐션을 가지고 가야겠다'는 마음 때문이지 않을까. 많이 배워야겠다"라고 말했다. '서울의 봄'의 엔딩부에는 1979년 12월 12일 군사 반란을 일으켰던 당시의 하나회 인물들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사진을 찍는 장면과 실제 자료 사진이 함께 등장한다.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어떤 느낌이었냐는 질문에 "모르겠다. 사실은 뭔가 해냈다는 희열 같은 것과 약간 씁쓸함도 있었다. 사실 군사 반란이 끝나고 축하연을 벌이는 장면이 더 기억에 남는다. 온종일 그 장면을 찍은 기억이 있다. 그날은 조금 소름 돋았다. '이렇게 먹고 마시고 흥겨워해도 되나'라는 생각이었다"라고 솔직하게 답했다.
배우로서 '서울의 봄'이 어떤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냐고 묻자 "나를 배우로서 성장시킬 수 있는 현장이었다. 대학교 졸업하고 누군가 스승이건 선생님이건 참 배움이 있는 곳이 많이 없지 않나. 사람 이야기를 듣고 영화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를 많이 배웠다"라고 소회를 답했다.
김성수 감독의 영화 '서울의 봄'이 중요한 지점은 1979년 12월 12일의 기록을 처음으로 스크린에 옮겼다는 지점이다. 10·26 사태를 다룬 영화 '그때 그사람들', '남산의 부장들',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택시운전사', 6월 민주항쟁을 다룬 '1987'의 중추인 12.12 군사 반란. 관객들에게 '서울의 봄'이 어떻게 영화를 보기를 바라느냐고 묻자 박해준은 "이 영화를 보고 많은 해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다양한 사람이 갑론을박을 많이 해봤으면 좋겠다. 그게 가장 좋지 않을까. 나도 처음 볼 때, 두 번 볼 때, 뒤에서 '그럴 수도 있는 거지'도 있고 '그거는 짜증 나지 않나'도 생각할 수 있지 않나. 이 영화가 꼭 해야 할 일이 아니냐는 생각이다"라고 강조했다.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1979년 12월 12일 군사반란의 '그날'을 다룬 '서울의 봄'에서 박해준은 故 노태우 전 대통령을 모티브로 한 노태건 역을 맡아 속내를 예측할 수 없는 의뭉스러움과 함께 단호한 결정력을 보여준다. 단순히 전두광(황정민)의 지시나 판단에 따르기보다는 경계선상에 선 '인간적인' 순간들을 드러낸 것. 서울의 봄'을 본 지인으로부터, "한국 영화의 봄이 오지 않겠느냐"는 연락을 받기도 했다는 박해준의 말처럼 그간 어려웠던 한국 영화 시장에는 모처럼 추위가 사라지고, 따스함을 품은 봄이 올 수 있을까. 22일 개봉한 '서울의 봄'은 누적 관객 수 189만 2703명(11월 27일 기준)을 기록하면서,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흥행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박해준은 "기분이 좋다. 들뜨는 느낌이다. 주변 분들이 연락이 와서 영화를 잘 봤다고 하더라. 한국 영화의 봄이 오지 않겠느냐는 연락을 받기도 했다. 그동안 영화 시장이 안 좋지 않았나. 원래 나는 두 시간 이상의 영화를 볼 때, 시계를 세 번 정도 본다. 시계를 처음 봤을 때가 2시간 10분 정도 지났을 때더라. 시간이 잘 가서 오히려 단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웃음)"라고 소감을 밝혔다.
영화 '비트'(1997), '태양은 없다'(1999), '아수라'(2016) 등 청춘의 초상과 뒤엉키고 소용돌이치는 사건들을 집중적으로 연출해온 김성수 감독과 '서울의 봄'에서 처음으로 호흡을 맞춘 박해준은 소감을 밝혔다. 그는 "(감독님께서) 리허설을 많이 하시더라. '이 부분을 이렇게 고치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식의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내가 생각지도 못한 부분들을 감독님께서 말씀해주셔서 너무 좋았다. 그 순간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도록 만들어주시는 것 같다"라고 답했다.
김성수 감독과 벌써 5번째 호흡을 맞춘 이태신 역의 정우성은 '너무 집요해서 징글징글하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혹 그런 순간을 느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박해준은 "집요한 면이 없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우성 선배님은 감독님과 작업을 많이 하지 않았나. 사실 감독님과 처음 작업하는 새내기 같은 마음으로는 너무 행운이었다"라며 존경심을 드러냈다. '서울의 봄'에서 박해준이 맡은 노태건은 실존 인물 故 노태우 전 대통령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다. 처음 시나리오를 건네받고 부담이 되기도 했을 터. 박해준은 "하루 안에 그 많은 소동이 일어나는 것이 재밌었다. 걱정은 역할에 대한 것이었다. 그 이후, 황정민 선배의 연극 '리차드 3세'를 봤었다. 정말 에너제틱 하시더라. 드라마의 긴장감과 상황이 얼마나 급박한지에 대한 집중력이 엿보이셨다. 나도 노태건을 그렇게 접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로 인해 해석할 수 있는 영역이 조금 더 자유로워지는 것 같더라"라고 캐릭터를 준비하며 고민했던 지점들을 털어놨다.
노태건은 전두광(황정민)을 따르지만 동시에 속을 좀처럼 알 수 없는 복합적인 인물이다. 특히 불같은 성격의 전두광과 물 같은 성격의 이태신(정우성)의 중간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느낌도 있다. 노태건 캐릭터를 어떤 식으로 해석하고 연기에 임했냐는 질문에 박해준은 "마냥 전두광을 따라가는 인물이 아니기를 바랐다. 그가 의견을 제시했을 때, 완벽한 전두광의 편보다 동업자 같은 느낌이었다. 전두광의 이야기에 동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과 의심은 늘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그런 부분에서 우유부단하기보다는 그런 면에서 나는 상당히 주체적이라고 생각했다. 권력보다는 상황 대처에 유연한 인물인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서울의 봄'은 촌각을 다투는 9시간 동안 인물들의 욕망이 포개지면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서로 싸우고 의기투합하는 앙상블이 주요 포인트 중에 하나다. 전두광과 함께 여러 장군과의 앙상블을 보여준 박해준은 "틀에 박혀서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신을 위해서 달려가는 에너지가 너무 좋았다. 몇 번 합을 맞춰보면 자신들이 알아서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이 공간을 꽉꽉 채우기도 했다. 물러나서 보고 있으면 '이거지. 장군들이라고 다르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너무 훌륭한 작업이었다"라고 비하인드를 밝혔다.
전두광 역의 황정민은 故 전두환 전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비주얼로 관객들을 분위기만으로도 압도한다. 극 중에서 황정민과 가장 많은 호흡을 맞추면서 압도되거나 놀라기도 했다는 박해준은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 힘이 있으시지 않나. 나는 그런 힘이 없다(웃음) 어떤 에너지와 힘,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현장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느냐'에 대해서 정말 배워야 할 것 같다. 그 힘은 아마 우성 선배님과 정민 선배님이 주연배우로서 '이 영화의 텐션을 가지고 가야겠다'는 마음 때문이지 않을까. 많이 배워야겠다"라고 말했다. '서울의 봄'의 엔딩부에는 1979년 12월 12일 군사 반란을 일으켰던 당시의 하나회 인물들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사진을 찍는 장면과 실제 자료 사진이 함께 등장한다.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어떤 느낌이었냐는 질문에 "모르겠다. 사실은 뭔가 해냈다는 희열 같은 것과 약간 씁쓸함도 있었다. 사실 군사 반란이 끝나고 축하연을 벌이는 장면이 더 기억에 남는다. 온종일 그 장면을 찍은 기억이 있다. 그날은 조금 소름 돋았다. '이렇게 먹고 마시고 흥겨워해도 되나'라는 생각이었다"라고 솔직하게 답했다.
배우로서 '서울의 봄'이 어떤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냐고 묻자 "나를 배우로서 성장시킬 수 있는 현장이었다. 대학교 졸업하고 누군가 스승이건 선생님이건 참 배움이 있는 곳이 많이 없지 않나. 사람 이야기를 듣고 영화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를 많이 배웠다"라고 소회를 답했다.
김성수 감독의 영화 '서울의 봄'이 중요한 지점은 1979년 12월 12일의 기록을 처음으로 스크린에 옮겼다는 지점이다. 10·26 사태를 다룬 영화 '그때 그사람들', '남산의 부장들',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택시운전사', 6월 민주항쟁을 다룬 '1987'의 중추인 12.12 군사 반란. 관객들에게 '서울의 봄'이 어떻게 영화를 보기를 바라느냐고 묻자 박해준은 "이 영화를 보고 많은 해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다양한 사람이 갑론을박을 많이 해봤으면 좋겠다. 그게 가장 좋지 않을까. 나도 처음 볼 때, 두 번 볼 때, 뒤에서 '그럴 수도 있는 거지'도 있고 '그거는 짜증 나지 않나'도 생각할 수 있지 않나. 이 영화가 꼭 해야 할 일이 아니냐는 생각이다"라고 강조했다.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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