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위기론' 불거진 한국 영화계
손익분기점 넘은 작품들 흥행 요인은
앞으로 한국 영화계가 넘어야 할 산은
영화 '범죄도시3', '30일' 포스터
영화 '범죄도시3', '30일' 포스터


한 편의 영화가 개봉하기까지, 기획 단계부터 배우 캐스팅, 촬영, 후반 작업, 극장 개봉이라는 무수한 단계를 밟게 된다. 극장에 걸린 영화는 관객들의 선택을 받고, 개봉 주부터 관객 수는 수치화되어 기록된다. 특히 손익분기점(break-even point)을 넘는 것은 소위 영화의 흥망성쇠를 가르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영화의 손익분기점은 투자한 제작비를 관객 수로 환산한 수치다.

그렇다면, 왜 영화 관계자들은 손익분기점에 주목하는 것일까. 단순히 손익분기점을 넘는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화의 장기적인 제작, 투자, 배급에도 적신호가 켜지기 때문이다. 제작사들이 투자한 한 편의 영화가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하고 자본을 회수하지 못하는, 소위 '실패'를 겪게 되면 다음 작품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고 악순환은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2023년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손익분기점을 넘은 한국 영화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천만 관객' 돌파라는 문구는 옛일이 된 지 오래다. 작년 천만 영화를 돌파한 것은 '범죄도시2'(감독 이상용/1,269만명)뿐이다. 매년 여름과 겨울 시장에 맞춰 대작 영화들이 줄줄이 쏟아지건만, '천만 영화'는 고사하고 손익분기점도 못 넘기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 2023 손익분기점 넘은 한국 상업영화 TOP 4
'범죄도시3', '밀수', '잠', '30일'
영화 '범죄도시3', '밀수' 스틸컷.
영화 '범죄도시3', '밀수' 스틸컷.
올해에는(11월 6일 기준) 총 4편의 한국 상업영화가 손익분기점을 넘었다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우선, 지난 5월 31일 개봉한 '범죄도시3'(감독 이상용/1,068만명)이 지난 시리즈에 이어 '천만 관객'을 넘어섰다. '범죄도시3'의 손익분기점은 180만명으로 약 6배를 웃도는 수준. 시리즈의 엄청난 흥행으로 한국 영화의 암흑기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기도 했으나, '범죄도시'는 특별한 케이스다. 현실 '히어로'와도 같은 배우 마동석의 상징성이 한국 영화계에 돌출적인 현상을 끌어냈다. 전문가들은 '범죄도시' 시리즈의 흥행이 한국 영화의 위기론에서 벗어나는 것과는 다른 것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두 번째로는 지난 7월 26일 개봉했던 영화 '밀수'(감독 류승완)다. 2023년 여름 대작의 포문을 열었던 '밀수'는 누적 관객 수 514만명을 모으며, 약 400만명인 손익분기점을 넘는 기록을 보여줬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여름 대작 '더 문'(감독 김용화)은 누적 관객 수 51만명으로 손익분기점인 약 600만명에 한참 못 미치는 결과를 냈고, '비공식작전'(감독 김성훈)은 105만명으로 손익분기점인 약 500만명을 넘지 못했다. 막대한 제작비를 투자한 상황에서 제작사는 물론이거니와 극장가 역시 울상이었다.
영화 '잠', '30일' 스틸컷.
영화 '잠', '30일' 스틸컷.
세 번째는 지난 9월 6일 개봉한 영화 '잠'(감독 유재선)이다. 손익분기점이 80만명이었던 '잠'은 147만명으로 1.5배 정도 되는 관객 수를 불러 모으며 흥행하기도 했다. 네 번째는 지난 10월 3일 개봉한 영화 ''30일'(감독 남대중)으로 현재까지 누적 관객 수 200만명을 기록하며 손익분기점 160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개봉 한 달이 넘은 지금도 관객들의 입소문으로 이변을 일으키고 있다. 손익분기점을 넘은 영화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손익분기점이 영화의 모든 것을 판단하는 절대적 지표는 아니지만, 관객들의 선택 이유와 일종의 경향성을 비교해보고자 한다.


◆ 손익분기점을 넘은 이유 뭘까. Point 3

1) 장르적 재미가 스토리와 적절하게 포개질 때 ('범죄도시3','밀수')

장르(genre)에는 일정한 공식이 있다. 일례로 범죄 장르는 무자비한 빌런의 악행을 신념을 지킨 선한 캐릭터가 판도를 뒤집을 때, 우리는 내러티브를 예상하면서도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최근 사회적으로 치가 떨리게 하는 잔인한 범죄가 성행하면서, 현실 세계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통쾌한 복수를 그린 영화나 드라마들이 대거 나오고 있다.
영화 '범죄도시3' 스틸컷. /사진제공=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영화 '범죄도시3' 스틸컷. /사진제공=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공교롭게도 손익분기점을 넘은 '범죄도시3'와 '밀수'는 범죄 장르다. '범죄도시3'가 서울 광수대를 배경으로 형사 마석도(마동석)과 팀원들이 '마약 수사'를 하는 과정을 그린다면, '밀수'는 1970년대로 시대를 옮겨 생존을 위해 밀수하던 이들의 범죄 행각을 숨기고 파헤치는 이야기를 담아냈다. 범죄 영화에서 관객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빌런이 어떠한 최후를 맞이하는지다. 뚜렷한 권선징악으로 현실에서는 할 수 없는 복수나 처벌을 행하는 모습이 재미 요소다. 당연한 말이지만 범죄 장르를 택한다고, 공식을 따른다고 해서 흥행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범죄도시3'와 '밀수'의 흥행에는 장르적 재미와 스토리가 적절히 포개지는 지점에 있다. 우리는 '범죄도시' 시리즈를 보면서, 어차피 마지막에는 배우 마동석이 최후의 일격을 가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예상되는 기대를 어떤 식으로 비틀지가 중요한 포인트인데, '범죄도시3'는 괴물과도 같은 마석도에 비견하는 빌런을 등장시키며 재미를 더했다.
영화 '밀수' 스틸컷. /사진제공=(주)NEW
영화 '밀수' 스틸컷. /사진제공=(주)NEW
하지만 '범죄도시' 시리즈는 마석도라는 굳건한 아이콘을 어떻게 풀어나갈지가 숙제로 주어지긴 했다. '범죄도시3'가 천만 관객을 넘었다지만, 작품 자체에 대한 평가에 '진부하다', '예상 가능하다', '전편보다 못하다'는 반응이 따랐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신선했던 스토리가 반복적으로 이어질 경우에 가지는 한계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은 필요한 시점이다.

'밀수'는 다소 뻔할 수 있는 범죄 스토리의 배경지를 1970년대로 옮겨놓은 것이 하나의 성공 포인트라 예상된다. 중독성 넘치는 그 시대의 음악 역시 한몫했는데, 최헌의 '앵두', 김트리오의 '연안부두', 펄시스터즈의 '님아', 산울림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등의 노래는 '밀수'의 장르적 재미를 색다르게 만들었다.


2) 극장을 나서며 던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의 가치 ('잠')
영화 '잠' 스틸컷.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잠' 스틸컷.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는 해석의 여지가 많은 매체다. 보통 2시간에서 2시간 30분가량의 분량인 영화는 생략하거나 압축하는 경향이 많기에 극장을 나서면서 질문할 거리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관객들에게 극장의 출구는 열띤 토론의 장이 되기도 한다.

영화 '잠'의 흥행 요인을 분석해보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만들어냈다는 것에 초점을 둘 필요가 있다. 2016년 개봉한 나홍진 감독의 '곡성' 흥행과도 비슷한 선상에서 해석해볼 수 있는데, 당시 '곡성'의 결말은 많은 논쟁거리를 만들어냈다. 영화를 보고 온 사람들은 학교, 버스, 길거리, SNS까지 공간을 넘나들며 결말에 대해 이야기했다. 결말부 곡성을 집어삼킨 존재는 황정민이 연기한 무당 일광이었는지 혹은 천우희가 연기한 묘한 존재인 천우희인지, 외지인(쿠니무라 준)인지로 의견이 엇갈렸던 것. 이런 질문들은 N차 관람 및 새로운 관객 유입에 도움이 됐다.

'잠'도 마찬가지다. '잠'은 신혼부부 현수(이선균)과 수진(정유미)를 파국으로 몰고 간 존재의 원인과 함께 결말부에서 현수는 연기를 한 것인지 진짜로 그 존재가 들어온 것인지에 대해 종결되지 않은 이야기를 제시하며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영화가 지닌 본질을 탐구하며 질문을 던진 '잠'의 흥행에 대한 답은 그 물음에 녹아있지 않을까.


3) SNS를 중심으로 퍼져나간 입소문 ('30일')
영화 '30일' 스틸컷. /사진제공=(주)마인드마크
영화 '30일' 스틸컷. /사진제공=(주)마인드마크
예상치 못한 이변으로 떠오른 '30일'의 흥행 역시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30일'에서 눈에 띄는 것은 두 가지 포인트다. 과거 극장가를 채우던 실종된 로코 장르의 부활과 SNS를 중심으로 입소문이 퍼진 것이다. 개봉 전, 웹사이트를 들어가서 영화의 정보를 찾던 과거와는 다르게 SNS나 유튜브의 영화채널 영상을 보고 극장을 방문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지금의 문화가 '30일'의 흥행을 이끈 것으로 예상된다.

주연 배우인 강하늘과 정소민의 열띤 흥행도 한몫했지만, 관객들이 먼저 관람한 이들의 실관람평을 직접적으로 체감하면서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부담되는 티켓값과 OTT의 콘텐츠들로 하여금 관객들은 '확실한' 콘텐츠가 아니면 선택하지 않는 추세로 유튜브에서 영화 리뷰 영상 콘텐츠를 찾아보고 더 흥미가 없으면 해당 영화에 대한 관심은 딱 거기서 멈춘다.'30일'은 이혼을 앞둔 부부가 동반기억상실증에 걸린다는 소재와 공감할 수 있는 현실 커플의 이야기, 입체적인 캐릭터가 흥행의 주된 요인으로 보인다. 아쉽게 손익분기점은 넘지 못했지만. '달짝지근해: 7510'도 마찬가지로 2000년대 중후반이 지나며 자취를 감췄던 로코의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2023년 손익분기점을 넘은 한국 상업영화는 '범죄도시3', '밀수', '잠', '30일'이다. 아직 한 해를 마무리하기까지 두 달이라는 시간이 남았기에 속단할 수는 없지만, 네 작품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공통적으로는 극장에 직접 방문해서 관람할 가치가 있는지가 중요한 듯싶다. 2023년이 끝나지 않은 만큼, 한국 영화가 느리더라도 재기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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