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이와이 슌지의 '키리에의 노래'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괴물'
이와이 슌지의 '키리에의 노래'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괴물'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겸 영화평론가)가 한 호흡으로 화면을 길게 보여주는 롱테이크 촬영 기법처럼 영화 이야기를 심층 분석합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는 이른바 일본 영화의 황금기였다. 1950년대 활동했던 감독 구로사카 아키라, 미조구치 겐지, 오즈 야스지로가 영화사가 새겨놓은 굵직한 족적들을 떠올리게 할 정도였다. 하물며 그 당시의 일본 영화들은 현지에서 개봉하고 난 뒤에 한국에도 곧장 들어와 관객들을 만나기도 했다. 때문에 한국 관객들에게도 이 세 명의 일본 거장의 이름은 익숙할테다.
그 시대를 풍미했던 일본 거장들이 돌아왔다. 지브리 애니메이션 영화 '이웃집 토로로'(1998),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으로 일본의 전쟁 상황을 자신만의 동화적인 작법으로 풀어냈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오겡끼데스카~(잘 지내시나요)"를 연신 외치게 했던 영화 '러브레터'(1995), '4월 이야기'(1998), 극장을 빠져나온 뒤에도 중얼거리게 되는 OST 'Glide'의 '릴리 슈슈의 모든 것'(2001)의 이와이 슌지 감독. 영화 '아무도 모른다'(2004),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어느 가족'(2018)으로 표준화된 가족이 아닌 새로운 형태를 제시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까지 관객들을 만난다.

겨울에서 봄으로, 계절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 시기에 생각나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키리에의 노래'도 11월 1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키리에의 노래'는 노래로만 이야기하는 길거리 뮤지션 키리에(아이나 디 엔드), 자신을 지워버린 친구 잇코(히로세 스즈), 사라진 연인을 찾는 남자 나츠히코(마츠무라 호쿠토) 세 사람의 비밀스러운 사연을 들려줄 감성 스토리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의 창 부문에 공식 초청되며 선공개되기도 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이라는 소재와 노래로 세상과 소통하는 키리에를 통해 러닝타임 내내 치유의 손길로 관객들을 어루만진다. 또한, 자꾸만 갈라지는 목소리 틈에서 새어 나오는 '나 여기 있어요'라는 외침은 영화의 관전 포인트다.
그런가 하면, 11월 29일 개봉 예정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도 있다. '괴물'은 같은 반 아이들 사이 벌어지는 사건과 어른들의 오해가 겹치면서 겪게 되는 혼란을 그린 영화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특기인 아역 배우들과의 협업은 '괴물'의 몰입도를 높인다. 초등학생 미나타(쿠로카와 소야), 미나타의 엄마(안도 사쿠라), 호리 선생의 3가지 관점에서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 수 없는 기억의 조각들에 대한 이야기. '키리에의 노래'와 마찬가지로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에 공식 초청되면서 부산 관객들과 만난 바 있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라쇼몽'(1950)을 떠올리게 하는 일명 라쇼몽 효과(같은 사건을 두고 서로 다른 입장으로 해석해서 본질을 다르게 인식하는 현상)처럼 이들의 대화는 파편이 뛰듯 솟구쳐오르는 것이 '괴물'의 매력이다.
물론 세 감독의 영화는 '무엇이 명작이다'라고 손에 꼽을 수 없을 만큼 방대하다. 보는 이에 따라 자신의 인생 영화라고 꼽는 작품도 각기 다를 터. 그럼에도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키리에의 노래'(감독 이와이 슌지), '괴물'(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개봉을 맞아 세 감독의 작품들을 집중 탐구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개봉 년도는 현지 기준으로 표기하였음.)
◆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이 달콤씁쓸한 이유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은 미지의 존재나 감춰져 있던 세계를 발견하거나, 전쟁의 전후 상황과 감독 본인의 반전주의 성향을 작품 안에 녹여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웃집 토토로'의 다람쥐와 너구리를 닮은 도토리나무의 요정인 토토로와 '마녀 배달부 키키'(1998)의 명랑한 마녀 키키, '붉은 돼지'(1992)에서 과거 제1차 세계대전을 참전했던 인간 마르코 파고트는 돼지의 얼굴을 한 파일럿(돼지가 된 이유는 명확하게 등장하지 않는다)과 '벼랑 위의 포뇨'(2008)에서는 인어공주와 물고기를 연상케 하는 5살 붉은 인면어 포뇨/브륀힐데가 나오기도 한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에는 왜 인간이 아닌 존재와 아이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것일까.

이후, 치히로는 온천장의 주인인 유바바와 계약을 맺고 '센'이라는 이름으로 일을 하게 되고,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소년 하쿠와 만나게 된다. 하쿠의 숨겨졌던 이름과 자신의 잃어버린 이름을 되찾는 과정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관통하는 핵심이다.'이름'은 곧 정체성을 의미한다. 치히로가 유바바와의 계약에서 제일 먼저 이름을 빼앗겼던 것을 기억해보라. 치히로가 센이라는 가상의 이름으로 살아갈 경우, 자력이 아닌 타력에 의해 살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하쿠의 본래 이름인 니기하야미 고하쿠누시야를 찾아준 것은 길을 잃었던 치히로의 삶에 방향키가 되어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은 아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을 위한 하나의 지침을 내어준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제목에서도 언급하듯, 고철 덩어리들을 모아놓은 형태의 하울의 성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가 아닌 외딴 들판이다. 정착할 공간 없이 떠돌아다니는 하울 곁에서 대화의 물꼬를 트면서, 갈기갈기 찢긴 마음을 치유해주는 것은 소피뿐이다. 때문에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땅 위에 꼿꼿이 발을 내리지 못하던 두 남녀가 서로의 중력이 되어주는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은퇴를 번복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선택에 감사한 마음까지 들 정도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이 세대를 가로지르고 시간의 경계를 넘어 아직까지도 사랑받는 이유를 묻는다면, 이렇게 답변할 수 있을 듯 하다. 삶이란 무엇인지라는 간단하고도 어려운 질문에 대한 답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끊임없이 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와이 슌지 감독이 그려진 계절이 유독 아련한 이유

계절을 통과하며 지우지 못할 흔적을 남기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에는 왠지 모를 아련함이 항상 자리하고 있다. '키리에의 노래' 역시도 동일본대지진으로 헤어져야만 한 키리에의 서사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 언니의 이름 키리에를 사용하는 주인공의 나오지 않는 말은 반복되고 끊어낼 수 없는 아픔을 닮아있다. 때문에 그 아픔은 비슷한 시기만 되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계절을 닮아있다. 어쩌면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에서 계절이나 날씨가 부각되는 까닭은 지워지지 않는 통증이 새겨진 그 시기를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것이 아닐까.

이와이 슌지 감독의 또 하나의 명작, '릴리 슈슈의 모든 것' 역시 '러브레터'만큼이나 재개봉하면 관객들을 끌어모을 정도로 큰 팬덤이 있는 작품이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은 열네 살 소년 슈이치(이치하라 하야토)의 힘든 일상에 힘이 되어주는 가수 릴리 슈슈의 노래를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반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상황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소년의 무력감은 영화 안에 짙게 배긴다.

이외에도 '4월 이야기', '하나와 앨리스'(2004),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2005), '립반윙클의 신부'(2016) 등에서도 엇갈리는 진심과 쌓여가는 오해가 오랜 시간이 걸려 제자리를 찾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이와이 슌지 감독이 그려진 계절이 그리워하는 까닭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기와 순간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세상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

'환상의 빛'은 생명을 잃은 듯 깜빡거리는 가로등 불빛처럼 위태로운 유미코의 삶을 잔잔하지만 강렬하게 그려낸다. 특히 '환상의 빛'은 대사가 그리 많지 않은데, 때문에 유미코의 미세한 표정 변화나 기찻길, 바다, 버스 정류장과 같은 풍경들에 어둠이 내려앉을 때의 순간들에 눈길이 가게 된다. 더욱이 '빛'이라는 사라졌다가 등장하기를 반복하는 특성처럼 유미코의 우울감은 입퇴장을 한다.

"비극이 아니라, 성장에 초점을 맞췄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말처럼, '아무도 모른다'는 고발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영화는 크리스마스 전에는 돌아오겠다는 메모와 돈을 남기고 떠난 엄마와 남겨진 12살 장남 아키라(야기라유야), 둘째 쿄고(키타우라 아유), 셋째 시게루(키무라 히에이), 막내 유키(시미즈 모모코)가 삶을 살아내는 이야기. 어른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은 귀엽지만 안쓰럽기까지 하다. 특유의 사소한 것 안에서 반짝이는 것을 발견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답게 '아무도 모른다' 역시 현실은 비참하지만 그들의 일상은 입체적으로 그려진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보면, 늘 마음 한켠에 자리잡았던 '정상'이라는 개념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다. 사회적인 관념에서 이들은 분명 정상이 아니라는 판단에 놓여질 테다. 하지만 그 틀 자체가 과연 정상이 맞는지 물음을 던지게 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그린 캐릭터들의 관계성은 이루어질 수 없을 것만 같아 더 서글프다.
활동한 시기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2023년의 끝자락에 미야자키 하야오, 이와이 슌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을 만나며 과거에 좋아했던 그 시절의 영화들을 다시 한번 조우하기를 바란다.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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