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이와이 슌지의 '키리에의 노래'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괴물'
이와이 슌지의 '키리에의 노래'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괴물'
≪이하늘의 롱테이크≫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겸 영화평론가)가 한 호흡으로 화면을 길게 보여주는 롱테이크 촬영 기법처럼 영화 이야기를 심층 분석합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는 이른바 일본 영화의 황금기였다. 1950년대 활동했던 감독 구로사카 아키라, 미조구치 겐지, 오즈 야스지로가 영화사가 새겨놓은 굵직한 족적들을 떠올리게 할 정도였다. 하물며 그 당시의 일본 영화들은 현지에서 개봉하고 난 뒤에 한국에도 곧장 들어와 관객들을 만나기도 했다. 때문에 한국 관객들에게도 이 세 명의 일본 거장의 이름은 익숙할테다.
그 시대를 풍미했던 일본 거장들이 돌아왔다. 지브리 애니메이션 영화 '이웃집 토로로'(1998),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으로 일본의 전쟁 상황을 자신만의 동화적인 작법으로 풀어냈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오겡끼데스카~(잘 지내시나요)"를 연신 외치게 했던 영화 '러브레터'(1995), '4월 이야기'(1998), 극장을 빠져나온 뒤에도 중얼거리게 되는 OST 'Glide'의 '릴리 슈슈의 모든 것'(2001)의 이와이 슌지 감독. 영화 '아무도 모른다'(2004),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어느 가족'(2018)으로 표준화된 가족이 아닌 새로운 형태를 제시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까지 관객들을 만난다. 지난 25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개봉했다. 영화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신비로운 세계에 우연히 발을 들인 소년 마히토가 미스터리한 왜가리를 만나 펼쳐지는 시공초월 판타지 어드벤처다. 영화 '바람이 분다'(2013) 이후, 무려 10년 만에 신작이다.
겨울에서 봄으로, 계절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 시기에 생각나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키리에의 노래'도 11월 1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키리에의 노래'는 노래로만 이야기하는 길거리 뮤지션 키리에(아이나 디 엔드), 자신을 지워버린 친구 잇코(히로세 스즈), 사라진 연인을 찾는 남자 나츠히코(마츠무라 호쿠토) 세 사람의 비밀스러운 사연을 들려줄 감성 스토리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의 창 부문에 공식 초청되며 선공개되기도 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이라는 소재와 노래로 세상과 소통하는 키리에를 통해 러닝타임 내내 치유의 손길로 관객들을 어루만진다. 또한, 자꾸만 갈라지는 목소리 틈에서 새어 나오는 '나 여기 있어요'라는 외침은 영화의 관전 포인트다.
그런가 하면, 11월 29일 개봉 예정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도 있다. '괴물'은 같은 반 아이들 사이 벌어지는 사건과 어른들의 오해가 겹치면서 겪게 되는 혼란을 그린 영화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특기인 아역 배우들과의 협업은 '괴물'의 몰입도를 높인다. 초등학생 미나타(쿠로카와 소야), 미나타의 엄마(안도 사쿠라), 호리 선생의 3가지 관점에서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 수 없는 기억의 조각들에 대한 이야기. '키리에의 노래'와 마찬가지로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에 공식 초청되면서 부산 관객들과 만난 바 있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라쇼몽'(1950)을 떠올리게 하는 일명 라쇼몽 효과(같은 사건을 두고 서로 다른 입장으로 해석해서 본질을 다르게 인식하는 현상)처럼 이들의 대화는 파편이 뛰듯 솟구쳐오르는 것이 '괴물'의 매력이다.
물론 세 감독의 영화는 '무엇이 명작이다'라고 손에 꼽을 수 없을 만큼 방대하다. 보는 이에 따라 자신의 인생 영화라고 꼽는 작품도 각기 다를 터. 그럼에도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키리에의 노래'(감독 이와이 슌지), '괴물'(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개봉을 맞아 세 감독의 작품들을 집중 탐구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개봉 년도는 현지 기준으로 표기하였음.)
◆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이 달콤씁쓸한 이유 1978년 애니메이션 '미래 소년 코난'으로 데뷔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20편 이상의 애니메이션 영화 연출과 기획을 한 바 있다. TV 애니메이션을 비롯해 디자인, 작화, 레이아웃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어마어마하다. 한국 관객들에게 익숙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를 꼽자면, 단연 '하울의 움직이는 성'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일 테다. 개봉한 지. 20여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지금까지 회자되기도 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은 미지의 존재나 감춰져 있던 세계를 발견하거나, 전쟁의 전후 상황과 감독 본인의 반전주의 성향을 작품 안에 녹여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웃집 토토로'의 다람쥐와 너구리를 닮은 도토리나무의 요정인 토토로와 '마녀 배달부 키키'(1998)의 명랑한 마녀 키키, '붉은 돼지'(1992)에서 과거 제1차 세계대전을 참전했던 인간 마르코 파고트는 돼지의 얼굴을 한 파일럿(돼지가 된 이유는 명확하게 등장하지 않는다)과 '벼랑 위의 포뇨'(2008)에서는 인어공주와 물고기를 연상케 하는 5살 붉은 인면어 포뇨/브륀힐데가 나오기도 한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에는 왜 인간이 아닌 존재와 아이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것일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유심히 살펴보자. 첫 장면에서 치히로는 시골로 이사를 가면서 친구들과 헤어져야만 하는 이 상황 탓에 뾰로통함을 감출 수 없다. 하지만 자동차가 길을 잘못 들면서 의문의 터널 안으로 들어가게 된 치히로와 가족. 두려웠던 치히로는 들어가기를 꺼리지만, 이미 가족들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용기 내 들어간 터널 안에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져 있었고 부모는 주점을 음식들을 마구 주워 먹고는 이미 돼지가 되어버린 이후다. 이때, 치히로는 홀로 이 난관을 헤쳐 나가야 한다. 치히로에게 주어진 임무는 버겁고 해결점도 보이지 않지만, 돼지가 된 부모를 인간으로 돌리기 위해서는 움직여야만 하는 것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서사와 비슷한 지점이 있는데, 그것은 두 소녀 모두 지도는 표기되지 않은 은밀한 세계에 발을 디디며 성장하는 과정을 그리기 때문이다.
이후, 치히로는 온천장의 주인인 유바바와 계약을 맺고 '센'이라는 이름으로 일을 하게 되고,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소년 하쿠와 만나게 된다. 하쿠의 숨겨졌던 이름과 자신의 잃어버린 이름을 되찾는 과정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관통하는 핵심이다.'이름'은 곧 정체성을 의미한다. 치히로가 유바바와의 계약에서 제일 먼저 이름을 빼앗겼던 것을 기억해보라. 치히로가 센이라는 가상의 이름으로 살아갈 경우, 자력이 아닌 타력에 의해 살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하쿠의 본래 이름인 니기하야미 고하쿠누시야를 찾아준 것은 길을 잃었던 치히로의 삶에 방향키가 되어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은 아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을 위한 하나의 지침을 내어준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그 때문에 다채로운 색감과 음악감독 히사이지 조 특유의 피아노 선율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끝자락에는 달콤씁쓸함이 감돈다. 특히 19세기 말의 유럽을 모티브라로 한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권태로운 삶을 살던 소피는 영문도 모른채 마녀의 저주로 할머니가 되면서 마법사 하울과 만나게 된다. 희끗희끗한 회색 머리카락과 주글주글해진 얼굴의 주름살로 소피는 표면적으로 할머니가 되었지만, 점점 '소녀다운' 명랑함을 되찾고, 장난기 넘치고 매사에 진지하지 않던 하울은 내면에 숨겨둔 어두웠던 어린 시절을 드러낸다.
제목에서도 언급하듯, 고철 덩어리들을 모아놓은 형태의 하울의 성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가 아닌 외딴 들판이다. 정착할 공간 없이 떠돌아다니는 하울 곁에서 대화의 물꼬를 트면서, 갈기갈기 찢긴 마음을 치유해주는 것은 소피뿐이다. 때문에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땅 위에 꼿꼿이 발을 내리지 못하던 두 남녀가 서로의 중력이 되어주는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다. 사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업적을 간추려서 설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대표작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언급했지만, 초기작인 '천공의 성 라퓨타', '붉은 돼지', '마녀 배달부 키키' 등에서 그의 색깔은 더 짙게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개봉을 앞둔 '그대들은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철학적인 제목을 내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은퇴를 번복하며 돌아왔다.
개인적으로 은퇴를 번복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선택에 감사한 마음까지 들 정도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이 세대를 가로지르고 시간의 경계를 넘어 아직까지도 사랑받는 이유를 묻는다면, 이렇게 답변할 수 있을 듯 하다. 삶이란 무엇인지라는 간단하고도 어려운 질문에 대한 답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끊임없이 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와이 슌지 감독이 그려진 계절이 유독 아련한 이유 1987년 발매된 이문세의 '가을이 오면' 노래의 가사처럼, 유독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짧은 시기만 돌아오면 떠오르는 영화들이 있다. 하얗게 물든 설원을 배경으로 '잘 지내냐'는 안부를 묻는 '러브레터'와 추적추적 내리는 비처럼 젖어든 좋아하는 상대에게 머뭇거리며 마음을 고백하는 '4월 이야기', 빼곡하게 채워진 초록빛 들판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릴리 슈슈의 모든 것'까지.
계절을 통과하며 지우지 못할 흔적을 남기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에는 왠지 모를 아련함이 항상 자리하고 있다. '키리에의 노래' 역시도 동일본대지진으로 헤어져야만 한 키리에의 서사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 언니의 이름 키리에를 사용하는 주인공의 나오지 않는 말은 반복되고 끊어낼 수 없는 아픔을 닮아있다. 때문에 그 아픔은 비슷한 시기만 되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계절을 닮아있다. 어쩌면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에서 계절이나 날씨가 부각되는 까닭은 지워지지 않는 통증이 새겨진 그 시기를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것이 아닐까. 특히 '러브레터'는 이와이 슌지 감독을 세상에 공고히 알린 작품이다. 영화는 같은 이름으로 인해 생긴 착각으로부터 비롯된 가슴 시린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주인공 와타나베 히로코(나카야마 미호)는 죽은 남자친구 후지이 이츠키(카시와바라 타카시)를 그리워하면서 졸업앨범에 실린 그의 옛 주소로 편지를 보내게 된다. 히로코는 편지의 답장을 받게 되는데, 믿을 수 없는 일에 사건의 전말을 찾아가던 히로코는 죽은 남자친구의 이름 후지이 이츠키와 동명이인의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러브레터'의 명장면은 도서관에 퍼지는 햇빛과 수줍게 이야기를 나누는 과거의 이츠키(남), 이츠키(여)들의 모습이다. 다소 복잡한 구성처럼 보이지만 사실 '러브레터'는 도달하지 못했던, 빛바랜 마음을 이어주는 슬프지만 아름다운 영화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또 하나의 명작, '릴리 슈슈의 모든 것' 역시 '러브레터'만큼이나 재개봉하면 관객들을 끌어모을 정도로 큰 팬덤이 있는 작품이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은 열네 살 소년 슈이치(이치하라 하야토)의 힘든 일상에 힘이 되어주는 가수 릴리 슈슈의 노래를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반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상황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소년의 무력감은 영화 안에 짙게 배긴다. OST 'Glide'는 코고나다 감독의 영화 '애프터양'(2022)에서 오마주되기도 했다. "I wanna be. I wanna be just like a melody. just like a simple sound'(나는 되고 싶어. 나는 그냥 멜로디가 되고 싶어. 그냥 단순한 소리 같은 거)라는 반복되는 구절과 서정적인 멜로디는 소년 슈이치의 흔들리는 삶을 반영하듯, 아련함을 가중시킨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은 유독 10대와 20대들에게 인기가 많은데, 이를 짐작해보면 '필시 우리 역시도 그 시절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나뒹굴었을 테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외에도 '4월 이야기', '하나와 앨리스'(2004),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2005), '립반윙클의 신부'(2016) 등에서도 엇갈리는 진심과 쌓여가는 오해가 오랜 시간이 걸려 제자리를 찾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이와이 슌지 감독이 그려진 계절이 그리워하는 까닭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기와 순간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세상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 1995년 영화 '환상의 빛'으로 데뷔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는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다룸에도, 고발보다는 그만의 세상을 둥글게 보는 시선이 들어가있는 것만 같다. 미야토로 테루의 동명의 소설을 기반으로 한 데뷔작 '환상의 빛'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영화는 어린시절 행방불명된 할머니의 기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던 유미코(에스미 마키코)가 남편 이쿠오(아사노 타다노부)의 죽음으로 부서진 일상을 마주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환상의 빛'은 생명을 잃은 듯 깜빡거리는 가로등 불빛처럼 위태로운 유미코의 삶을 잔잔하지만 강렬하게 그려낸다. 특히 '환상의 빛'은 대사가 그리 많지 않은데, 때문에 유미코의 미세한 표정 변화나 기찻길, 바다, 버스 정류장과 같은 풍경들에 어둠이 내려앉을 때의 순간들에 눈길이 가게 된다. 더욱이 '빛'이라는 사라졌다가 등장하기를 반복하는 특성처럼 유미코의 우울감은 입퇴장을 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보편적인 형태의 가족보다는 한쪽 면이 불쑥 튀어나와 비정상처럼 보이는 구성원들에 초점을 맞추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아무도 모른다'와 '바닷마을 다이어리', '어느 가족'이 그러하다. '아무도 모른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초기작으로 1998년 일본 도쿄에서 일어났던 스가모 아동 방치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비극이 아니라, 성장에 초점을 맞췄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말처럼, '아무도 모른다'는 고발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영화는 크리스마스 전에는 돌아오겠다는 메모와 돈을 남기고 떠난 엄마와 남겨진 12살 장남 아키라(야기라유야), 둘째 쿄고(키타우라 아유), 셋째 시게루(키무라 히에이), 막내 유키(시미즈 모모코)가 삶을 살아내는 이야기. 어른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은 귀엽지만 안쓰럽기까지 하다. 특유의 사소한 것 안에서 반짝이는 것을 발견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답게 '아무도 모른다' 역시 현실은 비참하지만 그들의 일상은 입체적으로 그려진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사치(아야세 하루카), 요시노(나가시와 마사미), 치카(카호) 세 자매가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듣고 간 장례식장에서 이복 여동생 스즈(히로세 스즈)를 만나고 함께 가족이 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어느 가족'은 피 하나 섞이지 않는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제71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기도 한 '어느 가족'은 가족이라는 단어나 개념에 대해 우리에게 다시 한번 질문을 하게 한다. 부모에게 방치 당하는 아이 유리(사사키 미유)를 데려와서 함께 사는 오사무(릴리 프랭크), 노부요(안도 사쿠라), 아키(미차오카 마유), 하츠에(키키 키린), 쇼타(죠 카이리)의 모습은 분명 이상하지만 쉬이 판단을 내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보면, 늘 마음 한켠에 자리잡았던 '정상'이라는 개념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다. 사회적인 관념에서 이들은 분명 정상이 아니라는 판단에 놓여질 테다. 하지만 그 틀 자체가 과연 정상이 맞는지 물음을 던지게 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그린 캐릭터들의 관계성은 이루어질 수 없을 것만 같아 더 서글프다.
활동한 시기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2023년의 끝자락에 미야자키 하야오, 이와이 슌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을 만나며 과거에 좋아했던 그 시절의 영화들을 다시 한번 조우하기를 바란다.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겸 영화평론가)가 한 호흡으로 화면을 길게 보여주는 롱테이크 촬영 기법처럼 영화 이야기를 심층 분석합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는 이른바 일본 영화의 황금기였다. 1950년대 활동했던 감독 구로사카 아키라, 미조구치 겐지, 오즈 야스지로가 영화사가 새겨놓은 굵직한 족적들을 떠올리게 할 정도였다. 하물며 그 당시의 일본 영화들은 현지에서 개봉하고 난 뒤에 한국에도 곧장 들어와 관객들을 만나기도 했다. 때문에 한국 관객들에게도 이 세 명의 일본 거장의 이름은 익숙할테다.
그 시대를 풍미했던 일본 거장들이 돌아왔다. 지브리 애니메이션 영화 '이웃집 토로로'(1998),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으로 일본의 전쟁 상황을 자신만의 동화적인 작법으로 풀어냈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오겡끼데스카~(잘 지내시나요)"를 연신 외치게 했던 영화 '러브레터'(1995), '4월 이야기'(1998), 극장을 빠져나온 뒤에도 중얼거리게 되는 OST 'Glide'의 '릴리 슈슈의 모든 것'(2001)의 이와이 슌지 감독. 영화 '아무도 모른다'(2004),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어느 가족'(2018)으로 표준화된 가족이 아닌 새로운 형태를 제시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까지 관객들을 만난다. 지난 25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개봉했다. 영화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신비로운 세계에 우연히 발을 들인 소년 마히토가 미스터리한 왜가리를 만나 펼쳐지는 시공초월 판타지 어드벤처다. 영화 '바람이 분다'(2013) 이후, 무려 10년 만에 신작이다.
겨울에서 봄으로, 계절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 시기에 생각나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키리에의 노래'도 11월 1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키리에의 노래'는 노래로만 이야기하는 길거리 뮤지션 키리에(아이나 디 엔드), 자신을 지워버린 친구 잇코(히로세 스즈), 사라진 연인을 찾는 남자 나츠히코(마츠무라 호쿠토) 세 사람의 비밀스러운 사연을 들려줄 감성 스토리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의 창 부문에 공식 초청되며 선공개되기도 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이라는 소재와 노래로 세상과 소통하는 키리에를 통해 러닝타임 내내 치유의 손길로 관객들을 어루만진다. 또한, 자꾸만 갈라지는 목소리 틈에서 새어 나오는 '나 여기 있어요'라는 외침은 영화의 관전 포인트다.
그런가 하면, 11월 29일 개봉 예정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도 있다. '괴물'은 같은 반 아이들 사이 벌어지는 사건과 어른들의 오해가 겹치면서 겪게 되는 혼란을 그린 영화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특기인 아역 배우들과의 협업은 '괴물'의 몰입도를 높인다. 초등학생 미나타(쿠로카와 소야), 미나타의 엄마(안도 사쿠라), 호리 선생의 3가지 관점에서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 수 없는 기억의 조각들에 대한 이야기. '키리에의 노래'와 마찬가지로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에 공식 초청되면서 부산 관객들과 만난 바 있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라쇼몽'(1950)을 떠올리게 하는 일명 라쇼몽 효과(같은 사건을 두고 서로 다른 입장으로 해석해서 본질을 다르게 인식하는 현상)처럼 이들의 대화는 파편이 뛰듯 솟구쳐오르는 것이 '괴물'의 매력이다.
물론 세 감독의 영화는 '무엇이 명작이다'라고 손에 꼽을 수 없을 만큼 방대하다. 보는 이에 따라 자신의 인생 영화라고 꼽는 작품도 각기 다를 터. 그럼에도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키리에의 노래'(감독 이와이 슌지), '괴물'(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개봉을 맞아 세 감독의 작품들을 집중 탐구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개봉 년도는 현지 기준으로 표기하였음.)
◆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이 달콤씁쓸한 이유 1978년 애니메이션 '미래 소년 코난'으로 데뷔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20편 이상의 애니메이션 영화 연출과 기획을 한 바 있다. TV 애니메이션을 비롯해 디자인, 작화, 레이아웃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어마어마하다. 한국 관객들에게 익숙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를 꼽자면, 단연 '하울의 움직이는 성'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일 테다. 개봉한 지. 20여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지금까지 회자되기도 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은 미지의 존재나 감춰져 있던 세계를 발견하거나, 전쟁의 전후 상황과 감독 본인의 반전주의 성향을 작품 안에 녹여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웃집 토토로'의 다람쥐와 너구리를 닮은 도토리나무의 요정인 토토로와 '마녀 배달부 키키'(1998)의 명랑한 마녀 키키, '붉은 돼지'(1992)에서 과거 제1차 세계대전을 참전했던 인간 마르코 파고트는 돼지의 얼굴을 한 파일럿(돼지가 된 이유는 명확하게 등장하지 않는다)과 '벼랑 위의 포뇨'(2008)에서는 인어공주와 물고기를 연상케 하는 5살 붉은 인면어 포뇨/브륀힐데가 나오기도 한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에는 왜 인간이 아닌 존재와 아이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것일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유심히 살펴보자. 첫 장면에서 치히로는 시골로 이사를 가면서 친구들과 헤어져야만 하는 이 상황 탓에 뾰로통함을 감출 수 없다. 하지만 자동차가 길을 잘못 들면서 의문의 터널 안으로 들어가게 된 치히로와 가족. 두려웠던 치히로는 들어가기를 꺼리지만, 이미 가족들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용기 내 들어간 터널 안에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져 있었고 부모는 주점을 음식들을 마구 주워 먹고는 이미 돼지가 되어버린 이후다. 이때, 치히로는 홀로 이 난관을 헤쳐 나가야 한다. 치히로에게 주어진 임무는 버겁고 해결점도 보이지 않지만, 돼지가 된 부모를 인간으로 돌리기 위해서는 움직여야만 하는 것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서사와 비슷한 지점이 있는데, 그것은 두 소녀 모두 지도는 표기되지 않은 은밀한 세계에 발을 디디며 성장하는 과정을 그리기 때문이다.
이후, 치히로는 온천장의 주인인 유바바와 계약을 맺고 '센'이라는 이름으로 일을 하게 되고,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소년 하쿠와 만나게 된다. 하쿠의 숨겨졌던 이름과 자신의 잃어버린 이름을 되찾는 과정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관통하는 핵심이다.'이름'은 곧 정체성을 의미한다. 치히로가 유바바와의 계약에서 제일 먼저 이름을 빼앗겼던 것을 기억해보라. 치히로가 센이라는 가상의 이름으로 살아갈 경우, 자력이 아닌 타력에 의해 살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하쿠의 본래 이름인 니기하야미 고하쿠누시야를 찾아준 것은 길을 잃었던 치히로의 삶에 방향키가 되어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은 아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을 위한 하나의 지침을 내어준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그 때문에 다채로운 색감과 음악감독 히사이지 조 특유의 피아노 선율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끝자락에는 달콤씁쓸함이 감돈다. 특히 19세기 말의 유럽을 모티브라로 한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권태로운 삶을 살던 소피는 영문도 모른채 마녀의 저주로 할머니가 되면서 마법사 하울과 만나게 된다. 희끗희끗한 회색 머리카락과 주글주글해진 얼굴의 주름살로 소피는 표면적으로 할머니가 되었지만, 점점 '소녀다운' 명랑함을 되찾고, 장난기 넘치고 매사에 진지하지 않던 하울은 내면에 숨겨둔 어두웠던 어린 시절을 드러낸다.
제목에서도 언급하듯, 고철 덩어리들을 모아놓은 형태의 하울의 성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가 아닌 외딴 들판이다. 정착할 공간 없이 떠돌아다니는 하울 곁에서 대화의 물꼬를 트면서, 갈기갈기 찢긴 마음을 치유해주는 것은 소피뿐이다. 때문에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땅 위에 꼿꼿이 발을 내리지 못하던 두 남녀가 서로의 중력이 되어주는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다. 사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업적을 간추려서 설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대표작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언급했지만, 초기작인 '천공의 성 라퓨타', '붉은 돼지', '마녀 배달부 키키' 등에서 그의 색깔은 더 짙게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개봉을 앞둔 '그대들은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철학적인 제목을 내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은퇴를 번복하며 돌아왔다.
개인적으로 은퇴를 번복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선택에 감사한 마음까지 들 정도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이 세대를 가로지르고 시간의 경계를 넘어 아직까지도 사랑받는 이유를 묻는다면, 이렇게 답변할 수 있을 듯 하다. 삶이란 무엇인지라는 간단하고도 어려운 질문에 대한 답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끊임없이 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와이 슌지 감독이 그려진 계절이 유독 아련한 이유 1987년 발매된 이문세의 '가을이 오면' 노래의 가사처럼, 유독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짧은 시기만 돌아오면 떠오르는 영화들이 있다. 하얗게 물든 설원을 배경으로 '잘 지내냐'는 안부를 묻는 '러브레터'와 추적추적 내리는 비처럼 젖어든 좋아하는 상대에게 머뭇거리며 마음을 고백하는 '4월 이야기', 빼곡하게 채워진 초록빛 들판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릴리 슈슈의 모든 것'까지.
계절을 통과하며 지우지 못할 흔적을 남기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에는 왠지 모를 아련함이 항상 자리하고 있다. '키리에의 노래' 역시도 동일본대지진으로 헤어져야만 한 키리에의 서사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 언니의 이름 키리에를 사용하는 주인공의 나오지 않는 말은 반복되고 끊어낼 수 없는 아픔을 닮아있다. 때문에 그 아픔은 비슷한 시기만 되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계절을 닮아있다. 어쩌면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에서 계절이나 날씨가 부각되는 까닭은 지워지지 않는 통증이 새겨진 그 시기를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것이 아닐까. 특히 '러브레터'는 이와이 슌지 감독을 세상에 공고히 알린 작품이다. 영화는 같은 이름으로 인해 생긴 착각으로부터 비롯된 가슴 시린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주인공 와타나베 히로코(나카야마 미호)는 죽은 남자친구 후지이 이츠키(카시와바라 타카시)를 그리워하면서 졸업앨범에 실린 그의 옛 주소로 편지를 보내게 된다. 히로코는 편지의 답장을 받게 되는데, 믿을 수 없는 일에 사건의 전말을 찾아가던 히로코는 죽은 남자친구의 이름 후지이 이츠키와 동명이인의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러브레터'의 명장면은 도서관에 퍼지는 햇빛과 수줍게 이야기를 나누는 과거의 이츠키(남), 이츠키(여)들의 모습이다. 다소 복잡한 구성처럼 보이지만 사실 '러브레터'는 도달하지 못했던, 빛바랜 마음을 이어주는 슬프지만 아름다운 영화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또 하나의 명작, '릴리 슈슈의 모든 것' 역시 '러브레터'만큼이나 재개봉하면 관객들을 끌어모을 정도로 큰 팬덤이 있는 작품이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은 열네 살 소년 슈이치(이치하라 하야토)의 힘든 일상에 힘이 되어주는 가수 릴리 슈슈의 노래를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반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상황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소년의 무력감은 영화 안에 짙게 배긴다. OST 'Glide'는 코고나다 감독의 영화 '애프터양'(2022)에서 오마주되기도 했다. "I wanna be. I wanna be just like a melody. just like a simple sound'(나는 되고 싶어. 나는 그냥 멜로디가 되고 싶어. 그냥 단순한 소리 같은 거)라는 반복되는 구절과 서정적인 멜로디는 소년 슈이치의 흔들리는 삶을 반영하듯, 아련함을 가중시킨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은 유독 10대와 20대들에게 인기가 많은데, 이를 짐작해보면 '필시 우리 역시도 그 시절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나뒹굴었을 테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외에도 '4월 이야기', '하나와 앨리스'(2004),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2005), '립반윙클의 신부'(2016) 등에서도 엇갈리는 진심과 쌓여가는 오해가 오랜 시간이 걸려 제자리를 찾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이와이 슌지 감독이 그려진 계절이 그리워하는 까닭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기와 순간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세상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 1995년 영화 '환상의 빛'으로 데뷔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는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다룸에도, 고발보다는 그만의 세상을 둥글게 보는 시선이 들어가있는 것만 같다. 미야토로 테루의 동명의 소설을 기반으로 한 데뷔작 '환상의 빛'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영화는 어린시절 행방불명된 할머니의 기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던 유미코(에스미 마키코)가 남편 이쿠오(아사노 타다노부)의 죽음으로 부서진 일상을 마주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환상의 빛'은 생명을 잃은 듯 깜빡거리는 가로등 불빛처럼 위태로운 유미코의 삶을 잔잔하지만 강렬하게 그려낸다. 특히 '환상의 빛'은 대사가 그리 많지 않은데, 때문에 유미코의 미세한 표정 변화나 기찻길, 바다, 버스 정류장과 같은 풍경들에 어둠이 내려앉을 때의 순간들에 눈길이 가게 된다. 더욱이 '빛'이라는 사라졌다가 등장하기를 반복하는 특성처럼 유미코의 우울감은 입퇴장을 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보편적인 형태의 가족보다는 한쪽 면이 불쑥 튀어나와 비정상처럼 보이는 구성원들에 초점을 맞추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아무도 모른다'와 '바닷마을 다이어리', '어느 가족'이 그러하다. '아무도 모른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초기작으로 1998년 일본 도쿄에서 일어났던 스가모 아동 방치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비극이 아니라, 성장에 초점을 맞췄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말처럼, '아무도 모른다'는 고발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영화는 크리스마스 전에는 돌아오겠다는 메모와 돈을 남기고 떠난 엄마와 남겨진 12살 장남 아키라(야기라유야), 둘째 쿄고(키타우라 아유), 셋째 시게루(키무라 히에이), 막내 유키(시미즈 모모코)가 삶을 살아내는 이야기. 어른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은 귀엽지만 안쓰럽기까지 하다. 특유의 사소한 것 안에서 반짝이는 것을 발견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답게 '아무도 모른다' 역시 현실은 비참하지만 그들의 일상은 입체적으로 그려진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사치(아야세 하루카), 요시노(나가시와 마사미), 치카(카호) 세 자매가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듣고 간 장례식장에서 이복 여동생 스즈(히로세 스즈)를 만나고 함께 가족이 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어느 가족'은 피 하나 섞이지 않는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제71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기도 한 '어느 가족'은 가족이라는 단어나 개념에 대해 우리에게 다시 한번 질문을 하게 한다. 부모에게 방치 당하는 아이 유리(사사키 미유)를 데려와서 함께 사는 오사무(릴리 프랭크), 노부요(안도 사쿠라), 아키(미차오카 마유), 하츠에(키키 키린), 쇼타(죠 카이리)의 모습은 분명 이상하지만 쉬이 판단을 내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보면, 늘 마음 한켠에 자리잡았던 '정상'이라는 개념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다. 사회적인 관념에서 이들은 분명 정상이 아니라는 판단에 놓여질 테다. 하지만 그 틀 자체가 과연 정상이 맞는지 물음을 던지게 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그린 캐릭터들의 관계성은 이루어질 수 없을 것만 같아 더 서글프다.
활동한 시기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2023년의 끝자락에 미야자키 하야오, 이와이 슌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을 만나며 과거에 좋아했던 그 시절의 영화들을 다시 한번 조우하기를 바란다.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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