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신스틸러 배우 김종수
2023년 '밀수'부터 '천박사'까지
영화 '1987'의 눈물 머금은 바로 그 장면
영화 '천박사 퇴마 연구소' 스틸컷. /사진제공=CJ ENM
영화 '천박사 퇴마 연구소' 스틸컷. /사진제공=CJ ENM
'어? 이 배우 누구더라' 2023년 유독 눈에 띄는 배우가 있다. 사람 좋은 푸근한 미소부터 예상치 못한 빌런, 조용하지만 든든한 조력자까지. 늘 새로운 가면을 쓰고 관객을 앞에 나서는 배우 김종수다.

1964년생 배우 김종수는 1985년 연극 '에쿠우스'로 데뷔한 연기력 탄탄한 중견 배우다. 올 한해 김종수는 쉴새 없이 달리는 행보를 보여줬다. 소처럼 열일하며 관객들에게 눈도장을 콱 찍은 김종수의 2023년은 새로운 전성기나 다름없다.
영화 '비공식작전' 스틸컷. /사진제공=쇼박스
영화 '비공식작전' 스틸컷. /사진제공=쇼박스
지난 1월 8일 개봉한 영화 '유령'(감독 이해영)의 특별출연을 시작으로 4월 26일 개봉한 '드림'(감독 이병헌)의 오합지졸 홈리스 축구팀에서 열정 넘치게 축구를 배우는 김환동으로 분했다. 이어 7월 26일 개봉한 '밀수'(감독 류승완)에서 세관 이장춘 계장을 맡으며 밀도 높은 연기를 보여줬다. 밀수하는 족족 잡아내는 본업에 충실한 세관으로 등장하지만, 실상은 돈에 눈먼 반전 캐릭터로 등장하며 독보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그런가 하면, 8월 2일 개봉한 '비공식작전'(감독 김성훈)에서는 최강석 장관 역을 맡아 레바논에서 실종된 오재석 서기관(임형국)을 위해 먼 길을 떠난 하정우(민준)의 뒤에서 힘이 되주는 '참어른' 같은 조력자로 등장하기도 했다. 최근 개봉을 앞둔 영화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감독 김성식)에서는 천박사(강동원)의 조력자이자 오랜 인연을 지닌 골동품점 CEO '황사장'으로 유쾌한 매력을 뽐낼 예정이다. 팔색조 같은 얼굴을 지닌 김종수, 어떤 작품에서 관객들과 만났을까?

◆ 영화 '밀수' (감독 류승완) 이장춘 계장 역
영화 '밀수' 스틸컷. /사진제공=㈜NEW
영화 '밀수' 스틸컷. /사진제공=㈜NEW
영화 '밀수'(감독 류승완)에서 세관 이장춘 계장 역의 김종수는 선한 얼굴 뒤에 악독한 행위를 일삼는 반전 캐릭터를 맡았다. 1970년대를 배경으로 밀수하는 해녀들의 이야기를 담은 '밀수'. 착실하게 맡은 업무를 성실하게 이행하며 누구보다 앞장서서 일하는 이장춘 계장의 가면은 돈 앞에서 벗겨진다. 해녀 조춘자(김혜수)와 엄진숙(염정아)의 믿음이 산산조각이 난 사건의 중심에는 장도리(박정민)의 밀고와 짜고 친 이장춘 계장이 있었다.

시커먼 속내를 속이고 세관 업무보다 돈이 우선인 이장춘 계장은 생계형 빌런이다. '밀수'에는 선악이 모호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삶을 유지하기 위해 위법을 저지른다. 하지만 이장춘 계장은 겉과 뒤가 다르기에 소름이 돋는 캐릭터. 김종수의 선한 얼굴이 서늘하게 변하는 순간은 극의 후반부인데, 다이아몬드가 가라앉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엽총을 해녀들에게 겨누며 물불 안 가리는 희번득한 눈을 통해 탐욕적인 인간 군상을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 디즈니 + '무빙' (감독 박인제) 황지성 역
디즈니 플러스 '무빙' 스틸컷. /사진제공=디즈니 플러스
디즈니 플러스 '무빙' 스틸컷. /사진제공=디즈니 플러스
강풀 원작의 디즈니 + '무빙'에서 김종수는 학교라는 일상의 틈에 숨어 잠입한 안기부 요원이자 정원고등학교 학생들을 감시하는 수위 황지성 역을 맡았다. 과거, 안기부 수장 민용준(문성근)을 곁에서 보필하면서 묵묵하게 지키는 모습을 보여줬다. 현재에는 정원고등학교 학생들의 안전을 지키는 수위로 등장한다.

'무빙'은 베일에 싸인 캐릭터들이 겹겹이 포개지면서 재미가 배가 되는 드라마로, 초능력을 숨긴 채 현재를 살아가는 아이들과 과거의 아픈 비밀을 숨긴 채 살아온 부모들이 시대와 세대를 넘어 닥치는 거대한 위험에 함께 맞서는 초능력 액션 히어로물이다.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이 누군가를 감시하고 지키는 황지성은 과묵하지만, 빠릿빠릿한 행동과 판단력으로 경력직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낮에는 아이들에게 장난도 치면서 어디선가 본 듯한 평범한 수위 아저씨처럼, 밤에는 비밀을 한달음 안은 요원으로 전혀 다른 얼굴을 대중들에게 비치고 있다.


◆ 영화 '헌트' (감독 이정재) 안부장 역
영화 '헌트' 스틸컷. /사진제공=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영화 '헌트' 스틸컷. /사진제공=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이정재 감독 첫 장편영화 '헌트'는 조직 내 숨어든 스파이를 색출하라는 임무가 떨어지진 상황을 그리고 있다. 안기부 해외팀 박평호(이정재)와 국내 팀 김정도(정우성)은 조직 내 숨어든 스파이 '동림'을 색출하는 작전을 시작한다. 대한민국 1호가 암살당할지도 모르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서로를 의심해야 하는 사람들.

'헌트'에서 김종수는 제14대 국가안전기획부장 안병기 역을 맡았다. 자신이 맡은 직책만큼이나 무거운 사안에 국내팀과 해외팀 모두에게 동림을 색출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인물이다. 절대 지워지지 않을 의심의 불씨를 각자의 팀에 심어두면서 갈등을 부추긴다. 툭툭 내뱉는 말투와 능구렁이 같은 행동으로 강압적인 안기부장이자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 KBS2 드라마 '어쩌다 마주친, 그대' 윤병구 역
사진=KBS 드라마 '어쩌다 마주친, 그대' 방송캡처본.
사진=KBS 드라마 '어쩌다 마주친, 그대' 방송캡처본.
김동욱, 진기주 주연의 드라마 '어쩌다 마주친, 그대'에서 김종수는 1987년 우정고등학교의 교장이자 모두에게 존경받는 병구 역을 맡았다. 2021년 현재에서 과거 1987년 우정리로 원인 모를 시간여행을 하게 된 윤해준(김동욱), 백윤영(진기주)의 이야기를 담은 '어쩌다 마주친, 그대'. 윤해준의 할아버지이자 마지막에 밝혀진 살인사건의 범인인 연우(정재광)의 아버지로서 딜레마를 겪는 인물이다.

과거, 손자 윤해준이 시간 여행을 하기 전에는 아들의 살인을 감싸면서 미워하는 마음을 손자에게 풀어내는 비정한 할아버지로 등장했다. 윤해준이 1987년에서 과거를 바꾸고 모든 진실을 알게 된 이후에는 남들의 비난을 받아들이며 손자를 위한 할아버지라는 양면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김종수는 시간 여행 이전과 이후의 대비된 상황과 자기 잘못을 후회하고 반성하면서 세대의 죄악을 끊어내고 진정한 가족으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줬다.


◆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감독 이종필) 봉현철 부장 역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스틸컷.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스틸컷.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말단 여직원 생산관리3부 이자영(고아성)과 마케팅부 정유나(이솜), 회계부 심보람(박혜수)는 입사 8년 차의 동기이지만 회사에서 별다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채 그저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삶을 살아간다. 1995년을 배경으로 한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그런 세 사람이 토익을 공부하면서 자신의 삶에 변주를 주고자 하는 과정을 그린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 김종수는 삼진그룹에서 근무하는 봉현철 부장으로 등장한다. 극 중에서 수학올림피아드 경력도 있지만 단순 회계 업무만 반복하는 보람을 지지해주는 따스한 인물이다. 모두가 변화하려는 이들에게 해봤자라며 일침을 가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라”며 무한한 지지를 보내는 보기 드문 사람이다. 특유의 푸근한 미소로 보람의 행보를 응원하는 봉현철 부장은 영화의 균형을 조화롭게 잡는다.


◆ 영화 '1987' (감독 장준환) 박종철 아버지 역
영화 '1987' 스틸컷. /사진제공=CJ ENM
영화 '1987' 스틸컷. /사진제공=CJ ENM
한국 근현대사에서 잊히지 말아야 할 순간을 다룬 영화 '1987'(감독 장준환에서 모두가 숨죽이며 본 순간이 있다면, 바로 고 박종철의 화장한 유해를 강물에 뿌리는 장면일 테다. 꽁꽁 언 겨울의 강물 위에 화장한 유골을 뿌리는 장면은 왠지 가슴이 먹먹해진다. 박종철 아버지 역을 맡은 김종수는 아들의 죽음 뒤에 숨겨진 국가의 만행에도 그저 숨죽이고 지켜볼 수밖에 없는 참혹한 풍경을 묘사했다.

얼어버린 강물 탓에 흘러가지 못하고 머무는 아들의 재를 바라보며 "왜 떠나지 못하니"라며 울부짖는 김종수의 모습은 짧지만 강렬하다. 고 박종철의 유족들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당시의 상황을 담담하고 간결하게 연기하는 김종수는 관객들의 마음에 잊지 못할 하나의 이미지를 남겼다. 꾹꾹 눌러 담은 마음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억울한 상황에서도 크게 목소리를 높일 수 없었던 억압적인 그 시절의 상황에 단숨에 몰입될 수 있도록 그려냈다.

배우 김종수는 2023년 열일하며 전성기를 맞았다. 어떤 작품에서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줄지 기대되면서 앞으로 스크린에서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궁금하다. 극의 재미와 균형감을 잡아주는 캐릭터 자체로 존재하는 배우 김종수의 다른 얼굴은 어떨까. '어? 그 배우'가 아닌 배우 김종수라는 이름으로 관객들이 기억했으면 하는 바다.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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