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신스틸러 배우 김종수
2023년 '밀수'부터 '천박사'까지
영화 '1987'의 눈물 머금은 바로 그 장면
2023년 '밀수'부터 '천박사'까지
영화 '1987'의 눈물 머금은 바로 그 장면

1964년생 배우 김종수는 1985년 연극 '에쿠우스'로 데뷔한 연기력 탄탄한 중견 배우다. 올 한해 김종수는 쉴새 없이 달리는 행보를 보여줬다. 소처럼 열일하며 관객들에게 눈도장을 콱 찍은 김종수의 2023년은 새로운 전성기나 다름없다.

그런가 하면, 8월 2일 개봉한 '비공식작전'(감독 김성훈)에서는 최강석 장관 역을 맡아 레바논에서 실종된 오재석 서기관(임형국)을 위해 먼 길을 떠난 하정우(민준)의 뒤에서 힘이 되주는 '참어른' 같은 조력자로 등장하기도 했다. 최근 개봉을 앞둔 영화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감독 김성식)에서는 천박사(강동원)의 조력자이자 오랜 인연을 지닌 골동품점 CEO '황사장'으로 유쾌한 매력을 뽐낼 예정이다. 팔색조 같은 얼굴을 지닌 김종수, 어떤 작품에서 관객들과 만났을까?
◆ 영화 '밀수' (감독 류승완) 이장춘 계장 역

시커먼 속내를 속이고 세관 업무보다 돈이 우선인 이장춘 계장은 생계형 빌런이다. '밀수'에는 선악이 모호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삶을 유지하기 위해 위법을 저지른다. 하지만 이장춘 계장은 겉과 뒤가 다르기에 소름이 돋는 캐릭터. 김종수의 선한 얼굴이 서늘하게 변하는 순간은 극의 후반부인데, 다이아몬드가 가라앉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엽총을 해녀들에게 겨누며 물불 안 가리는 희번득한 눈을 통해 탐욕적인 인간 군상을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 디즈니 + '무빙' (감독 박인제) 황지성 역

'무빙'은 베일에 싸인 캐릭터들이 겹겹이 포개지면서 재미가 배가 되는 드라마로, 초능력을 숨긴 채 현재를 살아가는 아이들과 과거의 아픈 비밀을 숨긴 채 살아온 부모들이 시대와 세대를 넘어 닥치는 거대한 위험에 함께 맞서는 초능력 액션 히어로물이다.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이 누군가를 감시하고 지키는 황지성은 과묵하지만, 빠릿빠릿한 행동과 판단력으로 경력직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낮에는 아이들에게 장난도 치면서 어디선가 본 듯한 평범한 수위 아저씨처럼, 밤에는 비밀을 한달음 안은 요원으로 전혀 다른 얼굴을 대중들에게 비치고 있다.
◆ 영화 '헌트' (감독 이정재) 안부장 역

'헌트'에서 김종수는 제14대 국가안전기획부장 안병기 역을 맡았다. 자신이 맡은 직책만큼이나 무거운 사안에 국내팀과 해외팀 모두에게 동림을 색출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인물이다. 절대 지워지지 않을 의심의 불씨를 각자의 팀에 심어두면서 갈등을 부추긴다. 툭툭 내뱉는 말투와 능구렁이 같은 행동으로 강압적인 안기부장이자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 KBS2 드라마 '어쩌다 마주친, 그대' 윤병구 역

과거, 손자 윤해준이 시간 여행을 하기 전에는 아들의 살인을 감싸면서 미워하는 마음을 손자에게 풀어내는 비정한 할아버지로 등장했다. 윤해준이 1987년에서 과거를 바꾸고 모든 진실을 알게 된 이후에는 남들의 비난을 받아들이며 손자를 위한 할아버지라는 양면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김종수는 시간 여행 이전과 이후의 대비된 상황과 자기 잘못을 후회하고 반성하면서 세대의 죄악을 끊어내고 진정한 가족으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줬다.
◆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감독 이종필) 봉현철 부장 역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 김종수는 삼진그룹에서 근무하는 봉현철 부장으로 등장한다. 극 중에서 수학올림피아드 경력도 있지만 단순 회계 업무만 반복하는 보람을 지지해주는 따스한 인물이다. 모두가 변화하려는 이들에게 해봤자라며 일침을 가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라”며 무한한 지지를 보내는 보기 드문 사람이다. 특유의 푸근한 미소로 보람의 행보를 응원하는 봉현철 부장은 영화의 균형을 조화롭게 잡는다.
◆ 영화 '1987' (감독 장준환) 박종철 아버지 역

얼어버린 강물 탓에 흘러가지 못하고 머무는 아들의 재를 바라보며 "왜 떠나지 못하니"라며 울부짖는 김종수의 모습은 짧지만 강렬하다. 고 박종철의 유족들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당시의 상황을 담담하고 간결하게 연기하는 김종수는 관객들의 마음에 잊지 못할 하나의 이미지를 남겼다. 꾹꾹 눌러 담은 마음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억울한 상황에서도 크게 목소리를 높일 수 없었던 억압적인 그 시절의 상황에 단숨에 몰입될 수 있도록 그려냈다.
배우 김종수는 2023년 열일하며 전성기를 맞았다. 어떤 작품에서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줄지 기대되면서 앞으로 스크린에서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궁금하다. 극의 재미와 균형감을 잡아주는 캐릭터 자체로 존재하는 배우 김종수의 다른 얼굴은 어떨까. '어? 그 배우'가 아닌 배우 김종수라는 이름으로 관객들이 기억했으면 하는 바다.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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