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잠' 유재선 감독 인터뷰
오는 9월 6일 개봉
'잠' 영화감독 유재선.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잠' 영화감독 유재선.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신인 감독의 재기발랄함과 소위 '봉준호 키드' 다운 깊이 있는 통찰력으로 데뷔작부터 칸 영화제를 방문한 '잠'의 유재선 감독. 무척이나 떨린다는 그는 푸근한 미소로 침착하고 담담하게 소감을 이야기했다. 몽유병을 소재로 균열하는 신혼부부의 일상을 담은 '잠'은 결혼을 앞둔 당시 자신의 상황이 무의식적으로 반영되기도 했다고. 신선하고 독창적인 시선으로 완성한 '잠'만큼이나 차기작이 기다려지고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감독 유재선과 이야기를 나눴다.

유재선 감독은 23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영화 '잠' 인터뷰에 나섰다.
영화 '잠' 포스터.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잠' 포스터.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잠'은 행복한 신혼부부 현수(이선균)와 수진(정유미)을 악몽처럼 덮친 남편 현수의 수면 중 이상행동, 잠드는 순간 시작되는 끔찍한 공포의 비밀을 풀기 위해 애쓰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유재선 감독은 단편영화 '부탁'을 통해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에서 판타스틱 단편 작품상을 수상했다. 이어 '은밀하게 위대하게'와 '옥자'의 연출부, '버닝'의 영문 자막 번역 등 다양한 이력을 쌓고 그가 직접 각본을 쓰고 만든 첫 장편영화인 '잠'을 만들어 제76회 칸 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되기도 했다.
영화 '잠' 스틸컷.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잠' 스틸컷.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데뷔작인 '잠'으로 제76회 칸 국제영화제 비평가 주간에 초청된 유재선 감독은 봉준호 감독으로부터 "최근 10년간 본 영화 중 가장 유니크한 공포 영화"라는 찬사를 받은 바 있다. 이에 유재선 감독은 "직접 듣지는 못하고 기사를 통해서 그 말을 봤다. 영화인으로서 존경하는 감독님이 봉준호 감독님이다. 이 영화를 봐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영광이었다. 무엇보다도 배우와 스태프에게도 감사함을 많이 느꼈다"라고 언급했다.

칸 국제영화제에서 '잠'을 선보인 소감에 관해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일이 잘 풀렸던 케이스였던 것 같다. '모든 운을 이 작품에 쓴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처음에는 제작사로부터 전화를 받았었다. 그때가 새벽이었는데 기억하는 것으로는 아내가 잠들어있어서 혼자 듣고, 수진이 현수한테 속삭이듯이 말을 걸었다. 잠결에 대답하듯이 '칸 됐다'라고 이야기해서 아내와 함께 춤을 췄던 경험이 있다"라고 말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어 "모든 것이 초현실적이다. 한 시간도 안 되어서 굉장한 두려움이 대체했던 것 같다. 처음 영화를 선보이는 것이라서 데뷔작을 전 세계 영화인들이 바라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거품이라고 하면 어떻게 할지라는 걱정과 두려움도 있었다. 동일한 악몽을 여러 차례 꾸기도 했다. 다행히 관객분들의 반응이 걱정보다는 좋아서 너무나도 안도했던 기억이 난다. 세계의 반응이 좋아서 감사했지만, 한국 관객들을 염두에 두고 가장 중요한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영화 '잠' 스틸컷.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잠' 스틸컷.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학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영화 제작 동아리에서 활동할 정도로 영화를 만드는 것에 많은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고. 유재선 감독은 "영화과를 나오지 않아서 영화 제작은 현장에서 어깨너머로 배운 것이 전부다. 대학 시절에는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연출팀에서 일하고, 졸업 이후에는 봉준호 감독님의 '옥자'를 하게 됐다. 그 당시에는 망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만 했는데, '잠'을 제작하면서 '옥자'의 봉준호 감독님의 모습을 모사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봉준호 감독과 함께 일하며 어떤 부분을 배웠냐고 묻자 "스토리보드의 중요성을 배운 것 같다. 봉준호 감독님 같은 경우에도 본인이 스토리보드를 그리시고 촬영하려고 하셨다. 아무래도 영화를 배운 것이 봉준호 감독님이다 보니 시나리오를 완성하자마자 바로 한 것이 나의 버전의 스토리버전을 그리는 것이었다. 촬영 당시에도 스토리보드를 따르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라고 설명했다.

시나리오를 어떤 식으로 구상하고 준비했냐고 묻자 "대한민국에서 연출팀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감독으로 데뷔하고 싶은 꿈이 있는 것 같다. 프로젝트 사이에 자신의 시나리오를 쓰고, 대부분 그런 식으로 데뷔한다. 그래서 봉준호 감독님 차기작 연출팀과 다른 프로젝트 사이에 감독으로서 연출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써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쓴 것이 '잠'이었다. 제작사와 투자사가 잘 봐주셔서 제작하게 됐다"라고 이야기했다.

유재선 감독은 시나리오를 썼을 당시의 여자친구 지금의 아내와의 상황에 초점을 두고 만들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시나리오를 썼을 당시에 현재 아내가 된 여자친구와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알게 모르게 그 이야기가 많이 녹아든 것 같다. 시나리오를 마무리한 시점을 되돌아봤을 때, 이런 테마들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부에게 문제가 닥쳤을 때, 어떻게 문제를 극복해야 하는지가 큰 화두였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유재선 감독은 극 중에서 신혼부부 수진과 현수로 열연을 펼친 정유미와 이선균 배우에게 존경심을 드러냈다. 그는 정유미 배우를 언급하며 "캐릭터 연구를 많이 하시고, 매 신마다 연기 계획을 치밀하게 가진 것 같다. 디렉팅을 완벽하게 따랐다는 것은 본인의 해석과 나의 해석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시고 융통성 있게 연기하신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다.
영화 '잠' 스틸컷.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잠' 스틸컷.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배우 정유미는 인터뷰에서 "봉준호 감독이 연락을 주셨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에 유재선 감독은 "일종의 추천사인 것 같다. 아마도 '정유미 배우님이 하시면 좋을 것 같다'라고 이야기하신 것 같다. '이 감독 잘한다'라는 말씀을 드린 것이 아닐까. 다행히 시나리오를 좋게 봐주셔서 만나서 프로젝트가 성사된 것 같다"라며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유 감독은 시나리오를 썼을 당시에 봉준호 감독에게 보여드리며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고. 그는 "봉준호 감독님을 뵀을 때, 시나리오를 썼다고 말씀을 드렸다. 보통 연출팀과 감독의 사이가 그런 것 같다. 도제 시스템처럼 되어있어서 연출에 대한 많은 것을 배우고 언젠가 본인의 영화를 만드는 구조다. 시나리오를 읽으신 감독님이 '너는 이걸 해야겠다. 이건 당장 만들어도 손색이 없으니 이걸로 데뷔하면 좋겠다'라는 말을 듣고 확신을 가지게 됐다"라며 감사한 마음을 드러냈다.

정유미, 이선균 배우가 1순위 캐스팅이었다는 유재선 감독은 "제작사 대표님이 불가능한 캐스팅이라도 '뜬구름 잡는 1순위가 누구냐'라는 물음에 정유미 배우님과 이선균 배우님을 말했다"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이선균 배우에 관해선 "종종 본인이 해석한 '현수'에 대한 캐릭터가 시나리오에서 이탈하시긴 한다. 두 배우와 함께 작업할 수 있어서 좋았고, 영화를 살렸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덧붙였다.
영화 '잠' 스틸컷.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잠' 스틸컷.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현장에서 함께 호흡을 맞추며 느낀 정유미, 이선균 배우에 관해선 "이미 베테랑 배우들이지 않나. 나는 신인 감독이기 때문에 경험이 없다. 촬영을 돌입하기 전까지 콤플렉스였다. '이런 미숙함을 배우들도 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다. 현장에서 두 사람의 연기는 이미 좋았고, 협업하면 좋을 것 같다는 부차적인 바람이 있었다. 감독으로서 존중을 해주시고 아이디어도 적극적으로 많이 내주셨다"라고 답했다.

이어 "이선균 배우 같은 경우는 연구를 많이 해오시는 편이다. 시나리오 공부를 많이 하시고, 매일 아침 콘티북을 보면서 '현수라는 캐릭터는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라는 이야기를 많이 논했다. '현수'는 어느 순간 이선균 배우가 더 파악을 많이 하신 것 같다. 굉장히 감사했다. 정유미 배우 같은 경우는 본인도 수진의 캐릭터를 잘 파악하지만, 디렉션을 100퍼센트 의지하셨다는 말처럼 내가 해석한 '수진'에 대해서 많이 열려 있었다"라고 이야기했다.

'잠'은 몽유병이라는 소재를 토대로 신혼부부의 불안을 그려낸 작품. 소재로 몽유병을 택한 이유에 관해 묻자 "어디선가 들어본 호러 영화의 소재 같지만, 흥미로운 것 같다. 몽유병 환자의 극단적인 괴담을 한 번씩은 들어보지 않았나. 시간이 흐르면서 몽유병 환자의 일상은 어떤 모습인가를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사람 가족의 일상은 어떤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보통 이런 장르 영화 같은 경우, 주인공이 공포의 대상으로부터 도망가거나 멀어지는 것이 장르의 구조다. '잠'과 같은 경우는 본인을 위협하는 대상이 본인이 사랑하고 지켜주고 싶은 사람이라서 자의적으로 공포를 돌파해야 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라고 이야기했다.
영화 '잠' 스틸컷.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잠' 스틸컷.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시나리오를 집필하면서 아내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완성했다는 유재선 감독은 "시나리오는 3~4개월 정도 썼고, 촬영은 2개월에 걸쳐서 30회차 조금 넘게 찍었던 것 같다. 감독님 인터뷰를 많이 찾아보는데 본인 배우자한테 시나리오를 많이 보여준다고 하더라. 마찬가지로 개인적인 관계가 알게 모르게 녹여있다 보니 많은 아이디어를 줬던 것 같다. 칸에서 함께 봤었다. '재밌게 봤냐'고 물어봤을 때, 재밌다고 말을 해줬다. 함께 이야기한 것을 들어서 그런지 객관적으로는 보지 못하더라. 촬영 일화들을 중점으로 이야기하더라"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영화 속에서 부부의 단합은 주요한 키워드로 등장한다. '둘이 함께라면 극복 못할 문제는 없다'라는 현판이 지속해서 등장하고 수진은 현수에게 이 문장을 강조하기도 한다. 유재선 감독은 "어쩌면 강요처럼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쓸 당시에는 나의 상황을 많이 대입했다. 나의 아내가 주인공인 '수진'의 결혼관이 비슷했다. 아내와 나의 관계도 현수와 수진을 닮아있었다. 무직이었고 장래가 밝지는 않았다. 지금이 밝다는 것은 아니지만(웃음) 아내는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커리어가 쌓이고 있었다. 의문이 들 때마다 아내는 '그런 문제는 함께 극복하는 거야'라는 말을 많이 했다"라며 비하인드를 밝혔다.
영화 '잠' 스틸컷.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잠' 스틸컷.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잠'에서는 부부로서의 갈등이 아이를 가진 부모로 연결되는 구조를 띠고 있다. 혹시나 구조가 변하는 지점에 대해 정유미 배우와 논한 부분이 있느냐고 묻자 "그런 충돌은 논한 적이 없다. 정유미 배우의 연기는 90퍼센트 시나리오에 적힌 대로 해주셨던 것 같다. 부부간의 사랑과 모성애의 충돌이라는 상황의 해석이나 이론적으로 접하지는 않았다. 매 상황에 각자를 대입하고 접근을 했던 것 같다. 정유미 배우가 정말 대단한 부분은 내가 원하던 '수진'의 모습을 완벽하게 연기한 것 같다. 종종 내가 생각했던 연기를 이탈해서 놀라게 하는 상황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정말 수진이라면 이랬겠구나'라면서 감탄하며 무릎을 딱 친 경험이 있다"라고 답했다.

기자간담회를 통해 '잠'의 결말 부분의 해석은 관객들에게 맡긴다는 말처럼 유재선 감독은 관객들에게 해석의 여지를 주고 싶다고 언급했다. 그는 "결말뿐만 아니라 아웃라인 계획을 세웠을 당시에도 생각했던 부분이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님께서 '기승전결까지 아웃라인을 꼼꼼하게 채워도 중간에서 이탈한다'는 말이 공감되더라. 3장이 어떤 내용일지에 대한 윤곽이 드러나고 확신이 든 것 같다. 결말 같은 경우는 해석에 확신이 있지만, 해석의 여지는 관객에게 있고 그들의 소유인 것 같다. 각자의 해석이 전부 다 타당하다는 입장이다. 그들의 해석에 문을 닫고 싶지는 않다"라고 강조했다.
'잠' 영화감독 유재선.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잠' 영화감독 유재선.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데뷔작부터 칸 영화제에 초청된 신인 감독 유재선. 차기작에 대해 구상한 부분이 있느냐고 묻자 "몇 가지 아이디어는 있다. 영화 지인들은 '지금 해야 한다'라고 말을 하더라. 아무래도 처음이다 보니 다른 것을 생각할 정신이 없는 것 같다. 개봉 일정을 충실히 수행한 다음에 다음 아이디어를 생각해보지 않을까. 생각한다. 미스터리 범죄물과 다른 하나는 관객으로서 좋아하는 장르가 로코에도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한다. 제작사에서는 첫 번째 것을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차기작에 대한 부담보다는 잠재성과 가능성이 더 중요한 것 같다. 그 전제는 차기작을 만들 수 있다는 것 아닌가. 만들수만 있다면 그것 자체로도 복일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영화 '잠'은 오는 9월 6일 개봉한다.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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