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만세'와 관련된 스포일러가 포함돼있습니다.
영화 '지옥만세'(감독 임오정)는 한 마디로 재기발랄하다.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지옥에서 탈출하려는 시도보다는 새로운 길 위를 뚜벅뚜벅 걸어 나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지옥만세'는 왕따와 학교 폭력에 시달려온 나미(오우리)와 선우(방효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반 친구들이 모두 수학여행을 떠난 날, 자살을 시도하려던 두 사람. 하지만 죽음 앞에서 억울한 마음이 들면서 계획을 수정하기로 한다. 바로 학교 폭력의 주동자 박채린(정이주)를 찾아가 복수를 하기로 한 것. 무작정 박채린의 인스타그램에 남은 흔적을 쫓으며 서울로 가는 버스에 오른 나미와 선우는 그들만의 수학여행을 다녀온다. "시멘트 굳기 전에 낙서라도 찌그려봐야 하는 거 아님?"이라며 패기롭게 복수를 선언한 두 사람은 생각지도 못한 난관에 봉착한다. 자신들의 평범한 일상에 흠집을 낸 박채린임이 분명한데 어딘가 모르게 달라진 모습이기 때문이다. 상가 건물에 위치한 작은 교회(효천선교회) 안에서 살아가는 박채린은 이전까지 남들을 짓밟으면서 흉측한 얼굴을 보인 것과는 달리 선한 얼굴로 회개했다고 말한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2007)에서 신애(전도연)의 아들 준을 죽인 범인이 하나님에게 구원받았다고 할 때처럼, 선우는 그 말을 듣고 속에서 끓어오르던 분노를 토해내듯 구역질을 참지 못한다. 이에 따라 박채린의 얼굴에 그으려던 나미의 행동은 저지당한다.
학교폭력 가해자의 변화된 모습에 의해 어긋난 계획안에서 나미와 선우는 점차 분열한다. 믿음을 강요하는 교회라는 작은 사회에 동화되면서 두 사람의 믿음은 지옥의 불씨를 일으키게 되는 것. 가증스럽지만 선한 얼굴로 용서를 구하는 박채린의 태도에 나미는 긴가민가하지만, 선우는 믿지 못한다. '지옥만세'에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변화한 가해자로 인해 혼란스러운 피해자다.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가해자가 변화되었다고 해서 피해자의 망가진 삶도 복권되었는가. 박채린은 죄에 대해 고백을 하는 간증 시간에 나미로부터 용서받기를 원한다. 이때, 나미는 "나는 하나도 안 변했어요. 박채린이랑 어울려서 다른 애들 괴롭힐 때랑 하나도 안 변했어요"라며 오히려 선우에게 용서를 빈다. 나미와 선우 사이에도 눈에 보이지 않던 경계가 그어져 있었다. 나미는 선우가 괴롭힘을 당하는 순간 방관했고, 선우 역시 나미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치킨집에 악플 테러했던 상황이었다.
'지옥만세'는 보이지 않는 믿음으로부터 구원받고자 하는 것의 양면성을 전면에 내세우며 가시화한다. 효천선교회 안의 사람들은 회개와 용서를 상 벌점 제도로 수치를 매긴다. 그들이 회개에 적극적인 까닭은 바시아누 낙원이라는 실체 없는 구원을 바라기 때문이다. 박채린 역시 사업의 실패로 집이 붕괴하자,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고자 하는 믿음으로 바시아누 낙원에 가길 희망한다. 작지만 견고한 사회를 통솔하는 선생님 한명호(박성훈)은 높게 든 박스에 반쯤 가린 얼굴로 첫 등장한다. 순박하고 사람 좋은 미소 뒤에는 아이들에게 냉소적인 태도로 "마귀가 들렸구나"라며 다그치는 민낯이 존재한다. 전작 '더 글로리'와 '남남'과는 다른 줄무늬 셔츠에 단정하게 정돈된 머리로 순진한 모습처럼 비치지만, 그렇기에 더 소름이 끼치는 연기를 보여준다. 벼랑 끝에 선 인물들이 모여있는 '지옥만세'는 타인을 통한 구원이 아닌 오히려 지옥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새로운 길을 가야 한다고 외친다. 영화의 초반부, 선우는 빛이 하나도 들지 않는 골목길을 터덜거리며 걸어간다. 선우가 도달한 곳에는 다름아닌 자신의 생일을 축하해주려고 모인 친구들 아니 학교폭력의 가해자들이 있다. 선우를 조롱하듯,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얼굴에 케이크를 던지는 이들 앞에서 선우는 무력하게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연한 계기로 박채린이 있는 효천선교회에서 지내게 되면서 선우는 대응하는 방법을 기르게 된다. 나미와 선우의 계획이 박채린에게 복수하고 자살하려고 했던 것이라면, 살아가려고 노력하게 된 것이다. 영화는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도 안 도와줘"라는 선우의 대사처럼 타인을 통한 구원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꼬집는다. 선우와 나미 역시 지옥에서 구원되는 방법으로 자살을 선택하려고 했던 것처럼, 박채린도 바시아누 낙원을 가면 새 인생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지옥만세'는 낙원의 실체를 까발리며 선하게 보이던 사람들의 민낯을 드러낸다. 우연한 계기로 효천선교회에 지내는 아이 혜린의 아버지가 한명호에게 상 벌점 제도에 대해 따져 물으면서 목사가 감옥에 갔다는 것을 알게 됐던 것.
"재건하겠다"는 명호의 광기 어린 표정과 "내 돈 돌려내"라며 울부짖는 혜린의 아버지는 효천선교회라는 집단의 견고함을 순식간에 무너뜨린다. 뒤에서 혜린의 아버지를 가격한 한명호를 목격한 박채린은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여권을 챙기며 존재하지 않는 낙원으로 같이 향하자고 소리친다. 하지만 '마귀'로 몰린 탓에 박채린과 도망치려던 나미와 선우도 비닐하우스에 갇히게 된다. 하지만 나미와 선우의 임기응변으로 세 사람은 탈출을 감행한다. '지옥만세'는 잘못이 명백한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도를 뒤집으며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임오정의 첫 장편 데뷔작인 '지옥만세'는 전작인 영화 '더도 말고 덜도 말고'(2013), '쉘터'(2015), '한낮의 피크닉'(2019) 등에서처럼 조명되지 않는 세상의 어두운 부분을 경쾌한 시선으로 다룬다. 무엇보다 '지옥만세'는 길을 떠나고 돌아오는 형식을 통해서 이야기를 진행한다. 초반부 서울에 간 박채린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탄 버스는 마치 두 사람만의 수학여행처럼 외롭지만, 후반부 돌아오는 길에서는 서로에게 의지하는 하나의 추억처럼 비친다. 특히, 다시 돌아오자 괴롭힘이 시작되는 지옥이 계속되지만 나미와 선우는 이전과는 다른 태도를 보인다. "너네 죽고 싶냐"라는 물음에 "아니 죽기 싫은데"라며 대응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선우는 자전거를 타고 길을 나서고 나미는 그런 그녀를 다시 부른다. 화면 안에 부드럽게 쏟아지는 빛으로 인해 선우의 모습은 뭉개지지만, 돌아온 순간 다시 또렷해진다. "웰컴 백 투헬이다. 시발"이라고 외치는 나미의 목소리에는 단단하게 응집된 무언가가 들어차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지옥 같은 현실을 이겨내는 재기발랄한 방법을 보여준 '지옥만세'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를 조합하여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독립영화 '지옥만세'는 대작들 사이에서도 반짝이는 생각으로 무장한 작품임이 틀림없다. 또한 배우 오우리, 방효린, 정이주와 '더 글로리'의 전재준과는 다른 모습 박성훈의 톡톡 튀는 매력을 확인할 수 있다. 제11회 무주산골영화제 아빈 크리에이티브상, 48회 서울독립영화제 넥스트링크상, 27회 부산국제영화제 CGK촬영상을 받은 작품이다.
영화 '지옥만세' 8월 16일 개봉. 러닝타임 109분. 12세 관람가.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영화 '지옥만세'(감독 임오정)는 한 마디로 재기발랄하다.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지옥에서 탈출하려는 시도보다는 새로운 길 위를 뚜벅뚜벅 걸어 나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지옥만세'는 왕따와 학교 폭력에 시달려온 나미(오우리)와 선우(방효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반 친구들이 모두 수학여행을 떠난 날, 자살을 시도하려던 두 사람. 하지만 죽음 앞에서 억울한 마음이 들면서 계획을 수정하기로 한다. 바로 학교 폭력의 주동자 박채린(정이주)를 찾아가 복수를 하기로 한 것. 무작정 박채린의 인스타그램에 남은 흔적을 쫓으며 서울로 가는 버스에 오른 나미와 선우는 그들만의 수학여행을 다녀온다. "시멘트 굳기 전에 낙서라도 찌그려봐야 하는 거 아님?"이라며 패기롭게 복수를 선언한 두 사람은 생각지도 못한 난관에 봉착한다. 자신들의 평범한 일상에 흠집을 낸 박채린임이 분명한데 어딘가 모르게 달라진 모습이기 때문이다. 상가 건물에 위치한 작은 교회(효천선교회) 안에서 살아가는 박채린은 이전까지 남들을 짓밟으면서 흉측한 얼굴을 보인 것과는 달리 선한 얼굴로 회개했다고 말한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2007)에서 신애(전도연)의 아들 준을 죽인 범인이 하나님에게 구원받았다고 할 때처럼, 선우는 그 말을 듣고 속에서 끓어오르던 분노를 토해내듯 구역질을 참지 못한다. 이에 따라 박채린의 얼굴에 그으려던 나미의 행동은 저지당한다.
학교폭력 가해자의 변화된 모습에 의해 어긋난 계획안에서 나미와 선우는 점차 분열한다. 믿음을 강요하는 교회라는 작은 사회에 동화되면서 두 사람의 믿음은 지옥의 불씨를 일으키게 되는 것. 가증스럽지만 선한 얼굴로 용서를 구하는 박채린의 태도에 나미는 긴가민가하지만, 선우는 믿지 못한다. '지옥만세'에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변화한 가해자로 인해 혼란스러운 피해자다.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가해자가 변화되었다고 해서 피해자의 망가진 삶도 복권되었는가. 박채린은 죄에 대해 고백을 하는 간증 시간에 나미로부터 용서받기를 원한다. 이때, 나미는 "나는 하나도 안 변했어요. 박채린이랑 어울려서 다른 애들 괴롭힐 때랑 하나도 안 변했어요"라며 오히려 선우에게 용서를 빈다. 나미와 선우 사이에도 눈에 보이지 않던 경계가 그어져 있었다. 나미는 선우가 괴롭힘을 당하는 순간 방관했고, 선우 역시 나미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치킨집에 악플 테러했던 상황이었다.
'지옥만세'는 보이지 않는 믿음으로부터 구원받고자 하는 것의 양면성을 전면에 내세우며 가시화한다. 효천선교회 안의 사람들은 회개와 용서를 상 벌점 제도로 수치를 매긴다. 그들이 회개에 적극적인 까닭은 바시아누 낙원이라는 실체 없는 구원을 바라기 때문이다. 박채린 역시 사업의 실패로 집이 붕괴하자,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고자 하는 믿음으로 바시아누 낙원에 가길 희망한다. 작지만 견고한 사회를 통솔하는 선생님 한명호(박성훈)은 높게 든 박스에 반쯤 가린 얼굴로 첫 등장한다. 순박하고 사람 좋은 미소 뒤에는 아이들에게 냉소적인 태도로 "마귀가 들렸구나"라며 다그치는 민낯이 존재한다. 전작 '더 글로리'와 '남남'과는 다른 줄무늬 셔츠에 단정하게 정돈된 머리로 순진한 모습처럼 비치지만, 그렇기에 더 소름이 끼치는 연기를 보여준다. 벼랑 끝에 선 인물들이 모여있는 '지옥만세'는 타인을 통한 구원이 아닌 오히려 지옥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새로운 길을 가야 한다고 외친다. 영화의 초반부, 선우는 빛이 하나도 들지 않는 골목길을 터덜거리며 걸어간다. 선우가 도달한 곳에는 다름아닌 자신의 생일을 축하해주려고 모인 친구들 아니 학교폭력의 가해자들이 있다. 선우를 조롱하듯,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얼굴에 케이크를 던지는 이들 앞에서 선우는 무력하게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연한 계기로 박채린이 있는 효천선교회에서 지내게 되면서 선우는 대응하는 방법을 기르게 된다. 나미와 선우의 계획이 박채린에게 복수하고 자살하려고 했던 것이라면, 살아가려고 노력하게 된 것이다. 영화는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도 안 도와줘"라는 선우의 대사처럼 타인을 통한 구원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꼬집는다. 선우와 나미 역시 지옥에서 구원되는 방법으로 자살을 선택하려고 했던 것처럼, 박채린도 바시아누 낙원을 가면 새 인생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지옥만세'는 낙원의 실체를 까발리며 선하게 보이던 사람들의 민낯을 드러낸다. 우연한 계기로 효천선교회에 지내는 아이 혜린의 아버지가 한명호에게 상 벌점 제도에 대해 따져 물으면서 목사가 감옥에 갔다는 것을 알게 됐던 것.
"재건하겠다"는 명호의 광기 어린 표정과 "내 돈 돌려내"라며 울부짖는 혜린의 아버지는 효천선교회라는 집단의 견고함을 순식간에 무너뜨린다. 뒤에서 혜린의 아버지를 가격한 한명호를 목격한 박채린은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여권을 챙기며 존재하지 않는 낙원으로 같이 향하자고 소리친다. 하지만 '마귀'로 몰린 탓에 박채린과 도망치려던 나미와 선우도 비닐하우스에 갇히게 된다. 하지만 나미와 선우의 임기응변으로 세 사람은 탈출을 감행한다. '지옥만세'는 잘못이 명백한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도를 뒤집으며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임오정의 첫 장편 데뷔작인 '지옥만세'는 전작인 영화 '더도 말고 덜도 말고'(2013), '쉘터'(2015), '한낮의 피크닉'(2019) 등에서처럼 조명되지 않는 세상의 어두운 부분을 경쾌한 시선으로 다룬다. 무엇보다 '지옥만세'는 길을 떠나고 돌아오는 형식을 통해서 이야기를 진행한다. 초반부 서울에 간 박채린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탄 버스는 마치 두 사람만의 수학여행처럼 외롭지만, 후반부 돌아오는 길에서는 서로에게 의지하는 하나의 추억처럼 비친다. 특히, 다시 돌아오자 괴롭힘이 시작되는 지옥이 계속되지만 나미와 선우는 이전과는 다른 태도를 보인다. "너네 죽고 싶냐"라는 물음에 "아니 죽기 싫은데"라며 대응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선우는 자전거를 타고 길을 나서고 나미는 그런 그녀를 다시 부른다. 화면 안에 부드럽게 쏟아지는 빛으로 인해 선우의 모습은 뭉개지지만, 돌아온 순간 다시 또렷해진다. "웰컴 백 투헬이다. 시발"이라고 외치는 나미의 목소리에는 단단하게 응집된 무언가가 들어차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지옥 같은 현실을 이겨내는 재기발랄한 방법을 보여준 '지옥만세'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를 조합하여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독립영화 '지옥만세'는 대작들 사이에서도 반짝이는 생각으로 무장한 작품임이 틀림없다. 또한 배우 오우리, 방효린, 정이주와 '더 글로리'의 전재준과는 다른 모습 박성훈의 톡톡 튀는 매력을 확인할 수 있다. 제11회 무주산골영화제 아빈 크리에이티브상, 48회 서울독립영화제 넥스트링크상, 27회 부산국제영화제 CGK촬영상을 받은 작품이다.
영화 '지옥만세' 8월 16일 개봉. 러닝타임 109분. 12세 관람가.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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