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예의 시네마톡≫
최지예 텐아시아 기자가 영화 이야기를 전합니다. 현장 속 생생한 취재를 통해 영화의 면면을 분석하고, 날카로운 시각이 담긴 글을 재미있게 씁니다.
한국 영화가 역대급 부진의 늪에 빠진 가운데,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는 역대급 성적을 내며 날개를 달았다.
한국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월 한국 영화산업 결산'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한국 영화 관객 점유율은 19.8%, 매출액 점유율은 19.5%를 기록했다. 이는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이 집계를 시작한 2004년 이후 2월 중 최저치 기록이다.
팬데믹 이전만 해도 설 연휴가 낀 2월은 한국 영화가 강세를 보여 왔지만, 올해는 19년 만에 최저치를 찍을 만큼 한국 영화의 상황이 좋지 않다. 2월 설 연휴를 겨냥해 영화 '교섭'(감독 임순례, 누적 관객수 172만)과 '유령'(감독 이해영, 66만) 등이 개봉됐지만, 두 작품 모두 흥행 참패를 맛봤다.
2월 한국 영화의 총 매출액은 134억으로, 같은달 마블 스튜디오의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감독 페이튼 리드, '앤트맨2') 단일 영화가 올린 매출액 145억원을 훨씬 밑돈다. '앤트맨2'가 이전 마블의 기세를 품은 작품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2월 한국 영화는 이미 명성이 무너져 혹평받고 있는 '앤트맨2' 하나의 매출에도 미치지 못한 것이다.
이 같은 한국 영화의 부진은 스포츠로 비유하면 대진운이 좋지 않은 게 아니라, 경기 내용 자체가 좋지 않아 생긴 결과이기에 영화계 자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영화가 이 같은 부진을 겪는 사이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는 역대 기록을 경신하며 극장가를 점령하고 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감독 이노우에 다케히코, '슬램덩크')는 2월 국내 극장가를 깊숙히 파고들었다.
'슬램덩크'는 이른바 슬친자(슬램덩크에 미친자)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졌을 만큼 대단한 기세를 보였다. 3040 남성들의 향수를 자극한 '슬램덩크'는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입소문을 탔고, 전 세대로 확대되며 열풍을 일으켰다. 관객들의 N차 관람은 역대 일본 애니메이션 흥행 1위였던 '너의 이름은.'(감독 신카이 마코토)을 제치고 1위 기록을 경신한데 이어 400만 관객 돌파까지 이뤄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흥행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귀멸의 칼날: 상현집결, 그리고 도공마을로'(감독 소토자키 하루오)의 약진에 이어 '스즈메의 문단속'(감독 신카이 마코토)가 또 한번 뜨거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8일 국내 개봉된 '스즈메의 문단속'은 2023년 개봉작 중 최단기간 100만 돌파를 기록하며 9일째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너의 이름은.'(2017), '날씨의 아이'(2019)에 이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 재난 3부작의 피날레다. 아름다운 영상미와 OST, 상실을 다독이는 치유의 메시지를 건네며 전 세대 관객들에 어필되고 있다. 특히, 동일본 대지진을 주요 소재로 다룬 이 작품은 팬데믹 등 여러 형태의 재해가 피부로 와닿는 현실 속 위로를 전해 작품성 면에서도 박수받고 있다.
'슬램덩크'에 이어 '스즈메의 문단속'까지 한국 극장가 일본 애니메이션 흥행의 공통된 이유와 관련 업계는 탄탄한 스토리와 작품성을 꼽는다.
'슬램덩크'의 경우 강백호가 아닌 송태섭을 주인공으로 틀었는데, 원작자인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감독을 맡아 원작의 명확한 세계관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확장한 것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게다가 '슬램덩크'는 진입장벽 없는 소재와 스토리 전개로 원작을 알지 못하는 MZ세대까지 흡수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스즈메의 문단속' 역시 국내 마니아층을 보유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야심작으로, 이미 일본에서 천만 관객을 불러모으며 작품성과 흥행력 모두 인정받은 작품. '스즈메의 문단속'은 '너의 이름은.'과 '날씨의 아이'의 세계관을 공유하면서도 이 작품만의 새로운 변주를 꾀했다. 여기에 재난에 대한 위로의 메시지를 감동적으로 그려내 평단의 호평을 받고 있다.
'슬램덩크'와 '스즈메의 문단속'은 10대부터 4-50대 이상까지 전 세대가 보기에 무리가 없고, 작품성을 비롯해 스토리 짜임과 얼개가 촘촘해 관람 이후 만족도가 높다. 더불어 최근 극장가의 흐름을 주도하는 MZ세대는 정치적인 이유로 일본 작품에 대한 거부감을 보였던 과거 흐름에서 벗어나, 과거나 정치 상황과 관계 없이 좋아하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경향 역시 주요하게 작용했단 분석이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최근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스즈메의 문단속'에서 '문'이라는 모티브를 차용한 것과 관련 "한국 드라마인 '도깨비'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 영화가 전에 없는 침체를 겪고 있는 상황 속 이 같은 말이 아이러니하면서 뼈아프게 다가온다.
일본과 역사 관계에서 큰 아픔이 있지만, 어느덧 문화적인 측면은 물론이고 경제적으로도 일본보다 더 큰 발전을 이뤄낸 우리나라다. 우리 드라마 '도깨비'에서 힌트를 얻어 탄생한 '스즈메의 문단속'에 밀려 제 실력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 영화의 현실이 씁쓸하다.
최지예 텐아시아 기자 wisdomart@tenasia.co.kr
최지예 텐아시아 기자가 영화 이야기를 전합니다. 현장 속 생생한 취재를 통해 영화의 면면을 분석하고, 날카로운 시각이 담긴 글을 재미있게 씁니다.
한국 영화가 역대급 부진의 늪에 빠진 가운데,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는 역대급 성적을 내며 날개를 달았다.
한국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월 한국 영화산업 결산'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한국 영화 관객 점유율은 19.8%, 매출액 점유율은 19.5%를 기록했다. 이는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이 집계를 시작한 2004년 이후 2월 중 최저치 기록이다.
팬데믹 이전만 해도 설 연휴가 낀 2월은 한국 영화가 강세를 보여 왔지만, 올해는 19년 만에 최저치를 찍을 만큼 한국 영화의 상황이 좋지 않다. 2월 설 연휴를 겨냥해 영화 '교섭'(감독 임순례, 누적 관객수 172만)과 '유령'(감독 이해영, 66만) 등이 개봉됐지만, 두 작품 모두 흥행 참패를 맛봤다.
2월 한국 영화의 총 매출액은 134억으로, 같은달 마블 스튜디오의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감독 페이튼 리드, '앤트맨2') 단일 영화가 올린 매출액 145억원을 훨씬 밑돈다. '앤트맨2'가 이전 마블의 기세를 품은 작품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2월 한국 영화는 이미 명성이 무너져 혹평받고 있는 '앤트맨2' 하나의 매출에도 미치지 못한 것이다.
이 같은 한국 영화의 부진은 스포츠로 비유하면 대진운이 좋지 않은 게 아니라, 경기 내용 자체가 좋지 않아 생긴 결과이기에 영화계 자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영화가 이 같은 부진을 겪는 사이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는 역대 기록을 경신하며 극장가를 점령하고 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감독 이노우에 다케히코, '슬램덩크')는 2월 국내 극장가를 깊숙히 파고들었다.
'슬램덩크'는 이른바 슬친자(슬램덩크에 미친자)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졌을 만큼 대단한 기세를 보였다. 3040 남성들의 향수를 자극한 '슬램덩크'는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입소문을 탔고, 전 세대로 확대되며 열풍을 일으켰다. 관객들의 N차 관람은 역대 일본 애니메이션 흥행 1위였던 '너의 이름은.'(감독 신카이 마코토)을 제치고 1위 기록을 경신한데 이어 400만 관객 돌파까지 이뤄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흥행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귀멸의 칼날: 상현집결, 그리고 도공마을로'(감독 소토자키 하루오)의 약진에 이어 '스즈메의 문단속'(감독 신카이 마코토)가 또 한번 뜨거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8일 국내 개봉된 '스즈메의 문단속'은 2023년 개봉작 중 최단기간 100만 돌파를 기록하며 9일째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너의 이름은.'(2017), '날씨의 아이'(2019)에 이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 재난 3부작의 피날레다. 아름다운 영상미와 OST, 상실을 다독이는 치유의 메시지를 건네며 전 세대 관객들에 어필되고 있다. 특히, 동일본 대지진을 주요 소재로 다룬 이 작품은 팬데믹 등 여러 형태의 재해가 피부로 와닿는 현실 속 위로를 전해 작품성 면에서도 박수받고 있다.
'슬램덩크'에 이어 '스즈메의 문단속'까지 한국 극장가 일본 애니메이션 흥행의 공통된 이유와 관련 업계는 탄탄한 스토리와 작품성을 꼽는다.
'슬램덩크'의 경우 강백호가 아닌 송태섭을 주인공으로 틀었는데, 원작자인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감독을 맡아 원작의 명확한 세계관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확장한 것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게다가 '슬램덩크'는 진입장벽 없는 소재와 스토리 전개로 원작을 알지 못하는 MZ세대까지 흡수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스즈메의 문단속' 역시 국내 마니아층을 보유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야심작으로, 이미 일본에서 천만 관객을 불러모으며 작품성과 흥행력 모두 인정받은 작품. '스즈메의 문단속'은 '너의 이름은.'과 '날씨의 아이'의 세계관을 공유하면서도 이 작품만의 새로운 변주를 꾀했다. 여기에 재난에 대한 위로의 메시지를 감동적으로 그려내 평단의 호평을 받고 있다.
'슬램덩크'와 '스즈메의 문단속'은 10대부터 4-50대 이상까지 전 세대가 보기에 무리가 없고, 작품성을 비롯해 스토리 짜임과 얼개가 촘촘해 관람 이후 만족도가 높다. 더불어 최근 극장가의 흐름을 주도하는 MZ세대는 정치적인 이유로 일본 작품에 대한 거부감을 보였던 과거 흐름에서 벗어나, 과거나 정치 상황과 관계 없이 좋아하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경향 역시 주요하게 작용했단 분석이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최근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스즈메의 문단속'에서 '문'이라는 모티브를 차용한 것과 관련 "한국 드라마인 '도깨비'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 영화가 전에 없는 침체를 겪고 있는 상황 속 이 같은 말이 아이러니하면서 뼈아프게 다가온다.
일본과 역사 관계에서 큰 아픔이 있지만, 어느덧 문화적인 측면은 물론이고 경제적으로도 일본보다 더 큰 발전을 이뤄낸 우리나라다. 우리 드라마 '도깨비'에서 힌트를 얻어 탄생한 '스즈메의 문단속'에 밀려 제 실력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 영화의 현실이 씁쓸하다.
최지예 텐아시아 기자 wisdomart@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