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크로스 김혁건 어머니가 아들의 교통사고에 대해 언급했다.
지난 26일 방송된 MBN 시사교양 '특종세상'에서는 더 크로스 김혁건의 일상이 그려졌다.
김혁건은 2003년 더 크로스 1집으로 가요계에 데뷔했다. 이어 2012년 교통사고를 당한 뒤 전신마비 판정을 받았다.
이날 방송에서 '특종세상' 제작진은 김혁건의 스튜디오를 찾았다. 해당 공간은 김혁건이 생활하고 곡을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김혁건은 "저는 호돌이 아빠"라고 소개했다. 호돌이는 김혁건의 반려묘다. 김혁건은 활동 지원사의 도움을 받아 생활하고 있었다.
김혁건은 "여기는 제가 생활하면서 작업도 하는 공간이다. 여긴 제가 편리하게 살 수 있도록 AI 시스템도 많이 되어 있다"고 밝혔다. 김혁건은 해당 스튜디오를 떠나면 답답하면 느낄 정도라고. 김혁건은 경추 손상으로 어깨 아래 모든 근육이 마비된 상태다. 사고 후 몸에 아무런 감각도 없고, 뜻대로 움직일 수 없다고 했다.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은 어깨 근육을 이용해 팔을 움직이는 것이라고. 그래서 24시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김혁건이다.
김혁건은 2년 전부터 한 대학에서 사회복지학 강의를 하고 있다. 주로 온라인 수업을 통해 학생들과 만나고 있다. 김혁건은 일반인의 3분의 1 수준의 폐활량을 가지고 있다. 이에 길게 말하기가 힘든 상태다. 김혁건은 "호흡량이 달리니까 말할 때 계속 갈하진다. 다시 말하고 다시 녹음한다. 갈라진 부분들은 나중에 잘라낸다. 2시간, 4시간짜리가 20시간씩 걸릴 때도 있다"고 설명했다.
교통사고는 김혁건의 삶의 모든 걸 바꿔놨다. 김혁건은 "아무것도 안 움직여지니까 무섭더라. 이제 이렇게 식물인간이 된 건가 싶더라. 눈만 흐리멍덩하게 뜬 채로 살아가야 하나. '왜 깨어났지?'라며 하염없이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고 털어놨다. 김혁건은 1년 넘게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했었다. 그는 "썩어버린 이 몸이 시체인데 '왜 내가 살이 있지?' 싶더라. 두 눈으로 볼 수 없는 몸이었다. 어머니가 매일 우셨다"고 했다.
김혁건은 "사지 마비라는 말이 싫어서 계속 거부했다. 받아들이지 못하고 지웠다. 일일이 신문사에서 전화해서 다 지웠다.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봤다. 줄기세포도 여섯 번 해봤다. 모든 걸 다 해본 다음에 받아들이게 됐다"고 털어놨다. 이어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고, 살고 싶어도 살지도 못하는 그런 상태다. 친구 중 하나가 라디오 같은 MP3 사 와서 머리맡에 놔줬다. 아버지가 '넌 할 수 있어'라는 노래를 계속 틀어놨다. 처음에는 제 노래를 들으면서 다시 부르지 못할 노래들 정말 듣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노래를 한 번 불러볼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덧붙였다.
또한 김혁건은 "제가 다친 지 10년 됐더라. 매일 하루하루 견뎌내고 이겨나가고 버텨내는 거다. 지금 몸 상태는 계속 안 좋아지고 있다. 더 좋은 노래를 하는 건 과학적으로 물리적으로 더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끝까지 노래하는 거다. 로커니까"라고 밝혔다. 이어 "노래 안 하면 제가 뭐 하는 사람인지 모르겠다. 저 자신이 뭐 하는 사람인지 모를 것 같다. 끝까지 노래해야지"라고 했다. 김혁건의 어머니는 시간이 될 때마다 수시로 아들을 돌본다고. 김혁건의 아버지는 "(다들 죽었다고) 했는데 살아가고 있으니까 우선 부모는 그냥 옆에 살아 있어서 좋은 거다. 저렇게 노래까지 하고 싶은 걸 하니까 자랑스러운 정도가 아니고 내가 정말 살아가는 힘이다"라며 웃었다. 하지만 김혁건의 아버지도 대장암 4기라고. 김혁건은 "아버지는 대장암 4기 말이다. 심각하다. 암이 너무나도 커서 장을 아예 다 막아버렸다. 재발하지 않으셔야 하는데 의사의 지시를 전혀 따르지 않는다"고 걱정했다.
김혁건의 어머니는 "여자 친구랑 결혼 시켰으면 아마 이런 일이 없지 않았을까. 사귀고 있는 여자가 있었다. 저희는 어쨌든 간에 정석으로만 자식들을 키우려고 하는 마인드가 있었다. 아직 결혼식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안 해서 결혼식을 안 시켰다"고 밝혔다. 김혁건의 아버지는 "본인들은 그해 10월에 하기로 했었다"고 힘을 보탰다. 김혁건의 어머니는 "10월까지 기다리고 있었으면 했을 것"이라며 "부모들이 미리 시켰으면 하는 자책감이 들더라"고 했다. 김혁건 아버지도 "조금 후회스럽다. 일찍 결혼시켰으면 결혼 일 없었을 텐데"라고 말했다.
김혁건은 제대 후 컴백 앨범을 준비하던 중 여자 친구를 만나러 가던 길에 비극을 맞았다. 김혁건 아버지는 "집으로 간다고 하길래 오늘 오토바이 세워놓고 내 차 타고 가자고 했다. 안 간다고 하길래 이유를 몰랐는데 김밥을 사서 따뜻하게 여자친구를 먹이려고 좀 일찍 갔던 것 같다"며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지금 마음은 강제로 '타!'라고 끌고 갔어야 했는데 그게 후회가 돼 죽겠다"고 했다.
김혁건은 사고 후 더 크로스 멤버 이시하와 더 다단해졌다. 이시하는 "분명히 이 친구는 노래만 있으면 죽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노래하라고 했다. 정말 노래를 못하는 노래라도 하면 얘는 삶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고 밝혔다. 김혁건은 "시하한테 나 노래 한 글자도 부르기 어렵다고 그랬더니 '한 글자씩 녹음해'라고 하더라. 제가 진실로 받아들이고 연습했다"며 웃었다.
강민경 텐아시아 기자 kkk39@tenasia.co.kr
지난 26일 방송된 MBN 시사교양 '특종세상'에서는 더 크로스 김혁건의 일상이 그려졌다.
김혁건은 2003년 더 크로스 1집으로 가요계에 데뷔했다. 이어 2012년 교통사고를 당한 뒤 전신마비 판정을 받았다.
이날 방송에서 '특종세상' 제작진은 김혁건의 스튜디오를 찾았다. 해당 공간은 김혁건이 생활하고 곡을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김혁건은 "저는 호돌이 아빠"라고 소개했다. 호돌이는 김혁건의 반려묘다. 김혁건은 활동 지원사의 도움을 받아 생활하고 있었다.
김혁건은 "여기는 제가 생활하면서 작업도 하는 공간이다. 여긴 제가 편리하게 살 수 있도록 AI 시스템도 많이 되어 있다"고 밝혔다. 김혁건은 해당 스튜디오를 떠나면 답답하면 느낄 정도라고. 김혁건은 경추 손상으로 어깨 아래 모든 근육이 마비된 상태다. 사고 후 몸에 아무런 감각도 없고, 뜻대로 움직일 수 없다고 했다.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은 어깨 근육을 이용해 팔을 움직이는 것이라고. 그래서 24시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김혁건이다.
김혁건은 2년 전부터 한 대학에서 사회복지학 강의를 하고 있다. 주로 온라인 수업을 통해 학생들과 만나고 있다. 김혁건은 일반인의 3분의 1 수준의 폐활량을 가지고 있다. 이에 길게 말하기가 힘든 상태다. 김혁건은 "호흡량이 달리니까 말할 때 계속 갈하진다. 다시 말하고 다시 녹음한다. 갈라진 부분들은 나중에 잘라낸다. 2시간, 4시간짜리가 20시간씩 걸릴 때도 있다"고 설명했다.
교통사고는 김혁건의 삶의 모든 걸 바꿔놨다. 김혁건은 "아무것도 안 움직여지니까 무섭더라. 이제 이렇게 식물인간이 된 건가 싶더라. 눈만 흐리멍덩하게 뜬 채로 살아가야 하나. '왜 깨어났지?'라며 하염없이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고 털어놨다. 김혁건은 1년 넘게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했었다. 그는 "썩어버린 이 몸이 시체인데 '왜 내가 살이 있지?' 싶더라. 두 눈으로 볼 수 없는 몸이었다. 어머니가 매일 우셨다"고 했다.
김혁건은 "사지 마비라는 말이 싫어서 계속 거부했다. 받아들이지 못하고 지웠다. 일일이 신문사에서 전화해서 다 지웠다.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봤다. 줄기세포도 여섯 번 해봤다. 모든 걸 다 해본 다음에 받아들이게 됐다"고 털어놨다. 이어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고, 살고 싶어도 살지도 못하는 그런 상태다. 친구 중 하나가 라디오 같은 MP3 사 와서 머리맡에 놔줬다. 아버지가 '넌 할 수 있어'라는 노래를 계속 틀어놨다. 처음에는 제 노래를 들으면서 다시 부르지 못할 노래들 정말 듣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노래를 한 번 불러볼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덧붙였다.
또한 김혁건은 "제가 다친 지 10년 됐더라. 매일 하루하루 견뎌내고 이겨나가고 버텨내는 거다. 지금 몸 상태는 계속 안 좋아지고 있다. 더 좋은 노래를 하는 건 과학적으로 물리적으로 더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끝까지 노래하는 거다. 로커니까"라고 밝혔다. 이어 "노래 안 하면 제가 뭐 하는 사람인지 모르겠다. 저 자신이 뭐 하는 사람인지 모를 것 같다. 끝까지 노래해야지"라고 했다. 김혁건의 어머니는 시간이 될 때마다 수시로 아들을 돌본다고. 김혁건의 아버지는 "(다들 죽었다고) 했는데 살아가고 있으니까 우선 부모는 그냥 옆에 살아 있어서 좋은 거다. 저렇게 노래까지 하고 싶은 걸 하니까 자랑스러운 정도가 아니고 내가 정말 살아가는 힘이다"라며 웃었다. 하지만 김혁건의 아버지도 대장암 4기라고. 김혁건은 "아버지는 대장암 4기 말이다. 심각하다. 암이 너무나도 커서 장을 아예 다 막아버렸다. 재발하지 않으셔야 하는데 의사의 지시를 전혀 따르지 않는다"고 걱정했다.
김혁건의 어머니는 "여자 친구랑 결혼 시켰으면 아마 이런 일이 없지 않았을까. 사귀고 있는 여자가 있었다. 저희는 어쨌든 간에 정석으로만 자식들을 키우려고 하는 마인드가 있었다. 아직 결혼식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안 해서 결혼식을 안 시켰다"고 밝혔다. 김혁건의 아버지는 "본인들은 그해 10월에 하기로 했었다"고 힘을 보탰다. 김혁건의 어머니는 "10월까지 기다리고 있었으면 했을 것"이라며 "부모들이 미리 시켰으면 하는 자책감이 들더라"고 했다. 김혁건 아버지도 "조금 후회스럽다. 일찍 결혼시켰으면 결혼 일 없었을 텐데"라고 말했다.
김혁건은 제대 후 컴백 앨범을 준비하던 중 여자 친구를 만나러 가던 길에 비극을 맞았다. 김혁건 아버지는 "집으로 간다고 하길래 오늘 오토바이 세워놓고 내 차 타고 가자고 했다. 안 간다고 하길래 이유를 몰랐는데 김밥을 사서 따뜻하게 여자친구를 먹이려고 좀 일찍 갔던 것 같다"며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지금 마음은 강제로 '타!'라고 끌고 갔어야 했는데 그게 후회가 돼 죽겠다"고 했다.
김혁건은 사고 후 더 크로스 멤버 이시하와 더 다단해졌다. 이시하는 "분명히 이 친구는 노래만 있으면 죽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노래하라고 했다. 정말 노래를 못하는 노래라도 하면 얘는 삶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고 밝혔다. 김혁건은 "시하한테 나 노래 한 글자도 부르기 어렵다고 그랬더니 '한 글자씩 녹음해'라고 하더라. 제가 진실로 받아들이고 연습했다"며 웃었다.
강민경 텐아시아 기자 kkk39@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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