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유나의 듣보드뽀》
글라인 작가 사단, 보조작고 공고 논란
최저임금도 안 되는 월급+무리한 과제까지
열정 페이는 엄연한 노동 착취 '비난 봇물'
'부부의 세계', '김사부' 포스터./사진제공=JTBC, SBS
'부부의 세계', '김사부' 포스터./사진제공=JTBC, SBS
《태유나의 듣보드뽀》


태유나 텐아시아 기자가 현장에서 듣고 본 사실을 바탕으로 드라마의 면면을 제대로 뽀개드립니다. 수많은 채널에서 쏟아지는 드라마 홍수 시대에 독자들의 눈과 귀가 되겠습니다.
자신의 꿈을 위한 일이니 '열정페이'를 받는 게 당연할 걸까. 경력에 도움이 되니까 참고 버텨야 하는 걸까. 인기 드라마 '부부의 세계', '낭만닥터 김사부' 등을 집필한 크리에이터 창작집단 '글라인'의 보조작가 모집 공고가 작가 지망생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최저 임금 기준에 못 미치는 월급에 20장이 넘는 단막극 대본을 내라는 무리한 과제까지 요구하는 '갑질 채용' 논란 때문이다.

최근 드라마 작가 지망생 커뮤니티에는 '글라인'의 보조작가 모집 공고가 게재됐다. 글라인 측은 "저희 글라인과 함께할 보조작가를 모집합니다. 선발된 분은 수습 기간 3개월 후 최종 채용됩니다"라는 설명과 함께 과제로 이솝 우화 '개미와 베짱이'를 모티브로 한 20장 내외의 단막극 제출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급여는 150~200만 원이라고 명시했다. 2022년 법정 최저 임금인 시급 9160원, 주 40시간 근무(유급 주휴 포함) 기준인 월급 191만 4440원에 못 미치는 금액이다.
'글라인' 보조작가 모집공고/ 작가 지망생 커뮤니티
'글라인' 보조작가 모집공고/ 작가 지망생 커뮤니티
이를 본 지망생들은 글라인 모집 공고에 불만을 표출했다. 무엇보다 150만 원이라는 터무니없는 월급에 많은 비난이 쏟아졌다. 최대 200만 원이라고는 명시했지만, 실상 200만 원까지 주지 않을 게 명백하다는 것.

여기에 지망생들의 창작 능력을 보기 위해 평가물을 제출하라고 요구할 수는 있으나, 1차 면접에서부터 기존에 써놓은 습작이 아닌 무리한 과제를 요구해야 했는지, 샘플비를 따로 주지도 않으면서 당당히 요구하는 태도에 '갑질'이라는 말도 나오는 상황.

무엇보다 글라인은 KBS2 '제빵왕 김탁구', SBS '낭만닥터 김사부' 등의 히트작을 낸 강은경 작가가 이끄는 작가 그룹. JTBC '부부의 세계' 주현 작가, JTBC '미스티' 제인 작가, JTBC '기상청 사람들' 선영 작가, 영화 '극한직업' 허다중 작가 등 국내 정상급 작가들이 소속돼 있는 회사로, 최근 카카오엔터테인먼트에 인수까지 될 만큼 작가 사단 규모로는 톱급이기에 이러한 갑질 채용이 더욱 씁쓸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또한 글라인은 강은경 작가가 후배를 양성하며 만든 작가 중심 제작사. 누구보다 보조작가의 고충을 알고 있는 회사의 횡포이기에 대중의 시선 역시 싸늘하다.
사진= '글라인' 홈페이지
사진= '글라인' 홈페이지
이러한 논란에 글라인 측은 "풀타임 고정형 근무가 아닌 파트타임 근무 형태의 작가 채용을 위한 공고로, 글라인은 최저 임금 기준을 준수하고 있다"고 해명한 상황. 그러나 해명에도 논란은 식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보조작가 직업상 '파트타임'이 불가능 하다는 것. 작가를 도와 아이디어 회의부터 레퍼런스 자료 수집, 피드백 등의 일을 진행해야 하므로 정해진 시간 내에서만 근무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 또한 공고에는 파트타임이라는 명시도 없었던 터. 논란을 급하게 수습하기 위한 핑계로밖에 들리지 않는 이유다.

보조작가들의 처지와 마찬가지로, 현재 방송 제작 현장 역시 주 52시간의 근로시간 제한을 준수하고 있지만, 여전히 근로계약서 작성 관행은 정착되지 않고, 촬영 외 시간 등을 계약서상 근로시간에서 제외하는 '꼼수'를 부리는 등 아직도 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관행'이 이어져 오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더는 '열정 페이'라는 말로 '노동 착취'가 포장되서는 안 된다. 관행이라고 해서 묵과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올바르지 않은 것에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변하는 것은 없다. 대중의 분노는 글라인 만을 향하는 것이 아니다. '을'의 열정과 노동을 착취하는 모든 '갑'들을 향한 공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태유나 텐아시아 기자 you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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