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포동, 유튜브 '근황올림픽' 출연
"모텔서 10년째 생활 중, 혼자 살기 좋아"
"나라 지원금 받아 경제적인 여건 해결"
"모텔서 10년째 생활 중, 혼자 살기 좋아"
"나라 지원금 받아 경제적인 여건 해결"
원로 배우 남포동이 모텔에서 생활 중인 근황을 알렸다.
지난 21일 유튜브 채널 '근황올림픽'에는 '[남포동을 만나다] 전설의 영화배우 근황, 모텔방으로 직접 찾아갔습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이 게재됐다.
이날 영상에서 남포동은 요즘 근황에 관해 "업계 사람들하고 안 만난 지 오래됐다. 서울에는 병원 때문에 3개월에 한 번씩 간다"고 밝혔다. 경상남도 창녕의 한 모텔에서 10년째 생활 중인 그는 "방을 내어 줄 사람들은 많다. 나도 원룸에 오래 살아봤지만, 한 달에 40만 원 주고 모텔에서 생활하는 게 낫다. 시스템이 다 돼 있어서 혼자 생활하기 참 좋다"고 설명했다.
또한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떻게 지내냐고 맨날 전화 온다. 그럴 때마다 불편한 거 하나도 없이 잘 있다고 한다. 근데 사람들이 '옛날에 잘 나가던 남포동이 요새 모텔 생활을 하냐'고 생각한다. 나는 옛날부터 촬영을 다녔기 때문에 집보다 밖에 나가서 자는 게 익숙하다"고 털어놓았다.
경제적인 부분의 어려움은 없을까. 남포동은 "밥 먹고 사는 데 지장은 없다. 씨름 연합회에서 일도 하고, 국가에서 나이 많다고 지원금을 주더라. 그걸로 먹고 산다"고 말했다.
이어 "밥은 주로 해 먹는다. 시골 사람들이 인심이 좋지 않냐. 반찬도 가져다준다. 요새는 면사무소에서 이것저것 보내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올해로 데뷔 57년 차에 접어든 남포동. 그는 1965년 영화 '나도 연애할 수 있다'로 데뷔한 이후 다수의 작품에 출연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남포동은 "영화 수백 편을 찍었다. 영화배우 출신으로 방송국에 들어가니까 지상파 세 군데 다 출연이 가능했다"며 "사투리를 방송에서 제일 먼저 사용했다. 옛날에는 사투리를 쓰면 검열에 걸렸다. 큰 역할은 아니었지만 감초로 많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활동 당시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고. 남포동은 "업소에서도 일을 하고 그랬으니까 돈은 많았다. 마이크를 한 번 잡으면 출연료 대신 땅을 주기도 했다"며 "근데 2000년도에 사업이 부도나면서 가정이 파탄 났다. 그때부터 이제 매일 술만 마셨다. 그러다가 간암에 걸리게 됐다"고 토로했다.
간이식 수술한 지 11년 됐다는 남포동은 "간암 선고를 딱 받고 '도저히 이건 안 되겠다' 싶더라. 그래서 필리핀으로 조용히 가서 아무도 없는 데에서 죽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데다가, 간 이식을 받기 힘든 상황이었다. 필리핀에는 작은 섬이 많으니까 거기서 일생을 마감하려고 했다"며 "당시 딸 둘이 간을 주려고 했다. 근데 아무래도 수술을 하려면 배를 찢어야 한다. 딸들한테 해준 것도 없는데 간 이식을 어떻게 받냐. 그래서 도망가려고 했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여권하고 다 챙겨서 떠나려고 했는데 잡혀서 병원에 가게 됐다. 결국에는 막냇동생이 간 이식을 해줬다"며 "이제는 덤으로 산다는 마음이다. 간암 말기였는데 살아있는 것만 해도 고맙다. 그런 걸 몇 번 느끼고 나니까 죽고 사는 것에 대해 큰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작품 활동을 틈틈이 하고 있다는 남포동. 그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씨름 영화 한 편 제대로 찍어보고 싶다. 그게 내 꿈"이라고 전했다.
박창기 텐아시아 기자 spear@tenasia.co.kr
지난 21일 유튜브 채널 '근황올림픽'에는 '[남포동을 만나다] 전설의 영화배우 근황, 모텔방으로 직접 찾아갔습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이 게재됐다.
이날 영상에서 남포동은 요즘 근황에 관해 "업계 사람들하고 안 만난 지 오래됐다. 서울에는 병원 때문에 3개월에 한 번씩 간다"고 밝혔다. 경상남도 창녕의 한 모텔에서 10년째 생활 중인 그는 "방을 내어 줄 사람들은 많다. 나도 원룸에 오래 살아봤지만, 한 달에 40만 원 주고 모텔에서 생활하는 게 낫다. 시스템이 다 돼 있어서 혼자 생활하기 참 좋다"고 설명했다.
또한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떻게 지내냐고 맨날 전화 온다. 그럴 때마다 불편한 거 하나도 없이 잘 있다고 한다. 근데 사람들이 '옛날에 잘 나가던 남포동이 요새 모텔 생활을 하냐'고 생각한다. 나는 옛날부터 촬영을 다녔기 때문에 집보다 밖에 나가서 자는 게 익숙하다"고 털어놓았다.
경제적인 부분의 어려움은 없을까. 남포동은 "밥 먹고 사는 데 지장은 없다. 씨름 연합회에서 일도 하고, 국가에서 나이 많다고 지원금을 주더라. 그걸로 먹고 산다"고 말했다.
이어 "밥은 주로 해 먹는다. 시골 사람들이 인심이 좋지 않냐. 반찬도 가져다준다. 요새는 면사무소에서 이것저것 보내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올해로 데뷔 57년 차에 접어든 남포동. 그는 1965년 영화 '나도 연애할 수 있다'로 데뷔한 이후 다수의 작품에 출연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남포동은 "영화 수백 편을 찍었다. 영화배우 출신으로 방송국에 들어가니까 지상파 세 군데 다 출연이 가능했다"며 "사투리를 방송에서 제일 먼저 사용했다. 옛날에는 사투리를 쓰면 검열에 걸렸다. 큰 역할은 아니었지만 감초로 많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활동 당시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고. 남포동은 "업소에서도 일을 하고 그랬으니까 돈은 많았다. 마이크를 한 번 잡으면 출연료 대신 땅을 주기도 했다"며 "근데 2000년도에 사업이 부도나면서 가정이 파탄 났다. 그때부터 이제 매일 술만 마셨다. 그러다가 간암에 걸리게 됐다"고 토로했다.
간이식 수술한 지 11년 됐다는 남포동은 "간암 선고를 딱 받고 '도저히 이건 안 되겠다' 싶더라. 그래서 필리핀으로 조용히 가서 아무도 없는 데에서 죽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데다가, 간 이식을 받기 힘든 상황이었다. 필리핀에는 작은 섬이 많으니까 거기서 일생을 마감하려고 했다"며 "당시 딸 둘이 간을 주려고 했다. 근데 아무래도 수술을 하려면 배를 찢어야 한다. 딸들한테 해준 것도 없는데 간 이식을 어떻게 받냐. 그래서 도망가려고 했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여권하고 다 챙겨서 떠나려고 했는데 잡혀서 병원에 가게 됐다. 결국에는 막냇동생이 간 이식을 해줬다"며 "이제는 덤으로 산다는 마음이다. 간암 말기였는데 살아있는 것만 해도 고맙다. 그런 걸 몇 번 느끼고 나니까 죽고 사는 것에 대해 큰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작품 활동을 틈틈이 하고 있다는 남포동. 그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씨름 영화 한 편 제대로 찍어보고 싶다. 그게 내 꿈"이라고 전했다.
박창기 텐아시아 기자 spear@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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