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선징악, 질리지 않는 고전
성별·국적·인종 다양성 인정
MCU라는 통합적 세계관 속 인간적 히어로
영화 '블랙 위도우' 포스터 /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영화 '블랙 위도우' 포스터 /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김지원의 인서트≫
영화 속 중요 포인트를 확대하는 인서트 장면처럼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가 매주 목요일 오후 영화계 이슈를 집중 조명합니다. 입체적 시각으로 화젯거리의 앞과 뒤를 세밀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7일 오후 5시, 첫 회차는 일찌감치 동났다. 예매율은 90%를 넘어섰고 주말 회차까지 좋은 자리는 예매창이 열리자마자 이미 다 팔렸다. 경쟁이 치열한 IMAX관, 4D관은 어쩌다 나온 취소 좌석을 누르면 '이선좌(이미 선택된 좌석)'란다. 1년의 개봉 연기 끝에 마침내 관객을 만난 영화 '블랙 위도우'의 이야기다.

코로나19 확진자가 하루 1000명을 웃도는 상황에도 관객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블랙 위도우'를 만나러 갔다. '블랙 위도우'는 마블 페이즈4 시리즈의 첫 영화이자,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전 블랙 위도우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간 마블 히어로물은 한국 관객들에게 유독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팬데믹에도 결코 관람을 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마블 히어로물의 매력은 무엇일까.권선징악, 클래식은 通한다
영화 '블랙 위도우' 스틸 /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영화 '블랙 위도우' 스틸 /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사실 마블 히어로물은 단순하고 고전적인 틀을 갖고 있다. 바로 권선징악. 악한 자는 벌을 받고 선행의 결과는 행복으로 이어진다. 전래동화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구성이다. 뻔하지만 친근하고 익숙한 구성에 관객들은 환호하고 통쾌함을 느낀다. '블랙 위도우'에서는 나타샤 로마노프(스칼렛 요한슨)가 자신을 인간병기로 만든 테러집단 레드룸에게 복수한다. 여기에는 한국드라마에서 빈번하게 사용되는 '출생의 비밀 코드'도 들어가 있다. 블랙 위도우가 수년간 외면해왔던 어두운 과거를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히 맞선다는 점. '출생의 비밀 코드'는 뻔하지만 매번 통하는 전략이다. 아는 맛에 또 끌리는 법이다.여성도 흑인도 모두 히어로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스틸 /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스틸 /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마블 히어로물이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점도 국내 관객들이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다. 마블 영화도 초기에는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토르 등 남성 어벤져스 멤버들에게 서사와 액션이 치중돼 있었고, 여성 어벤져스들은 그들을 서포트하는 역할로 비쳐졌다. 스칼렛 요한슨도 "'아이언맨2'를 돌아보면 재미있고 멋진 순간들을 보냈지만 블랙 위도우 캐릭터가 너무 성적으로 그려졌다"고 비판했다. 또한 "블랙 위도우는 소유물이나 물건처럼 다뤄졌다. 토니 스타크도 블랙 위도우를 그렇게 대했다. 어떤 때는 고기 한 조각이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리즈를 거듭하며 어벤져스 각 캐릭터들은 독자적인 위치와 역할을 만들어갔다. 마블 시리즈 안에서 남성 히어로와 여성 히어로는 동등하게 표현되고 있다. 성별뿐만 아니라 국적과 인종에서도 마블 영화는 다양성을 인정한다. 흑인 히어로 블랙 팬서가 탄생했고 여성 히어로 캡틴 마블이 등장했으며, 아시아 히어로 샹치의 솔로 무비로 만들어진다. 마동석이 마블 페이즈4의 '이터널스'에 길가메시로 출연하기도 한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히어로물에서 중심이 될 수 있다는 상상을 하기 어려웠던 한국에서 관객들이 마블을 환영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미국영화지만 한국의 情이 있다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 스틸 /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 스틸 /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통합, 유대를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마블 영화가 강조하는 '팀'과 '하나의 세계관'도 한국 관객들이 열광하는 대목이다. 각자의 세계 속에 존재하던 히어로들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라는 하나의 세계관 안에 들어왔고, 같은 적을 상대로 동맹을 맺고 결속하며 팀을 구축했다. 또한 이 세계관 속에서 히어로들은 인간적이고 친밀하다. 초인이지만 인간이기에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와 같이 '편 갈라 싸우기'도 했다. 화합했다가 싸우고 화해하기도 하고 어우러지며 정(情)을 쌓아나갔다. 영어사전에서는 쉽게 정의할 수 없는 정의 문화가 마블 영화 안에서는 존재한다. 한국인들이 가진 끈끈하고 뜨끈한 것이 말이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으로 마블 페이즈3는 끝이 났고 블랙 위도우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스칼렛 요한슨은 블랙 위도우가 죽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 "케빈 파이기(마블 스튜디오 사장)와 통화 중이었고 괜찮다고 했고 마음이 아팠고 나중에 욕실에서 울었다"고 했다. 관객들도 그랬다. 미국 히어로들이지만 한국 관객들과 나눈 정은 끈끈했다. 인피니티 스톤을 두고 벌어진 대서사를 함께하며 히어로들과 관객은 동지가 됐다. 함께 울고 웃었던 10년의 긴 시간, 어벤져스와 마블이 우리에게 더 특별한 이유다.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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