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 기자회견 휘어잡은 입담
고상하고 힙했다
배우 윤여정 / 사진제공=후크엔터테인먼트
배우 윤여정 / 사진제공=후크엔터테인먼트

센스와 재치가 사람으로 태어나면 윤여정일까. 배우 윤여정이 '제93회 아카데미'에서 한국 배우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가운데 국내 언론과 한 기자회견에서도 치명적인 입담을 뽐냈다.

윤여정은 "내 마음대로 인생을 할 수 있으면 사치"라는 등 인생에서 얻은 윤여정만의 철학으로 기자회견을 휘어잡았다. 트로피와 와인을 옆에 둔 윤여정은 멋졌고 아름다웠다.

윤여정은 26일(한국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유니언 스테이션에서 열린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미나리'로 여주조연상을 수상했다. 한국 배우로 최초이자, '사요나라'(1957)의 우메키 미요시 이후 64년 만에 두 번째로 아카데미 연기상을 받은 아시아 여성 배우라는 기록도 썼다.

또 77세에 여주조연상을 수상한 '인도로 가는 길'(1984)의 페기 애슈크로프트, 74세에 이 상을 수상한 '하비'(1950)의 조지핀 헐에 이어 세 번째로 나이가 많은 수상자이기도 하다.

윤여정은 수상식 이후 취재진과 기자회견을 가졌다. 윤여정의 기자회견은 국내에서 라이브로 송출돼 대중이 윤여정의 수상을 함께 축하했다. 윤여정은 화이트 와인과 함께 기자회견을 즐겼다. 윤여정은 '촌철살인'의 아이콘답게 고상하지만 힙하게 멋진 대답을 내놨다.
사진=윤여정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기자간담회 생중계 캡처
사진=윤여정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기자간담회 생중계 캡처
윤여정은 '개인적으로 굉장히 팬이다. 뵙게 되어 영광'이라는 기자의 질문에 "뭐가 영광이냐. TV에 틀면 나오는데"라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또 질문을 길게 한 번에 하자 "하나씩만 질문해라 늙어서 잊어버린다"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윤여정은 앞으로 인간 혹은 배우 윤여정의 여정이 어떻게 될 것 같냐는 말엔 "어떻게 알겠나. 점쟁이도 아닌데"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나에게 연기 외의 것은 묻지마라 그런 질문은 평론가에 해달라", "앞으로의 계획은 없다. 오스카를 탔다고 윤여정이 김여정 되는 게 아니지 않나. 그냥 하던대로 할 거다. 예전부터 마음을 먹은 게 대사를 외울 수 있을 때까지 민폐 끼치지 않을 때까지 이 일을 하다 죽으면 좋겠다는 거다" 등의 멋진 말을 남겼다.

시상식과 시상식 후 브래드 피트와 나눈 대화도 공개했다. 브래드 피트는 여우조연상의 시상자이자 영화 '미나리'의 제작사인 A24의 설립자다.

윤여정은 "브래드 피트 만나니까 어떠냐고 묻는데 그 사람은 영화에서 많이 봤다. 우리 영화(미나리)의 제작자다. 미국 사람들이야 말 근사하게 잘 하니까. 다음에 영화 만들 때 돈을 더 써달라고 했다. 근데 조금 더 쓰겠다하고 했다. 크게 쓰겠다는 말은 안 하더라. 굉장히 잘 빠져나갔다"며 쿨하게 말했다.

답변 중간 중간 와인을 홀짝이던 윤여정은 얼굴이 점점 붉게 변했고, "내 정신이 아니다"라며 양해를 구해 미소를 유발했다.
[TEN 이슈] 윤여정, 고상하고 힙했다! 기자회견 어록
윤여정은 입담에 대한 칭찬이 나오자 "입담은 내가 오래 살아서 그렇다. 오래 살고 좋은 친구들과 수다를 잘 떤다. 수다에서 입담이 나온 것 같다"고 했다.

'최고'에 대한 윤여정의 철학이 멋졌다. 윤여정은 "최고의 순간은 없다. 난 최고라는 말이 참 싫다. 영어 잘하는 애들이 나한테 충고하더라. '경쟁 싫어한다' '1등 되는 거 싫다' 이런 말 하지 말라고 하는데 1등과 최고 같은 거 말고 다 같이 '최중'이 되면 안 되나"라고 했다.

이어 "같이 살면 안 되나. 최고, 최고의 순간 이런 건 모르겠고 아카데미가 전부는 아니지 않나. 동양 사람에게 아카데미는 높은 벽이 됐다. 근데 내 생각은 최고가 되려고 하지 말자, 최중만 되면서 살면 되지 않나"라고 하면서 "그러면 나 사회주의 가자 되나"라는 농담까지 곁드렸다.

영화 제작 환경과 감독에 대한 솔직한 생각도 털어놨다. 윤여정은 "김기영 감독님은 내가 어려서 만나고 정이삭 감독은 내가 늙어서 만났다. 김기영 감독님께 해주지 못 한 걸 정이삭에게 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나보다 어리고 아들보다 어린 친구인데 참 차분하다. 수십 명을 컨트롤하려면 감독이 돈다. 근데 그걸 차분하게 컨트롤한다. 누구도 모욕 주지 않고 업신여기지 않는다. 내가 흉 안 본 감독은 정이삭이 처음"이라며 "그에게서 희망을 봤다. 한국인 종자로 미국 교육을 받아 굉장히 세련된 한국인이 나왔다. 그 세련됨을 보는 게 좋았다. 걔라고 화가 안 났겠나. 내가 존경한다고 했다. 내가 정이삭을 만난 것도 배우를 오래 해서다"라며 "지금 내가 술 취했다"며 웃어 웃음을 줬다.
배우 윤여정 / 사진제공=후크엔터테인먼트
배우 윤여정 / 사진제공=후크엔터테인먼트
윤여정은 "내가 감사를 아는 나이가 됐다"라면서 한예리에게 나 "지금 몇 살이니"라고 물었다. 한예리가 만 나이로 답하려 하자 "한국 사람들이니까 만 나이로 하지마"라고 하기도. 윤여정은 "내가 75살인데 그래도 철이 안난다"라고 말했다.

윤여정은 외신들과만 인터뷰를 했다는 한 취재진에게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한국말로 인터뷰 하는 걸 좋아하지 영어로 하는 걸 좋아하겠나. 이 나이에 어디 가서 살겠나"라며 "7, 8시간 줌으로 인터뷰 했다. 정치가들이 표를 사기 위한 것 처럼 회사가 시켜서 한 홍보 활동"이라고 답했다.

그는 "봉준호 감독은 줌으로 하는 게 좋다고 했다. ('기생충' 당시) 송강호는 돌면서 인터뷰를 하느라 코피가 났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윤여정은 "우리는 즐거웠는데 수상에 대한 기대가 커지자 '못 받으면 어떻게 하나'라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받을 생각도 없고 후보만으로 영광이었는데 힘들었다. 운동선수의 심정을 알겠더라. 2002년 월드컵 때 발 하나로 온 국민이 난리 칠 때 그들은 얼마나 정신이 없었을 까, 김연아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런 생각했다"고 국민적 기대를 운동선수의 심리에 빗대 표현하기도 했다.

우빈 텐아시아 기자 bin0604@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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