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이라는 그룹에 속해 있었던 탓일까. 한 때 서슬 퍼런 칼날 같은 목소리를 들려주었지만, 좌절의 시간을 겪어야만 했던 한 남자가 있다. 그리고 그는 사람들이 잊고 있었던 시간 동안 자신과 싸워 다시 일어섰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후배들의 노래를 평가할 땐 독설가가 되었고, 또 어떤 프로그램에서는 독거남이 되었으며, 황혼기의 어르신들 앞에서는 순둥이가 되었지만, 언제나 그는 록커로서의 자신을 잊어본 적이 없다. 이것은 괴롭고, 힘든 시간을 지나 그만큼 더 단단해진 로커 박완규의 이야기다.요즘 부쩍 TV에서 자주 보게 된다. 곧 MBC ‘나는 가수다’에서도 출연할 거라는 얘기도 들리고.
박완규: 바쁘긴 하지만 즐겁다. 내년에 마흔인데, 작년까지는 희망이 없었다면 지금은 ‘내가 열심히 잘 하면 아이들한테 잘 할 수 있겠구나’ 그런 희망을 갖고 사니까. 목도 거의 90퍼센트 이상 회복됐다.
목은 한동안 꽤 심각한 상태였지 않았나.
박완규: 올 초에 처음 병원에 갔을 때만 해도 의사 선생님이 치료 못하겠다고 했다. 결절 부분을 잘라내는 수밖에 없다는 말까지 들었다. 그럼 건강해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동안 몸으로 익혔던 소리 내는 법이나 노래 부르는 법은 다 삭제되는 거다. 자전거를 타는 것처럼 몸이 기억을 하는 그런 게 없어지는 거다. 그런데 치료를 시작한 후 의사 선생님이 ‘기적’이라는 말을 쓰시더라.
“‘나는 가수다’에서도 나는 음악만 할 것”
그럼 이제 ‘나는 가수다’에 나갈 준비가 다 끝난 건가.
박완규: 같이 할 팀도 다 꾸려진 상태다. ‘나는 가수다’ PD가 신신당부를 해서 미리 밝힐 수는 없지만. (웃음)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나는 ‘음악’을 보여드릴 거다. 시청자들은 그런 모습을 보고 ‘재미없다’, ‘쟨 뭐냐. 나와서 왜 무게만 잡냐’ 하실 수도 있고, 조규찬 씨처럼 나도 2~3 주 만에 탈락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임)재범 형님이 “완규야. 방송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네 공연장이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되던데, 뭐”라고 하시고, (김)종서 형님도 “어떤 무대든 가서 네가 록을 보여주면 되지 않을까?” 하셨다. 그 말씀들을 믿고 있는 거지.
‘나는 가수다’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낸 적도 있지 않나.
박완규: 방송 만드는 분들에겐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겠지만, ‘나는 가수다’나 ‘불후의 명곡2’ 같은 프로그램들이 시청률에서 조금만 더 자유로울 수 있다면 정말 좋은 프로그램이 될 수 있다. 2010년을 돌이켜보니까 나한테 기억나는 게 몇 장면 없더라. ‘내가 다음달에는 100만원을 벌 수 있을까’, ‘다음 달에 내가 애들한테 생활비를 줄 수 있을까?’ 그런 순간뿐이다. 나처럼 보통 소시민들은 퇴근길에 바람이 불면 문득 너무 서럽고 슬플 것 같다. ‘내가 어릴 때 가슴에 새겨져 있던 감성은 이젠 허상인건가’ 하는 마음이 들어서. ‘나는 가수다’는 그런 잊혀진 감성을 돌려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자극적인 순위 매기기에 그런 장점이 밀려 있다. 음악이란 게 스포츠가 아니지 않나.
그 말대로 음악이 스포츠가 아닌데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의 속성 상 생존을 위해 경쟁하고, 타협해야 하는 부분이 있지 않나.
박완규: ‘라디오 스타’ 섭외가 왔을 때 태원 형님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은 적이 있다. 그러자 태원 형님이 안 하려고 그랬냐면서 야단을 치시더라. 네가 출연할 때 네 노래가 한 번 더 나올 수도 있고, 뮤직비디오가 나갈 수도 있지 않느냐면서. 그리고는 아직 잠에서 못 깬 동생에게 한 말씀 더 하셨다. “그냥 형하고 밤에 술 먹을 때 하던 얘기 있지? 그런 얘기 해. 재미는 어차피 제작진들이 고민할거고. 너는 의식적으로 재밌게 할 필요도 없고, 할 줄도 모르니까 너는 그냥 네 얘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결심을 했다. ‘나는 가수다’도 마찬가지다. 제작진이 경쟁 구도로 나를 밀어 넣을 수도 있지만, 나는 내 얘기, 바로 음악만 할 거다.
그렇게 ‘나는 가수다’에 나가서 이루고 싶은 게 있는 건가.
박완규: 내가 바라는 것, 그리고 형님들이 바라는 게 있다. 바로 록을 알리겠다는 것. ‘내가 살겠다고 하면 안 된다. 록이 살아야지’ 그런 의식을 갖고 같이 뛰는 동료들이라면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다 껴안을 수 있다. 태원 형님도 2AM의 진운이라는 친구에게 기타도 주시지 않았나. 록을 사랑하고, 속에 진짜 록을 표현하고 싶어 하는 진심어린 열정이 있다면 그 누구라도, 그 무엇이라도 좋다.
“나무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숲을 보여줘야 한다” 듣다보니 단순한 록 보컬리스트와 로커는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박완규: 재범 형님도 그렇고, 태원 형님도 그렇고 이제 50줄에 들어오신 형님들이 지금 예능에 나와 록을 알리겠다고 뛰고 있다. 재범 형님, 태원 형님, 도균 형님도 있고. 그 형님들이 어떤 분들인가. 여러 가지 가요들도, 그 형님들이 핍박받고 천대받으면서 지켜온 데서 나올 수 있었던 거다. 그런 형님들이 정당한 대우를 못 받는다는 것에 대해서 죄송한 마음이 있다. 나만 살겠다고 하면 안 되는 거다. ‘나는 가수다’에서 이 분들의 진정성을 보여주고 싶다. 그래야 형님들이 다시 재조명될 수 있다. 내가 그런 마음이기 때문에 형님들도 “네가 나갈 때 우리가 돕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나는 가수다’는 음악보다 제목처럼 보컬에 초점이 맞춰진 프로그램이다.
박완규: 몇 년 전부터 요즘 후배 중 어느 밴드가 가장 좋냐는 질문을 받으면 넬이라고 답한다. 넬은 우리나라 메인 스트림에서 활동하는 밴드 중에 유일하게 자기 색깔을 가지고 있다. 대중들과도 가까우면서도 그걸 지키고 있다. 나는 종종 이렇게 얘기한다. “목소리만 높이 올라가면 로커냐?”
하지만 그런 오해들이 있는 게 사실이다.
박완규: 나무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숲을 보여줘야 한다. 나는 보컬보다 연주자를 더 존경한다. 우리 보컬들은 언어로 말을 하지만, 그 분들은 소리로 말을 하는 거다. 그러니 얼마나 더 섬세하게 연주를 하겠나. 더 깊게 연구할 수밖에 없는 거지. 더 많이 연습하고 더 많이 파고든다. 그래서 연주자들하고 대화를 많이 하고, 무대 위에서 열심히 호응하려고 한다. 노래가 아니라 음악인 거다. 하모니. 그게 진정한 록 형태다. 그런 걸 보여줘야 록이 살아난다.
로커들이 살아남기 위해 록이 아닌 발라드를 부르는 경우도 많지 않나. 박완규에게도 ‘나는 가수다’ 시청자들이 결국 고음의 발라드 노래를 기대하는 걸 수도 있는데.
박완규: 그런 부분에 괴리감이 있다. 그 간극을 줄이는 것이 록의 대중화를 위해서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고. 하지만 발라드, 슬로우 템포의 곡이 다 똑같은 것은 아니다. 4집 < EXODUS >에 ‘Promise’라는 슬로우 템포의 곡이 있다. 로커도 사랑을 하고 밥을 먹지 않나. 내가 내 마음대로 거칠게 살았는데, 그러다 보니까 약속했던 여자랑 헤어진 거다. 그러면 그런 곡이 나온다. 그런 식으로 내 생각이 고스란히 담기면 슬로우 템포도 상관없다. 그런데 기획사의 의도가 담긴 그런 곡은 싫다. 이번에 ‘나는 가수다’에 나가더라도 대중들과의 거리감을 좁힐 수 있는 그런 곡 형태도 있을 거다. 다만 내가 하고 싶은 노래고, 록의 형태인거지.
“내 모습 그대로를 내 음악에 싣고 싶다” 록을 살리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낯선 사람들과 낯선 일을 해야 하는 기분은 복잡할 것 같다.
박완규: 태원 형님이 마음을 열라고 하셔서 내 마음 속을 찬찬히 쳐다보니까 ‘나는 이것만은 지킬 거야’ 하고 웅크리고 있는 내가 있더라. ‘라디오 스타’는 태원 형님이 날 에 출연시켜주셨기 때문에 생긴 자리다. 거기서 ‘나는 진정성을 갖고 음악 하는 뮤지션이고, 이런 데 나가기 싫어’ 이러는 건 태원 형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거다. 태원 형님이 아플 때 곁에 김구라 형님, 이경규 형님, 이윤석 형님, (윤)형빈이 같은 예능인들이 있었다. 진짜 형님이 아플 때 정작 곁에 있었던 건 내가 아닌 거지. 그래서 ‘남자의 자격’ 나갔을 땐 경규 형님께는 태원 형님 이상으로 존경심을 표현하고 늘 모시는 기분으로 대했다. 낯설지만, 그 분들을 직접 보고 눈을 맞추면 그 분들도 내게 똑같은 눈빛을 돌려준다.
타협하는 게 아니라, 인간적인 성숙과 교류라는 느낌이 든다.
박완규: 배우는 거다. 내 음악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간적인 모습과 음악의 합일이다. 인간이 인간을 모르면서 어떻게 인간적인 음악을 할 수 있겠나. 예전에 ‘Lonely Night’ 때는 밥 한 끼도 안 먹고 그랬다. 그러니 태원 형님은 불편하셨겠지. 팀의 막내가 밥을 안 먹으니까. 이제는 태원 형님이 조금 시장한 것 같으면 먼저 “형님, 떡볶이 사다 드릴까요?” 그러고 같이 먹는다. 밥 때가 돼서 같이 식탁에 앉아 있는 것도 사람들을 즐겁게 해줄 수 있는 모습이구나. 그런 것도 배우는 거다. 그럼 무대에 섰을 때도 밥 먹을 때 분위기가 나온다. 그런 모습을 음악에 그대로 싣고 싶다. 내 모습 그대로.
예능이라는 경험이 음악이라는 경험과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합쳐질 수 있다는 건가?
박완규: 경규 형님이 나한테 “완규야. 너 무대에서 사람들한테 힘을 주고, 기쁘게 해주는 그럼 음악을 하고 싶으냐? 네가 기뻐야 사람들도 기쁘게 해줄 수 있는 거다. 네가 어둡고 속에서는 안 좋은 것만 있다면 네가 추구하는 진정성하고는 배치되는 모습인 거다”라는 조언을 해주신 적이 있다. 내가 가끔 미친다. 절제가 안 될 만큼 소주를 마실 때도 있다. 속에서 불이 나니까. 그런 게 형님들 눈에는 보인다고 하더라. 내 가슴 속에 시커먼 덩어리가 있는 게. 내가 웃고, 내가 즐거우려고 노력하면 그런 시커먼 덩어리가 씻겨 내려갈 거라고 기대한다.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모습은 버리고 인간을 만날 수 있는 그런 자리면 어디서든 배우는 거다.
그렇게 되면 전성기의 박완규보다도 좋은 모습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나?
박완규: 쉽진 않을 거다. 하지만 힘들어도 해내야 한다. 이번 기회밖에 없으니까. 태원 형님이 나오지도 않는 내 목소리를 쥐어짜서 ‘비밀’이라는 곡을 만들어 예상 밖의 반응이 나왔고, 여기저기 나가서 많은 것들을 얻고 배웠다. 그럼 남은 게 뭐 겠나. 음악 해야지. 좋은 음악 해야지. 음악도 못하면 나는 은혜를 배신하는 거다. 그래서 마음이 급하다. 그동안 잊어버린 음악을 내 안에 채워 넣고 싶어서. 계획도 많다. 형님들과 같이 구상하고 있는 게 있다. 록페스티벌을 로커들이 직접 연다거나, 대관비 없이 후배들이 공연할 수 있는 공연장 설립 같은 것을 꿈꾸고 있다. 지금 록페스티벌에 가면 다 기업 협찬이지 않나. 그런 록페스티벌이 아니라 다 천막 갖고 와서 팬들하고 같이 대화하고, 캠프파이어도 하고 술도 마시다가 “야. 너 시간됐어. 이제 올라가서 공연 해” 이런 걸 꿈꾸고 있다.
사진제공. 동아뮤직
인터뷰, 글. 김명현 기자 eighteen@
인터뷰. 위근우 기자 eight@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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