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불쾌했다. 베스트셀러 매대를 차지하고 있는 이 책의 제목이 늘 불편했다. 그 다음엔 궁금했다. ‘한국출판사상 최단기 100만부 돌파!’라는 문구가 자랑스럽게 새겨진 이 책이 왜 이토록 인기인지 의문스러웠다. 는 서울대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가 매체에 기고했던 글을 한데 묶어낸 에세이집이다. 김난도는 지난 2009년부터 매해, 트렌드와 소비습관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우리 사회를 설명하는 시리즈를 발간하고 있는 트렌드 전문가다. 지난 해 말 출간 된 는 1년 가까이 베스트셀러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책 표지엔 ‘최고의 멘토 김난도 교수의 인생 강의실’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너라는 꽃이 피는 계절’ ‘시련은 나의 힘’ ‘죽도록 힘든 네 오늘도, 누군가에게는 염원이다’ 와 같은 목차만으로도 알 수 있듯, 는 불안하고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위로와 조언을 건네는 책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나는 대학에서 흔들리는 청춘들과 늘 부대끼면서, 이 어려운 시기를 버텨야 하는 아픈 그들을 따뜻한 위로의 말로 보듬어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책을 읽으면, 그 의도가 거짓이 아님은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선의만으로 이 책을 향한 이른바 ‘청춘’들의 열띤 호응이 충분히 납득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 걱정스럽다. 저자 자신의 실패담을 포함한 경험과 명사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섣부른 힐난이 아닌 따뜻한 목소리를 들려준다는 장점은 분명하지만, 이 책 역시 청춘들이 직면한 현실의 불합리에 침묵한 채 ‘값 싼 위로’라는 당의로 포장한, 흔한 자기계발서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멘토, 분노를 미리 차단하는 당의정 언제부턴가 ‘멘토’ 혹은 ‘멘토링’이 ‘시대의 화두’가 되었다. 가 베스트셀러가 되기 전부터 김난도는 서울대에서는 물론 여러 기업과 단체에 초빙되는 유명 멘토였다. 경제전문가 ‘시골의사’ 박경철과 이제는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갈 지도자로 추앙 받는 안철수 같은 이들도 멘토라 불리며 대중의 지지를 받고 있다. 방송에서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대세가 되면서 참가자들에게 독설과 위로를 던지는 멘토들이 주목을 받았다. 그들이 보여준 멘토링의 교감은 서 있는 무대는 다르지만 마찬가지로 살벌한 서바이벌의 세계를 살아가는 시청자들을 유혹했다. 이처럼 ‘멘토의 시대’가 도래한 것을 두고, 성장 과정에서 제대로 된 스승을 갖지 못한 젊은 세대의 불안함이 이들을 소환했다고 보는 시각도, 경쟁사회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사회적으로 성공한 롤 모델을 갈구하는 것의 세련된 얼굴에 지나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어느 쪽이든 분명한 것은, 지금 우리 사회가 ‘멘토를 원하는 사회’라는 것이고, 이는 메시아를 기다리던 유대 민족이 그랬듯, 현실이 그만큼 절망적이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 불티나게 팔리는 현상을 단순히 ‘아, 우리 청춘들이 이토록 위로를 갈구했구나’라며 넘어갈 수 없다. 사회 전반에 흐르는, 멘토링을 향한 이 뜨거운 욕망이 그저 위로의 메커니즘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가 불합리한 사회에 대해 위화감이나 분노가 아닌 ‘적응력’을 먼저 체득하게 하는 과정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 책 역시 결국엔 ‘청춘이여, 일단 시작하라. 자기 기대에 못 미치더라도, 일단 겸손하게 사회에 발을 딛어라. 입석 3등칸일지라도 일단 기차에 올라타라. 그리고 천천히 1등칸을 향해 움직여라. 그것이 전속력으로 달려가는 기차의 1등칸으로 단번에 뛰어오르는 것보다 쉬울 테니’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이 “눈을 낮추라”는 MB의 말과 얼마나 다르단 말인가.
값싼 위로에 청춘을 저당잡히지 말자 는 ‘황무지를 택하라. 왕관이 아닌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는 거창고등학교의 ‘직업 선택의 10계’를 인용하며 자신의 열망을 따르라고 말한다. 좋은 말이다. 하지만, 지금 청춘들은 손에 닿는 왕관을 외면하고 꿈을 좇는 동화의 주인공이 아니다. 이미 황무지에서 태어나, 단두대 앞에 줄 서 있는 이들에게 가시밭길을 걷는 게 청춘이라고 말하는 건 비겁하고 잔인하다. 멘토가 던져 주는 ‘위로의 잠언’이 잡고 싶은 지푸라기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결코 구명조끼는 될 수 없다. 살벌한 전쟁터로 나서기 전 방공호에 숨거나 누군가 덮어준 담요로 몸을 녹이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다만, 찰나의 온기에 몸을 맡겨 현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안철수처럼 당신들을 전쟁터로 내몰아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우리 함께 새로운 미래를 꿈꾸자고 말하는 어른의 존재는 물론 고맙지만, 실컷 맞았고 앞으로도 맞을 청춘들에게, “아프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말하는 건 불쾌하다.
지난 8일 tvN 에 출연한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는 한 20대 학생에게 “그 나이에 아버지와 대화가 너무 잘 되면 안 좋다. 모든 세대는 아버지 세대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멘토의 어원은 그리스 신화의 오디세우스 왕이 전장에 나서며 어린 아들을 친구 ‘멘토’에게 맡겼고, 그가 아버지 대리로 그 아들을 훌륭하게 키워냈다는 데서 유래했다. 멘토가 ‘아버지’의 또 다른 이름이라 할 때, 우리 자식들(멘티)은 아버지들(멘토)의 위로를 가장한, “성장하라!”는 채찍질에 너무 쉽게 몸을 맡기고 있는 건 아닐까. 물론 아버지가 억압의 상징이고 고로 극복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진리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책을 덮는 순간 맞닥뜨릴 현실이 아버지들처럼 개인의 노력으로 사회적 지위와 성공을 손에 쥘 수 있는 곳이 아니기에, 적어도 ‘아프니까 청춘이고, 그 아픔을 더 나은 나를 위한 연료로 사용하라’는 말에, 겨우 이 정도 위로에, 쉽사리 기대지 말자. 차라리 절망스럽다면 충분히 절망하자. 그리고 소리치자. “청춘을 당신들의 언어로 재단하지도, 당신들의 과거로 미화하지도 마라”고. 그것이 이미 황무지에서 태어난 우리가 그나마 여기서 살아남는 방법이 아닐까.
글. 김희주 기자 fifteen@
편집. 이지혜 seven@
‘너라는 꽃이 피는 계절’ ‘시련은 나의 힘’ ‘죽도록 힘든 네 오늘도, 누군가에게는 염원이다’ 와 같은 목차만으로도 알 수 있듯, 는 불안하고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위로와 조언을 건네는 책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나는 대학에서 흔들리는 청춘들과 늘 부대끼면서, 이 어려운 시기를 버텨야 하는 아픈 그들을 따뜻한 위로의 말로 보듬어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책을 읽으면, 그 의도가 거짓이 아님은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선의만으로 이 책을 향한 이른바 ‘청춘’들의 열띤 호응이 충분히 납득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 걱정스럽다. 저자 자신의 실패담을 포함한 경험과 명사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섣부른 힐난이 아닌 따뜻한 목소리를 들려준다는 장점은 분명하지만, 이 책 역시 청춘들이 직면한 현실의 불합리에 침묵한 채 ‘값 싼 위로’라는 당의로 포장한, 흔한 자기계발서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멘토, 분노를 미리 차단하는 당의정 언제부턴가 ‘멘토’ 혹은 ‘멘토링’이 ‘시대의 화두’가 되었다. 가 베스트셀러가 되기 전부터 김난도는 서울대에서는 물론 여러 기업과 단체에 초빙되는 유명 멘토였다. 경제전문가 ‘시골의사’ 박경철과 이제는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갈 지도자로 추앙 받는 안철수 같은 이들도 멘토라 불리며 대중의 지지를 받고 있다. 방송에서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대세가 되면서 참가자들에게 독설과 위로를 던지는 멘토들이 주목을 받았다. 그들이 보여준 멘토링의 교감은 서 있는 무대는 다르지만 마찬가지로 살벌한 서바이벌의 세계를 살아가는 시청자들을 유혹했다. 이처럼 ‘멘토의 시대’가 도래한 것을 두고, 성장 과정에서 제대로 된 스승을 갖지 못한 젊은 세대의 불안함이 이들을 소환했다고 보는 시각도, 경쟁사회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사회적으로 성공한 롤 모델을 갈구하는 것의 세련된 얼굴에 지나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어느 쪽이든 분명한 것은, 지금 우리 사회가 ‘멘토를 원하는 사회’라는 것이고, 이는 메시아를 기다리던 유대 민족이 그랬듯, 현실이 그만큼 절망적이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 불티나게 팔리는 현상을 단순히 ‘아, 우리 청춘들이 이토록 위로를 갈구했구나’라며 넘어갈 수 없다. 사회 전반에 흐르는, 멘토링을 향한 이 뜨거운 욕망이 그저 위로의 메커니즘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가 불합리한 사회에 대해 위화감이나 분노가 아닌 ‘적응력’을 먼저 체득하게 하는 과정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 책 역시 결국엔 ‘청춘이여, 일단 시작하라. 자기 기대에 못 미치더라도, 일단 겸손하게 사회에 발을 딛어라. 입석 3등칸일지라도 일단 기차에 올라타라. 그리고 천천히 1등칸을 향해 움직여라. 그것이 전속력으로 달려가는 기차의 1등칸으로 단번에 뛰어오르는 것보다 쉬울 테니’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이 “눈을 낮추라”는 MB의 말과 얼마나 다르단 말인가.
값싼 위로에 청춘을 저당잡히지 말자 는 ‘황무지를 택하라. 왕관이 아닌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는 거창고등학교의 ‘직업 선택의 10계’를 인용하며 자신의 열망을 따르라고 말한다. 좋은 말이다. 하지만, 지금 청춘들은 손에 닿는 왕관을 외면하고 꿈을 좇는 동화의 주인공이 아니다. 이미 황무지에서 태어나, 단두대 앞에 줄 서 있는 이들에게 가시밭길을 걷는 게 청춘이라고 말하는 건 비겁하고 잔인하다. 멘토가 던져 주는 ‘위로의 잠언’이 잡고 싶은 지푸라기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결코 구명조끼는 될 수 없다. 살벌한 전쟁터로 나서기 전 방공호에 숨거나 누군가 덮어준 담요로 몸을 녹이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다만, 찰나의 온기에 몸을 맡겨 현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안철수처럼 당신들을 전쟁터로 내몰아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우리 함께 새로운 미래를 꿈꾸자고 말하는 어른의 존재는 물론 고맙지만, 실컷 맞았고 앞으로도 맞을 청춘들에게, “아프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말하는 건 불쾌하다.
지난 8일 tvN 에 출연한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는 한 20대 학생에게 “그 나이에 아버지와 대화가 너무 잘 되면 안 좋다. 모든 세대는 아버지 세대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멘토의 어원은 그리스 신화의 오디세우스 왕이 전장에 나서며 어린 아들을 친구 ‘멘토’에게 맡겼고, 그가 아버지 대리로 그 아들을 훌륭하게 키워냈다는 데서 유래했다. 멘토가 ‘아버지’의 또 다른 이름이라 할 때, 우리 자식들(멘티)은 아버지들(멘토)의 위로를 가장한, “성장하라!”는 채찍질에 너무 쉽게 몸을 맡기고 있는 건 아닐까. 물론 아버지가 억압의 상징이고 고로 극복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진리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책을 덮는 순간 맞닥뜨릴 현실이 아버지들처럼 개인의 노력으로 사회적 지위와 성공을 손에 쥘 수 있는 곳이 아니기에, 적어도 ‘아프니까 청춘이고, 그 아픔을 더 나은 나를 위한 연료로 사용하라’는 말에, 겨우 이 정도 위로에, 쉽사리 기대지 말자. 차라리 절망스럽다면 충분히 절망하자. 그리고 소리치자. “청춘을 당신들의 언어로 재단하지도, 당신들의 과거로 미화하지도 마라”고. 그것이 이미 황무지에서 태어난 우리가 그나마 여기서 살아남는 방법이 아닐까.
글. 김희주 기자 fifte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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