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기타다. MBC ‘나는 가수다’에서 오랫동안 회자되는 것은 화려한 성량을 뽐내는 무대가 아니라 소박하게 기타에 선율을 얹은 어쿠스틱 공연이며, Mnet 를 비롯한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는 기타 플레이어들이 꾸준히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심지어 KBS 는 기타맨과 그의 친구들을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세상의 음악이 컴퓨터의 힘을 빌어 초고속으로 변화하고 있는 시대에도 기타는 여전히 한쪽에서 그 저변을 지켜내고 있었던 것이다. 가 사흘에 걸쳐 소개할 뮤지션들은 그런 기타와 꼭 닮아있다. 세상의 법석에도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소년시절의 순정을 지켜나가듯 기타와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이 남자들은 단숨에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는 마력을 보여주진 않았지만 사라지지 않는 소리를 만들 수 있는 저력을 가졌다. 그래서 벌써 몇 장의 앨범을 발표한 이들을 지금 주목하는 일은 결코 늦은 것이 아니다. 이들과 기타의 호흡은 앞으로 더욱 무르익을 것이 분명한 까닭이다. 그래서 말하건대, 소년은 기타를 들고, 기타여 야망을 가져라.노래는 어디에서 오는가. 어떤 이에게 그것은 목을 거쳐 나오는 숨결일 수도 있고, 다른 이에게 그것은 심장에서 뿜어지는 영혼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하헌진에게 노래란 땅을 디딘 두 발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생활이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곧 그의 삶의 궤적이다. “블루스 뮤지션 존 리후커를 정말 좋아했어요. 그 사람의 초창기 앨범을 듣던 무렵인데, 그게 나일론 줄 기타로 녹음이 된 거였거든요. 그런데 마침 제가 갖고 있던 기타가 천 원짜리, 나일론 줄 기타였어요. 그래서 비슷한 음악을 해보겠다고 시작하게 된 거죠.” 노래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은 욕심으로 부풀기 전에 그의 환경 안에 녹아들었고, 냉장고를 사고 사은품으로 받은 ‘똑딱이 디카’로 기록한 그의 첫 노래는 블로그를 통해 세상에 공개되었다. 심지어 첫 EP 는 전곡을 오직 아이폰 음성녹음 기능으로 녹음해 완성했다. 아무리 “열심히 하려고는 해요. 남들 하는 만큼 못해서 그렇지. 그래도 안 되면 되게 하자는 주의거든요”라는 말을 덤덤하게 할 수 있는 청춘이라고 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쥐지도 못할 만큼 많은 것을 탐하는 세상에서 오직 제 주먹 안의 것만으로 만족하며 산다는 게 말이다. 그러나 하헌진은 이것을 불행한 궁핍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사진을 찍듯, 일기를 쓰듯, 애석함이나 자괴감 없이 시절을 노래로 기록할 뿐이다. 그러니 그에게 블루스는 도달해야 할 산이나 정복해야 할 무엇이 될 수 없다. “원래 블루스가 미국의 민요 같은 거잖아요. 흑인 노예들이 밤에 일하고 들어와서 자기 얘기를 구전해 온 거예요. 그런 점이 저와 잘 맞았어요. 아름다운 음악을 지어서 성공하겠다는 생각 없이, 정말 그냥 나오는 걸 하고 싶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김일두와 음반의 절반을 나눠서 노래를 담은 스플릿 앨범 에서 그의 노래는 때때로 블루스의 색을 벗기도 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일두 씨에게 자극을 많이 받는데, 이번 앨범 작업을 할 때도 그 포크적인 방식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현실에 두 발 다 딛고 있는 음악이잖아요”라는 설명은 곧, 그의 음악이 그의 삶만큼이나 아무런 기약을 줄 수 없는 것임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벌써 기타를 손에 쥔지 10년. 그는 몇 가지 확신을 품었다. “결국에는 다 위트에요. 블루스에서 자꾸 리듬을 깨려고 하는 것도 위트거든요. 가사도 그렇고, 음악에 위트를 담고 싶어요”라는 소망이 액셀레이터라면 “음악은 계속 할 거예요. 이제 남들 앞에서 기타 칠 정도는 되었으니 이대로 10년 더 하면 굶진 않겠죠”라는 다짐은 엔진이다. 그렇게 그의 음악은 삶과 함께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음악에 빠져든 건 중학생 시절부터다. TV외에는 새로운 것을 접할 길이 없던 처지였는데, 그때 인터넷 전용선이 생기면서 숨통이 트였다. 메탈이나 랩을 주로 들었는데, 온라인에서 만난 친구들을 통해서 좋은 음악도 추천 받고 록의 원류를 찾아 들어가기도 했다.
처음 기타를 갖게 된 것은 중학교 3학년 때. 드럼 배워보려고 교회에 갔다가 의도가 불순하다고 쫓겨나고 그러던 무렵인데, 여름 방학 때 아버지가 통기타를 하나 갖다 주셨다. 그걸로 코드 잡는 연습 하는데 1년은 걸린 것 같다. 처음 3개월은 그냥 뎅, 쳐보고 기타가 드르르 울리는 느낌만으로도 너무 좋아하고 그랬다. 그냥 기타를 끼고 컴퓨터도 하고 졸다가 괜히 쳐보기도 하고.
고등학교에 가서는 밴드에서 일렉 기타를 쳤다. 너바나도 연습하고, 기타를 치려고 학교에 밤 11시까지 남아있고 그랬다. 당시에는 나도 지미 핸드릭스, 레드 제플린, 크림 같은 음악을 주로 들었다. 특히 제프 백을 좋아했고. 아, 그런데 그 시절에도 피크로 치거나 속주를 하는 건 못하겠더라. 항상 나는 기타를 손으로 쳤다. 매트로놈 없이 연습했고.
처음에는 블루스에 별 감흥을 못 느꼈는데, 군대 가기 전에 빔 벤더스의 을 보고 큰 인상을 받았다. 상상도 못한 그런 영상들이었다. 하지만 입대 전에 장비를 다 팔아버린 데다가 부대 안에서는 기타 연습을 좀처럼 할 수 없어서 전역했을 때는 연습했던 기술들을 거의 다 잊어버린 상태였다.
LP판을 사기도 하는데, 이사를 하면서 턴테이블이 고장 나는 바람에 요즘에는 그냥 장식품으로 생각하고 있다. 주로 음원을 구해서 듣는 편이다.
이사를 한 집 근처에 공군기지가 있어서 집에서 녹음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를 녹음할 때는 언덕 위에 3층집이어서 참 조용했는데, 지금은 한 시간 30분 단위로 소음이 들린다. 게다가 에어쇼 기간이라도 겹치면 녹음은 생각도 못한다. 그래서 이후 앨범들은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환경에 영향을 받는 사람이니까.
제일 처음 만든 곡은 ‘내일 다시 또 만나’인데, 좋아하던 누나에게 하고 싶은 말을 좀 위트 있게 전하고 싶어서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다. 술 약속이 3개나 있던 날의 얘기인데, 시간은 없고, 약속은 다 가고 싶고, 신은 나고 뭐 그런 기분이었다. 그 노래를 주변 사람들 보라고 블로그에 올리고, 그 일주일 사이에 노래를 두 곡 더 만들었다.
좀 단순하게 표현하려고 고민하기는 하지만, 주어가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을 뿐 나의 가사들은 모두 진짜 있었던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힘들었던 시절의 노래를 다시 부르면 힘들기도 하다. 요즘 노래가 관조적으로 변했다는 얘기를 듣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그런 이유도 있을 것 같다.
처음 공연을 할 때는 ‘블루스맨’이라는 이름을 쓰기도 했다. 아버지가 10만 원에 맞춰 주셨던 구로 곤색 양복을 입고 존 리후커 코스프레도 해봤고. 공연의 쇼적인 면을 충족시키고 싶었던 건데, 내 음악에 스스로 한계를 지어주는 것 같아서 이내 그만 뒀다. 그냥 입던 옷 입고. 이게 나한테 더 맞는 것 같다.
고등학생 때 기타 학원에 한 달 정도 다닌 적이 있었는데, 강사랑 싸우고 그만 뒀다. 워낙 말이 안 통해서. 혼자 연습할 때는 좋아하는 음반을 틀어 놓고 따라하면서 많이 배운다. 초창기 노래들은 그런 과정에서 창작으로 이어진 곡들도 많다. 답답할 때도 있지만 혼자서 될 때까지 했다. 너무 오래 걸리니까 문제지, 그 자체가 곤란하진 않다.
밤섬해적단 친구들과 가깝게 지내고, 공연도 워낙 같이 다닐 때가 많다. 둘은 밴드이기 때문에 관객들이 공연을 기대하는 에너지 자체가 다른데, 그런 점에서 문득 열등감을 느낄 때는 있다. 나 혼자서 밴드만큼의 에너지를 만들어 보고 싶기도 하고.
두리반 활동을 하면서 공연도 많이 하고 창작도 많이 했다. 거기서 자립음악생산조합 친구들도 만났고, 내 노래에도 거기서 발생된 얘기들이 많이 나온다. 특히 두리반에서 만난 사진작가 토리 씨가 해 준 말이 되게 힘이 되었는데, 그분이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딱 15년만 해보자’고 생각 했다더라. 그런데 지금이 10년째 되는 해인데 강의도 하고 굶지 않는 사람이 된 거다. 나도 10년쯤 더 기타를 치면 서울에 내 앞으로 된 월세 원룸이나 하나 구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내 공간이 생기면 좋을 것 같다. 그때까지 지하철 값이나 안 올랐으면 싶기도 하고.
중요한 것은 자립이다. 첫 앨범을 낼 때 한받 씨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뮤지션이 직접 앨범을 만들고 판매를 하는 방식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내가 만든 노래로, 내가 만든 CD로, 내가 돈을 받아서 다시 내가 노래를 만들 수 있는 싸이클을 최대한 고민하고 있다. 카피라이트 이전에 생활에 관한 문제로서 말이다. 부가적인 일을 줄이고 창작과 공연을 생활에 최대한 붙일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다. 아, 첫 EP 는 완판 했었지만 이번에 레코드 페어에서 다시 판매할 예정이다. 까지 찍을 돈은 없고.
기타 레슨을 할 때도 나는 연주하는 방법을 직접 가르치거나 하지는 않는다. 혼자 집에서 연습할 수 있는 정도로 안내를 해주는 식이다. 블루스 기타를 배우고자 하는 분이 딱 한분 있었는데 그분 하고는 장르 얘기나 주법에 관한 이야기를 즐겁게 했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기타 강습을 대폭 줄이고 있다. 당장 수입이 생긴 건 아닌데, 어떻게든 되겠지.
기회가 되면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 피아노가 정말 할 수 있는 영역이 넓은데, 이걸로 블루스를 해도 굉장히 좋을 것 같다.
글. 윤희성 nine@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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