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스크린에서 만나온 지도 벌써 20년이 넘게 흘렀다. 하지만 한국 관객들에게 브래드 피트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나 먼 ‘할리우드 스타` 였다. 마침내 그를 한국 땅에 불러들인 공은 11월 17일 개봉을 앞둔 영화 <머니볼>에 있다. 수줍은 수인사와 함께 기자들 앞으로 등장한 브래드 피트는 <머니볼>의 패기 넘치는 야구 단장 빌리 빈보다는 <가을의 전설>의 쓸쓸하고 자유롭던 트리스탄에 더 가까웠다. 헝클어진 긴 금발 머리에 마음대로 자라게 놔둔 듯한 수염, 숲으로 들어가 곰과 사투를 벌였던 그 아름다운 남자가 살아남았다면 16년 후 저런 모습이었을까. 물론, 전설이 된 미소년보다는 살아서 점점 깊어지는 배우가, 멀리 반짝이는 별보다는 눈 앞의 브래드 피트가 더 좋은 법이다. 그와 마주한 1시간을 여기 공유한다.
<머니볼>은 야구의 역사를 바꾼 혁신적인 이론에 대한 영화다. 브래드 피트: 내가 연기한 빌리 빈은 정말 야구계에 혁신을 가져왔던 사람이다. 단지 작은 변화, 몇 도의 각도 차이 일 수도 있지만, 선수의 가치를 평가하는 방법에 근본적인 변화를 주었다. 그의 이론은 우리의 가치 체계의 오류를 발견하게 했다. 즉 기존 시스템에서 재능이 없고 능력이 부족하다고 평가 받은 선수들에게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해 그들이 다시 야구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도입한 거다. 이 시스템은 단지 야구 뿐 아니라 스포츠 전반에 영향을 주었다. 또한 그들이 필요에 의한 혁신을 이뤄냈다는 점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물론 애초에는 예산이 적은 팀이 그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적용된 이론이었는데 이제는 예산이 많은 팀들도 똑같은 이론을 적용하기 때문에 또 다시 불공평한 경쟁이 야기된다는 점이 상당히 아이러니 하다는 생각이 든다.
빌리 빈의 얼굴에서 ‘머니볼 이론’에 대한 확신과 불안이 동시에 읽혔던 연기가 좋았다. 그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을 조화시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브래드 피트: 나 역시 경쟁심이 굉장히 강한 사람이라 이런 극한의 상황에서의 경쟁이라는 점에 상당히 공감했다. 젊은 시절 빌리 빈은 잠재력을 가진 전도유망한 야구선수였다. 하지만 이후 많은 실패를 한다. 빌리는 카리스마도 있고 자신감도 있지만, 그 내면에는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이 이론을 통해서 성공하고 싶은 내적인 갈등이 분명히 있다. 그 불안과 확신 가운데 밀고 당기는 힘이 분명히 존재한다. 마이클 루이스의 책 <머니볼>을 상당히 흥미롭게 읽었다. 야구계에 수많은 팀 중 어떤 팀은 다른 팀의 예산의 1/4밖에 안 된다. 그런데 어떻게 경쟁을 할 수 있겠는가. 결국 예산이 적은 팀이 많은 팀과 싸우는 데는 똑같은 규칙과 똑같은 방식으로 경쟁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서 새로운 경쟁의 패러다임을 적용하게 된 거다. <머니볼>은 야구 안에 있는 비효율성을 발견하게 되고 새로운 가치를 발견한 남자가 그 새 아이디어를 적용해서 자신 안의 새로운 자신감을 발견하고 찾아가는 이야기다.
“개인적이고 조용한 승리에 매력을 느꼈다”
브래드 피트: 배우로서 나만의 ‘머니볼 이론’이라면 늘 스토리를 고려하는 것이다. 나에게는 이 시대를 알릴 수 있는 티켓이 주어졌다. 결국 시대를 반영하는 이야기가 무엇일까, 어떤 메시지를 가지고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를 항상 고민을 하고 있다. 또한 동시에 누구와 이 작업하는가에 대해서도 항상 생각한다. 출신 학교를 따져 묻는 식의 경쟁을 하기보다는 다양하고 재능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즉 캐스팅에서도 ‘머니볼 이론’이 적용되는 셈이다. 유명 배우를 캐스팅해서 영화를 성공시키는 것보다는 다양한 재능이 있는 배우들을 발견해서 함께 작업하는 것이 매력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누구나 본인의 작품을 제작할 수 있는 디지털 시대니까 다양한 재능들이 더 많이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내 스스로 즐기고 내세울 수 있는 건 차별화다. 어떻게 하면 그저 대체 가능한 부품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차별화된 연기를 할 수 있을까. 나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그 유기적인 결과물에 대해 늘 고민을 하고 있다.
영화 속 딸이 빌리에게 불러주는 노래 ‘The Show’ 가사에 <머니볼>의 주제가 모두 담겨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브래드 피트: 맞다. 이 노래의 가사 안에 영화의 주제가 잠재되어 있다. 처음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이 이야기가 보여주는 ‘개인적인 승리’에 상당한 매력을 느꼈다. 어쩌면 요즘 시대는 우승이나 수상처럼 뉴스에 나올 법한 승리에만 지나치게 경도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머니볼>은 모두가 알 수 있는 승리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의미 있는 개인적이고 조용한 승리를 지지하는 영화다.
‘머니볼’이 이론적으로 정립된 세계라면 영화 속 당신의 연기는 계산되지 않는 순간에 감동을 주는 부분이 많았다. 혹시 연기에 대한 특별한 방법론이 있나.
브래드 피트: 실질적으로 영화를 만들 때는 과학적이고 경제적인 부분을 고려하지만 극장 안에서 누구도 과학과 경제를 생각하지는 않는다. <머니볼>은 하루에 12시간에서 16시간을 촬영하는 강행군을 했는데 그걸 이겨내기 위해서 커피를 많이 마셨다는 것이 빌리를 연기하는데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
브래드 피트 하면 언제나 미남의 대명사였다. 물론 여전히 잘생긴 외모지만 나이 드는 건 어떤가.
브래드 피트: 나는 나이 먹는 것이 좋다. 나이와 함께 현명함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젊음과 현명함 중 선택하라고 하면 나는 언제나 현명해지는 쪽을 택할 것이다. 특히 아버지가 되고 나서 많이 변한 것 같다. 아이가 생기면서 나 자신을 더 잘 관리하게 되고 아이들과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실제로 어떤 야구 팀의 팬인가?
브래드 피트: 물론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4, 5년 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콜리세움 경기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올해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세인트 루이스 카디널스를 제일 좋아한다. 어린 시절 미주리에서 자랐는데 5시간 정도 운전해 가면 닿을 수 있는 가장 근교에 있었던 팀이였다. 특히 이번 월드시리즈 6차전은 아무리 야구를 과학적으로 분석한다 해도 야구란 결국 사람과 이런 마법적인 순간 때문에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보여준 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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