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버스의 달걀이라는 말도 있지만 정말 좋은 아이디어는 말도 안 되는 무엇이 아니라 ‘아니, 저 간단한 걸 왜 여태까지 생각하지 못했지?’라는 생각이 드는 아이디어다. 복잡하거나 난해하지 않은, 정말 직관적인 아이디어. 갑자기 뭔가에 몰두하거나 홀릴 때마다 머리에 달린 정신줄을 진짜로 놓아버리는 웹툰 ‘놓지마 정신줄’의 캐릭터들이 그렇다. “처음 만화를 기획할 때 독특한 캐릭터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욕은 앞서는데 막상 결과는 못 내는 지지부진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어요. 그러다 ‘정말 정신줄을 놓겠네’라는 발상이 우연히 떠올랐고, 그쪽을 잘 발전시켜보자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걸 시각적으로 표현하긴 쉽지 않았어요. 줄을 끌어안고 있는 설정도 있었고, 타고 있는 설정도 있었는데 머리카락으로 가상의 줄을 잡고 있는 설정이 나오는데 무려 1년의 시간이 걸렸어요.”

‘놓지마 정신줄’의 스토리를 맡은 신태훈 작가의 말은 심플한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 그와 작화 파트너 나승훈 작가가 얼마나 긴 우회로를 돌았는지 짐작케 한다. 하지만 만약 그 기발함 하나만으로 버티려 했다면 2년여의 시간 동안 연재를 이어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중점을 둔 건 정신줄을 놓고 싶어 하는 세대를 구분하는 것’이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정신, 정주리 남매를 중심으로 한 주요 캐릭터들은 과장됐지만 현실적인 어떤 압박과 오해의 순간들을 만나며 정신줄을 놓는다. 돈줄 연구회가 재물 걱정을 해결해주겠다며 정 과장을 현혹할 때, 잇지 않으면 중간고사를 망친다는 댓글을 주리가 봤을 때처럼. 무시무시한 재벌 3세 앨리스나 최면왕 김최면 같은 황당한 캐릭터들이 등장하지만 일상툰에 가까운 공감을 주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다음은 만화 속 인물들처럼 가끔 정신줄을 놓는 우리들을 위해 신태훈 작가가 골라준, 놓았던 정신을 수습해주는 음악들이다.




1. 박용규 퀄텟(Park Yong Kyu Quartet)의 <1집 First Morning>
“저는 평소 가사가 있는 곡을 들으면 잘 되던 집중도 흐트러지고 그 곡에만 관심이 가는 스타일이라, 자연스레 연주곡 위주로 많이 듣는 편이지요. 장르는 크게 구애받진 않지만 아무래도 연주곡이 많은 재즈와 뉴에이지 류를 많이 선호하고 있습니다. 그루브감이 좋은 보사노바 리듬을 좋아하고요. 박용규 퀄텟의 ‘Morning’은 근 10년 가까이 들어온 연주곡인데요, 시나리오나 책을 쓰다가 막히면 조용히 들어보는 곡이에요. 처음 이 곡을 접했던 건, 우연히 오랜 친구가 자신만의 오리지널 트랙이라 모아놓은 음반을 틀었을 때인데 곡이 너무 좋아 뮤지션에 대한 정보를 구했지만 최근에서야 박용규 퀄텟의 1집 < First Morning > 수록곡이란 걸 알게 됐어요.”



2. Acoustic Alchemy의 < This Way >
신태훈 작가가 두 번째로 추천한 곡 역시 인스트루멘탈(Instrumental) 밴드인 어쿠스틱 알케미의 ‘Slampop’이다. “어쿠스틱 알케미의 앨범을 처음 접하게 된 건 2007년 홍콩에 출장을 갔을 때였어요. 습한 기후와 더위에 심신이 다 지쳐서 호텔에서 내리 쉬고 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냉방병까지 찾아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어요. 정말 미치겠더라고요. 계속 누워 있다가는 죽을 거 같아 어떻게 해서든 몸은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호텔 근처 레코드숍을 찾았어요. 컨디션도 안 좋은데 점원이 와서 ‘뭘 찾느냐?’는 질문에 답하기도 귀찮았던 저는 급히 근처 신곡 코너의 헤드셋을 집어 들었죠. 그 때 흘러온 곡이 어쿠스틱 알케미의 ‘Slampop’였어요. 듣는 것만으로도 바람을 느낄 수 있다는 걸 그 때 처음 느꼈어요. 지금도 컨디션 난조가 올 때면 ‘Slampop’을 듣곤 해요.”



3. Kotaro Oshio의 <3집 Be Happy>
“몇 해 전, 핑거스타일 기타 연주가 한창 인터넷을 달궜던 시기에 우연히 알게 된 게 기타리스트 오시오 코타로였는데 그의 음반 < Be Happy >를 듣고 ‘Misty Night’를 좋아하게 됐어요. 곡이란 듣고 해석하는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여지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핑거스타일 특유의 스트로크에서 느껴지는 힘과 서정적인 리듬이 너무 좋아요. 같은 앨범에 실린 곡 ‘Angel`s Sunday’도 강력 추천하는 곡입니다.” 한국의 핑거스타일 연주 팬들에게는 워낙 잘 알려진 연주자라 ‘고달호’라는 한국식 별명도 얻은 코타로는 탁월한 연주 테크닉을 자랑하면서도 누구나 친숙하게 들을 수 있는 멜로디를 뽑아낸다. 추천곡인 ‘Misty Night’를 비롯해, 잘 알려진 넘버 ‘Twilight’을 통해 그의 서정적 감성을 확인할 수 있다.



4. 보드카 레인(Vodka Rain)의 < Flavor >
이번에는 가사가 있는 곡이다. 신태훈 작가는 보드카 레인의 가장 신나는 넘버 중 하나인 ‘100퍼센트’를 골라주었다. “별 다른 수식어 필요 없이, 그냥 마구 기운 나고 신나는 곡이에요. ‘놓지마 정신줄’ 원고를 마감한 후에 듣는 ‘100퍼센트’는 시원한 생맥주 한 잔을 확 넘긴 기분이랄까요? 최고예요.” 좀 더 즐겁게 일을 하기 위해 일하며 신나는 음악을 들을 때도 있지만, 때론 모든 것을 다 털고 나서 가벼운 마음으로 자축하듯 듣고 싶은 음악도 있는 법이다. 아마 신태훈 작가에게 ‘100퍼센트’는 후자인 듯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라는 수필에서 모티프를 얻어 만들어진 곡으로 통통 튀는 리듬감이 돋보이는 곡이다.



5. Lighthouse Family의 < Greatest Hits >
신태훈 작가가 추천하는 마지막 곡은 영국의 팝 듀오인 라이트하우스 패밀리의 ‘Ocean Drive’다. “라디오에서 우연히 흘러나오는 곡이 너무 좋아서 순간적으로 어플로 검색한 곡이에요. 그렇게 ‘Ocean Drive’라는 제목을 알게 된 뒤 플레이리스트로 등록하고 계속 듣고 있는 곡입니다. 보이스 톤이 너무 매력적인데 여러분도 꼭 한 번 들어보셨으면 좋겠어요.” 힘 있진 않지만 그루브가 느껴지는 어쿠스틱 기타 스트로크에 서정적 건반 연주가 더해지며 시작되는 이 곡은 신태훈 작가가 ‘매력적’이라 말한 툰데 바이예우(Tunde Baiyewu)의 멋진 중저음의 목소리가 반주에 정말 편안하게 얹히며 리드미컬하게 흘러간다.




최근 ‘놓지마 정신줄’은 ‘정줄 놓은 작가툰’ 편으로 200회를 자축했다. 하지만 200이라는 숫자보다 중요한 건, P.S로 남겨놓은 작가의 말이다. ‘201화도 애독해주세요.’ 그렇게 다음 한 회를 연재하는 과정이 있기에 200이라는 숫자가 가능하고 300회도 언젠가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각각의 개성을 가진 인물들을 만들고 나니 저절로 인물 간 갈등이 생기고 자연스레 스토리 라인이 구축”되는 과정을 통해 앨리스는 정신과 친구가 되고, 주리도 훈남 남자친구가 생겼으며, 여전히 정 과장은 퇴근길에서조차 오해를 사며 고된 하루를 버티고 있다. 그래서 ‘놓지마 정신줄’의 한 회, 한 회는 우리의 하루하루를 닮았다. 비록 무인도에 떨어지거나, 말도 안 되는 물가 때문에 순간순간 정신줄을 놓게 되는 순간들이 있지만 그래도 다시 정신을 다잡고 지금 이곳을 살기에 삶을 꾸준히 연재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만화 속 그들도, 우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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