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송중기)는 아비 태종(백윤식)의 죽음 앞에서 말한다. “이방원이 없는 천하다.” 똘복(여진구)은 죽은 아비를 생각하며 말한다. “지켜봐 아버지.” 왕이 된 아들은 아비와는 다른 세상을 꿈꾸고, 노비의 아들은 왕의 아비에게 살해당한 것이나 다름 없는 ‘반푼이 아버지’에 대한 한을 풀기 위해 산다. SBS 에서 뿌리는 정도전이 말한 선비의 정신일 것이다. 허나 의 아들이라는 꽃을 피우는 뿌리는 그들의 아버지들이다. 정도전의 사상 역시 정도전의 동생 정도광(전노민)이, 다시 그의 아들 정기준이 조선에 뿌리내리도록 노력한다.
젊은 이도의 말대로 “오래 사는 것”은 아들이었고, 아들은 아버지가 떠난 자리에서 자신의 방법으로 설계해야 한다. 태종이 “피를 묻히며” 조선을 세웠다면 세종(한석규)은 말과 법으로 다스린다. 태종이 정도전의 가족들을 죽이려 한다면 세종은 구해서 나라의 기둥으로 삼으려 한다. 태종은 마방진을 푸는 대신 마방진을 모두 엎고 ‘ㅡ’ 하나만 남겼다. 세종은 끝끝내 마방진의 숫자들을 모두 이용해 정답을 낸다. 아버지는 칼로 신하들을 죽이며 패권을 만들었고, 아들은 경연을 통해 모든 신하의 의견을 들으며 통치하려 한다. 아버지의 세계를 극복하려는 왕과 오히려 아버지를 지키며 살아야 했던 노비의 아들, 아버지의 뜻을 잇기 위해 사는 선비. 는 각각 다른 계층의 아들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아버지를 잇고, 넘어서고, 결국 아버지 없는 세상을 새롭게 만들어갈 것이다.
대화와 설득의 세종이 던지는 강한 질문 김영현, 박상연 작가의 전작 MBC 은 덕만(이요원)과 김유신(엄태웅)이 어떻게 미실(고현정)을 이겨내는지에 대한 과정을 보여줬다. 덕만은 미실과의 대립을 통해 정치를 배우고, 김유신을 비롯한 젊은 화랑들은 정치가로 변모한다. 그점에서 과 는 마치 세대와 시대에 대한 2부작처럼 보인다. 에서 새로운 세대는 혁명을 시도했고, 의 아들들은 통치를 고민한다. 의 주인공이 정조가 아니라 세종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여러 드라마와 영화에서 정조는 쓰러져가는 나라를 바로 세우려는 개혁군주였다. 그는 개혁 그 자체에 힘을 쏟아 부어야 했다. 하지만 세종은 왕권을 강화했고, 한글을 만들었으며, 백성을 배불리 먹였다. 그리고, 아버지처럼 신하들을 죽이지 않았다. 세종은 정당한 과정과 훌륭한 결과를 모두 이뤄낸 인물이었고, 그 결과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것으로 이어졌다. 개혁만으로는 안 된다. 성과를 내야 한다. 성과만으로는 안 된다. 공정한 과정을 따르면 누구나 만족할 수 있는 행복의 최대 공약수를 찾아야 한다.
의 닮은꼴은 기존의 사극이 아니다. 차라리 에 가깝다. 왕과 고교야구 매니저는 각각 부강한 나라와 전국대회 진출이라는 성과를 목표로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누구도 희생시키지 않고, 대화와 설득을 통해 모두 만족하는 방법을 찾으려 한다. 그래서, 의 서두는 지금까지와의 사극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가장 정치적인 드라마가 될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극은 권력을 잡는 과정을 그리면서 지금의 권력구도를 묘사하는 방식으로 현재를 반영한다. 반면 는 아직 현시대의 어떤 모습도 묘사하지 않았다. 대신 자식의 시대, 다가올 시대의 통치철학에 대해 말한다.
국민을 대변하는 통치자가 해야 할 일 이명박 정부는 가시적 성과에 대한 국민의 바람을 업고 탄생했다. 대통령은 스스로를 ‘CEO’라 했고, ‘747 공약’으로 경제성장을 약속했으며, ‘주가 3000’으로 국민이 누리게 될 부의 크기에 대해 말했다. 그가 정말로 경제적 성과를 이룬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MBC 에서 고시원과 남의 집을 전전하며 사는 실업자 백진희의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이 그리 놀랍지 않을 만큼, 지금의 젊은 세대 중 상당수에게 빈곤과 실업은 일반적인 문제가 됐다. 또한 진보와 보수, 여당과 야당, 부유층과 빈곤층은 더욱 극단적인 대립을 보인다. 이 모든 사람들에게 보다 나은 삶을 보장하려면 경제적 성과는 물론, 다수의 약자를 함께 품을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불가능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특정 이익집단이 아닌 국민을 대변하는 통치자가 선택해야할 방향이 무엇인지는 분명하다. 그리고, 이 시기에 가 등장했다. 새로운 세대가 아버지와 다른 시대를 만들겠다고, 올바른 과정과 행복한 성과가 모두 가능하다고 말하는 드라마. 왕과 신하와 백성이 한데 모여 이야기할 수 있고, 백성이 수령을 고소하는 것이 백성의 권리라고 말하는 드라마. 김영현-박상연 작가가 정치 현실을 반영할 의도를 가졌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한 시대를 세대와 통치의 관점으로 이야기하는 작품이란, 그 자체로 정치적인 의미를 담는다. 그리고, 모두가 다음의 ‘정치’에 대한 선택을 앞두고 있을 때 통치철학에 대해 말하는 드라마가 시작됐다. 정말 현실에서도 세종의 정치는 가능할 것인가. 어쩌면 우리는 를 보며 정치에 대해 말하게 될지도 모른다.
글. 강명석 기자 two@
젊은 이도의 말대로 “오래 사는 것”은 아들이었고, 아들은 아버지가 떠난 자리에서 자신의 방법으로 설계해야 한다. 태종이 “피를 묻히며” 조선을 세웠다면 세종(한석규)은 말과 법으로 다스린다. 태종이 정도전의 가족들을 죽이려 한다면 세종은 구해서 나라의 기둥으로 삼으려 한다. 태종은 마방진을 푸는 대신 마방진을 모두 엎고 ‘ㅡ’ 하나만 남겼다. 세종은 끝끝내 마방진의 숫자들을 모두 이용해 정답을 낸다. 아버지는 칼로 신하들을 죽이며 패권을 만들었고, 아들은 경연을 통해 모든 신하의 의견을 들으며 통치하려 한다. 아버지의 세계를 극복하려는 왕과 오히려 아버지를 지키며 살아야 했던 노비의 아들, 아버지의 뜻을 잇기 위해 사는 선비. 는 각각 다른 계층의 아들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아버지를 잇고, 넘어서고, 결국 아버지 없는 세상을 새롭게 만들어갈 것이다.
대화와 설득의 세종이 던지는 강한 질문 김영현, 박상연 작가의 전작 MBC 은 덕만(이요원)과 김유신(엄태웅)이 어떻게 미실(고현정)을 이겨내는지에 대한 과정을 보여줬다. 덕만은 미실과의 대립을 통해 정치를 배우고, 김유신을 비롯한 젊은 화랑들은 정치가로 변모한다. 그점에서 과 는 마치 세대와 시대에 대한 2부작처럼 보인다. 에서 새로운 세대는 혁명을 시도했고, 의 아들들은 통치를 고민한다. 의 주인공이 정조가 아니라 세종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여러 드라마와 영화에서 정조는 쓰러져가는 나라를 바로 세우려는 개혁군주였다. 그는 개혁 그 자체에 힘을 쏟아 부어야 했다. 하지만 세종은 왕권을 강화했고, 한글을 만들었으며, 백성을 배불리 먹였다. 그리고, 아버지처럼 신하들을 죽이지 않았다. 세종은 정당한 과정과 훌륭한 결과를 모두 이뤄낸 인물이었고, 그 결과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것으로 이어졌다. 개혁만으로는 안 된다. 성과를 내야 한다. 성과만으로는 안 된다. 공정한 과정을 따르면 누구나 만족할 수 있는 행복의 최대 공약수를 찾아야 한다.
의 닮은꼴은 기존의 사극이 아니다. 차라리 에 가깝다. 왕과 고교야구 매니저는 각각 부강한 나라와 전국대회 진출이라는 성과를 목표로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누구도 희생시키지 않고, 대화와 설득을 통해 모두 만족하는 방법을 찾으려 한다. 그래서, 의 서두는 지금까지와의 사극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가장 정치적인 드라마가 될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극은 권력을 잡는 과정을 그리면서 지금의 권력구도를 묘사하는 방식으로 현재를 반영한다. 반면 는 아직 현시대의 어떤 모습도 묘사하지 않았다. 대신 자식의 시대, 다가올 시대의 통치철학에 대해 말한다.
국민을 대변하는 통치자가 해야 할 일 이명박 정부는 가시적 성과에 대한 국민의 바람을 업고 탄생했다. 대통령은 스스로를 ‘CEO’라 했고, ‘747 공약’으로 경제성장을 약속했으며, ‘주가 3000’으로 국민이 누리게 될 부의 크기에 대해 말했다. 그가 정말로 경제적 성과를 이룬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MBC 에서 고시원과 남의 집을 전전하며 사는 실업자 백진희의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이 그리 놀랍지 않을 만큼, 지금의 젊은 세대 중 상당수에게 빈곤과 실업은 일반적인 문제가 됐다. 또한 진보와 보수, 여당과 야당, 부유층과 빈곤층은 더욱 극단적인 대립을 보인다. 이 모든 사람들에게 보다 나은 삶을 보장하려면 경제적 성과는 물론, 다수의 약자를 함께 품을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불가능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특정 이익집단이 아닌 국민을 대변하는 통치자가 선택해야할 방향이 무엇인지는 분명하다. 그리고, 이 시기에 가 등장했다. 새로운 세대가 아버지와 다른 시대를 만들겠다고, 올바른 과정과 행복한 성과가 모두 가능하다고 말하는 드라마. 왕과 신하와 백성이 한데 모여 이야기할 수 있고, 백성이 수령을 고소하는 것이 백성의 권리라고 말하는 드라마. 김영현-박상연 작가가 정치 현실을 반영할 의도를 가졌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한 시대를 세대와 통치의 관점으로 이야기하는 작품이란, 그 자체로 정치적인 의미를 담는다. 그리고, 모두가 다음의 ‘정치’에 대한 선택을 앞두고 있을 때 통치철학에 대해 말하는 드라마가 시작됐다. 정말 현실에서도 세종의 정치는 가능할 것인가. 어쩌면 우리는 를 보며 정치에 대해 말하게 될지도 모른다.
글. 강명석 기자 t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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