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C ‘3대 기타리스트 특집’을 보고 있노라니 자꾸만 KBS 참가자들이 생각났어요. 그 대단한 전설들의 삶도 힘겹기 그지없었다는데 무명인 참가자들의 삶은 오죽 갑갑할까 싶어서 말이죠. ‘3대 기타리스트 특집’에는 우리나라 메탈 음악의 효시 격인 시나위의 신대철 씨, 시나위가 80년 대 록 음악의 불씨를 놓았다면 그 불을 지펴 올렸다는 부활의 김태원 씨, 당시 일본 뮤지션들까지 주목했다는 백두산의 김도균 씨, 거기에 부활과 시나위에서 보컬을 맡았던 김종서 씨가 함께 출연했는데요. 세분의 전설이 들려준 기타 연주는 역시 명불허전, 감동이었습니다. 그분들 모두가 요즘 를 비롯한 각종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심사위원으로, 코치 또는 멘토로 활약 중이십니다. 반가운 일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전설의 뮤지션들이 음악 무대가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으로 다시금 주목받게 되었다는 점은 서글프기도 해요. 밴드 음악이 대중으로부터 외면 받는 동안 그나마 보컬리스트들이야 머리를 자르고 대중 앞에 설 기회가 주어졌다지만 연주자들의 입장은 사뭇 달랐다죠? 설 자리가 없어 음반 세션 녹음으로 최소 생활을 연명했다는 신대철 씨, 음악으로 관심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차비가 없어 걷고 또 걸어야 했던 상황이 견딜 수 없어 죽음까지 생각했다는 김태원 씨, 가슴이 아파 차마 그 시절 얘기는 입에 담지 못하겠다는 김도균 씨, 전설적인 뮤지션들의 처지가 그리 비참하였을 진데 여타 무명 음악인들의 처지야 두 말하면 잔소리가 아닐는지요.
음악 때문에 가정에 소홀한 남편, 고민이 될 것 같아요

그런 대중의 외면 속에서도 그 많은 밴드들이 자생력 있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니, 참으로 가슴 뭉클한 감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선에 무려 600팀이 넘게 참가했으니 말이에요. 하지만 예상대로 대부분의 참가자들의 생활은 녹녹치가 않더군요. 물론 톡식의 김슬옹 군이나 게이트 플라워즈의 염승식 씨처럼 가족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경우도 있다지만 대다수는 집안의 격렬한 반대며 생활고 등, 갖은 고충을 안은 채 음악 활동을 하는 것으로 보였어요. 하기야 저 역시 자식이 음악을 한다면, 더구나 재능이 엿보인다면 물심양면 지원을 해줄 마음이 있지만, 글쎄요. 남편이 음악에 미쳐 가정을 소홀히 한다면, 그건 다시 고민해봐야 할 문제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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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악한 현실 속에서 아내들의 희생이 너무나 크지 싶네요

하지만 솔직히 그분들께 변치 않고 지금처럼 응원해주시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로 인해 주목을 받는다한들 밴드 음악이 호구지책이 되어줄 리는 없다고 하니까요. 사람의 일은 동전의 앞뒷면과는 달라서 그 어떤 일에도 장점과 단점, 안과 바깥을 모두 논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이 열악한 현실 속에서의 밴드 활동은 가족의, 특히 부인의 희생이 너무나 크지 싶네요. 저는 우리나라 밴드 음악이 이처럼 굳건히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데엔 전설들 못지않게 뿌리가 되어준 무명의 뮤지션들의 희생 또한 컸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적인 수준의 지원이 뒤따라 준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이상 희생과 갈등은 끊임없이 이어질 수밖에 없겠죠. 한상원 코치의 말대로 무대가 그동안 속 끓여온 가족 여러분들께 선물이 되어 준다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모처럼 일기 시작한 밴드 음악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지지 않고 쭉 이어갈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힘을 보탰으면 합니다.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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