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 바람 중에 결국 사내의 외투를 벗긴 쪽은 해였다. 문샤이너스는 공연장에서 관객들을 벌떡 일어나게 만드는 이글거리는 해 같은 밴드다. 냉철하게 사유하고 심각하게 각성을 요구하기보다는 일단 넘치는 에너지로 사람들의 본능을 깨우는 이들은 그래서 ‘앨범보다 공연이 더 좋은 밴드’로 통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이 최근 발표한 2집 는 앨범 안에 공연의 열기와 흥겨움까지도 담아낸 성취를 보여주었다. 공연을 할 때는 “생체에너지를 쓴다”(차승우)며 비장한 표정을 짓다가도 체력 관리의 비법으로는 “위스키와 소주… 그리고 나는 맥주”(최창우)라는 엉뚱한 농담을 던지기도하는 문샤이너스를 만났다. 이야기를 할 뿐인데도 이들에게서는 이글이글 에너지와 멈출 수 없는 흥겨움이 느껴졌다. 참 젊은 밴드다.

앨범이 나오기가 무섭게 단독 공연을 했는데, 좌석제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차승우 : 앨범에 대한 피드백이 모아지기 전에 급하게 한 감이 없지 않았다. 장소도 좀 더 넓은 공연장을 찾다 보니 좌석제가 불가피했고. 그래도 팬들이 그간 오면서 많이 조련된 것 같았다. 첫 곡을 하자마자 다들 일어나서 클럽과 거의 유사한 호흡을 갖고 공연을 할 수 있었다.

사실 공연은 여름 동안 페스티벌에서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 시기에 앨범이 나와도 분위기가 좋았을 텐데.
차승우 : 한창 여름 무렵에 발표를 했어야 했는데 살짝 늦어졌다. 우리도 그렇고 이건 밴드들의 생리인데, 여름을 목표로 하면 늦여름내지는 가을에 나오는 법이다.

“연애 관계의 이면을 포착한 노래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문샤이너스 “우리의 철학은 쉽고 재미있는 걸 하자는 것”
문샤이너스 “우리의 철학은 쉽고 재미있는 걸 하자는 것”
첫 앨범은 EP였고, 정규 1집은 2CD였다. 그에 반해 이번 앨범은 인트로부터 히든트랙까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앨범의 구성을 갖춘 느낌이다.
차승우 : 지난 EP나 1집이 실험대의 역할을 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뭔가 백과사전을 보는 느낌이었을 거다. 이게 록앤롤입니다, 이게 로커빌리구요. 이제는 제할 건 제하고 가장 중요한 것만 취할 수 있는 능력이 어느 정도 배양되었다. 그리고 사실은 앨범이 갖고 있는 유기적인 흐름 같은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럽게, 혹은 우연히 얻어진 결과가 상당히 크다. 다만, 한 시즌에 만들어진 노래들의 모음집으로서의 결과물이니까 어쨌든 관계는 서로 갖고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그저 순서만 정리하면 되는 거였다.

그 순서 덕분인지 앨범을 전체적으로 죽 들을 수 있게 하는 힘이 있다.
차승우 :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항상 앨범의 콘셉트나 완성도에 대한 아이디어는 갖고 있지만, 그게 늘 구현이 되는 건 아니니까. 그런데 이번 앨범은 100%는 아니더라도 최대한 우리가 뭘 하려고 했는지는 드러났을 거라는 확신은 있다.

그런 점에서 첫 트랙이야말로 앨범의 의도를 가장 확연히 보여주는 곡일 텐데, 굉장히 설정이 강하다.
차승우 : 약간 B급 호러물의 정서를 시도해보고자 한 건데, 인트로로서는 가장 적합한 곡이 아닐까 생각한다. 처음부터 그런 의도로 만든 곡은 아닌데 그냥 이 노래밖에 없더라.
백준명 : 제목이 ‘나방인간의 비상’이지 않나. 나방을 싫어하는 느낌을 음으로 표현 한 거다.

‘검은 바다가 부른다’도 대상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된 곡이라고 들었는데, 부정적인 느낌에서 출발한 노래들이지만 결과물은 마냥 어둡지 않다.
차승우 : 재미있는 게, 처음에 뭔가 곡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뼈대를 들고 오면 각자 덧입히기 작업을 한다. 그 때는 나중에 코끼리가 될지 맘모스가 될지 모르는 건데 그 과정 자체를 되게 즐기면서 했던 것 같다.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양상으로 가면서 나도 상상도 못했던 결과물이 나오기도 하고.
백준명 : 모든 예술 활동이 그런 것 같다. 그림이나 사진이나 작가의 의도를 담고 작품을 만들었으나 사람들이 느끼는 바는 다 다를 수밖에 없지 않나. 그러 과정이 재미있다. 그런데 나방은 싫다.

특별한 에피소드라도 있는 건가. (웃음)
차승우 : 어렸을 때부터 싫었다. 불결하고. 동선을 파악할 수 없고, 비행하는 형태자체도 너무 무섭고. 포비아 수준이다.
백준명 : 우리 둘이 미친다. 나타나면 도망가고.
차승우 : 어렸을 때 내가 자고 있으면 누나가 컬러 곤충 백과사전에서 나방이 나와 있는 페이지를 찾아서 내 눈 앞에 펼쳐 놓고 놀리고는 했다. 정말 최악이었다.

전반적으로는 가사의 화자가 힘을 빼고 말하는 느낌도 있다. 연애에 관해서는 좀 ‘찌질’하게 보이기도 하고. (웃음)
차승우 : 거창한 세계보다는 조금 더 일상으로 내려온 부분은 있다. 내가 뭔가를 느끼고 인식해서 가사를 쓰는 건 좀 무리가 있고, 자연스럽게 나와야 하는 거라서.
백준명 : 다큐멘터리다. 현장 고발. 리얼 티비. (웃음)
차승우 : 연애에 대한 노래를 쓰고 싶기는 했는데 일반적인 러브송들은 널렸으니까, 연애 관계의 이면을 포착한 노래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래서인지 ‘모텔’이 키워드처럼 보이기도 한다.
차승우 : 젊은이들의 밤에 있어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부분이기도 하고. (웃음) 처음에 ‘모텔 맨하탄’이라는 제목을 정했을 때도 차라리 ‘호텔 맨하탄’으로 하라는 말이 많았다. 그런데 모텔이라는 이미지가 주는 게 분명히 있다. 그게 아니면 안 되는.
백준명 : 홍대에는 의외로 모텔이 없다. 그래서 갈망하는 것일 수도 있지.

“밴드 안에서 방법을 알아내야 한다”
문샤이너스 “우리의 철학은 쉽고 재미있는 걸 하자는 것”
문샤이너스 “우리의 철학은 쉽고 재미있는 걸 하자는 것”
제목이 문장인 경우는 메시지가 더 직접적으로 다가오는데.
차승우 : 특별한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고, 제목을 정하는 게 알고 보면 되게 까다로운 작업이다. 어떻게 해도 유치해지는데, 귀찮아서 그냥 문장으로 나열한 부분도 있다.

그 ‘귀찮다’는 표현은 지난 앨범의 무거움과 상당히 대비된다.
차승우 : 그 트라우마에서 좀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서 2집은 아예 처음부터 기대를 하지 않고 시간의 흐름에 맡기려고 했다. 원래 록음악의 특징 중에 하나가 현장성 내지는 즉흥성인데, 그런 점에 기댄 부분도 있고. 그래서 녹음도 원트랙 레코딩으로 했고. 그런 그루브나 느낌이 잘 드러났다고 자평하고 있다. 불필요한 이야기를 장식처럼 달고 있을 필요는 없는 거고, 중요한 건 단순한 즐거움인 것 같다. 밴드를 하면서 철학이라고 할 만한 게 한 가지 있다면, 쉽고 재미있는 걸 하자는 거다. 다른 쓸데없는 거품을 뺐더니 그게 명확해 진 것 같다.

가볍고 단순해지기 위해서는 오히려 밴드 멤버들 간의 신뢰가 필요할 것 같다.
차승우 : 다른 걸 떠나서 연주할 때의 케미컬은 최고조라고 생각한다. 각자 개성이 있으니까 어떤 충돌이 생길지 모르지만, 일단 지금은 좋은 리듬이다.
손경호 : 그리고 그 좋은 느낌이 이 앨범에 들어 있는 것 같다.

결국 하나의 밴드로 좋은 리듬을 찾았지만, 처음 결성할 때는 대부분 이 조합을 신기해했다.
차승우 : 처음에는 다들 우리가 프로젝트인 줄 알았고, 몇 년간이나 그런 얘기가 있었다. 그런데 이제 2집 앨범까지 나왔으면 그게 아니란 걸 알겠지. (웃음)

최창우가 차승우에게 연락을 한 것이 역사의 시작이라고 들었다. 차승우라는 사람이 필요했더 건지, 그가 하는 음악을 원했던 건지 궁금하기도 했다.
차승우 : 사실 처음 만났을 때 이 사람(최창우)은 노브레인 때의 내 커리어를 하나도 모르던 상태였다. 베네수엘라에서 와서 한국말도 못하던 상태였고, 아는 사람들 소개로 만나서 술이나 마시면서 음악 얘기를 하게 된 건데, 말은 안통하면서 음악 얘기는 잘 통하는 거다. 두유라이크 누구? 하면서. 취향이 일치하니까 끌리게 되고, 술김에 나중에 꼭 같이 한번 밴드 하자는 얘기를 하긴 했었다.
백준명 : 창우 형이 어렸을 때부터 펑크 밴드를 상당히 많이 했다. 머리도 막 세우고!
최창우 : 아, 그건 농담이고, (웃음) 록 음악을 많이 좋아했다. 연주도 했고.

그렇게 모인 2인조를 도와주던 손경호는 어떤 계기로 발목이 잡힌 건가. (웃음)
손경호 : 사실 나도 뭐 놀고 있었다. 구제 받은 셈이지.
차승우 : 이 친구(백준명) 같은 경우에도 그렇고, 다들 뭘 하던 사람들인데 그 시즌에 하필 다들 낭인 같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까 만나게 되었고.
백준명 : 이 밴드의 탄생은 운명과 같은 거다. 정해져있었던 것 같다.

만나는 것까지는 운명의 힘이지만, 이후에 밴드 안에서 만족을 얻는 것은 각자의 몫이었을 텐데.
차승우 : 밴드 안에서 충분히 즐기고 있기 때문에 외부에서 결여된 무엇을 찾을 필요가 없다. 그리고 나의 경우에는 멀티태스킹이 안 되기 때문에 한 가지에만 집중할 수 있다. 두 가지 이상 하게 되면 혼란스럽고 퀄리티가 떨어진다. 앞으로도 이것만 하려고 한다.
손경호 : 그리고 만족을 못 찾아도 이 안에서 찾아야지 어쩔 수 없다. 바깥에서 찾으려고 하면 끝이 없다. 이 안에서 방법을 알아내야 한다.
차승우 : 닫혀 있으면 재미없을 것 같지 않나. 점점 찾아가는 재미가 있는데.

“사실, 펑크고 록앤롤이고 다 말장난이지 않나”
문샤이너스 “우리의 철학은 쉽고 재미있는 걸 하자는 것”
문샤이너스 “우리의 철학은 쉽고 재미있는 걸 하자는 것”
‘재미’를 강조하는데, 언제부터 음악의 재미를 확신했는지 궁금하다. 보통 기타를 처음 잡는 소년들은 야망을 갖기 마련인데.
차승우 : 처음부터 노래를 듣고 매력을 느낀 것이 그런 이유에서다. 쉽고, 재미있고,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그래서 우리 음악을 듣는 사람들도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 있고 지금까지 그런 느낌으로 왔던 것 같다.

펑크에서 록앤롤로 스타일이 변화한 것도 그런 성향 때문일까
차승우 : 어렸을 때부터 내가 하는 음악은 바뀐 게 전혀 없다고 느낀다. 변했다고 하는 사람이 많긴 한데, 그건 홍보자료의 악영향이라고나 할까. ‘차승우, 록앤롤로 돌아오다!’라고 해 버리면 기존에 했던 사운드라도 심리적으로 다르게 들리는 모양이다. 애초부터 나는 이런 음악을 했고, 노선을 갈아 탄 적도 없다. 사실, 펑크고 록앤롤이고 다 말장난이지 않나.

장르규정이 무의미하다는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펑크는 메시지를 중요하게 여겼다면 록앤롤은 그보다 유희적인 음악이다. 대척점이라는 생각을 가지는 것도 무리가 아닌데.
차승우 : 굳이 그렇게 구분을 짓자면 처음에 런던에서 펑크라는 개념이 탄생한 것도 50년대로 돌아가자는 시도였다. 록음악이 갖고 있는 2, 3분만의 에너지랄지, 가장 단순화된 형태로 돌아가자는 거였는데 그런 맥락은 같이 가는 거다. 대신, 조금 더 프로토 타입으로 돌아가자는 생각은 있었다. 펑크는 복장부터 갖춰야 할 게 많은데 지금은 오히려 더 편해진 느낌이니까. 더 자유롭게 할 수 있고.

확실히 복장은 달라졌다. (웃음) 올해 선보인 반바지는 특히나 파격적이었고.
차승우 : 반바지에 스타킹을 신어서… 조롱거리가 됐었지. 그래도 우리는 꿋꿋하게 계속 입는다. 오히려 처음의 거부감을 넘어서면서 되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왠지, 막, 이제는 버진이 아니야, 이런 느낌. (웃음)
손경호 : 중요한 건 되게 즐거웠다는 거다.
차승우 : 나중에 망토 같은 걸 입고 공연해도 좋을 것 같다. 에서 브루스 리가 했던 역할 있지 않나, 그런 복장이 멋있어 보여서 언젠가 시도하고 싶은 마음은 있다.
백준명 : 망토 입고, 가면도 쓰고 풀세트로 하면 멋질 것 같다. 그러다가 다 같이 ㅊㅘㄱ 벗고!

의상 뿐 아니라 공연에 대한 노하우도 많이 쌓였을 것 같다.
차승우 :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공연하면서 슬쩍슬쩍 놀랄 때가 있는데, ‘이 부분에서 난 또 이걸 하고 있구나’ 하는 걸 의식하면서 망가지는 거다. 보는 사람도 어디서 점프하고, 기타가 나가는지 다 알고, 그러면서 재미가 떨어지는 거다. 그래서 항상 즉흥적이려고 한다.
백준명 : 자연스럽고 현장감이 있으니까 무대 대본이 없는 게 더 매력적이다. 그게 즐겁고.

음악도 그렇고, 공연도 항상 즐겁게 결론지어진다. 그럴 수 있는 비결이 있나.
백준명 : 힘들게 사는 게 정도라고 생각들 하는데, 나는 반대다. 개미와 베짱이가 있으면 베짱이가 더 멋있지 않나. 턱시도 입고 노래하는 게 어려서부터 좋아보였다. 개미가 열심히 일 할 수 있었던 것도 베짱이가 노래를 불러줬기 때문인 거다. 물론, 아버지는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았지만. 내가 개미가 되기를 바라셨는데….
차승우 : 반작용이다. 우리도 어두운 부분이 왜 없겠나. 허풍도 치고 그러면서 사는 거지. 힘들면 이를 악물고 더 즐겁게 살아야 할 것 같다.

글, 인터뷰. 윤희성 nine@
인터뷰. 김희주 기자 fifteen@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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