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100퍼센트] 브아걸, 그리고 걸그룹은 어디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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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역사는 흥미롭다. ‘다가와서’를 부르던 시절만 해도 지금의 다비치에 가까웠던 보컬 그룹이던 그들은 조PD와의 ‘Hold the line’ 등을 통해 댄스 음악을 선보였고, 용감한형제가 참여한 ‘어쩌다’로 이른바 ‘후크송’의 유행에 합류했다. ‘아브라카다브라’는 그들이 가요계의 트렌드세터로 나서기 시작한 터닝 포인트였다. 이 곡의 심플한 전자음과 일부 단어의 반복은 슈퍼주니어의 ‘Sorry Sorry’에서 먼저 비슷하게 사용됐다. 하지만 이 곡의 비트에는 섹시할 만큼 긴장감이 흘렀고, SF영화에 나올법한 코스튬과 더불어 펼쳐지는 무대는 다른 걸그룹과 완전히 차별화됐다. 그들은 걸그룹이지만 끈적거릴 만큼 섹시하고, 트렌디하지만 파격적이었으며, 흥행과 음악적인 성과를 모두 이뤘다.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새 앨범 < Sixth Sense >는 그들의 독특한 여정의 또 다른 길이다. 앨범 전반에 사용되는 오케스트라, 브라운 아이드 걸스가 대치한 전경 앞에서 춤을 추는 뮤직비디오, 남녀 댄서들이 교대로, 다시 함께 등장하는 복잡한 동선의 무대는 모두 지금 가요계의 트렌드와 아무 상관없다. ‘아브라카다브라’가 이른바 ‘시건방춤’ 등 쉽게 기억될 수 있는 안무 위에 다소 난해한 콘셉트를 얹었다면, ‘Sixth Sense’는 난해한 음악을 더 난해하게 표현한다.

‘Sixth Sense’, 대중을 압도하려는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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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xth Sense’는 브라스까지 끌어들인 대규모 오케스트라와 프로그래밍을 통해 만들어낸 드럼 비트가, 쇼스타코비치의 곡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클래시컬한 연주와 후렴구의 디스코/펑키 리듬이 뒤섞인다. 게다가 2절이 끝난 뒤에는 미료의 랩과 함께 행진곡으로 바뀌고, 아이유의 ‘좋은 날’을 만든 작곡가 이민수의 작품답게 제아-가인-나르샤로 이어지는 ‘돌고래 목청’ 같은 고음 지르기도 있다. 1절과 후렴구, 다시 2절과 후렴구 사이에서 미료의 짧은 랩과 함께 오케스트라 연주의 흐름이 갑작스럽게 바뀌는 건 이 복잡한 곡의 전개를 위한 고육책에 가깝다. 곡으로만 바라본다면 억지스럽거나, 어디에 포인트가 있는지 애매할 수도 있다. 하지만 ‘Sixth Sense’는 사실상 3분 49초짜리 뮤지컬이다. 그룹의 멤버들은 한 명씩 등장하며 단독 무대를 가진 뒤 후렴구에서 멤버와 댄서들이 모두 모여 단순하고 힘차게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건 고전적 뮤지컬 안무다. ‘아브라카다브라’에서 번쩍거리는 선글라스를 낀 미료가 화려한 개인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면, ‘Sixth Sense’에서는 보다 일관성을 갖고 무대 전체에 연출된다.

이민수 작곡가는 가인의 ‘돌이킬 수 없는’, 써니힐의 ‘미드나잇 서커스’ 등을 통해 뮤지컬처럼 화려하고 기승전결이 있는 무대가 가능한 곡을 선보인바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뮤지컬이 아니라 걸그룹이 뮤지컬의 형식을 통해 얻게 되는 것이다. 곡부터 무대까지, ‘Sixth Sense’는 과잉이라고 할 만큼 강하고 센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연주는 디스코와 행진곡을 오가고, 뮤직비디오에는 많은 수의 전경이 등장하며, 멤버들은 랩부터 돌고래처럼 울부짖는 고음을 모두 선보인다. ‘Sixth Sense’는 첼로를 리듬 파트의 중심으로 내세운다. 보통의 첼로보다는 날렵하게, 바이올린보다는 묵직하게 녹음된 첼로 연주는 ‘Sixth Sense’가 댄스곡의 성격을 유지한 채 거대하고 웅장하게 연출될 수 있도록 만드는 접점이다. 거대하고 화려한 곡이 대규모 뮤직비디오와 뮤지컬에 가까운 무대를 통해 더욱 거대하게 표현된다. ‘Sixth Sense’는 대중을 설득하지 않는다. 대신 노래부터 무대까지 일관된 분위기를 형성하며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고, 관객은 그 세계에 압도되고, 따라하고 소비하는 대신 감상하도록 만든다.

모험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브라운 아이드 걸스, 또는 그들의 프로듀싱 팀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후크송’은 한 물 간지 오래고, 일렉트로니카 사운드도 점점 질려간다. 반면 밴드 음악이나 어쿠스틱 사운드는 아직 유행을 주도하지 못한다. 과거처럼 따라가거나 발전시킬 트렌드가 없다. 게다가 브라운 아이드 걸스는 애초에 보통의 걸그룹과는 다른 포지션에서 시작했다. 그들에게는 귀여운 이미지로 데뷔, 차츰 성숙하게 변하는 걸그룹 특유의 성장사가 없다. 새 앨범마다 콘셉트를 바꾸며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밖에 없고, 데뷔부터 ‘Sixth Sense’에 이르기까지 점차 자신들만의 색깔을 강화했다.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진짜 성장사는 트렌드를 따라가면서 여성 보컬 그룹에서 걸그룹의 시장에 편입했던 그들이 어느새 트렌드를 벗어난, 또는 트렌드를 제시하는 위치에 섰다는 사실 그 자체다.

다 자란 소녀들, 각자의 세계를 보여줄 때
[강명석의 100퍼센트] 브아걸, 그리고 걸그룹은 어디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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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Sixth Sense’는 그 대중적인 결과가 가장 흥미로운 곡 중 하나다. ‘Sixth Sense’가 성공한다면, 그건 대중이 지금 몇 년째 이어진 댄스음악의 트렌드 대신 난해할지라도 새로운 무엇을 원한다는 신호이자, 그동안 트렌드를 이끌어온 걸그룹이 터닝 포인트를 선보여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 간 가요계의 트렌드가 끝나가는 상황에서 걸그룹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켜야할 때가 왔다. ‘Sixth Sense’가 때론 의미불명으로까지 보이는 수많은 요소들을 더해 ‘거대함’ 그 자체를 보여준 것은 이런 시대를 힘으로 돌파하기 위한 강경책처럼 보인다. 트렌드의 우산이 걷히고 각각의 팀들이 드러날 때, 스스로를 부각시킬 수 있는 가장 직관적인 방법은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역설하는 것이다.

브라운아이드걸스에 앞서 나온 2NE1이 ‘내가 제일 잘 나가’라며 자신들의 위상을 강조하고, ‘Ugly’에서 강한 록 사운드와 함께 다소 뮤지컬적인 구성으로 화려하고 큰 스케일을 보여준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소녀시대는 현재 공개 중인 새 앨범의 티저 사진을 통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로, 성숙하고 차분한 모습을 보여준다. 소녀들은 자랐고, 그들을 성장시킨 트렌드는 끝나간다. 걸그룹은 이제 트렌드 대신 각자의 세계를 보여줄 때가 됐다. 다 자란 소녀들, 그리고 그들 뒤에 있는 기획사의 진짜 역량이 드러나는 건 지금부터다.

글. 강명석 기자 t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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