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 불쌍한 여인을 응원할 수가 없다" />
제아무리 의학이 발달하여 더 이상 암이 불치의 병이 아니라고는 하나, 여전히 이 병은 난치의 영역이다. 그래서 쇼타임의 드라마 의 주인공 캐시(로라 린니)는 차마 이 병을 입에 올리지도 못한다. 너무나 거대하게 인생을 짓누르는 ‘Bic C’를 불청객으로 맞이한 그녀는 당연하게도 좌절하고, 혼란스러워하며, 자기 연민에 빠진다. 그러나 그녀는 곧 죽음에 이르기 전까지 자신에게는 여전히 살아갈 날이 남아 있음을 깨닫고 서둘러 죽은 사람처럼 절망하지 않기로 한다. 뒤늦게 그녀의 암 투병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이 항암치료를 받지 않는 그녀에게 “대체 뭘 하고 있느냐”고 물었을 때, 그녀가 “난 살아가고 있어”라고 대답한 것은 다만 그녀가 숨을 쉬고 있다는 의미만은 아니었다. 죽음에 휘둘리지 않고, 거대한 C를 마냥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로 인해 삶의 정 가운데로 나아가게 된 캐시는 그래서, 웃는 얼굴로 보는 사람을 울린다.
기대를 품기에 충분했던 남다른 이야기 , 저 불쌍한 여인을 응원할 수가 없다" />
SBS 의 연재(김선아)에게서 캐시의 모습을 발견한 것은 그녀가 버킷 리스트를 작성할 때였다. 그리고 병에 관해 조급증을 내는 연재를 향해 은석(엄기준)이 6개월 시한부란 “그 전에는 안 죽는 것”이라고 단언 할 때, 드라마는 삶과 희망이라는 주제를 눈부시게 드러냈다. 나이, 재정상태, 외모까지 무엇 하나 바뀌지 않은 연재가 갑자기 멋진 남자들의 사랑을 받아도 이해 할 수 있었던 것은 다만 그녀가 가엾기 때문이 아니었다. 더 이상 참고 미룰 필요 없는 그녀의 태도는 환경이 만들어준 울타리 안에 갇혀 있는 지욱(이동욱)과 은석을 자극한다. 가장 정직하고 순수한 욕망에 충실하기로 마음먹은 여인은 탱고만큼이나 치명적인 매력을 갖게 된다. 상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업무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수에뇨에서 람세스(김광규)가 갑자기 멋진 남자로 변신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는 수많은 진부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남다른 이야기에 대한 기대를 품게 했다. 가난한 노처녀의 로맨스 판타지와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비련의 여주인공이라는 두 개의 소재는 너무나 익숙한 것이지만, 전혀 다른 방향의 시너지에 대한 희망이 엿보였기 때문이었다. 특히 그동안 다큐멘터리에서조차 암 환자의 삶을 남겨진 사람의 시선에서 바라보며 절망으로 한정 하거나, 비극을 극복해 낸 기적의 주인공으로 포장하기만 했던 방송에서 처음으로 당사자의 감정과 욕망에 집중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접근법이었다. 또한 죽음을 손에 받아들고서야 생생해지는 삶에 대한 감각, 그로 인해 후회가 곧 낭비임을 알게 되는 연재의 각성은 로맨스를 뛰어 넘는 공감을 불러일으킬 여지가 충분 했다.
진부함보다 더 심각한 의 문제 , 저 불쌍한 여인을 응원할 수가 없다" />
그런 연재가 은석을 붙들고 울었다. 그리고 그 순간 드라마는 간신히 이어오던 긴장을 무너트리고야 말았다. 물론, 연재가 언제나 한 결 같이 씩씩하고 밝은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연재가 사랑 때문에 삶을 욕심내기 시작했다는 것은 전반부의 그녀를 배반하는 전개다. 남은 시간 동안 “못 해본 일 다 해보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고 당당하게 항변하던 그녀는 급기야 친구를 앞에 두고 “사랑을 해보고 싶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지욱의 사랑을 받게 된 그녀는 순간을 만끽하는 대신 이것이 끝날 것을 두려워한다. 죽음이라는 재앙 앞에서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삶에 충실했던 그녀가 스스로를 피해자로 자처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연재가 자신을 피해자로 인식하는 순간, 그녀는 곧 가해자가 된다. 지욱을 사랑하면서 은석에게 고뇌를 호소하는 연재를 동정할 수 없는 이유는 은석의 감정과 별개로, 연재가 자신의 엄마와 똑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엄마는 자신의 무능함과 나약함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연재에게 전적으로 의존한다. 그리고 연재는 자신의 병력을 거의 유일하게 알고 있다는 이유로 은석에게 자신의 고통을 떠넘겨 버린다. 그동안 적극적으로 치료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전적으로 은석의 조언에 의존하던 그녀가 “넌 의사니까”라며 울부짖는 모습에는 어떤 의지도, 각오도 없다. 자신이 아닌 사랑에 집중하는 순간, 연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기적인 인물로 변질되어 버렸다.
그래서 의 캐시가 지극히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함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결코 이기적인 인물로 그려지지 않는다는 것은 중요한 사실이다. 수영장을 만들기 위해 땅을 팠지만, 결국 큰 구덩이로 남은 뒤뜰에서 캐시는 남편이 아닌 남자와 사랑을 나눈다. 그리고 그녀는 인생의 구덩이에서 탈출하듯 그 구덩이로부터 벗어난다. 그러나 연재의 사랑은 그녀를 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고 그녀에게 미련과 무력감을 안겨준다. 캐시의 욕망은 가족을 지탱하지만, 연재의 욕망은 주변 사람들을 비참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죽기 전에 연재가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늘었다. 본래의 장점을 다시 기억해 내기. 사랑에 앞서 그녀답게 삶을 살기 말이다.
글. 윤희성 nine@
편집. 이지혜 seven@
제아무리 의학이 발달하여 더 이상 암이 불치의 병이 아니라고는 하나, 여전히 이 병은 난치의 영역이다. 그래서 쇼타임의 드라마 의 주인공 캐시(로라 린니)는 차마 이 병을 입에 올리지도 못한다. 너무나 거대하게 인생을 짓누르는 ‘Bic C’를 불청객으로 맞이한 그녀는 당연하게도 좌절하고, 혼란스러워하며, 자기 연민에 빠진다. 그러나 그녀는 곧 죽음에 이르기 전까지 자신에게는 여전히 살아갈 날이 남아 있음을 깨닫고 서둘러 죽은 사람처럼 절망하지 않기로 한다. 뒤늦게 그녀의 암 투병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이 항암치료를 받지 않는 그녀에게 “대체 뭘 하고 있느냐”고 물었을 때, 그녀가 “난 살아가고 있어”라고 대답한 것은 다만 그녀가 숨을 쉬고 있다는 의미만은 아니었다. 죽음에 휘둘리지 않고, 거대한 C를 마냥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로 인해 삶의 정 가운데로 나아가게 된 캐시는 그래서, 웃는 얼굴로 보는 사람을 울린다.
기대를 품기에 충분했던 남다른 이야기 , 저 불쌍한 여인을 응원할 수가 없다" />
SBS 의 연재(김선아)에게서 캐시의 모습을 발견한 것은 그녀가 버킷 리스트를 작성할 때였다. 그리고 병에 관해 조급증을 내는 연재를 향해 은석(엄기준)이 6개월 시한부란 “그 전에는 안 죽는 것”이라고 단언 할 때, 드라마는 삶과 희망이라는 주제를 눈부시게 드러냈다. 나이, 재정상태, 외모까지 무엇 하나 바뀌지 않은 연재가 갑자기 멋진 남자들의 사랑을 받아도 이해 할 수 있었던 것은 다만 그녀가 가엾기 때문이 아니었다. 더 이상 참고 미룰 필요 없는 그녀의 태도는 환경이 만들어준 울타리 안에 갇혀 있는 지욱(이동욱)과 은석을 자극한다. 가장 정직하고 순수한 욕망에 충실하기로 마음먹은 여인은 탱고만큼이나 치명적인 매력을 갖게 된다. 상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업무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수에뇨에서 람세스(김광규)가 갑자기 멋진 남자로 변신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는 수많은 진부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남다른 이야기에 대한 기대를 품게 했다. 가난한 노처녀의 로맨스 판타지와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비련의 여주인공이라는 두 개의 소재는 너무나 익숙한 것이지만, 전혀 다른 방향의 시너지에 대한 희망이 엿보였기 때문이었다. 특히 그동안 다큐멘터리에서조차 암 환자의 삶을 남겨진 사람의 시선에서 바라보며 절망으로 한정 하거나, 비극을 극복해 낸 기적의 주인공으로 포장하기만 했던 방송에서 처음으로 당사자의 감정과 욕망에 집중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접근법이었다. 또한 죽음을 손에 받아들고서야 생생해지는 삶에 대한 감각, 그로 인해 후회가 곧 낭비임을 알게 되는 연재의 각성은 로맨스를 뛰어 넘는 공감을 불러일으킬 여지가 충분 했다.
진부함보다 더 심각한 의 문제 , 저 불쌍한 여인을 응원할 수가 없다" />
그런 연재가 은석을 붙들고 울었다. 그리고 그 순간 드라마는 간신히 이어오던 긴장을 무너트리고야 말았다. 물론, 연재가 언제나 한 결 같이 씩씩하고 밝은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연재가 사랑 때문에 삶을 욕심내기 시작했다는 것은 전반부의 그녀를 배반하는 전개다. 남은 시간 동안 “못 해본 일 다 해보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고 당당하게 항변하던 그녀는 급기야 친구를 앞에 두고 “사랑을 해보고 싶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지욱의 사랑을 받게 된 그녀는 순간을 만끽하는 대신 이것이 끝날 것을 두려워한다. 죽음이라는 재앙 앞에서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삶에 충실했던 그녀가 스스로를 피해자로 자처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연재가 자신을 피해자로 인식하는 순간, 그녀는 곧 가해자가 된다. 지욱을 사랑하면서 은석에게 고뇌를 호소하는 연재를 동정할 수 없는 이유는 은석의 감정과 별개로, 연재가 자신의 엄마와 똑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엄마는 자신의 무능함과 나약함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연재에게 전적으로 의존한다. 그리고 연재는 자신의 병력을 거의 유일하게 알고 있다는 이유로 은석에게 자신의 고통을 떠넘겨 버린다. 그동안 적극적으로 치료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전적으로 은석의 조언에 의존하던 그녀가 “넌 의사니까”라며 울부짖는 모습에는 어떤 의지도, 각오도 없다. 자신이 아닌 사랑에 집중하는 순간, 연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기적인 인물로 변질되어 버렸다.
그래서 의 캐시가 지극히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함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결코 이기적인 인물로 그려지지 않는다는 것은 중요한 사실이다. 수영장을 만들기 위해 땅을 팠지만, 결국 큰 구덩이로 남은 뒤뜰에서 캐시는 남편이 아닌 남자와 사랑을 나눈다. 그리고 그녀는 인생의 구덩이에서 탈출하듯 그 구덩이로부터 벗어난다. 그러나 연재의 사랑은 그녀를 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고 그녀에게 미련과 무력감을 안겨준다. 캐시의 욕망은 가족을 지탱하지만, 연재의 욕망은 주변 사람들을 비참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죽기 전에 연재가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늘었다. 본래의 장점을 다시 기억해 내기. 사랑에 앞서 그녀답게 삶을 살기 말이다.
글. 윤희성 nine@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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