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수많은 로맨스 드라마가 있다. 하지만 그 작품들을 끌어가는 기본적인 법칙은 늘 반복되고, 그럼에도 두 사람이 만나고 사랑에 빠지며 시련을 겪는 이 새로울 것 없는 과정에 눈을 뗄 수 없는 것 역시 사실이다. SBS 에서 차지헌(지성)과 노은설(최강희)이 티격태격해도 시청자들은 연애가 진전되길 기대하고, KBS 의 김승유(박시후)와 세령(문채원)이 비극적인 상황에 놓여도, SBS 강지욱(이동욱)이 이연재(김선아)와 갈등이 높아져도 결국 행복해질 거라는 기대를 한다. “아무도 알아서는 안 될” 사랑을 멈추지 못하고 비극의 정점을 찍고 있는 의 김승유-문채원, 주인공의 시한부 인생이라는 비극을 안고 있는 강지욱-이연재, 보스와 비서의 사랑을 코믹하게 만들어가고 있는 차지헌-노은설이 보여주는 연애 법칙을 짚어봤다.오해로 시작한다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의 오해는 곧 운명의 시작이다. 세령을 공주로 오해해 신경전을 벌인 김승유는 “대낮인데도 입술연지 자국을 얼굴에 묻히고 다니는 스승”이라 말하는 세령을 흥미롭게 생각한다. 강지욱 또한 오키나와 요트 위에 있는 이연재를 관광 가이드 ‘미스 리’로 오해하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이연재의 진면목을 보게 된다. 차지헌과 노은설의 이야기는 차지헌이 노은설의 정체를 미처 눈치 채지 못하면서 시작된다. 방 안에 노은설 다트판을 만든 차지헌은 노은설이 ‘미친 똥머리’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지만, 독하면서도 당찬 노은설의 모습에 호감을 갖는다. 오해로 인한 만남은 자연스레 다음 만남을 기대하게 하거나 상대방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오해가 밝혀지기 전까지 긴장감을 부여한다. 시청자들은 김승유가 세령에게 “혼인의 연을 맺은 후 말을 마음껏 탈 수 있다”고 말할 때 세령과 함께 안타까워하고, 강지욱이 진짜 ‘미스 리’를 만났냐는 관광청의 전화를 받을 때마다 집중하며 노은설의 정체를 알게 된 전 비서의 등장에 놀란다. 오해는 드라마 초반 시청자들을 집중시킬 수 있는 힘인 셈이다.
이런 모습은 니가 처음이야
여자 주인공의 해맑고 긍정적인 모습은 항상 남자 주인공의 넋을 빼앗는다. 김승유는 힘차게 그네를 타며 자유롭게 바람을 느끼는 세령을 보고 미소를 감추지 못하고 , 기방 병풍 뒤에서 잠에 든 세령의 모습에 빠져든다. 강지욱 또한 “나에게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다”고 해변을 자유롭게 뛰어다니고 매사 모든 일에 감사해 하는 이연재를 시도 때도 없이 생각하게 된다. 웬만한 장성들을 잡을 만큼 강한 주먹을 가졌지만 놀이기구를 타며 “본부장님”을 외치는 노은설 또한 차지헌의 머릿속에 박힌다. 초라해 보이는 여자에게 뺨을 맞은 까칠한 재벌남의 “나한테 이런 여자는 니가 처음이야” 발언까지는 아니지만, 여자 주인공의 예상치 못한 모습은 남자 주인공의 마음을 빼앗는 단골 장치다. 앞으로 드라마에서 여자 주인공이 해맑은 얼굴로 웃을 때, 그리고 클로즈업과 배경음악이 깔릴 때는 주위를 살펴보자. 남자 주인공은 이내 그녀에게 반할테니. ‘밀당’이 가장 쉬웠어요
‘밀당’(밀고 당기기)은 아직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지 못한 주인공들이 거치는 필수 코스다. 김승유는 전 강론의 앙갚음을 위해 세령에게 숙제와 시험을 내지만 세령은 “스승의 치졸함을 너그러이 받아들이고자 한다”며 또박또박 공격한다. 그 후 사라진 공주를 찾기 위해 김승유와 말을 타고 가지만 모른 척 먼저 가버리는 세령과 아무 말 없이 배에서 먼저 내려버리는 김승유의 모습은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강지욱 또한 이연재가 다니는 탱고학원을 기웃거리며 “오늘 학원에 못 간다고 전해달라”는 핑계로 전화를 하거나, 가수 팬미팅에서 이연재와 다른 남자의 사연을 듣고 공연 후까지 굳이 기다려 “결국 아무 사이 아니라는 거잖아요”라고 따지며 티격태격한다. 엄마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차지헌을 도와주며 “노은설 없이 아무 것도 못할” 정도로 만들어놓은 노은설은 차지헌이 보는 앞에서 앙숙 차무원(김재중)과 미련 없이 가버리며 앞으로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든다. 밀당으로 만들어진 팽팽한 긴장감은 한 쪽이 먼저 고백하는 순간까지 유지되며 보는 이를 집중하게 한다.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는 경기일수록 결과가 궁금한 법이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
김승유와 강지욱은 마음에 있는 말을 쉽게 하지 않는다. 세령을 궁녀로 생각한 김승유는 반갑게 안부를 건네는 세령과 달리 “다시는 만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고 차갑게 돌아선다. 경혜공주를 찾아간 곳에서도 “함께 한 시간이 진심으로 즐거웠다” 말하는 세령에게 “어느 여인에게나 그랬을 것”이라며 말을 자른다. 강지욱 또한 임세경이 건 소송 때문에 힘들어하는 이연재를 계속 생각하고 할 말이 있다는 이연재 연락에 어쩔 줄 몰라 하지만 결국 만났을 때는 “돈 받고 가라”며 식상한 재벌남 코드를 반복한다. 차지헌은 노은설에게 ‘대뇌변연계 편도핵’이라는 의학용어로 마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취한 차무원(김재중)과 함께 있는 노은설을 보고 “끝까지 친하게 지낼 거냐”며 귀찮게 하기까지 한다. 본인이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에게 목소리를 알아듣는 텔레파시 능력을 원하는 이들의 모습은 결국 김승유가 “그대가 싫다 해도 어쩔 수 없소”라고 말하고 강지욱이 “너 때문에 미칠 것 같으니까”라고 할 때, 차지헌이 우주 돌멩이가 머리에 박혔다고 하는 순간까지 보게 만든다. 고백할 걸 뻔히 알지만 그 순간을 기다리게 만드는 악마의 법칙. 우리 이제 사랑하게 해주세요
이들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고 해서 방심하지 말자. 앞으로 닥칠 시련과 외부 자극은 보는 이들을 더욱 가슴 졸이게 만들 것이다. “더 이상 마음을 속이지 않겠다”고 고백한 김승유와 세령은 계곡에서 시를 읊으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내지만, 김승유는 하룻밤 만에 수양대군에게 아버지와 아들, 믿었던 친구마저 빼앗기며 결국 세령이 수양대군의 딸임을 알게 됐다. “너 때문에 미치겠다”고 고백한 강지욱 또한 임세경(서효림)에게 파혼을 거론하며 이연재에게 다가가지만, 아직 이연재가 시한부 선고를 받은 사실은 모른 채 탱고로 진해지는 사랑만큼이나 큰 시련을 예고하고 있다. 는 “아무리 생각해도 널 좋아한다”고 말한 후 노골적으로 노은설 옆을 지키는 차지헌과 재벌 3세와의 사랑보다는 를 탐독하며 사원증을 지키는 것에 관심이 있는 도시 여성 노은설의 모습으로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들고 있다. 어찌보면 뻔한 시련 극복이지만, 결말을 더욱 궁금하게 만드는 드라마의 백미다.
글. 한여울 기자 six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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