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 되면 회상이 아니라 회귀다. “느껴봐 old school- 빠져봐 swimming pool- 달려봐 new school-”로 각 잡아 라임을 딱딱 맞춘 ‘썸머 타임’은 철저히 90년대 올드 스쿨 힙합에 기반한 곡이다. 간결한 드럼 비트와 신디사이저만을 바탕으로 이어지는 두 남자의 랩 스타일 또한 정직하기 짝이 없다. 한 순간에 듣는 이를 타임머신에 태워 99년 즈음의 여름 바다로 안내하는 듯한 이 노래는 99년 대학 동기로 처음 만나 12년 만에 한 팀으로 데뷔한 핫도그(Hot Dogg)의 인트로에 가까운 곡이다. 90년대 음악의 정서를 귀신같이, ‘쓸데없는 고퀄리티’로 뽑아내며 지난 해 가요계를 달군 UV의 뮤지가 이들의 오랜 친구이자 프로듀서다. 피쳐링에 참여한 UV가 직접 출연까지 해 화제가 된 ‘썸머 타임’ 뮤직비디오는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으로 바다에 뛰어들고 석양지는 바닷가에 모여 춤추며 노는 다 큰 아저씨들의 모습이 절로 미소를 자아내게 한다. 결코 짧지 않았던 시간을 돌고 돌아, 음악을 향한 끈을 놓지 않고 마침내 새로운 출발선에 선 핫도그를 만났다. 서른 줄에 접어든 신인임에도 늦은 데뷔에 대한 부담보다는 “우리는 바로 지금의 내 모습을 너무 사랑한다”고 말하는 두 남자, 웃는 얼굴만은 해맑은 힙합 소년들이다.
1981년 2월 7일에 태어났다. 부인과 애기 둘을 둔 가장이다.
96년, 투팍의 < All Eyez on Me > 앨범을 듣고 ‘아, 이제 랩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가수가 되는 게 꿈이었다. 고등학교도 예고를 갔고, 대학은 조금 다르게 방송극작과로 갔지만, 본격적으로 음악을 하게 된 건 대학 때다.
대학에서 빅몬을 처음 만났을 땐 말투나 발음 때문에 미국 물 좀 먹은 친구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문정동 로데오 거리에서 CD 사던 친구였다. 하하. 뮤지 말에 따르면 우리 음악은 90년대 LA 교포 출신 느낌이 필수 조건이라고 한다.
뮤지와 만나게 된 건 2002년, 핑클과 JTL 앨범 등을 작업한 프로듀서 집단 매드소울차일드에서였다. 나는 아티스트 막내, 뮤지는 프로듀서 막내여서 형들 씹으면서 친해졌다. (웃음) 둘 다 연습하고 만들어가는 입장이라 우리끼리도 이런저런 걸 해보곤 했다. N.W.A의 이지 이가 내 우상이다, ‘썸머 타임’에 대한 댓글 보니 “외모는 G-Funk가 나와야 될 것 같은데 노래는 쿨처럼 ‘달려봐~ 너와나~’라니”라고 하던데, 8월 말쯤 나올 미니앨범에는 웨스트코스트 G-Funk 스타일이 많이 담겨 있다.
우리의 빡빡 머리는 음악을 시작했던 스무 살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의미로 깎은 거다. 집에서 바리캉으로 각자 알아서 미는 거라 돈도 안 들고 미용실 갈 시간도 절약된다. 그런데 머리, 수염, 의상 때문에 부인이나 아기까지 괜히 이상한 시선을 받게 될까봐 가족들과 함께 다닐 땐 주로 모자를 쓴다.
그런데 얼마 전에는 아버지의 한 지인께서 회색 힙합 운동복 바지에 흰 박스 티셔츠를 입고 있는 나를 보고 아버지께 “아드님이 스님이세요?”라고 물으셨다고 한다. 하하!
요즘은 사람들이 다들 스키니해져서 힙합이라도 우리 같은 옷은 잘 안 입는다. 한 번은 길에서 동창을 만났는데 내 옷을 보고 “넌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오니?”라고 하더라. 이태원에 가도 이런 의상은 아무도 안 산다고 아저씨들이 막 떨이로 주신다. 그럼 우린 대박이라고 챙겨오지!
음악 말고 치킨집도 해 보고 고춧가루도 팔아보고 바도 해 봤다. 치킨 굽다가 수증기 때문에 화상 입기도 하고, 살면서 많이 다쳐봤는데 양배추 썰다 손가락 살점 떨어져 나갔을 때가 제일 아팠다. (웃음) 앨범 다 만들어놓고 썰렁한 이유로 음반이 못 나오기도 하고 회사가 부도나기도 하는 등 몇 번의 좌절을 겪었다. 음악이 정말 꼴도 보기 싫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음악을 접었을 때 깨달은 건, 나는 음악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듣는 것만으로는 만족을 못 한다는 거였다. 결혼하고 아이도 생기니까 기저귀 값이며 분유 값도 장난 아니었지만 그것 때문에 내 안에서 끓고 있는 열정을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동안 뮤지가 꾸준히 피쳐링이나 공연을 제안하면서 음악에 대한 끈을 놓지 못하게 해 줬다. 정말 고맙다.
그래서 가족에게는 “난 이거 아니면 죽는다. 그렇지만 무슨 일을 해서든 먹여 살리겠다. 이해해 달라”고 했다. 부인은 내가 음악할 때 만난 사람이 아닌데도 나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다는 걸 인정해주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해줬다.
이효리 씨와 함께 MAMA 무대에 서 보는 게 꿈이다. 예전에 내 ‘드림카’였던 92년산 코란도를 몰고 있는데, 내 차를 무대에 올리고 배경에서는 농구하고 바비큐 굽고 셋이 딱 무대에 나서면 좋을 것 같다.
요즘 힙합의 언더 신에는 굉장한 친구들이 많다. 논리적이고 기승전결이 뛰어나고 펀치라인을 기술적으로 잘 쓰는 사람들도 많다. 대신 우리는 조금 어설프고 올드하게 비춰질 수 있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즐겁게 ‘놀자’는 편이다. 미니앨범에 실릴 곡들도 우리가 어릴 때 좋아했던 신발 나이키 조던을 신고 이태원을 걷고 닥터 드레 노래를 들으면서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내용들이다. 우리한테는 그게 진짜고 일상이고 힙합이다. 우리가 힙합이다.
1980년 12월 29일에 태어났다. 뮤지나 리제이와 달리 결혼을 안 해서 아직 프리한 남자다. 하하!
어릴 때부터 조데씨나 보이즈 투 맨 같은 R&B를 좋아했다. 괜히 여자애들한테 “I wanna freak you” 외치면서 장난치고. 흐흐.
고등학교 때 H.O.T.라는 그룹이 나왔는데 당시 ‘전사의 후예’가 사이프러스 힐의 ‘I ain`t going out like that’을 표절했다는 얘기가 나왔다. 나는 방송반을 하고 있었는데 매일 그 곡을 교내방송으로 틀어주면서 문득 ‘아, 힙합으로 가야겠다’고 결심하게 됐다.
‘썸머타임’은 우리가 이태원에서 여자들이랑 같이 춤추던 스무 살 때, 재밌게 놀던 스타일의 노래다. 다들 마이애미 비트를 좋아해서 나온 곡인데 사람들이 우리 외모랑 안 어울린다고 “너무 소프트하지 않아요? 너무 대중적이지 않아요?”라고 한다.
그런데 진짜 스무 살 때는 내 얘기가 아니라 나랑 상관없는 얘기를 노래로 부르고 만들고 가사를 썼던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내 얘기, 친구들과 했던 우리 얘기를 노래로 만들 수 있어서 좋다. 미니앨범도 우리 스타일로 즐겁게 노는 내용, 일상적인 이야기다.
그러니까 힙합이라도 “총으로 널 쏴죽이겠어. 나는 포주야. 날 따라와. 그 때 감방에서 나와서 널 봤어. 총을 네 발 맞았지만 극적으로 살아났지” 같은 가사는 없단 얘기다. 하하.
서른 살을 넘겨 데뷔한 건 시기적으로 좋은 것 같다. 예전에는 어쨌든 운이 없거나 기회가 없었던 거니까 후회는 없다. 그동안 음악 외에 실패도 성공도 여러 가지를 겪을 수 있었기 때문에 표현할 수 있는 게 더 많아진 것 같다. 또 어릴 때 금전적으로 성공이라도 했으면 나이트클럽이나 비싼 자동차 같은 데 다 써 버리고 지금쯤 많이 망가져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 외모는 어깨, 건달이라기 보단 스님인 줄 아시는 분들이 많다. 그게 아니면 둘 중 하나다. “음악 하세요?” “K-1 하세요?” (리제이 : 하지만 인터뷰하러 다녀 보면 “외모는 야구빳다 들고 다닐 것 같은데 얘기할 때는 예의바르고 선글라스 벗으니까 착한 것 같다”고 한다.)
WWE를 좋아한다. 헐크 호간, 워리어 시절보단 더 락과 오스틴이 활약하던 90년대 신을 좋아한다. 그 땐 진짜 엔터테인먼트적인 재미가 있었다. NBA도 즐겨 본다. 시카고 불스의 팬이다.
핫도그로 함께 해 보고 싶은 방송은 일본의 라멘 기행 같은 짬뽕 기행이다. 짬뽕 마니아라 전국에 있는 맛있는 짬뽕집은 다 가 봤다. 그냥 같이 운전하고 가다 내려서 짬뽕 먹고 맛 평가하고 그러면 좋을 것 같다. 최근에는 제주도에서 게 짬뽕을 먹었는데 맛있었다.
좋은 댓글들은 기분이 좋지만 나쁜 얘기들을 보면…쪼끔 상처받는다. “핫도그 먹으면 이렇게 되나요?” 이러던데, 우리가 어때서!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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