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주의 10 Voice] 가사가 사라지는 시대, 음유시인이 그립다](https://img.hankyung.com/photo/202001/2011081801581995594_1.jpg)
지난 달 프레스콜에서 8, 90년대 음악이 방송을 통해 다시 인기를 얻는 것에 대해 당시 활발히 활동했던 사람으로서의 소회를 묻자, 윤상이 한 대답이다. 아이돌과 퍼포먼스 중심의 대중음악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말 그대로 조심스러운 궁금증이었다. 이 말이 계속 남았던 건 다른 지점에서 비슷한 아쉬움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주는 싫어 잔이 작아 얼굴 더 커 보이잖아 / 막걸리 가자 잔도 크고 양도 많아 내 스타일이야 / 토크는 안 끝나고 우린 더욱 아쉽고 / 이 밤을 불태워버릴 우리만의 100분 토론’ (천상지희 ‘날 좀 봐줘’) 라니. 의미 불명에 괴이하기까지 한, ‘노랫말’이라기보다 ‘음성의 모음’에 가까운 가사를 부르고 듣는 것이 때로 괴롭고 안타깝다.
푸른곰팡이를 아시나요?
![[김희주의 10 Voice] 가사가 사라지는 시대, 음유시인이 그립다](https://img.hankyung.com/photo/202001/2011081801581995594_2.jpg)
그래서 지난 주말 제 7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찾은 ‘푸른곰팡이’의 무대가 더욱 반가웠다. 80년대에 들국화와 김현식의 동아기획이 있었다면 90년대에는 조동진과 그의 동생이자 기타리스트 이병우와 함께 ‘어떤 날’로 활동했던 조동익, 그리고 장필순과 낮선 사람들이 중심이 된 하나뮤직이 있었다. ‘푸른곰팡이’는 2000년대 초반 조동익이 포크 외에 다른 장르로 확장하기 위해 만든 하나뮤직의 레이블이었다. 최근 몇 년간 활동이 활발하지 않았던 하나뮤직 아티스트들이 이 이름으로 다시 뭉쳤고 조동익, 조동희, 장필순, 고찬용, 이규호, 윤영배, 오소영, 더 버드(김정렬, 조규원) 등이 참여하고 있다.
때로 노랫말은 한 시절을 구원한다
![[김희주의 10 Voice] 가사가 사라지는 시대, 음유시인이 그립다](https://img.hankyung.com/photo/202001/2011081801581995594_3.jpg)
노래는 글이 아니다. 가사가 반드시 정돈된 문장일 필요도, 명확한 의미를 담을 이유도 없다. 하지만 어떤 노랫말은 좋은 글이 그런 것처럼 세상을 보는 창이 되기도 한다. 모두가 싱어 송 라이터가, 아티스트가 되어야 한다거나, 반드시 기타를 매고 포크 송을 불러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댄스든 힙합이든 록이든 상관없이 부르는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상품처럼 다루어지기 쉽고 자신의 의지나 취향, 나아가 자기 성찰을 자신의 일 속에 담아내기 어려운 아이돌 스스로는 물론, 그들의 가장 열렬한 팬덤인 10대들이 좀 더 다양한 노랫말을 통해 음악과 세상을 경험하고 느낄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시가 사라지는 시대에 시어(詩語)같은 노랫말과 음유시인 같은 가수를 그리워하는 것이 시대착오적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날의 나를 뒤흔들고 구원한 노랫말이 있었기에, 여전히 바란다. ‘좀 더 비싼 너로 만들어 주겠어 / 네 옆에 앉아 있는 그 애 보다 더’ (서태지와 아이들 ‘교실 이데아’), ‘사랑은 비극이어라 / 그대는 내가 아니다 /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이소라 ‘바람이 분다’), ‘머나먼 길을 찾아 여기에 꿈을 찾아 여기에 / 괴롭고도 험한 이 길을 왔는데 /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 / 그 누구도 말을 않네’ (조용필 ‘꿈’) 같은, 영감과 에너지를 주는 노랫말을 또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때로는 춤추는 시인도 좋고.
글. 김희주 기자 fifte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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