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주의 10 Voice] 가사가 사라지는 시대, 음유시인이 그립다
[김희주의 10 Voice] 가사가 사라지는 시대, 음유시인이 그립다
“저도 예전에 퀸을 듣고, 컬처 클럽, 듀란듀란 음악을 들을 때 이건 나이 들면 못 듣는 음악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지금도 그들의 음악을 들으면 추억이라기보다 음악적으로 굉장히 끌릴 수밖에 없는 자석 같은 에너지가 있는 것 같아요. 젊은 시절의 음악이라고 해서 나이 들어서 그냥 흘러가고 유치하게 들리는 건 아니라는 걸 제 나이가 되니까 조금 알 것 같아요. 이게 영원히 나를 건드릴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 했었거든요. 한편, 지금 보여 지는 음악 이런 걸 좋아하는 친구들이 나이를 먹어 가면 과연 무엇이 그들을 자극하게 될까가 사실은 제 가장 큰 궁금증 중 하나예요. 지금 10대들이 나이 들어서 어떤 음악을 떠올리게 될지, 대중음악사적으로도 궁금해요.”

지난 달 프레스콜에서 8, 90년대 음악이 방송을 통해 다시 인기를 얻는 것에 대해 당시 활발히 활동했던 사람으로서의 소회를 묻자, 윤상이 한 대답이다. 아이돌과 퍼포먼스 중심의 대중음악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말 그대로 조심스러운 궁금증이었다. 이 말이 계속 남았던 건 다른 지점에서 비슷한 아쉬움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주는 싫어 잔이 작아 얼굴 더 커 보이잖아 / 막걸리 가자 잔도 크고 양도 많아 내 스타일이야 / 토크는 안 끝나고 우린 더욱 아쉽고 / 이 밤을 불태워버릴 우리만의 100분 토론’ (천상지희 ‘날 좀 봐줘’) 라니. 의미 불명에 괴이하기까지 한, ‘노랫말’이라기보다 ‘음성의 모음’에 가까운 가사를 부르고 듣는 것이 때로 괴롭고 안타깝다.

푸른곰팡이를 아시나요?
[김희주의 10 Voice] 가사가 사라지는 시대, 음유시인이 그립다
[김희주의 10 Voice] 가사가 사라지는 시대, 음유시인이 그립다
음악에 끌리는 이유는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 어떤 이는 멜로디에, 어떤 이는 무대 위의 모습에, 또 어떤 사람은 가사에 더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세상의 모든 가수가 싱어 송 라이터여야 하는 것도, 세상의 모든 노래가 부르는 사람의 생각을 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몇 번을 곱씹으며 듣고 가사집을 들여다보게 만들던, 시 같던 그 가사들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요즘 노래에서 가사가 화두가 되는 건 ‘취했나봐 그만 마셔야 될 것 같애’ 가 ’술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판정되고 ’무까끼하이‘가 일본어 같다는 이유로 방송부적격 판정을 받는, 웃기고 어이없는 심의가 적용될 때뿐인 것 같다.

그래서 지난 주말 제 7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찾은 ‘푸른곰팡이’의 무대가 더욱 반가웠다. 80년대에 들국화와 김현식의 동아기획이 있었다면 90년대에는 조동진과 그의 동생이자 기타리스트 이병우와 함께 ‘어떤 날’로 활동했던 조동익, 그리고 장필순과 낮선 사람들이 중심이 된 하나뮤직이 있었다. ‘푸른곰팡이’는 2000년대 초반 조동익이 포크 외에 다른 장르로 확장하기 위해 만든 하나뮤직의 레이블이었다. 최근 몇 년간 활동이 활발하지 않았던 하나뮤직 아티스트들이 이 이름으로 다시 뭉쳤고 조동익, 조동희, 장필순, 고찬용, 이규호, 윤영배, 오소영, 더 버드(김정렬, 조규원) 등이 참여하고 있다.

때로 노랫말은 한 시절을 구원한다
[김희주의 10 Voice] 가사가 사라지는 시대, 음유시인이 그립다
[김희주의 10 Voice] 가사가 사라지는 시대, 음유시인이 그립다
제천 의림지 무대에 오른 푸른곰팡이는 노래할 때도 말할 때도 한 옥타브를 넘지 않는 조용한 사람들이었다. 윤영배와 고찬용이 주고받는 대화는 서투른 만담 같았다. 하지만 ‘내가 만약 키 큰 나무가 되면 / 땅이 너무 멀어 / 매일 어지러울 거야 / 조금씩 조금씩 눈에 띄잖게 / 깊이 뿌리 내림 조금 나아질 거야’ (윤영배 ‘키 큰 나무’) 라고, ‘이 바다가 좋아 / 날 데려가도 좋아 / 지금 나처럼 외로운 / 소금으로 빚은 술이라 해요 / 내 마음 그대로 담가놓은 / 우리 집보다 더 큰 바다의 눈물이죠’ (이규호 ‘규호의 바다’) 라고 나지막이 읊조리는 노랫말은 강렬하게 사람의 마음을 잡아끌었다.

노래는 글이 아니다. 가사가 반드시 정돈된 문장일 필요도, 명확한 의미를 담을 이유도 없다. 하지만 어떤 노랫말은 좋은 글이 그런 것처럼 세상을 보는 창이 되기도 한다. 모두가 싱어 송 라이터가, 아티스트가 되어야 한다거나, 반드시 기타를 매고 포크 송을 불러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댄스든 힙합이든 록이든 상관없이 부르는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상품처럼 다루어지기 쉽고 자신의 의지나 취향, 나아가 자기 성찰을 자신의 일 속에 담아내기 어려운 아이돌 스스로는 물론, 그들의 가장 열렬한 팬덤인 10대들이 좀 더 다양한 노랫말을 통해 음악과 세상을 경험하고 느낄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시가 사라지는 시대에 시어(詩語)같은 노랫말과 음유시인 같은 가수를 그리워하는 것이 시대착오적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날의 나를 뒤흔들고 구원한 노랫말이 있었기에, 여전히 바란다. ‘좀 더 비싼 너로 만들어 주겠어 / 네 옆에 앉아 있는 그 애 보다 더’ (서태지와 아이들 ‘교실 이데아’), ‘사랑은 비극이어라 / 그대는 내가 아니다 /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이소라 ‘바람이 분다’), ‘머나먼 길을 찾아 여기에 꿈을 찾아 여기에 / 괴롭고도 험한 이 길을 왔는데 /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 / 그 누구도 말을 않네’ (조용필 ‘꿈’) 같은, 영감과 에너지를 주는 노랫말을 또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때로는 춤추는 시인도 좋고.

글. 김희주 기자 fifte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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