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최고의 편곡자! 돈~ 스파이크!” MBC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에서 남진의 ‘님과 함께’를 부르던 김범수가 외치자 시원하게 머리를 민 거구의 사나이가 선글라스를 끼고 건반을 어깨에 멘 채 무대에 등장했다. 몇 초에 불과한 깜짝 등장이었음에도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그는 현재 ‘나가수’에서 김범수의 전담 편곡자이자 브라운 아이드 소울, 화요비, 휘성, 박효신을 비롯한 다수 뮤지션들의 편곡을 담당했던 돈 스파이크다. 10년 넘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타인의 앨범을 빛나게 만들어 주다가 이 달 초 첫 싱글앨범 를 발매한 그는 “정규 앨범은 가창곡 버전과 돈 스파이크 피아노 연주곡 버전으로 나눈 2CD로 만들고 싶은” 꿈을 꾸는 뮤지션인 동시에 강렬한 외모에 비해 귀엽고 내성적인 구석이 있는 남자다. ‘나가수’에서 자칭 “막내 편곡자”를 담당하고 있는 돈 스파이크와의 대화를 옮긴다.요즘 매주 ‘나가수’에서 김범수의 편곡 작업을 하느라 많이 바쁘겠다.
돈 스파이크: 작곡이나 편곡은 늘 해왔던 일이니까 음악적인 업무량은 비슷하다. 다만 이렇게 인터뷰를 하거나 결혼식 축가 반주를 해준다든지 외부적인 활동이 조금 많아졌다. 일상생활에서 바뀐 부분이라면 주로 택시나 지하철을 타는 편이었는데, ‘나가수’에 출연하면서 지하철 타는 게 좀 어려워졌다. 안 그래도 복장이 특이해서 눈에 잘 띄는 편인데, 자꾸 쳐다보시니까 신경 쓰이고 민망하다.
하지만 랜덤으로 주어진 미션곡으로 경쟁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매주 한 곡씩 편곡을 한다는 건 기존 작업과 좀 다르지 않나.
돈 스파이크: 원래 음반 작업들도 그렇게 쫓겨서 하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보통 한 앨범을 끝내면 휴식기를 갖고 재충전해서 다른 작업에 들어가는 편이다. 그런데 ‘나가수’는 쉴 새 없이 매주 해야 되는 작업이라는 게 좀 다르다. 월요일에 녹화가 끝나고 밤 12시가 되면 바로 다음 미션곡이 나온다. 그나마 중간점검이 있는 2차 경연은 일주일 정도 여유를 갖고 편곡할 수 있는데, 1차 경연은 이틀 만에 편곡을 끝내야 범수 씨도 연습을 하고 밴드와도 맞춰볼 수 있다. 정말 바쁘게 돌아간다. 노래가 잘 걸리기만을 바랄 뿐이다.
“조관우의 ‘늪’이 편곡하기 가장 힘들었다” 그동안 가장 애를 먹었던 미션곡은 뭐였나.
돈 스파이크: 조관우의 ‘늪’이 가장 힘들었다. 일주일동안 끝부분을 가성으로 갈지 진성으로 갈지 키를 못 잡았다. 어떻게 부르느냐에 따라 곡의 느낌이 확 달라지기 때문에 그걸 고민하느라 편곡은 거의 손 놓고 있었다. 그러다가 하루 전날 범수 씨랑 7시간 머리 맞대고 생각하다가 결국 진성으로 가죠, 이렇게 결정했다. 그리고는 1~2시간 만에 편곡을 끝냈다. 색깔이나 콘셉트를 잡는 게 오래 걸렸지 편곡 작업 자체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다른 출연자들은 매주 새로운 편곡자들과 작업을 하는 반면 김범수만 유일하게 당신과 매번 호흡을 맞추다보니 방송에 얼굴을 비추는 횟수가 늘어나고 어느새 시청자들도 ‘돈 스파이크’라는 존재를 인식하게 됐다.
돈 스파이크: 처음에 범수 씨한테 ‘나가수’ 편곡작업 제의를 받았을 때는 이렇게 일이 커질 줄 몰랐다. 항상 해오던 대로 편곡해주면 되겠지, 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님과 함께’ 공연을 준비할 때 명수 형이랑 범수 씨가 작업실로 쳐들어오면서 일이 커졌다. (웃음) 요즘에는 최대한 카메라를 피해 다니고 있는데, 아무래도 덩치가 크니까 그냥 스쳐 지나가거나 하다못해 등만 보여도 남들보다 더 많이 나온 것 같다.
방금 말한 것처럼 ‘님과 함께’를 준비할 때는 편곡 작업뿐 아니라 김범수, 박명수와 함께 무대에 올라 공연을 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나. (웃음)
돈 스파이크: 혹시라도 내가 무대 욕심을 내서 그렇게 하는 것처럼 보일까봐 처음엔 절대 못한다고 했다. 이게 절대 내 의지가 아니라는 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김범수의 강요에 의하여 어쩔 수 없이 출연함을 증명합니다’라고 각서를 쓰고 올라갔다.
무대 아래서 곡을 만들거나 혹은 무대 위에서 연주만 하다가 직접 공연에 참여해보니 기분이 어땠나.
돈 스파이크: 완전 얼었다. 원래 나도 같이 춤을 추는 콘셉트였는데 막상 무대 올라가니까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뻘~쭘하게 서 있었다. 방송을 본 주변 사람들이 다들 망가지고 있는데 왜 너 혼자서 멋있는 척 하냐고, 절대 그럴 의도는 아니었다.
그 전까지 김범수는 발라드 가수라는 이미지가 강했는데 ‘님과 함께’ 무대를 계기로 ‘나도 잘 놀 수 있다’는 모습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누구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나.
돈 스파이크: 범수 씨가 먼저 제안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나가수’ 무대가 무거운 방향으로 흘러갔고 음악도 딥(deep)해지는 상황이라 밝고 신나는 퍼포먼스 위주로 가보자고 얘기했다. 셋이 한 팀 같은 느낌이 있으니까 다 같이 무대에 올라가서 화려하게 놀아보자. 명수 형이 먼저 나와서 짠짠짠 하고 다음에 범수 씨가 나오고 간주 때 내가 나오고, 다 끝나는 척 하다가 다시 나오고. 하다못해 명수형을 밀치는 것까지 다 치밀하게 계산한 결과물이었다. 마치 대본처럼. 그렇게 퍼포먼스를 다 짜고 거기에 음악을 맞췄다. 음악적인 부분은 내가 풀어내고, 의상은 범수 씨가 준비했다.
‘나가수’가 기존에 있는 곡을 변형해서 부르는 콘셉트다보니 편곡자의 역할이 클 수밖에 없는데, 그런 점에서 청중평가단의 평가가 신경 쓰일 수밖에 없겠다.
돈 스파이크: 요즘엔 그걸 잊고 사는데, 처음에는 득표율에 굉장히 신경을 쓰다보니까 음악도 강하게 어필할 수 있는 방향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너무 그렇게 가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무작위로 미션곡이 주어지는 건데, 그 음악을 범수 씨한테 맞게 편곡해야지 모든 곡에 힘이 들어갈 필요는 없지 않나.
3월부터 매주 ‘나가수’ 편곡작업을 해오는 와중에 최근 본인의 이름을 내건 첫 싱글앨범 를 냈다.
돈 스파이크: 옛날부터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작년에 (장)연주 씨(뮤지션이자 돈스파이크의 여자친구)랑 회사를 차리고 올해 초부터 본격적으로 앨범을 준비했다. 오랫동안 음악 작업을 하다보면 상대방이 원하는 쪽으로 편곡을 해줘야 할 때가 종종 있으니까 내가 원하는 음악을 해보고 싶다는 갈증이 있었다. ‘Hello’는 3년 전에 써놓고 주인을 못 만났던 곡이다.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장르라 다른 곡을 새로 만들지 않았다.
다른 뮤지션이 아닌 나 자신의 앨범을 만든다는 건 어떤 경험이었나.
돈 스파이크: 오히려 더 힘들었다. 다른 분의 앨범을 제작하는 건 그 분들이 방향을 제시해주고 오케이 사인을 내려주니까 그것에 맞추면 되는데, 이건 내가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리다 보니 객관성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연주 씨가 전반적인 곡 색깔부터 편곡 방향, 누굴 보컬로 하면 좋을지에 대해 조언을 많이 해줬다.
“일반적인 작곡가 프로젝트 앨범과는 다르게 갈 생각” 일주일 간격으로 보컬 버전과 연주곡 버전을 따로 공개했는데, 연주자 돈 스파이크의 색깔을 좀 더 드러내고 싶어서였나.
돈 스파이크: 연주곡 버전이 나중에 공개됐지만 사실은 처음 내가 피아노로 작곡할 때 나왔던 오리지널 버전이다. 내가 원래 표현하고자 했던 것에 가장 가까운 느낌이라 할 수 있다. 아무래도 목소리를 입히고 가사를 붙이면 내가 생각했던 느낌이 100% 나올 수 없다. 차라리 120%가 나오든지 아니면 아예 다른 느낌이 나오든지. 그래서 처음에는 피아노 연주곡 음반만을 생각했는데, 똑같은 음악이라도 멜로디 선율이 담고 있는 의미와 보컬이 직접 설명해주는 의미는 또 다를 수 있으니까 두 가지 버전으로 내보기로 결정했다.
이번에 보컬로 참여했던 나얼과의 작업은 어땠나.
돈 스파이크: 나도 내가 원하는 음악을 편하게 만들고 싶었고 보컬로 참여하는 뮤지션도 자신의 앨범에서 시도하지 못하는 부분을 재밌게 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딱 나얼 씨가 떠올랐다. ‘Hello’가 가사를 붙이기 까다로운 곡이라 전체적인 곡 느낌과 제목만 정해놓고, 나얼 씨한테 직접 가사를 쓰라고 얘기했다. 그러면 자기 입에 잘 맞는 가사가 나온다. 이 곡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오게 되는 고통과 아픔을 반기는 인사를 담고 있다, 이 정도만 알려줬다. 우리 둘은 옛날부터 많이 작업을 해온 사이기 때문에 나얼 씨가 어떻게 노래할지 대충 알고, 나얼 씨도 내가 준 가이드를 보면 완성본이 어떻게 나올지 예상할 수 있다. 거기서 크게 벗어난 적이 없다. 그래서 나얼 씨가 녹음할 때 난 뒤에서 편하게 트위터를 했다. (웃음)
트위터에 자화상을 올린 것도 봤다. (웃음)
돈 스파이크: 그건 훨씬 잘 그릴 수 있었는데, 대창집에서 술 먹다가 장난삼아 1분 만에 대충 그린 거였다. 아는 분이… 사실은 팬 분이 (웃음) 내 초상화를 그려서 보내주셨는데 실제 나보다 잘 생겨보였다. 그래서 이건 제가 아닙니다, 전 사실 이렇게 생겼습니다, 하면서 트위터에 올렸다.
아까 “복장이 특이해서 눈에 잘 띄는 편”이라고 말했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독특한 스타일을 추구했나.
돈 스파이크: 대학교 1학년 때부터 학교에서 유명했다. 지금과 키는 똑같은데 몸무게는 35kg 정도 덜 나가던 시절이었다. 95년도만 해도 남자가 염색하면 쳐다보던 시절이었고 심지어 보수적이라고 알려진 클래식 전공이었는데, 머리를 허리까지 기르고 초록색으로 염색하고 다녔다. 눈, 코, 입술 다 뚫고. 그것도 10개씩. 거기에 이상한 망사옷 입고 가죽가방 질질 끌고서 다녔으니 거의 학교 명물 수준이었다. 96년쯤 포지션의 건반 연주자로 활동할 때는 포지션을 협찬해주는 미용실의 실험 대상이었다. 디자이너들이 새로 나온 염색약, 새로운 파마 스타일을 다 나한테 시도했다. 나중에는 머리가 완전 상해서 결국 밀었다. 내가 머리에 땀이 많은 편이라 한 번 머리를 미니까 편해서 더 이상 못 기르겠더라. 그 때와 비교하면 지금 패션은 정말 얌전해진 거다. 아, 헤어스타일만 빼고!
원래 남들보다 튀는 걸 좋아했던 건가.
돈 스파이크: 고등학교 때는 정말 얌전하고 조용한 학생이었는데 늦바람이 무섭다고…(웃음) 멋을 하나도 안 부리다가 대학교에 입학했는데, 학교 앞 거리를 보고 뭔가 띵- 하고 자극을 받았다. 대학가가 고리타분한 곳이 아니구나, 이렇게 멋을 내도 되는구나. 내가 또 극단적인 성격이라 뭘 하나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한다. 귀를 하나 뚫으니까 나머지 한 쪽이 허전하고 양쪽 다 뚫으니까 여자 같고, 그래서 한 쪽에 두개 더 뚫고, 이런 식이었다. 피어싱도 점점 구멍을 넓혀가다 보니까 나중엔 막 손가락이 들어가고. 하하하.
부모님이 말리거나 반대하진 않으셨나.
돈 스파이크: 부모님이 젊고 개방적이신 편이다. 물론 절대 안 된다고 하시는 게 몇 가지 있다. 귀걸이, 문신, 특이한 헤어스타일. 내가 지금 다 하고 있는 것들이지. (웃음) 근데 우리 어머님도 젊으셨을 때 굉장하셨다. 사진을 봤는데 윤복희 씨보다 더 심하게 입고 다니셨다. 머리 이렇게 부풀려서 파마하시고 선글라스 이만한 거 끼시고 숏 팬츠와 탱크탑 차림에 무릎까지 오는 가죽부츠를 신으셨다. 그 사진을 같이 보면서 어머님이 지금 저한테 이런 말씀 하시면 안 된다고, 지금도 어머니처럼 못 입고 다닌다고 따졌다.
지금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면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나.
돈 스파이크: 방금 말한 패션적인 부분도 그렇고 어머니 덕분에 음악을 많이 들었다. 워낙 야행성 타입이시라 나를 데리고 나이트클럽도 자주 가셨다. 그 때부터 음악을 접할 기회가 많아졌다.
음악 외에 일상생활에서 가장 재밌는 건 뭔가.
돈 스파이크: 맛집 찾아다니는 걸 굉장히 좋아한다. 그것도 숨겨진 맛집! 가령 전주 어디에 있는 새우탕을 맛있게 하는 식당이 있다는 얘길 들으면 차타고 5시간을 가서 그걸 먹고 와야 직성이 풀린다. 1년에 거의 7~8만km씩 운전하고 다녔다.
겉으로 드러난 인상과 달리 성격은 세심하고 내성적인 것 같다. 말투도 조근 조근하고.
돈 스파이크: 다들 내가 거칠고 강한 사람이라 생각하는데 실제로 날 만나 본 사람들은 모두 나한테 “크게 좀 말하라”고 할 정도다. (웃음) 음악작업도 밤에 혼자 조용히 하는 편이다. 작업실에 밥만 넣어주면 한 달 내내 거기서 음악작업만 할 수도 있다.
그러면 다음 앨범도 곧 만날 수 있는 건가.
돈 스파이크: 준비는 계속 하고 있다. 다음번에 정규앨범을 만들 땐 2CD로 해서 한 쪽에는 가창곡 버전, 다른 쪽에는 연주곡 버전으로 내고 싶다. 한쪽은 컴필레이션 앨범이고 다른 한쪽은 돈 스파이크 연주앨범 같은 느낌이 들도록 말이다. 일반적인 작곡가 프로젝트 앨범과는 다르게 갈 생각이다.
포토 : 박일호, 쿠퍼레이션 : 리복 코리아(www.reebok-culture.com)
글. 이가온 thir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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