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떠오르는 태양처럼 빛나는 ‘민머리’ 사람들과 함께 MBC <황금어장>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이후, 십수 년 만에 공개 코미디 무대에 선 tvN <코미디 빅리그>에 이어 “바라고 기다렸던 프로그램”인 SBS <힐링캠프>까지 요즘 홍석천을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라디오 스타’는 워낙 즐겨 보는 프로그램이고 MC들도 아는 사람들이라 되게 솔직하고 편하게 얘기했어요. 일단 던져서 받아주면 좋고 아니면 편집하면 되니까 라는 마음으로. 그런데 대박이 난 거죠. 반면에 ‘저기 나가서 진솔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진짜 힐링이 필요한 사람은 나인데’라고 생각했던 <힐링캠프>에서 섭외 전화를 받았을 때는 농담인 줄 알았어요. 녹화하면서 그렇게 긴장한 것도 처음이었고요. 본 방송은 못 보고 실시간 검색 다 확인하고 나중에 다시 봤어요. (웃음) 전날 잠을 못 자서 얼굴이 좀 피곤해 보인 건 아쉽지만 제가 어떤 사람인지는 여유 있게 보여 드린 것 같아요.” 리마리오와 함께 ‘레드 버터’로 게이 코미디를 선보이고 있는 <코미디 빅리그>는 다른 의미로 홍석천을 긴장하게 한다. “사실 저한테는 모험이죠. 2회까지는 관객 얼굴이 안 보였어요. 물론 뮤지컬과 연극을 했던 사람이라 관객이 낯설지는 않아요. 다만 소재 자체가 세니까 걱정을 했죠. 개그로 하는 것이지만 희화화로 비칠까 봐. 사실 이성애자들의 반응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어요. 혹시나 동성애자들이 마음을 다칠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반응이 그렇게 나쁜 것 같지는 않아요. 재미있다고 해주고 제 걱정도 해주고.”
그동안 확장해온 사업체도 늘어나 방송 활동이 많아진 요즘 홍석천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하지만 “아직도 인복이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그의 주위에는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그 인복은 엄밀히 말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그가 스스로 쌓은 덕이다. “저희 가게에는 시골에서 상경해서 고생한 애들이나 동성애자여서 직장에서 차별받았거나 지방대 출신으로 서울에서 아르바이트나 해볼까 하고 왔다가 저를 만나서 레스토랑 비즈니스를 배운 애들이 많아요. 학창 시절에 ‘일진’이었는데 뒤늦게 제대로 일을 해보려는 와중에 저랑 인연이 닿은 한 친구는 열심히 일해서 지난봄에 새로 연 가게의 매니저가 되었어요. 편견을 갖지 않고 조건에 구애받지 않으니까 그런 친구들을 만나게 되고 저 때문에 그들의 인생이 많이 바뀌는 걸 보는 게 좋아요.” 도움을 원하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못하는 이런 천성은 자신의 인생뿐 아니라 여럿의 삶을 어깨에 짊어지고 가는 것이라 때로 버겁기도 하다. 그래서 “1년에 몇 번 정도는 아무도 못 말릴 정도로 징징대고 화내기도 해요. 그럴 때는 제 옆에 있으면 안 돼요. (웃음)”라고 말하는 홍석천이 추천한 노래들은 가득 쌓인 감정을 풀어내는데 도움을 주었던 곡들이다.
1. <나는 가수다 2 – 7월 B조 경연>
“원래 휘트니 휴스턴이나 마돈나 같은 8, 90년대 디바들을 좋아해요. 그중에서도 휘트니 휴스턴의 ‘I Have Nothing’을 진짜 좋아해요. 그런데 소향 씨가 MBC <우리들의 일밤> ‘나는 가수다 2’에서 이 노래를 참 잘 부르더라고요. 가끔 노래방에서 흉내를 내곤 해요. ‘Just all that you are / And everything that you do’ 같은 가사도 참 좋죠.” 휘트니 휴스턴이 직업 출연한 영화 <보디가드> O.S.T에 수록된 곡. 불세출의 디바가 놀라운 성량과 탁월한 감정 표현으로 부른 이 곡을 ‘나는 가수다 2’에 참여한 소향 역시 훌륭한 고음을 뽐내며 소화했고, 대중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2. MBC <보고싶다> OST Part 1
“왁스는 제일 친한 친구 중 한 명이에요. 워낙 노래도 잘하고 좋은 곡이 많아서 자주 들어요. 요즘은 <보고싶다>에 삽입되었던 ‘떨어진다 눈물이’를 자주 들어요. 슬플 때 들으면 기분이 가라앉으면서 안정도 되거든요. 제가 원래 멜로디가 드라마틱한 곡을 좋아해요.” 작곡가 PJ와 김진훈이 함께 작업한 ‘떨어진다 눈물이’는 최갑원이 작사한 서정적인 수필을 연상시키는 가사가 인상적인 곡이다. 왁스 특유의 호소력 강한 목소리와 드라마 속 인물들의 애절한 감정이 시너지를 이루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3. 전람회의 <2집 Exhibition 2>
“김동률 씨나 이적 씨의 노래들을 좋아해요. 패닉의 ‘달팽이’도 엄청 좋아했었고 전람회의 ‘취중진담(醉中眞談)’은 한 때 제 최고의 18번이었어요. 좋아하는데 말 못 한 사람 앞에서 꼭 이 노래를 불렀죠. (웃음)” 누군가에게 가슴 떨려 본 사람, 하지만 쉽사리 용기를 내어 고백할 수 없었던 사람, 결국 술의 힘에 기대어 수줍게 혹은 부끄럽게 털어놓은 적 있는 사람, 이 모든 이들이 한 번쯤 불러 보았을 노래. 1993년 MBC 대학가요제 대상을 받으며 데뷔한 전람회가 1996년에 발표한 2집 앨범의 타이틀곡으로, 블루스풍의 멜로디에 실린 담담한 고백의 가사가 특징이다. 2012년 화제의 드라마였던 tvN <응답하라 1997>에서 준희(호야)가 윤제(서인국)에게 고백하는 장면에서 흘러나와 화제가 되었다.
4. <지킬 앤 하이드 OST>
“조승우 씨가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공연에서 ‘지금 이 순간’을 부르는 걸 직접 봤어요. 정말 깜짝 놀랄 정도였어요. 이 곡 하나만은 어떤 뮤지컬 배우보다 조승우 씨가 잘 부르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전 안 불러요. 절대로 이길 수가 없어서. (웃음)”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어 뮤지컬 넘버 중 하나인 ‘지금 이 순간’은 조승우가 뮤지컬 최고의 티켓 파워를 자랑하는 배우가 되는데 큰 계기가 된 곡이다. 뮤지컬 넘버 특유의 드라마틱한 멜로디가 세련되게 이어지는 이 노래는 임재범의 ‘고해’ 이후 새로 등장한 노래방에서 남자들이 가장 많이 도전하는 노래이자 결혼식 축가의 단골손님이기도 하다.
5. 김연우의 <2집 연인>
“김연우의 ‘이별택시’는 누군가와 헤어지고 나면 꼭 부르는 노래예요. 이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맘껏 울고 나면 기분이 좀 나아지는 것 같아요.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일도 많고 감정이 쌓일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들으면 쌓인 게 풀리는 것 같아요.” 과거에는 TOY의 수많은 명곡을 부른 객원가수로, 최근에는 숨은 예능 꿈나무로 각종 방송에서 활약했던 김연우. 그는 맑고 단정한 음색과 정확한 음정, 넓은 음역대에서 비롯된 깨끗한 고음이 장기인 탁월한 보컬리스트다. ‘이별택시’는 2004년 발표한 김연우의 두 번째 앨범에 수록된 곡으로 이별하는 순간을 일상적인 단어들로 풀어낸 윤종신의 가사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 노래다.
요즘 방송에서 홍석천을 볼 때면 단단하고 예쁜 돌 하나가 생각난다. 처음엔 지금보다 더 컸고, 그만큼 모난 데도 많았을 그 돌은 세월을 관통한 바람 속에서 조금씩 깎였다. 너무 센 강풍을 만나 저 멀리 날아가 길모퉁이 풀숲에 파묻힌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자신을 덮친 바람을 원망만 하지 않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의 손을 마주 잡았다. 그리고 다시, 조금씩 따뜻한 바람이 불어왔다. 지금 그는 무대 위에서 그리고 카메라 앞에서 다시 자신의 끼를 펼칠 수 있어 기쁘다. “저를 방송인이나 CEO로 부르고 쓰는 사람들이 있지만 저는 스스로 연기자라고 생각해요.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제작진과 동료들이 제게 바라는 모습, 이 쇼가 원하는 모습을 연기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연기자 홍석천이 제일 좋아요. 무대 위에서 절 보는 사람들이 뿜어주는 에너지를 제가 탁! 받을 때, 어우 그건 정말 엄청난 광선을 맞는 것 같아요. 그게 광대인 거죠.” 지금 다시 홍석천이 사람들 앞에서 웃고 울고 연기하고 이야기한다. 세파에 시달린 상처의 흔적마저 사람들을 웃게 하는 반짝이는 무늬로 만들어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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