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좀 흥수한테서 벗어나고 싶은데, 계속 인터뷰를 하면서 이야기하다보니 쉽지가 않아요.” 한 작품을 성공적으로 끝낸 배우가의례적으로 밝힌소감이 아니다. 김우빈은 KBS <학교 2013>의 흥수와 남순이에 대해 말하며 여전히 눈물을 글썽였고, 흥수를 닮기 위해 느린 속도를 유지했던 말투와 걸음을 아직도 완전히 고치지 못했다. 그만큼 온전히 빠져들어 연기하고, 또 인정받을 수 있었던흔치 않은기회였던 것이다. KBS <드라마 스페셜> ‘화이트 크리스마스’로 데뷔해 MBN <뱀파이어 아이돌>, SBS <신사의 품격>과 <아름다운 그대에게> 등을 거치며 쉬지 않고 자신을 훈련시켜 온 그에겐비로소 마음을 조금 편안하게 가질 수 있게 된시간이기도 했다. <텐아시아>가뽑은2013년 주목할 만한 배우, 그 세 번째 순서는김우빈이다.

반짝반짝 빛나는│③ 김우빈 “나도 나를 알아가는 중이에요”
기억되기 좋은 얼굴과 분위기를 가졌다는 것. 이제 막 배우의 길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한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다. 그런 점에서 김우빈은 행운아처럼 보였다. 머리카락을 온통 새빨갛게 물들인 채 씨익 웃던 KBS <드라마 스페셜>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미친 미르’일 때도, 곱절이나 나이가 많은 도진(장동건) 앞에서 좀처럼 기죽지 않고 건들거리던SBS <신사의 품격> 속 고등학생 동협일 때도 그는무심하게 스쳐지나 볼 수가 없는 인물이었다. 그것은 자신도 인정하듯 훌쩍 커다란 키와 짙은 눈썹, 날카롭게 다듬어진 눈빛 등 강렬한 생김새 덕분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KBS <학교 2013>에서 승리고 전학생 박흥수로 다시 등장한 김우빈은 더 이상 얼굴과 분위기로만 설명될 배우가 아니었다. 상처받고 방황하거나, 마음을 다해 우정을 지키려 했던 흥수는 김우빈이 지금까지 얼마나 성실하게 이 순간을 준비해왔는지 보여주는 캐릭터였던 것이다.



무리에서 한 발짝 비켜 서 있거나 반항의 기운이 넘실대는 인물들을 주로 맡았지만, 흥미롭게도 연기할 때의 김우빈은 그야말로 모범생에 가깝다. 애드리브를 되도록 자제하는 것은 물론, 입에 잘 붙지 않는 단어가 있어도 “작가님의 의도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 최대한 맞추려고 하며, 극 중 인물이 살아온 과정을 직접 적어보는 방식으로 그 속을 헤아린다. 폭발하는 에너지, 제어할 수 없는 끼로 무장한 그를 상상했다면 다소 낯선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흥수의 일대기를 작성했어요. 특히 남순이와의 관계에 대해 많이 상상했는데, 가령 이런 거예요. 축구와 남순이를 잃은 상태에서 어머니가 돌아가신 거죠. 그 때 흥수는 남순이가 굉장히 보고 싶었는데, 옆에 없으니 너무너무 아팠던 거예요.” 요컨대, 그는 연기하는 방법의 A to Z를 충실하게 따르려는 배우다.“연기를 시작할 때부터 그렇게 배웠어요. 훈련 방법을 터득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있는 거죠. 처음엔 형식적으로 했다면, 이제야 점점 제 욕심을 찾아가는 것 같아요. ‘아, 이렇게 하면 되는 구나’라는 느낌을 아직 백 퍼센트 받지는 못했지만요.” 모델을 꿈꿨던 중학생 소년이 주목받는 스물다섯의 배우로 자라나는 과정에는 매 순간 기본을 차례차례 밟아나가는 연습이 있었던 셈이다.

김우빈이 만들 해설지의 종류

반짝반짝 빛나는│③ 김우빈 “나도 나를 알아가는 중이에요”
그래서 연기가 재미있는 이유에 대해“정답이 없기 때문”이라고 간단하게 요약해버리는 김우빈의 대답은 지루하거나 빤하지 않은 것이다. 그에게 있어 정답을 맞히는 일이란 해답지와 일치하는 내용을 또박또박 적어 내려가는 과정이 아니라, 납득할 수 있는 해설지 여러 개를 부지런히 만들어나가는 과정에 더 가깝다.“예를 들어 연기는 ‘네’라는 대사 한 마디를 하더라도 여러 개의 감정을 담아낼 수 있잖아요. 1번 ‘네’, 2번 ‘네?’, 3번 ‘네~’ 등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 처럼요. 그게 제가 생각하는 연기의 매력인 것 같아요.” 그런 김우빈에게 또래의 다른 배우들과 자신을 비교하는 일은 애당초 쓸모가 없는 것이다.“모두가 같은 대본으로 연기하는 게 아니니까요. 정답이 없는데 비교하는 것도 웃기다고 생각해요.” 여기에 더해,그를 향해수차례 던져지는 ‘학생 역할이나 강한 이미지로 굳어지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냐’는 질문도 무용하다. 남의 것을 받아쓰기 하지 않으며, 새로운 등식을 발명해 내 것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스스로의 기준을 채찍질 삼기 마련이니 말이다.



그는 아직까지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다고, 잠시라도 쉬면 금방 잊힐까봐 두렵다고 말한다. 하지만 노력하는 사람이 결국 원하는 것을 이룬다는, 이 단순명료한 문장만을 굳건히 믿고 있다는 점에서 김우빈은 누구보다 듬직한 배우다.“타고난 사람들이 있잖아요. 저는 그런 사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점점 더 확고해져요. 다만 얼마나 고민하고 노력하느냐에 따라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기는 해요.” 이제야 비로소 그는 자신의 얼굴을 온전하게 내보일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저도 저를 알아가는 중이에요. 스물다섯 살이니까 25 퍼센트 정도 알았달까요?”라며 장난스럽게 웃는 김우빈의 말에서는 무한한 가능성이 엿보인다. 지금,“좋은 사람, 좋은 배우”로 가는 첫 번째 계단 위에 그가 서 있다. 수백, 수천 가지의 답지를 손바닥 안에 감춰둔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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