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 바람이 분다>, 지금 이 순간의 마법
5회 SBS 수-목 밤 9시 55분



다섯 줄 요약

오수(조인성)는 영(송혜교)을 구해낸 뒤 바다로 가 하룻밤을 함께 보낸다. 그 날은 그의 첫사랑 희주(경수진)의 기일이기도 했다. 희선(정은지)의 전화를 받고서야 기억을 떠올린 수는 뒤늦게 희주의 무덤을 찾아가 자책감과 슬픔으로 주저앉는다. 그 앞에 나타난 무철(김태우)은 임신한 희주를 버리고 죽게 한 오수에 대해 숨겨왔던 분노를 드러내고 독이 든 약병을 건네며 그와 영의 목숨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말한다.



리뷰

남자에게도, 여자에게도, 남은 시간이 자꾸만 줄어든다. 백일 안에 빚을 갚지 못하면 죽을 운명인 오수에게 추심의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뇌종양이 재발했음을 직감한 오영에게도 삶은 시한부다. 시간도 얼마 없는데 그들은 아직도 과거를 맴돌고 있다. 영의 기억 속에는 엄마, 오빠에게 버림받은 아픔과 사랑받았던 추억이 공존한다. 부모에게 버려진 상처와 희주의 죽음이 쓰라린 수에게도, 첫사랑 얘기를 하다 희미하게 미소 지었던 것처럼 행복했던 순간이 존재했을 것이다. 하지만 기억이라고 유효기간이 없는 것은 아니다. 희주를 “오래 기억해”주고 싶어서 나무를 심었던 오수는, 나무가 훌쩍 자라는 사이 그녀를 잊어간다. 자신의 아이를 가졌던, 자신 때문에 죽어간,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던 첫사랑의 기억도 그렇게 언젠가는 희미해진다. 이 드라마가 오수와 오영의 “딱 이 순간”의 감정에 무섭도록 집중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시효가 정해진 관계에서 역설적으로 ‘순간’의 가치는 빛을 발한다. 두 사람을 둘러싼 주변 상황이 시시각각 변할 때, 오수와 오영의 감정이 교류되는 순간만큼은 “방안의 기운”이 느껴질 정도로 느리게 묘사된다. 두 사람이 서로를 만지고, 웃고, 걷고, 이야기 나누는 순간들의 영상은 마치 사진으로 박제될 것처럼 아무 근심도 없이 아름답다. 삶의 무게가 너무 버거워 “사랑 따위 필요없”다는 이들에게, 그건 사실 복잡한 게 아니라 “딱 이 순간”들이 쌓인 어느 날 문득 깨닫는 감정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이 작품은 이야기한다.



수다 포인트

-오늘의 츤데레 오수: 아이처럼 팔의 상처를 내보이는 영에게 “네 방 가 약 발라”라고 차갑게 말한 뒤 “손목 반경 삼 센치 정도”라고 덧붙이는 오수. 안 보는 척 하면서 짧은 시간에 자세히도 봤네요.

-오수 나무의 전설. 오래전 ‘다시 태어나면 나무가 되고 싶다’던 한 여인이 죽어서 나무가 되었는데, 그 나무 밑에 버려진 아이는 나중에 그 여인을 꼭 닮은 여자를 사랑하게 될 운명이라고 했다.

-사랑한 남자가 남기고 간 딸에게 집착하는 왕비서(배종옥)와 죽은 형님의 여인을 사랑한 장변호사(김규철)의 로맨스를 그린, <스핀 오프: 사랑 따위 필요 없어, 중년>을 자세히 보고 싶은 사람은 저뿐인가요.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