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에는 영화 <7번방의 선물>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빠 있는 감옥이 아빠 없는 세상보다 낫다. 영화 <7번방의 선물>은 시작부터 끝까지 이 문장을 영상으로 되풀이 한다. 용구(류승룡)는 가난하고 정신지체까지 있지만 어린 예승(갈소원)은 아빠와 함께 있을 때 행복하다. 부녀의 정 때문만은 아니다. 용구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간 후, 예승은 어디에도 갈 수 없다. 사회기관이 예승을 맡지만, 그 곳의 담당자는 예승을 무미건조하게 바라볼 뿐이다. 아빠가 없는 예승이의 처지는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을 만나기 전 코제트와 비슷하고, 용구는 억울해서가 아니라 예승이의 생존을 위해 무죄를 입증하려 한다. 용구는 자신의 무죄가 오히려 예승이를 보호할 수 없게 만든다고 생각하는 순간 죽음을 선택한다.
<7번방의 선물>에서 부모는 아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이 영화가 용구의 죽음에도 비극으로 마무리되지 않는 것은 예승이 새로운 ‘아빠’ 장민환(정진영)을 만났기 때문이다. 아이를 잃은 그는 예승을 잘 키울 모든 조건을 가졌다. 영화에서 어린 예승이 마음 졸이지 않는 거의 유일한 순간 역시 장민환의 집에서 따뜻한 보살핌을 받을 때다. 혈육이 아니더라도 정성껏 보호하고 키워줄 수 있다면 아이는 잘 자란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지금 이 세상에서 아이에게 그런 사랑을 쏟을 사람은 부모 외에 찾기 어렵다. <7번방의 선물>은 부모들에게 ‘내가 없으면’이라는 공포와 ‘내가 없더라도’라는 판타지를 동시에 자극하고, 동시에 한국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의 처지를 아는 사람들이 가진 어떤 감정을 대놓고 찌른다. 노골적이고 극단적이다. 그러나 <7번방의 선물>은 오늘로 7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전쟁터가 부모 없는 아이들을 기다린다
MBC <일밤>의 ‘아빠 어디가’는 <7번방의 선물>이 지금 대중을 움직이는 힘을 현실 안에서 보여준다. 장민환이 예승이를 보호하는 장면이 주는 안온함은 ‘아빠 어디가’에서 유명인 아빠가 아이를 돌보는 모습과 겹친다. 그들은 아이를 위해 아침을 짓고, 눈썰매를 타는 아이들이 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그물을 친다. 아빠가 친 그물 안에서 아이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아빠가 아이를 먹이고, 교육시키고, 달래고, 보호하는 사이 아이는 여행을 통해 낯선 세상을 조금씩 경험해 나간다. 경제적, 정서적으로 아이를 완벽하게 보호하는 아빠와 아빠 곁에서 행복한 아이의 모습은 TV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모든 부모의 꿈이다.
그러나 이 꿈은 리얼리티 쇼 안에서도 이루기 쉽지 않다. ‘아빠 어디가’에서 아빠는 아이를 위해 쉴 새 없이 노력해야한다. 아빠는 아이보다 일찍 일어나 식사를 준비하고, 아이가 잘 때까지 놀아줘야 한다. 아들 민국의 말을 늘 들어주던 김성주는 아들의 교육법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아들 준이에게 엄격했던 아빠 성동일은 조금씩 더 가까워지려 노력한다. ‘아빠 어디가’의 미덕은 아이의 행복함이 부모의 더 많은 관심과 더 훌륭한 교육에서 나온다는 것을 전제하는데 있다. 아이에 대한 노력이 부모의 도리이자 의무여서만은 아니다. <7번방의 선물>에서 용구가 누명을 쓰고 사형을 받는 죄목은 아동 살인 및 성폭행이었다. 이 죄는 지금 부모들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하지만, 아이에게 한 눈을 팔면 언제든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부모가 없다는 것은 아이를 그 공포에 노출시키는 것과 같다. 부모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아이들이 만나는 세상은 문자 그대로 전쟁터다.
2013년 한국에서 벌어진 장발장의 고민
‘아빠 어디가’ 이전 아이들이 가장 많이 나온 리얼리티 쇼가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다는 사실은 요즘 아이들이 겪는 세상의 축소판이다. 최근에는 아이들만 오디션에 참여하는 Mnet <보이스 키즈>도 방송됐다. 아이들은 한 살이라도 빨리 데뷔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을 안다. 또한 심사위원들이 아이들의 노래에 내리는 대표적인 찬사는 “성숙한 감정 처리”다. 아이들은 최대한 빠르게 어른들의 세상에 진입해야 하고, 어른처럼 노래하고 춤추는 것이 미덕이 된다. 아이들을 다루는 작품들에서 아이의 의젓함이 미덕처럼 여겨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7번방의 선물>의 예승이는 아빠보다 더 속이 깊고 똑똑하며, <보이스 키즈>에서 화제가 된 이우진은 처음부터 끝까지 의젓한 모습으로 심사위원들의 사랑을 받았다. ‘아빠 어디가’의 윤후는 처음에 민국이가 살기 싫어하는 집을 자신이 살겠다고 나서면서 시선을 모았다. 반면 민국이는 철이 없다는 이유로 악플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아이가 철이 없거나 바라는대로 안 됐을 때 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자신의 노래에 어떤 심사위원도 등돌리지 않는 세상에서, 아이들은 최대한 빨리 어른스러워질 것을 요구받는다. <보이스 키즈>에서 한 출연자의 엄마는 딸을 끔찍하게 아끼지만, 딸이 탈락하자 “(공부하고 있는 해외로) 바로 돌려보내야죠”라고 말한다. 세상의 무서움을 알기에 아이들을 최대한 보호하고 싶지만, 그 세상에 적응해야 사는 것도 알기에 아이에게 정신적인 성숙함을 요구할 수 밖에 없다.
<7번방의 선물>과 ‘아빠 어디가’의 흥행은 우리가 살아온 습관을 고쳐서라도, 때론 목숨을 던져서라도 아이를 보호하고 사랑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그러나 두 작품이 주는 감동은 아이가 겪을 어른들의 세상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가에 대한 공감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지금 어른들은 자식을 최대한 보호하며 세상에 적응시키거나, 장민환처럼 선하고 준비된 어른이 되어 개인적인 차원에서 아이를 돌보는 것을 최선이라 생각한다. 우리 모두가 아이를 아낀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희망, 하지만 부모가 자식을 잘 키우는 것 말고는 아이를 보호할 방법이 없다는 절망. 이 희망과 절망의 교차 속에서 아빠가 있는 감옥이 아빠 없는 세상보다 나은 아이, 그 아이가 친부보다 좋은 조건의 양부 손에서 자라 사법고시에 합격해 친부의 명예를 회복하려는 영화가 히트했다. 정말로, 우리는 ‘좋은 부모’가 되는 것 말고는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을까. <레미제라블>의 장발장이 하던 고민을 2013년의 한국이 하고 있다. 적어도 지금보다는 좋은 답을 찾는 것이야말로 어른들의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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